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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울립니다.

커튼 너머 한 줄기 햇살이 얼굴을 비춥니다.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바로 욕실. 아침잠을 깨우는 상큼한 향의 세안제로 샤워하고, 텁텁한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기 위해 치약을 적당히 짜내 이를 닦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부드러운 피부를 위해 스크럽제도 사용합니다. 어떤 화장품 광고 문구처럼, ‘내 몸은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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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내 몸을 관리하는 매일 매일의 일상이 어쩌면 바다에 플라스틱을 흘려보내는 환경 파괴행위일지 모른다는 사실은 지난 글을 통해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치약, 스크럽제, 바디워시 등 다양한 제품에 세정기능을 높이기 위해 더해지는 미세한 알갱이(각질제), 바로 ‘마이크로비즈’라 불리는 미세 플라스틱이 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과 각종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마이크로비즈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과 각종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마이크로비즈

생명의 순환,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마이크로비즈 

우리가 쓰는 생활용품, 화장품 속 미세 플라스틱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 세면대로 흘러갑니다. 제품 하나당 많게는 무려 36만 개, 심지어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280만 개의 플라스틱 알갱이가 들어갈 수 있고, 한 번의 세안에 많게는 약 10만 개의 마이크로비즈가 사용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알갱이들이 하수처리 시설에서 걸러지지 않을 만큼 크기가 작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렇게 흘러간 마이크로비즈는 강, 하천을 지나, 이내 바다로 직행해 해양 생태계를 위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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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동영상

(영상: Story of Stuff ㅣ 자막 번역: 여성환경연대 ㅣ 출처: 여성환경연대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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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탁에 오르는 해산물로도 전이될 수 있고, 심지어 독성 물질과 결합하는 작용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만들어 내가 돈을 주고 산 제품에 있던 마이크로비즈가, 세면대를 거쳐 바다로, 그리고 플랑크톤, 물고기, 그 상위 포식자 물고기를 거쳐 다시 식탁으로..

‘모든 것은 돌고 돈다’는 말이 이보다 더 적절한 경우가 있을까요?

기업들은 왜 ‘미세 플라스틱’을 제품 속에 넣을까? 

마이크로비즈는 꼭 필요한 성분이 아닙니다. 마이크로비즈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물질들이 있을뿐더러, 이를 닦거나 피부 각질을 제거하는 데 꼭 미세 알갱이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소금, 설탕, 커피, 견과류 껍질 등은 마이크로비즈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천연재료입니다.

미세 플라스틱(마이크로비즈)는 꼭 필요한 성분도 아니고, 이를 대체할 천연재료도 많다.

‘그럼 왜 기업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물질을 내 화장품이나 치약에 넣은 거지?’ 

  1. 첫째, 위에 소개한 ‘Story of Stuff’ 영상 내용에 따르면, 각질제 재료로서 플라스틱이 천연재료보다 더 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 둘째, 더 많은 제품을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연재료보다 효과도 ‘덜’ 하고, 훨씬 ‘더’ 부드럽기 때문에 자주 쓸 수밖에 없죠.

사실 기업이 소비자에게 마이크로비즈에 관해 투명하게 먼저 공개하고, 이 물질을 제품 생산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렇게 되면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사면서 마이크로비즈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일일이 알아봐야 하는 수고를 덜어도 되겠죠.

늦었지만 반가운 변화, 기업 내부에도 공감대 형성 

다행히 기업도 변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비즈 문제를 인식한 화장품·생활용품 업계 내부에서도 대체재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한 거죠. 유럽화장품협회에 이어, 대한화장품협회가 2016년 4월 마이크로비즈 사용 중단을 권고하는 공문을 회원 기업에 보냈고, 이에 국내에서도 55개 브랜드가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의 자발적 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다는 화장품·생활용품 속 플라스틱으로 오염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어떻게 마이크로비즈를 다루고 있을까 궁금해진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는 2016년 4~5월에 걸쳐 화장품·생활용품 세계 상위 30대 기업에 마이크로비즈에 관한 내부 정책을 문의하는 설문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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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많은 기업이 마이크로비즈 퇴출을 바라는 소비자의 요구를 이해하고, 자발적인 변화를 시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각 기업의 정책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이내 알 수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생활용품 및 화장품 기업에, 모든 종류의 마이크로비즈 사용을 중단하고, 그 규제를 세계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 제품과 모든 브랜드에 적용할 것과 유해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대체재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제품에서 나오는 마이크로비즈로 인해 해양생태계가 오염되는 것을 제대로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상위 30개 기업 중 그린피스의 요구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회사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마다 마이크로비즈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또 마이크로비즈 퇴출의 적용 범위가 한정적이거나, 정책 실행 시점을 너무 늦춰 잡고 있었습니다.

세계 상위 30대 기업의 마이크로비즈 정책을 평가한 결과, 최우수 등급을 부여할 기업은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 상위 30대 기업의 마이크로비즈 정책을 평가한 결과, 최우수 등급을 부여할 기업은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 30대 화장품·생활용품 기업의 성적표 

전 세계 30대 화장품·생활용품 기업의 ‘마이크로비즈’ 성적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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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는 다음과 같은 평가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했습니다.

  • 마이크로비즈 사용 중지 정책 여부
  • 정보 투명성
  • 마이크로비즈의 정의 및 범위
  • 정책 이행 시기
  • 정책 적용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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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그룹 – 에스티로더, 레블론, 암웨이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로더, 레블론, 암웨이 등은 최하위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들 기업은 마이크로비즈의 크기(정의)에 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고, 정책 적용 범위나 정책 실행 시점에 관해서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중간 그룹 – 아모레퍼시픽, LG 생활건강 등 

한국의 아모레퍼시픽과 LG 생활건강은 중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이 두 기업의 실점 이유는 마이크로비즈의 정의가 다소 모호했고, 정책 대상 제품의 범위를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두 기업 모두 마이크로비즈 사용 중단 대상 제품의 범위를 물로 씻어내는 제품으로 한정했습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이 밝힌 ‘마이크로비즈 사용 중단 대상 제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 LG생활건강: 클렌징과 스크럽 용도 제품
  • 아모레퍼시픽: 세정 및 각질 제거 용도 제품 
최하위 점수를 받은 암웨이, 에스티로더, 중위권에 머무른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샤넬, 고세
최하위 점수를 받은 암웨이, 에스티로더, 중위권에 머무른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샤넬, 고세

상위 그룹 – 바이어스도르프, 콜게이트 파몰리브, L브랜드, 헨켈 

바이어스도르프(Beiersdorf), 콜게이트 파몰리브(Colgate-Palmolive), L브랜드(Lbrands), 헨켈(Henkel) 총 네 곳입니다. 이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는 점
  • 마이크로비즈 사용 중단 정책의 이행 시기가 빠르다는 점
  • 마이크로비즈 사용 중단 정책을 전체 글로벌 시장에 적용한다는 점

하지만 이들 기업조차 최우수 점수를 주기엔 부족했는데요. 일례로, ‘니베아’로 유명한 바이어스도르프(Beiersdorf)는 폴리에틸렌 한 가지만 마이크로비즈로 규정해 여전히 다른 플라스틱 물질을 사용할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 – 기업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 

이번 조사 결과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기업마다 마이크로비즈에 관한 정의와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정의와 원칙이 세워지지 않고, 기업마다 기준과 정책이 제각각이니 소비자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이제 정부가 “기준”을 세울 때 

99%의 시민들은 정부 대응 부족, 86%의 시민들은 기업 자율 규제 부족하다고 응답

기업의 자율 규제는 소비자의 신뢰를 ‘훔치기’ 위한 눈가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적합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함에도 임의로 만든 기업 내부 기준에만 충족하면, 스스로 ‘친환경’이라고 포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업의 내부 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문제 삼을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대한화장품협회가 공시한 자율 규약은 말 그대로 강제성이 전혀 없는 ‘자발적인’ 규제에 불과합니다.

결국, 마이크로비즈로 인한 해양 오염과 소비자 피해를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기업의 개별적이고 자발적인 움직임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촘촘한 법망으로 규제해야 환경 오염 물질이 해양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결국 우리 자신의 몸마저 해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린피스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한국리서치와 그린피스가 지난 6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시민 여러분도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한국리서치 마스터 샘플 패널을 활용한 웹 인터뷰, 대상: 전국 17개 시도 성인 남녀 1,000명, 신뢰 수준: 85%, 표본 오차율: ±3.14%, 2016년 6월 조사
한국리서치 마스터 샘플 패널을 활용한 웹 인터뷰, 대상: 전국 17개 시도 성인 남녀 1,000명, 신뢰 수준: 85%, 표본 오차율: ±3.14%, 2016년 6월 조사

아직 많은 시민이 마이크로비즈가 초래하는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지만, 이 문제를 알게 된 후, 응답자의 86%는 기업 주도의 자율적 규제가 부족하다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또한, 무려 99%가 마이크로비즈에 대한 정부 대응이 부족하며 이에 대한 강제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마이크로비즈가 들어간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한 응답자도 무려 71%에 이르렀습니다.

소비자이자 시민인 우리 모두에게는 직접 구매하는 제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권리, 그리고 유해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나의 즐거운 아침을 여는 시간이 마이크로비즈로 오염되지 않을 권리로 직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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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해양보호 캠페이너로 활동하는 박태현 님의 글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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