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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책임: 영화 [부산행] 리뷰

※ 이 리뷰에는 [부산행]의 줄거리가 노출돼 있습니다. 줄거리 노출을 원하지 않는 독자께 미리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다.

책임지고 산다는 것

정치인 등 우리 사회에서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분들만 모아놨다고 하는 영역에서 왜 얼토당토않은 해명이 나와서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문을 느낀 지 10여 년 만에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기는 하다.

‘내가 잘못했다. 죄송하다.’ 

혹시 이 열 글자를 말하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잘못했다’는 말을 하기 싫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다. 책임지기 싫어서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책임을 지고 산다. 부모로서의 책임도 있고, 직업적 책임도 있다. 신분이 높아질수록 그 책임은 막중해진다.

책임에 비례해 따르는 것이 권리라지만, 사람의 이기적인 속성은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말라’는 악마의 끊임없는 속삭임에 수시로 굴복한다. 책임은 인내하고 의식하면서 행동으로 표현된다. 사람의 삶은 책임을 지기 위해 이기심과 싸우는 끝없는 투쟁이다.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를 지향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관통하는 두 글자는 바로 ‘책임’이다.

부산행 (2016, 연상호) (주)영화사 레드피터

부산행 (2016, 연상호) ㅣ (주)영화사 레드피터 (제작) ㅣ N.E.W (배급)

석우와 영석, 우리들의 일그러진 엘리트

[부산행] 속 등장인물 중 직업이 가장 번듯한 사람은 증권회사 간부 석우(공유 분)와 버스회사 상무 영석(김의성 분)이다. 누리는 것은 가장 많다. 하지만 누리는 만큼의 책임은 전혀 지려고 하질 않는다. 사람에 대한 양심은 내팽개쳤으며, 오로지 자신만 챙기려고 든다.

부산행 (2016, 연상호)

석우(공유)와 영석(김의석), 부산행 (2016, 연상호) 중에서

[부산행]에서는 근본적으로 ▲부모로서의 책임 ▲직업적 책임 ▲공동체 의식이라는 세 종류의 책임이 묘사된다. 석우는 셋 다 벗어나 있다.

석우는 딸 수안(김수안 분)에 대한 양육권에는 집착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를 놓고 아내와 통화 중 다툼을 하면서도 승용차에 난 흠집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양육비를 주기 싫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가능성은 수안에게 생일 선물로 어린이날과 똑같이 닌텐도 Wii 게임기를 주다가 무안당한다는 것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조차도 자신이 직접 고른 것이 아니라 부하 직원에게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나서 고른 선물이다. 딸이 진짜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직업적 책임은 어떨까? ‘작전’에 대해 상사에게 “개미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하지만 이내 제압당한다. 이후 부하 직원이 자신처럼 개미들을 걱정하자 “개미들 심정까지 신경 쓰며 일하느냐”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조직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일원임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석우도 오로지 숫자로 표현되는 돈에만 집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공동체 의식을 가질 리는 없다. 좀비들이 열차를 습격하자, 석우는 자신의 본능대로 행동한다.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며 도피하려는 상화(마동석 분)와 성경(정유미 분) 등이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영석은 “문을 닫으라”고 악을 쓰고, 석우는 그 말대로 문을 막고 있다가 얼떨결에 문을 열어 상화와 성경을 들여보낸다.

부산행 (2016, 연상호) 중에서

상화(마동석)와 성경(정유미), 부산행 (2016, 연상호) 중에서

영석 역시 무책임하고 비열하기로는 마찬가지이다. 좀비로부터 겨우 도망쳐 반쯤 정신이 나간 노숙자(최귀화 분)를 보자 어린 수안에게 겨우 하는 말이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된다”였다.

무엇 때문에 놀랐고, 무엇 때문에 열차로 뛰어들었는지 묻는 것이 순리이다. 영석은 노숙자의 행색만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차라리 어린 수안이 더 철이 들어서 “우리 엄마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영석은 여기에 지지 않고 “너희 엄마가 어렸을 때 공부 열심히 안했나 보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남긴다. 50대 버스회사 상무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남긴 말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로 소비되는 일은 고위층이나 부자가 편법이나 샛길로 특혜를 누리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석우와 영석은 모두 여기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본색을 더욱 확실히 드러낸다.

석우는 자신의 고객으로 있는 장교와 통화를 하며 “나와 딸만 도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묻고, 영석은 기장(정석용 분)에게 “사람들을 버리고 빨리 부산으로 가자”고 요구하다가 기장에게 거절당한다. 기장이 이를 거절한 이유는 “사람들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고위층에 대한 시민의 질타이자, 세월호 선장 이준석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상화, 책임지기 위해 희생하다

석우·영석과 대비되는 캐릭터는 앞서 이야기했던 기장과 상화(마동석 분)이다. 깊이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상화는 석우·영석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암시된다.

상화는 폭력을 쓰는 거친 일을 했다가 아내 성경을 만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다. 기차에서 처음 만난 수안에게도 아내 성경과 함께 따뜻하게 대해주며, 석우와 전혀 다른 캐릭터임이 묘사된다.

부산행 (2016, 연상호) 중에서

부산행 (2016, 연상호) 중에서

수안에게 가장 위급한 순간이 왔을 때도 수안의 옆에는 석우가 아니라 그날 처음 만난 상화와 성경이 있었고, 그들이 구해낸다.

상화는 작중 내내 그 완력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구한다. 석우·영석과는 달리 이해타산은 없다. 심지어 자신을 위기로 몰았던 석우도 구조의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상화는 공동체 의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캐릭터이고, 그 근원에는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다.

상화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양심과 살아가는 마음가짐 등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상화로 인해 석우는 변한다. 그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던 ‘우리’를 생각하게 됐고,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노숙자를 구하기 위해 앞장섰다. 상화는 석우에게 고귀한 스승이었다.

정부의 책임

KTX 기차의 번호는 406이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숫자인 416을 살짝 비튼 것으로 볼 수 있다. 석우·영석은 모두 “돈을 많이 만진다”는 측면에서 서민들보다는 정부와 친화적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비판은 어느덧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확산한다.

세월호. 일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부산행]에서 엿볼 수 있는 정부의 대처는 무능력과 무책임의 경계를 오간다. 안전행정부(現 행정자치부) 장관은 좀비 출현을 ‘폭동’이라고 발표한다. 그러면서 “국민 여러분은 안전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것은 6·25 전쟁 당시 국민의 피난 대책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이 홀로 도주한 이승만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아울러 수백 명의 승객을 놔두고 도주한 세월호 선장 이준석 등 선원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부산행 (2016, 연상호) 중에서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부산행 (2016, 연상호) 중에서

이후의 대처도 마찬가지라서 기차가 정차한 뒤, 역에서 단체로 서 있던 군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순간 정부의 안일한 무능력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군인들은 고작 진압용 곤봉과 방패만을 가지고 있었다. 좀비받이로 내몰아버린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이것은 전역자들이 군 입대와 전역 후 숱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에서도 각국의 군대는 이미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는 총격과 미사일 폭격을 가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시민들을 한 명이라도 보호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월드워 Z (2013, 마크 포스터) ㅣ © 2013 Paramount Pictures

월드워 Z (2013, 마크 포스터) ㅣ © 2013 Paramount Pictures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일선에 선 군인들도 큰 위험에 처한다. [월드워 Z]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이 속수무책으로 감염되거나 무너지는 장면들이 연이어 묘사됐다.

[부산행]은 이렇게 ‘책임’을 전면에 내세워 묘사했다. 영석은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 샛길로 가려고 했으며, 석우는 뒤늦게 책임을 인지하며 사람다움을 몸에 묻힌다. 상화는 책임을 고귀한 희생으로 승화시켜 사람들을 구한다. [부산행]은 그래서 한편으로 책임을 둘러싼 세 남자의 이야기이다.

알로하 오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서로 작별하여 떠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다시 만날 때까지.”

하와이 릴리우오칼라니 Queen_Liliuokalani_1908‘알로하 오에'(Aloha ‘Oe)는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여왕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사진)가 미국에 나라를 빼앗긴 후 이올라니 궁전 구석에 유폐됐을 때 작곡한 노래이다. 자신의 나라를 잃은 슬픔,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애잔하게 느낄 수 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 다시 만나는 날은 먼 훗날 천국에서 함께 하는 날이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고, 죽은 자를 기억하며 그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그 무거운 책임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연결된다.

[부산행]은 희망을 남기기 위해 신파 코드를 선택한다. [돼지의 왕]에서 직설적인 사회 비판을 남겼던 연상호 감독답지 않아서 일각의 비판이 제기된다. “남녀노소 가림 없는 모두의 만족을 위해 안전한 길을 걸었다”며 이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이 됐든, 각자의 생각이고 선택이다.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정부(정확히 말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미진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상징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산행]의 신파 코드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석우는 급박한 상황과 상화로 인해 변하면서 책임이 무엇인지 자각한다. 또한 “대규모 좀비 출현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동으로 실천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 상식이 무너지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무너진다.

우리의 세상이 무너질 듯 무너질 듯하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저 상식 자체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샛길로 가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회였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https://www.facebook.com/leepary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그리고 그것을 관객에게 강조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남기면서 과거에 대한 단죄의 계기가 필요했다. [부산행]의 신파 코드는 이를 이야기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추정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견은 각자의 입장에서 모두가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이것은 보수·진보 구분도 필요 없다. 적어도 사람의 마음은 가지고 살아야 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져야 할 책임은 분명하게 지고 살자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이토록 소박하고 당연한 이야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서글픈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없다.

+ [부산행]의 변칙 개봉과 스크린 독점에 관하여 

[부산행]은 [나우 유 씨 미2]를 따라 개봉 전주 주말에 ‘유료 시사회’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사전 개봉을 진행했다. 그에 따라 정식 개봉 전에 영화를 감상한 사람이 수십만 명이다.

이런 변칙적 행위와 더불어 개봉 첫날 1,570개 스크린(상영점유율 53.7%)을 차지한 독점 논란은 같은 날 개봉하는 다른 영화들과 그 전주에 개봉한 영화들에 큰 피해를 주고, 관객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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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형준
초대필자. 기자

저는 '샤브샤브뉴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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