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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도 전에 결말을 알 수 있는 여행이 있다. 이번 여행이 바로 그런 여행이었다. 2015년 12월, 나는 다시 리스본으로 갔다. 3년 전 리스본 여행에서 단골술집이 되었던 마르셀리노에 다시 갈 참이었다. 마르셀리노의 주인 ‘누노’와 그곳에서 매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호르헤’를 만나서 나의 책 [모든 요일의 기록]을 선물할 참이었다. 그 책에 그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적혀 있으므로. 물론, 그들은 그 책을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뱃속이 간질간질했다. 다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들의 눈은 놀라움에 잔뜩 커질 것이다. 그들에게 내 책을 선물하면 그들은 너무 벅차 가슴에 두 손을 얹을 것이다. 행복한 그들을 보며 우리는 더 행복하게 술을 마실 것이다. 호르헤는 어김없이 기타를 꺼낼 것이다. 수줍게 노래를 부르고, 우리가 박수를 칠 때마다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라고 조용히 말할 것이다. 그럼 우리는 또 술을 시킬 것이다. 기꺼이 만취해버릴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단골술집에 돌아왔으므로. 이 결말은 명백했다. 명백히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자정이 넘어 리스본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의 주소를 내밀었다. 호르헤의 집주소였다. 3년 전 헤어질 때 그가 준 명함을 고이 간직해뒀다가 이번에는 그의 숙소를 빌린 터였다. 빨리 도착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도 모르고 택시 기사는 숙소 근처에 거의 다 와서 헤맸다.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이 광장이 정확하게 어딘지를 모르겠네. 잠깐만요.”

택시 기사는 거짓말처럼 바로 그 술집, 마르셀리노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길을 물었다.

“메니노데우스 광장이 어디예요?”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나서서 대답했다.

“그 골목 위로 조금만 올라가시면 돼요.”

대답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르셀리노의 주인, 누노였다. 바로 그 누노였다. 너무 반가워 택시에서 뛰어내릴 뻔했다. 물론 침착한 남편이 나를 진정시켰다. 내일 만날 거니까 우선은 숙소에 가자고. 맞다, 호르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새 또 깜빡했다.

누노가 알려준 길로 올라갔더니 바로 호르헤 집이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호르헤가, 바로 그 호르헤가 성큼성큼 걸어나오더니 우리 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반가워 방긋방긋 웃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우리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낯섦이 가득했다. 설마, 우리를 못 알아보는 건 아닐거야.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며 그가 렌트해준 집으로 들어섰다. 집을 다 소개받고 나서는 호르헤에게 내 책을 내밀었다. 그에게 주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고이 싸들고 온 그 책을.

“이게 뭐야?”

“책이야. 내가 책을 냈거든. 그리고 거기에 네 이야기도 들어가 있어! 여기 봐봐.”

어리둥절해하는 그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의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표정은 더 어리둥절해져버렸다. 여기 왜 내 사진이 있는 거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거야?

“지난번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야. 왜 그날 밤 있잖아…….”

“아, 맞다! 니네들 지난번에 리스본에 왔었다고 그랬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설마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새벽 두 시까지 이어졌던 너의 공연을 우리는 전설로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의 CD를 구입해서 듣고 듣고 또 들었는데. 마지막 날 헤어질 때 우리 테이블에서 불러줬던 노래는 녹화까지 해서 돌려보고 또 돌려봤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어떻게 너는.

“어떻게 우리를 기억 못할 수가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누노도 우리를 기억 못하는 거 아니야?”

“뭐,그럴지도 모르지.”

담담한 남편과 달리 나는 순식간에 상심해버렸다.

다음 날, 마르셀리노에 가며 나는 기대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 애썼다. 누노는 다를 거야, 누노는 우리를 알아볼 거야, 라며. 때마침 호르헤도 그곳에 들어왔다. 호르헤가 우리에게 “너희들 여기에 있었구나”라며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누노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우리를 소개해주었다. ‘소개’해주었다. 소개라니, 이 무슨.

알아들을 수 없는 포르투갈어로 호르헤가 누노에게 우리를 설명했고, 설명 내내 누노는 우리를 바라봤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 무슨. 긴 소개 끝에 누노가 한마디를 했다. “Looks familiar.” 본 것 같은 얼굴이라니. 그 말을 바꿔 말하면 모르는 얼굴이라는 뜻인건가. 우리는 어젯밤에 네 얼굴을 보고 택시에서 내릴 뻔했는데, 너는 Looks familiar가 끝이야? 내 얼굴에는 실망감이 순식간에 새겨졌다.

“3년 전 딱 이맘때 우리가 거의 매일 왔었거든.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책에도 썼고.”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갔다해서…… 실은 잘 기억 안 나.”

그의 말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가게를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3년 전 막 시작한 가게는 이제 두 배나 확장이 되어 있었다. 테이블은 세 개에서 열 개 정도로 늘어났다. 벽에는 처음 보는 사진들이 빼곡했다. 호르헤의 CD가 들어있던 그릇장은 이제 처음 보는 와인들로 채워져 있었다. 호르헤는 지금 커피를 사서 영화관에 가려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더 이상 그는 이 가게에서 연주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호르헤가 연주를 하지 않는 마르셀리노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의 단골술집이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도대체 어디에 남아있는 걸까. 우선 술을 한 잔 주문했다. 3년 전에도 매일 마셨던 누노의 산딸기 상그리아를. 그것 말고는 익숙한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무 말 없이 상그리아를 홀짝였다. 이십 대 젊은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누노와 악수를 하고 맥주 한 병을 사서 나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어오더니 누노와 포옹을 하고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한참이나 서서 수다를 떨다가 그냥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 와서 누노와 한참이나 앉아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또 훌쩍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끝없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끝없이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비쥬를 했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관광객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제야 사태는 선명해졌다. 우리는 그의 삶의 관광객이었다. 잠깐 들렀다 멀리 떠나는 관광객. 순간을 영원이라 생각해버리고, 파편을 전부라 착각해버리는 관광객. 단골술집이라며 우리가 아무리 친한 척해봐도 변하는 사실은 없었다. 우리는 누노의 일상이 될 수 없었다. 그에게는 다른 일상이 있었던 것이다. 별일이 있어도, 별일이 없어도 수시로 그곳을 들락날락거리며 안부를 묻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의 일상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그 사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3년 전 그 밤은 이미 신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 밤을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3년 전 그 밤을 소중히 하고, 닦고, 글로 쓰고, 사진을 찍고, 책에 싣고, 자랑하면서. 하지만 누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 그 밤은 평범한 밤 중 하나였으니까. 그것은 누노의 일상이었으니까.

호르헤의 충격을 소화하고, 누노의 충격까지 꾸역꾸역 소화하며 앉아있다 보니 명확한 것이 생겼다. 그제야 나의 이기심에 나조차 너털웃음이 났다. 나는 그들이 유적이 되길 바랐던 건가.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백 년 전에도 백 년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일 유적지의 돌덩이가 되길 바랐던 건가. 지나간 과거만 쓸고 닦아 애타게 기억하는 박물관이 되길 바랐던 건가. 나는 3년 동안 이토록이나 변했으면서 그들의 변화에는 왜 이토록 매정한 것인가. 나는 수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렸으면서 그들은 왜 나를 잊으면 안 되는 건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랐던 건가.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기억 속의 진실이죠.
기억 속에는 기억만의 특별한 현실이 있으니까요.[footnote]살만 루슈디, [한밤의 아이들 1], 문학동네, 2011[/footnote]

동시에 명확해지는 것이 있었다. 내가 “리스본에 자주 가는 단골 술집이 있는데 말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진실이라는 것이었다. 살만 루슈디의 말처럼 그것이 나의 기억 속의 진실이고, 그 기억 속에서는 뮤지션들의 연주가, 호르헤의 웃음이, 누노의 산딸기 상그리아가 여전히 생생한 현실이니까. 그리고 그 현실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 그 감정도 나의 것, 누가 빼앗아갈 수 있거나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나만의 마르셀리노가 있었다. 그 마르셀리노는 온전히 나의 마르셀리노, 마르셀리노의 주인인 누노의 것도 아니었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 다시 한 번 마르셀리노에 들렀다. 우린 이제 한국에 돌아간다고 인사를 하려고 들렀는데,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반짝이는 눈빛이 보인다. 누노의 아내, 리타였다. 뛰어나와 우리의 손을 잡더니, 다시 만나 너무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를 기억해?”

“당연하지. 크리스마스 때 같이 밥도 먹었잖아.”

갑자기 설움이 막 밀려들어서 그녀에게 그만 고자질해버리고 말았다.

“너는 한두 번밖에 못 만났는데도 우리를 기억하잖아. 근데 네 남편은 뭐라 그런 줄 알아? Looks familiar래. Looks familiar라니. 나 완전 충격받았잖아.”

“남자들이란.”

리타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속이 시원해졌다. 나도 질세라 소리를 높였다.

“남자들이란!”

그녀는 우리를 자리로 안내하고, 뭘 먹고 싶냐고 묻더니, 스태프들 저녁으로 만든 볶음밥도 맛보라며 내왔다. 그러고는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서 얼마 전에 태어난 아들, 마테우스 사진을 보여줬다. 누노도 우리에게 한참을 자랑한 사진이었다. 얼마 전에 기어다니기 시작했는데, 금방 걸을 것 같다고, 너무 귀엽지 않냐며 리타도 한참을 자랑했다. 널 닮아서 눈이 진짜 크고 예쁘다고 말해줬더니, 콧구멍까지 활짝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몇몇의 수다가 흘러간 후 리타는 3년 전 크리스마스 때 같이 밥을 먹었던 독일인 아저씨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빵 굽는 아저씨 말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순식간에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말을 했다. 병원에 가고, 수술을 하고, 간호도 하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다며 눈물을 훔쳐냈다. 그 사람은 우리 가족과도 같았다며. 그 눈물 끝에 그녀는 애써 웃으며 더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었다. 이미 너무 배가 부르다고, 고맙다고 대답했다. 이 고마움은 진심이었다.

정말 고마웠다. 이동하는 건 여행자만이 아니라는 걸 우리에게 알려준 호르헤와 누노, 그리고 리타가. 그들의 삶도 어디론가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빵 굽던 독일인 아저씨가 돌아가셨고, 마테우스가 태어났다. 그 이야기들을 하며 울다가도 또 웃었다. 그게 삶이니까. 삶은 끝없이 흐르는 거니까. 그 여정 가운데 우리를 만나기도 하고, 우리와 헤어지기도 하고, 우리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우리를 기억하기도 하는 거니까.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줘서 나는 정말 고마웠다. 남편에게 말했다.

“생각도 못한 결론이야. 여행 떠나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어. 이런 결론을.”

“나는 이 결론이 너무 좋아. 당신은 누노와 호르헤에게 실망했지만, 나는 누노의 그런 표정을 처음 봤어. 마테우스 자랑을 할 때의 누노와 리타의 표정은 정말. 그런 건 처음 봤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리고 울어버리다니. 우리를 몇 번이나 봤다고. 낯선 우리 앞에서 울어버리다니. 상상도 못했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야. 우리들 사이엔.”

“응.”

“다음에 왔을 땐 마테우스가 여기를 뛰어다닐 수도 있어. 혹은 모두가 이곳을 떠나버리고 없을 수도 있어.”

“응.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실은 그게 진실이지.”

남편이 한마디를 보탰다. 오랫동안 곱씹어보고 싶은 한마디를.

“진실이 항상 비극은 아니야.”

진실이 항상 비극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이 진실이 나는 마음에 든다. 상상보다 훨씬 더 풍성한 진실이었다. 새 생명과 눈물이 흐르는 진실이었다.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진실을 찾기 위해 끝없이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히 여행자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진실이 진실로 마음에 든다.

[box type=”note”]이 글은 [모든 요일의 여행] 중 일부입니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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