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여기 강진석이란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기 전 사망했습니다. 강진석에게는 외조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북한의 김일성입니다. 광복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국가보훈처는 2012년 76주년 광복절에 애국지사 198명을 선정하여 포상했는데, 그중에 북한 김일성의 외삼촌 강진석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김일성 부모에게도 훈장을 주는 길을 터줬다”며 보훈처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강진석의 경우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애국장을 서훈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답변했습니다.

박용진 의원의 주장처럼 보훈처장의 안보관이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독립운동가라면 가족의 행적과는 관계없이 당연히 서훈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구합니다. (편집자)[/box]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된 것이 아니라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했다.

국정교과서 논란을 비롯하여 온갖 역사 논쟁에서 가장 중요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1910년 조선이 병합된 이후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3·1 운동의 여파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제헌헌법도 그렇고 오늘의 대한민국 헌법 역시 3·1 운동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임시정부를 우리 역사의 정통으로 바라봅니다.

북한과 남한의 차이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가 지배했던 기간을 ‘일제강점기’, ‘대일항쟁기’ 등 보다 강경한 용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조선에서 일제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흘러온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독립운동사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거쳐 왔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릅니다. 북한의 경우에는 3·1 운동 이후 본격화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만을 그들 나라의 정통성으로 파악합니다. 또한, 타도 제국주의 동맹이라는, 실체조차 입증하지 못한 단체를 기준으로 김일성에 의해 건국된 나라라고도 주장합니다.

종파 투쟁에서 특정 집단이 숙청을 당하고 나면 그들의 노력이 역사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구조라서 1950년대 이후 북한의 역사교육은 끊임없이 퇴행의 과정을 거칩니다. 소련파와 연안파가 숙청을 당하면 그들이 헌신했던 사회주의 운동사가 교과서에서 배제되었고 갑산파마저 정리가 된 이후에는 오직 김일성만 남은 것이 북한의 역사 교육입니다.

박용진 의원, “김일성 외삼촌 서훈 취소” 발언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김일성 외삼촌 서훈 취소’ 발언 때문입니다.

YouTube 동영상

박용진 의원의 발언에 대해 오마이뉴스 등 여러 매체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비판합니다.

오마이뉴스 - 더민주 박용진 의원,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
오마이뉴스 – 더민주 박용진 의원,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
  • 북한 수립 이전에 했던 활동에 대해 왜 비판하는가.
  • 연좌제다.
  • 전형적인 종북 혐오 발언이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혐오’라는 최신의 사회적 화두까지 끄집어내서 이 문제를 비판한 부분에 대해서는 신선하면서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박용진 의원의 주장 이후 보훈처는 “상훈법 개정을 추진해 빠른 시일 내 북한 고위층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서훈 취소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보훈처는 보도자료에서 주요 사회주의 계열 독립유공자 포상 내용을 거론하면서 그들 역시 보훈 취소 검토 대상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자, 박용진 의원은 모호한 답변으로 책임을 피하려고 합니다.

연합뉴스 – 박용진 “김일성 친인척 서훈, 통일 이후에 줘도 늦지않아”
  •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을 반대한다.
  • 하지만 김일성에 대한 기준은 명백히 달라야 한다.
  • 여운형 선생이 그랬듯 국회 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박용진 의원의 발언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참으로 위태로우며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발언입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립운동사에서 대한민국’으로 본다면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의 역사는 여타의 가치보다 우선합니다. 그가 해방 이후에 ‘남한을 선택했는가’, ‘북한을 선택했는가’는 판단의 기준이 아닙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는 것 자체로 평가를 받고 그에 합당한 대우와 국가 포상을 받는 것이 지극히 합당합니다. 더구나 이는 단순한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수차례 개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이견도 없었던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김일성에 대한 기준은 달라야 한다? 어불성설입니다. 기준이 독립운동사이고 헌법 또한 이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box type=”tip”]

문제를 내보겠습니다.

(1) 김원봉은 의열 활동을 하며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사회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한인 사회주의 진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고 다시 임시정부에 합류했으나 해방 후 결국 북한에 가서 김일성에 의해 제거를 당했습니다. 김원봉을 이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한민족을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까, 아닙니까?

(2) 이동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한인사회당을 창당했고 이후 여타의 사회주의 계열과 극심한 대립을 보이면서 한인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듯 그는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지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한민족을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까, 아닙니까?

(3) 장지락(김산)의 경우에는 기독교와 민족주의를 거친 후 사회주의자가 됩니다. 이후 사회주의 계열에서도 변화무쌍한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 중국공산당 수도인 옌안에서 죽게 됩니다. 인생의 후반부가 사회주의로 빼곡히 채워져 있지만, 민족해방을 위한 방향성을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사회주의를 민족해방을 위한 대안으로 믿고 평생을 노력하였습니다. 이 경우는 어떻게 평가해야겠습니까?
[/box]

독립운동사에 이념을 가로지르는 인물들은 숱하게 많습니다. 김구, 조소앙 같은 대표적인 민족주의자들조차 사회주의의 장점을 수용하면서 민족주의 이념을 체계화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분들입니다.

김일성은 안 되고, 월북은 되고? 박용진 의원 자의적인 판단

이러한 논란을 피하고자 박용진 의원은 사회주의와 김일성을 구분한 것입니다. 하지만 임시정부 군무부장 출신으로 친일경찰 노덕술에 의해 고문당한 후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김일성에 숙청을 당한 김원봉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영화 [암살] 속에서 조승우 배우가 연기한 김원봉 ©쇼박스
영화 [암살] 속에서 조승우 배우가 연기한 김원봉 ©쇼박스

누가 봐도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지만 해방 이후 북한으로 건너가서 생을 마감한 백남운, 허헌, 원세훈 같은 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려운 문제를 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박용진 의원은 본인의 안보관을 들이밀며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엉뚱한 기준을 내세우지만 대한민국은 북한과는 다르게 독립운동사를 정통으로 계승한 나라이며, 한민족을 대표하는 정통 정부이며, 나아가 통일 한국을 이루어낼 나라입니다. 그에 걸맞은 헌법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김일성의 친인척과 함께 박헌영 남로당 책임비서의 부인 주세죽(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 김철수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권오설(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 등이 모두 포상을 받은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만길 교수가 김일성의 만주 항일 무장 투쟁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말한 것 역시 이런 연장 선상에서 한 발언입니다.

MBC - 강만길 위원장, 김일성 항일투쟁 독립운동 인정 고려

강만길 광복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오늘 김일성 주석이 항일운동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인 만큼 김 주석의 항일투쟁을 당연히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만길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은 어디까지나 독립운동이며 사회주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광복 이후의 문제라고 부연했습니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을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독립운동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MBC – 강만길 위원장, 김일성 항일투쟁 독립운동 인정 고려

국회가 토론해야 한다고 하는데, 국회는 헌법 위에 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역사학자들을 불러다 놓고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문제에 관해 제대로 된 성찰과 평가를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채 ‘국회가 토론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의 발언은 유신 시절 대통령의 긴급조치가 헌법을 우선하는 것과 꼭 같은 발언입니다.

신채호와 이회영은 민족주의자로 시작했지만, 아나키스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민족반역자로 생을 마감한 것일까요?

안창호와 김규식은 평생을 본인들의 뚜렷한 기독교 민족주의 입장과 무관하게 좌우합작, 사회주의 진영과의 연합에 매진하였습니다. 이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김구의 경우 1946년에는 3.1절 기념식에서 김일성 암살을 시도할 정도로 극우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1948년에는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분단의 위기 가운데 극적인 입장 전환을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을 만나러 북행을 하게 되고요. 그렇다면 김구조차도 국회에서 재논의를 거쳐야 하는 걸까요?

여운형은 기독교 전도사로 시작하여 사회주의자로 활동했고 해방 공간에서의 치열한 좌우합작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회주의자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봉암은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을 공개 비판하면서 ‘비미비소(非美非蘇) 민족자주노선’을 펼치면서 이승만과 대결하였지만, 해방 이전에는 여운형과 같이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이념이 아닌 독립운동사를 보아야 한다

이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국회가 토론을 통해 판단한다니요. 어불성설도 이런 어불성설이 없습니다. 한명 한명이 입법기관이라고 자임하면서 왜 헌법적 가치에 대해 이토록 무지합니까.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념이라는 뒤늦게 나타난, 또한 언제 사라질지도 모를, 극히 정치적이며 불완전한 잣대를 왜 우리 역사에 들이미는 건가요. 왜 이상한 잣대를 들이밀어서 독립운동사가 보여준 위대한 역량을 함부로 재단하나요. 이게 뉴라이트 일파가 했던 행동과 무엇이 다릅니까.

박용진 의원은 반드시 사과해야 합니다. 동시에 독립운동사가 가진 위상과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사를 기초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헌법의 의미에 대해 참으로 절실하게 성찰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