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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3. 깊은 심심함 혹은 행복의 조건

재독학자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는 ‘깊은 심심함’을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어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표현한다. 즉 심심하게 지내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정신적 이완을 경험하고 이런 시간을 통해 창조적인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심심함의 시간이란 견딜 수 없는 순간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보며 새로운 화면을 클릭한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사고는 쉬는 시간에도 ‘언젠간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은 정보를 훑어보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런 산만한 활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연속적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뿐. 극단적인 정보의 과잉주입은 오히려 삶을 극단적인 산만함으로 채울 뿐이다.

한편 ‘프레임’이라는 심리학 책으로 명성을 얻은 최인철 교수는 ‘행복’의 필요조건에 대해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연구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직접 질문을 통해 조사했는데 음식을 먹거나 섹스를 할 때, 음악을 듣거나 산책 또는 운동할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행복을 자아낸 이 모든 활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어떤 활동에 몰입했을 때 만족감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은 사람들에게 던졌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행복하십니까?’, ‘딴생각하고 계십니까?’ 등. 여기서 ‘딴생각’이란 어떤 활동을 할 때 그것에 집중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급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겼을 때 많이 나타난다.

최 교수는 집중할 수 없고 마음이 산만할 때 급박한 마음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산책을 권하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종이책 읽기.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쓰기’라고 한다.

Mrsdkrebs (CC BY)

요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라’라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즉 마음을 강하게 단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바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기이며 걷기, 읽기, 쓰기는 인간이 혼자서 할 수 있으면서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이다.

행복하려면 몰입할 수 있어야 하고, 몰입할 수 있으려면 심심한 시간이 있어야 하고, 심심한 시간을 견뎌 내려면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활동을 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은 ‘꿈’을 주로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 글의 머리말에서 인용한 발터 벤야민도 요즘 사람들과 같은 생각으로 ‘꿈의 새’라는 표현을 썼을까? 꿈이라면 자아의 존재감 발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박한 행복감, 나와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아닌 더 큰 의미의 공동체 정신, 더 나아가 인류의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의 창조를 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용적인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단어들로 나열되는 ‘꿈’에 대해 코웃음을 친다. 그런 심각한 말 뿐인 이상은 오히려 감동이 없다고도 한다. 실제로 이런 이상주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사회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상주의야말로 동물이 아닌 오직 인간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피로사회’는 ‘멀티테스킹’을 기술집적의 문명이 만들어낸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라 매 순간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야생동물의 본성이라고 설명한다. 즉 ‘깊은 심심함’이란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깊은 심심함도 이상주의도 온전히 인간만의 것이다.

만약 일의 성공과 가족의 안정을 위해 정신없이 살고 있음에도 마음 속 꿈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처럼 느낀다면 ‘깊은 심심함’에 빠져 보기를 도전해 보면 어떨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면 바로 지금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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