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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필자가 직접 베이컨을 만들며 축적한 체험과 노하우를 독자와 나눕니다. (편집자)

  1. 베이컨이 짠 이유
  2. 아질산염은 무죄
  3. 삼겹살이 아질산염을 만났을 때
  4. 집에서 베이컨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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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질산염에 씐 혐의가 부당하다는 점은 앞서 말한 바다. 아질산염은 무죄다. 다만, 선정적인 ‘공포 마케팅’을 앞세운 엘로 저널리즘의 희생양이었을 뿐.

아질산염을 이용한 염지

아질산염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균, 황색 포도상구균, 살모넬라균의 생장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육색소단백질 미오글로빈(myoglobin)과 반응하여 염지(소금 양 조절, 다른 재료 혼합 등으로 짠맛을 줄이고 풍미를 살리는 것)된 고기가 갈변되지 않고 선홍색을 유지하도록 하는 육색 고정 효과를 나타낸다.

미오글로빈은 살아 있는 동물의 근육에서 중요힌 역할을 하던 터였다. 혈색소 단백질 헤모글로빈(hemoglobin)이 혈류를 통해 폐에서 산소를 운반해 오면 저장해두었다가 근육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때 내어주는 산소 저장체 구실이 그것이다.

고기의 색은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의 함량이 많을수록 붉은색을 띠게 되는데 산소 운반체 역할을 하던 피 속의 헤모글로빈은 동물을 도축하여 방혈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빠져나가게 되므로 고기의 색은 미오글로빈 함량에 따라 달라진다.

고기

삼겹살은 아질산염을 만나 비로소 ‘베이컨’이 된다 

미오글로빈은 글로빈(globin) 단백질과 헴링(heme-ring)이 불리는 비단백질로 구성되는데 헴링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철 원자의 원자가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1. 고기를 자르면 절단면의 미오글로빈은 산소를 만나 옥시미오글로빈(oxymyoglobin)으로 변하면서 선홍색을 띤다.
  2. 그러나 잠시 방치해두면 헴링 속 2가의 철 원자가 3가로 산화되어 메트미오글로빈(metmyoglobin)을 형성하며 갈색으로 변한다. 아질산은 미오글로빈과 반응하여 메트미오글로빈을 형성하거나 천천히 분해되어 일산화질소를 발생시키는데 염지 재료에 비타민C 를 첨가하면 일산화질소의 발생이 촉진되어 염지 속도가 빨라진다.
  3. 일산화질소는 메트미오글로빈과 반응하여 니트로소메트미오글로빈(nitrosometmyoglobin)을 형성하고 이것은 다시 환원되어 니트로소미오글로빈(notrosomyoglobin)으로 변하며 이 상태에서 열처리를 하면 선홍색을 띠는 니토로소마이크로모젠(nitrosomychromogen)으로 안정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발현된 붉은색이 익힌 삼겹살의 갈색과는 다른, 우리가 보는 베이컨 고유의 붉은색이다. 이와 같은 염지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고기 1kg당 0.05g 이상의 아질산염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컨

아질산염은 식중독 예방 효과와 육색 고정효과 이외에도 풍미를 증진하고, 지방의 산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소금만으로 염지해서 익힌 삼겹살은 단지 간간한 수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질산염을 주었을 때 삼겹살은 내게로 다가와 베이컨이 되었다.’

FDA, 아질산염은 되고 질산염은 안 되는 이유 

이렇게 베이컨에는 일반 수육과 확연한 차이가 나는 특유의 풍미가 있는데 이 풍미를 흔히 염지취라 부른다. 염지취의 발현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아질산염으로 염지했을 때보다는 질산염으로 염지했을 때의 염지취가 더 강하다. 그렇다면 아질산염 대신 질산염을 사용해서 염지하면 더 맛있는 베이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미국 FDA에서는 베이컨 염지에 질산염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질산염은 염지 풍미 발현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아질산염과 같은 식중독 예방 효과나 육색 고정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

질산은 공기 중에 부유하는 스트렙토코커스나 마이크로코커스 같은 박테리아를 만나야 아질산으로 환원되어 염지 효과를 발휘한다(생햄이나 살라미 소시지처럼 공기 중에 매달아 염지할 때 질산염을 쓰는 이유). 즉, 박테리아나 효소와 같은 환원제의 양에 따라 아질산으로 전환되는 양이 달라지는데 고기나 염지 환경에 따라 환원제의 양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아질산염 전환 효율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어려워 식중독 예방 효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FDA

 

발효 셀러리 솔트는 어떨까? 

지인 중 한 분이 아질산염과 똑 같은 기능을 한다면서 미국에서 천연의 셀러리를 발효시켜 소금과 섞어 만든 발효 셀러리 솔트(fermented celery salt)란 걸 가져 온 적이 있다. 유기농으로 기른 셀러리를 발효시켜 만든 셀러리 솔트로 ‘유기농’ 베이컨을 만들면 사람들이 아질산염에 대해 가진 거부감을 자극하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제품으로 어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샐러리는 시금치 못지않게 풍부한 질산염을 함유한 채소니까 꽤 그럴 듯해 보였다. 게다가 시금치즙과 소금, 설탕으로 염지해서 아질산염 없는 베이컨을 시도해보았던 나로선 더더욱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셀러리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효소에 의해서든 공기 중의 박테리아에 의해서든 어차피 결과는 질산염에서 환원된 아질산염일 뿐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빨간 가면을 썼든, 초록 가면을 썼든 가면을 벗기면 그 속에는 언제나 아.질.산.염!

아질산에 의한 가열후취 억제

고기를 염지할 때 소금을 사용하면 지방의 산화가 촉진되지만, 아질산염은 지방의 산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강해 누린내가 나지 않고 풍미가 좋아진다. 신선한 고기를 구워서 바로 먹으면 풍미가 좋지만, 저장했다가 다시 데워 먹으면 풍미가 떨어지고 고기 특유의 누린내 즉, 가열후취가 난다.

헴링 속의 철 원자나 고기 자체 내부의 유리 철 원자 등 금속 이온들은 조리 과정 중에 지방의 산화를 가속해 누린내를 내는 물질을 만들지만, 아질산염을 사용하여 염지하면 철 원자가 불활성화되어 지방의 산화가 억제되므로 가열후취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냄새 향취 요리사

아질산염을 이용한 염지믹스

아질산나트륨을 이용한 염지믹스는 다양한 이름으로 제품화되어 있는데 나라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미국에서는 아질산나트륨과 소금을 1 : 15의 질량비로 혼함한 염지믹스를 ‘큐어#1’, 질산염과 아질산염, 소금을 섞어 만든 염지믹스를 ‘큐어#2’로 구분해서 부른다.

베이컨 만들기에 쓰이는 ‘큐어 #1’ 속 아질산염의 함량은 1/16, 즉 6.25%이다. 아질산나트륨과 소금은 분자량이 비슷해서 뚜껑 있는 용기에 1 : 15의 질량비로 함께 넣고 잘 흔들어 주면 고루 섞인다. 그러나 아질산염은 몸무게 70kg인 성인이 1/3 티스푼만 먹어도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므로 아질산염을 사서 직접 배합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도 아질산염과 질산염이 혼합된 염지믹스를 일반 소금으로 착각해서 실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큐어 #1, #2 에 분홍색 색소를 첨가해 일반 소금과 구분되도록 하고 있다(그래서 염지믹스를 흔히 ‘핑크 솔트’라 부른다).

핑크 솔트

 

우리나라에는 ‘피클링 솔트’란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있는데 미국산과 달리 아질산나트륨 함량이 8.4%인 만큼 미국식 레시피로 염지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소금은 공기 중의 수분을 포착해서 눅눅해지는 조해성이 있으므로 뚜껑 있는 용기에 담아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베이컨을 대량생산하는 가공 시설에서는 베이컨을 염지할 때 대부분 고기 1kg당 0.15g (150ppm)의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한다. 아질산나트륨 함량이 8.4%인 우리나라 염지믹스로 이 기준에 가깝게 맞추려면 고기 1kg당 1.8g의 피클링 솔트를 사용하면 된다.[footnote] (1.8ⅹ0.084)/1001.8 ≒ 0.000151 = 151/1,000,000 = 151ppm[/footnote]

다음 편에서는 이 값을 기준으로 해서 짜지 않고 느끼하지 않은 베이컨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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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예전부터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보는 독자입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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