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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필자가 직접 베이컨을 만들며 축적한 체험과 노하우를 독자와 나눕니다. (편집자)

  1. 베이컨이 짠 이유
  2. 아질산염은 무죄
  3. 삼겹살이 아질산염을 만났을 때
  4. 집에서 베이컨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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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이컨이 좋다. 그냥 굽기만 해도 훌륭한 반찬이나 안주가 되고 숭숭 썰어서 볶는 평범한 감자요리도 베이컨만 들어가면 특별해진다. 아스파라거스 순에 감아서 구워도, 잘게 다져 볶아서 삶아 으깬 감자에 버무려도 베이컨은 어김없이 미각 세포에 은밀한 흔적을 남긴다.

그뿐인가. 샌드위치 빵 사이에 아삭한 양상추를 깔고 갓 구운 베이컨을 올린 뒤 토마토 슬라이스로 마무리하는 아침 출근길의 BLT(Bacon-Lettuce-Tomato) 샌드위치는 깔깔한 입맛에 촉촉한 생기를 주며 ‘따뜻하게’ 속삭인다. ‘걱정 말아요, 그대…!’.

Jeffreyw, "Mmm...BLT for me!", CC BY https://flic.kr/p/9mU4q9
Jeffreyw, “Mmm…BLT for me!”, CC BY

스마우그의 목소리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베이컨과 달달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찜찜한 문제가 몇 가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이 사랑하기에는 지나치게 짜고 두어 줄만 먹어도 느끼해지며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방송에서는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릴 위험까지 있다고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댄다. 그렇다면 사랑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누명을 벗기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하고 짜지 않고 덜 느끼하며 건강에 해롭지 않은 베이컨을 만들기 위해 스마우그의 동굴을 찾는 여정에 나서게 되었다. 엄청난 화력으로 모두를 위협하는 스마우그(음식 공포를 조장하는 방송과 신문)의 큰 목소리는 항상 옳은가.

The Hobbit: The Desolation of Smaug (2013)
The Hobbit: The Desolation of Smaug (2013)

탐구의 여정에서 알게 된 여러 비밀들을 이제 대나무 숲에 풀어 놓으려 한다.

베이컨은 왜 짤까?

베이컨이 짠 것은 서구의 전통적인 입맛과도 깊은 관련이 있고 상업적인 목적과도 연관되어 있다. 수렵 중심으로 먹거리를 해결하던 조상 때부터 줄곧 짠 베이컨을 먹어 오다 보니 베이컨이 짠 것은 바닷물이 짠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고기 등의 음식 재료에 소금을 쳐서 보관 기간을 늘리는 방법염장(brining)이라고 하는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고기에 소금을 치면 삼투압에 의해 고기 속의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오기 때문에 고기 속 수분은 줄어들게 된다. 고기를 상하게 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작용을 하는 박테리아들은 고기 속 수분을 매개로 증식하는데 수분이 줄어들면 (수분 활성도가 낮아지면) 이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고기의 보존성이 좋아진다는 원리다.

고기 속 수분:  결합수 고정수 자유수 

여기서 잠깐 고기 속의 수분에 대해 살펴보자면, 수분이 고기 속의 단백질 분자와 얼마나 강하게 결합돼 있는지를 기준으로 분류한다.

그 첫 번째 유형이 ‘결합수’다. 결합수는 물 분자가 단백질 분자와 강한 전기적 인력으로 결합되어 영하 50도 이하로 얼려도 얼지 않고 높은 온도로 가열해도 결합의 끈을 놓지 않는다.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한 단백질 분자와 분리하기가 쉽지 않아서 더 늘릴 수도 더 줄일 수도 없는, 단백질 분자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단단하게 묶여 있는 형태다. 따라서 육가공에서 처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형태의 수분이다.

그다음 형태의 수분을 ‘고정수’라고 한다. 결합수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단백질 분자와 전기적인 힘으로 묶여 있다. 그러나 결합수와 달리 높은 열을 가하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단백질 분자와 잡았던 손을 놓고, 고기 밖으로 탈출하거나 열기가 덜한 고기의 중심부로 몰리게 된다.

조리 과정에서 고기 속 고정수의 양을 늘리거나 열기에 의해 유출되는 양을 줄이면 고기는 더 많은 수분을 함유하게 되므로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수율도 높아진다. 굳이 분자 요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조리 과정 중에 고정수의 양을 늘리는 것은 조리된 고기의 양을 늘리는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모든 요리사의 지상과제가 된다.

요리사 부엌 키친

마지막 형태의 수분을 ‘자유수’라고 분류한다. 삼투압 차이에 의해 이곳저곳 넘나들며 쉽게 이동하고 열을 가하면 고기 밖으로 쉽사리 빠져나간다. 조리할 때 밑으로 떨어지는 드립의 주성분이 되는 물이다. 이 자유수가 웬만한 열에도 고기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단백질 분자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자유수를 고정수로 묶는 기술은 육가공 종사자나 조리사에게 필수적인 스킬이고 이 기술이 바로 염지(curing)의 비밀이다.

염지란? 

염장과 염지는 소금을 이용하는 비슷한 방법이므로 큰 차이가 없다. 굳이 나누어 보자면 염장은 소금물에 담그거나 소금 도가니에 재료를 묻어두는 단순한 가염 처리로 볼 수 있다. 한편 염지 소금을 쓰는 양을 조절한다든지, 다른 재료를 섞어서 짠맛을 줄이고 풍미를 살리는 등 조리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즉, 염장은 고기 속의 자유수를 삼출시켜 수분 활성도를 낮춤으로써 보존기간을 늘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염지는 조리의 전처리 과정인 만큼 고기가 조리되는 동안 자유수의 유출을 줄이고 풍미를 살리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베이컨

그러면 염지를 통해서 어떻게 자유수를 고정수로 묶을 수 있을까. 소금을 쳐두면 고기가 짜지는 것은 삼투압 차이에 의해 소금이 고기 속으로 침투하기 때문이다. 즉 소금 속의 나트륨과 염소가 각각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이온화되어 고기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인데 둘 중에서 염지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은 염소이온으로 알려져 있다.

단백질 속으로 들어간 염소이온은 음이온 사이의 간격을 넓혀 물 분자 속 수소가 더 접근하기 쉽도록 만듦으로써 자유수 속의 물 분자를 묶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리과정 중에 빠져나갈 자유수를 고정수로 많이 묶을수록 조리된 고기의 양은 늘어나고(덜 줄어들고) 식감도 더 부드러워진다. 결국, 소금을 많이 쓸수록 더 많은 염소가 더 많은 물 분자를 잡게 되는 만큼 조리 수율이 높아져 더 돈이 되는 것이다.

꼭 그렇게까지 짜야 할까? 

수렵으로 삶을 꾸려가던 서구 조상들 시기에는 한번에 먹기 힘들 만큼 큰 사냥감을 잡으면 소금을 쳐서 매달아 두어야 했다. 유명한 스페인의 하몽이나 이탈리아 파르마 햄의 조상인 셈이다. 상하지 않도록 소금을 확실하게 쳐야 보존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당시에는 염도 따위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어떤가. 냉동, 냉장 기술이 발달하어 더는 소금 혼자 보존성 연장이라는 중책을 떠맡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컨이 이렇게 짠 이유는 뭘까? 수율을 높이기 위한 상업적 이유가 아닐까?

이런 의문에 이끌려 짜지 않은 베이컨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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