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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keyHotey, Welcome to the 2016 New Hampshire Primary, CC BY SA_compressed https://flic.kr/p/CVg9Ey
DonkeyHotey, “Welcome to the 2016 New Hampshire Primary”, CC BY SA

공화당: 트럼프의 승리, 루비오의 추락

“남들이 많이 사는 제품에는 이유가 있을 것.”

많지 않은 대의원 숫자에도 불구하고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footnote]프라이머리는 “primary election”의 준말로, 일반적인 투표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찍어서 투표함에 넣고, 나중에 그 표를 합산해서 승자를 뽑는다.

여기에서 승자를 뽑는다는 건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A라는 후보를 그냥 뽑는 게 아니라, A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대표자들(delegates)을 뽑는 거다.

가령 한 지역에 10명의 대표자가 배정되어 있는데, 트럼프가 50%로 1등을 하고, 크루즈가 30%로 2등, 루비오가 20%로 3등을 했다고 하자. 이때 10명을 모두 1등에게 주는 방식(winner-take-all)과 비율에 따라 차등적으로 5명, 3명, 2명을 배분하는 방식이 있다. 이건 당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미국의 정치제도가 원래 그렇게 표준화가 안 되어 있다.[/footnote]가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유권자들은 남들이 선택한 후보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두 주에서 승리를 한 후보를 다른 주에서도 뽑아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환전되지는 않는다. 초반 격전지에서는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대치와 비교한 결과’가 중요하다. 아이오와에서 실망했다가 회복을 하거나 (1위 트럼프), 바람을 기대했다가 실망을 주는(5위 루비오) 것이 다음에 등장할 대형 프라이머리들에 영향을 준다.

DonkeyHotey, Republican Primary Lineup December 2015, CC BY SA https://flic.kr/p/BLphmC
DonkeyHotey, “Republican Primary Lineup December 2015”, CC BY SA

프라이머리 전에 “열심히는 하지만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는 식으로 후보들이 일제히 전망을 낮춰잡는 것은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바로 그런 기대치와 싸움을 하는 것이다.

첫 두 격전지를 지나고 나면 군소 후보들이 우수수 떨어지게 되어 있다. 특히 다소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민주당과 달리, 질서정연하게 “될 만한” 후보로 빠르게 압축하는 경향이 있는 공화당은 더욱 그렇다. 물론 올 해의 선거는 다들 “이상한 선거”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뉴햄프셔 직후에 세 명 정도의 사퇴자가 나올 것으로 언론은 예측했었다.

그 예측의 배경에는 루비오가 기축세력의 기수가 되어 2위나 3위를 차지해서 트럼프, 크루즈와 대결하게 된다는 가정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크리스티, 부시, 피오리나, 케이식, 카슨 중에서 최소 세 명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

리셋된 공화당 

하지만 지난 토요일 토론회의 결과로 루비오는 뉴햄프셔에서 10%를 간신히 얻어내는 데 그치면서 5위를 했고, 자나 깨나 뉴햄프셔의 표밭만 성실하게 가꾸던 케이식이 당당하게 2위를 하면서 모든 상황은 리셋(reset)이 되어 버렸다.

DonkeyHotey, New Hampshire Primary Republicans 2016, CC BY SA https://flic.kr/p/DknGvs
DonkeyHotey, “New Hampshire Primary Republicans 2016”, CC BY SA

아이러니가 있다면 그러한 변화의 원인 제공자인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티는 전혀 득을 보지 못했다는 것. (이 글을 쓰는 중에 크리스티와 칼리 피오리나가 사퇴 발표를 준비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주자들, 특히 케이식과 부시는 한껏 고무되어 있다. 뉴햄프셔를 살아남았으면 사우스캐롤라이나까지는 갈 수 있는 것이다. 부시의 자금으로는 못해도 수퍼화요일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공화당 기축세력으로서는 대마(大馬)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으니, 남은 조랑말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싸우는 꼴을 보면서 그중 그나마 누가 제일 나은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깔끔한 경선이 아니라, 진짜 이전투구(泥田鬪狗)식 경선을 해야 한다. 물론 그 사이 반(反)기축세력은 적토마 두 마리가 끄는 쌍두마차를 타고 저만치 앞서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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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keyHotey, New Hampshire Primary - Illustration, CC BY https://flic.kr/p/b92xeV
DonkeyHotey, “New Hampshire Primary – Illustration”,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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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힐러리에 남겨진 가시밭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당일 아침, 언론에서는 샌더스가 힐러리를 적게는 10%, 많게는 30% 차이로 앞서고 있다고 했다. 결과는 약 22% 차이로 샌더스의 승리다. 10% 언저리만 나왔어도 힐러리가 위로상(consolation prize)을 받았다고 하겠지만, 22%는 “그렇게 질 줄 알았고, 예상 그대로 졌다”는 결과다.

힐러리가 가진 (표로 환산 가능한) 유권자 자산은 누구인가?

  1. 여성
  2. 소수 인종
  3. 경제적 약자들이다.

2008년에는 오바마의 등장으로 2번, 즉 소수 인종은 빼앗겼지만, 오바마 역시 중도라는 점에서 3번은 적어도 악재로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 표를 지키지 못했다. 많은 여성들이 젊은 오바마를 지지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힐러리는 또 다른 남성, 샌더스와 대결하고 있다. 이번에는 경쟁자가 3번을 확실하게 빼앗아갔다. 남은 건 1) 여성과 2) 소수 인종인데, 장년층 이상의 여성 표는 끌어모았는데, 젊은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샌더스를 지지하고 있다. 경쟁 상대가 잘생긴 젊은 남성이라면 모르겠는데, 꾸부정한 노인네가 젊은 여성의 표를 빼앗고 있는 건 화가 나는 일이다.

사고친 힐러리의 ‘아는 언니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대책이 악재였다. 힐러리는 여성 표를 단결시키기 위해 잘 아는 ‘언니들’을 불렀다. 60, 70년대 여성운동의 대명사인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Marie Steinem, 1934년 ~ 현재, 사진)과 빌 클린턴 내각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1937년 ~ 현재, 사진)였다. 그런데 이 분들이 실언한 거다.

글로리아 스테이넘(왼쪽, 위키백과 공용, CC BY)과 매들린 올블라이트 https://en.wikipedia.org/wiki/Gloria_Steinem#/media/File:G_steinem_2011.jpg
글로리아 스타이넘(왼쪽, 위키백과 공용, CC BY)과 매들린 올블라이트(오른쪽)

스타이넘은 “젊은 여자들은 그저 남자들이 어디에 있는지에 만 관심이 있는데, 젊은 남자들이 샌더스한테 가 있으니 전부 따라간다”는 발언을 해서 젊은 여성층의 분노를 샀고, 올브라이트는 한술 더 떠서 “여자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여자들을 위해서는 특별한 지옥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이 든 부장님이 젊은 사원들과 친해지려고 술자리를 마련해놓고는 같은 연배의 다른 부장들을 불러다가 썰렁한 ‘부장님 농담’을 한 셈이다. 아니, 부장님 농담 정도가 아니라, ‘너희 젊은 것들’ 하는 야단을 쳤다고 하는 게 맞겠다.

결과적으로 젊은 여성 표는 압도적으로 샌더스에게 갔고, 언론에서는 “성 차이(gender gap)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세대 차이(generation gap)만이 있었다”고 했다. 힐러리가 믿는 구석 하나가 또다시 무너지고 있다.

힐러리는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을까 

언론에서는 이제 프라이머리가 (소수 인종이 많은) 남부 주로 향한다고 힐러리가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앞으로도 높은 투표율이 계속 유지되면 젊은 표가 샌더스로 몰릴 것이기 때문에 힐러리는 어서 젊은 세대를 공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더구나 젊은 여성 표를 잃은 것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성차별이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이라면, 그래서 여성 유권자 블록이 무너졌다면, 샌더스가 힐러리의 소수 인종 유권자 블록 또한 무너뜨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샌더스 캠페인이 남부에서 노리고 있는 지점이 바로 거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힐러리는 남부에서도 인종카드만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가난하고 젊은 세대의 불만을 반영하는 새로운 메시지를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워싱턴의 온갖 때가 다 묻은 힐러리에게 그런 메시지를 만들어내라는 것은 만년의 부장님에게 젊은 세대에게 먹힐 재미있는 농담을 개발하라는 것과 같다. 2008년에 그걸 못해서 졌는데, 지난 8년 동안 만들지 못했으면 못 만드는 거다.

Ted Eytan, Presidential Campaign New Hampshire USA 2016.02.09, CC BY SA https://flic.kr/p/DRwsQz
Ted Eytan, “Presidential Campaign New Hampshire USA”(2016.2.9), CC BY SA

‘퇴직 앞둔 부장’ 힐러리의 마지막 도전 

힐러리는 뉴햄프셔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미시간주의 플린트로 떠났다.

플린트는 오염된 수돗물로 비상사태에 빠진 도시다. 플린트시에서 수돗물로 고통을 겪는 절대다수가 흑인들이고, 다음번 경선지는 흑인들이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이다. 가서 흑인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무엇보다도 그들과 같이 있는 사진도 많이 찍어야 한다. 힐러리가 인종카드를 꺼내 들었다기 보다는, 힐러리는 그걸 하지 않으면 안되는 포지션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힐러리가 가진 전부일지 모른다.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는 프로그래밍도 못 하고, 영어도 못하고, 어려운 엑셀 작업은 신입사원에게 부탁해야 하는, 퇴직을 앞둔 부장님일지도 모른다.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 해온 경력직 하나가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이 회사에만 평생을 바친 부장님은 그저 성실하게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꼬박꼬박 업무 처리하고, 퇴근하면서 거래처 사람들과 식사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성실함이 그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말에 이사 승진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들 좋은 이사가 될 거라고 하지만, 이번에 못하면 퇴직이다.
오늘도 퇴근길에 거래처 상갓집에 들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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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1.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부장님, 승진, 퇴직, 상갓집 비유가 찰떡같네요. ^^ 매들린 올브라이트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불렀다는 것만 봐도 힐러리가 얼마나 감이 떨어져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죠. 젊은 여성세대, 유색인종 페미니스트, 좌파지식인들에게 조금도 어필하지 않는 퇴물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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