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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몰아보기는 스낵 컬쳐를 씹어먹게 될까?

좋은 콘텐츠의 가장 확실한 지표는 아마 ‘몰입’일 겁니다. 재미있어서 빠져들고,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콘텐츠.

방송 드라마는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기승전결을 보여주며 몰입을 유도하고 마지막에 다음 화를 궁금하게 하는 떡밥을 던지면서 시청자를 붙잡아 둡니다. 영화는 영화관이란 특수한 고립된 공간을 활용해 2시간 동안 몰입감을 즐기게 해 줍니다.

가장 깊은 수준의 몰입을 느끼게 하는 콘텐츠는 역시 게임입니다. 직접 미디어 안에 들어가 스스로 결정하고 조작하고 참여하기 때문에 몰입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콜 오브 듀티’ 같은 대작 콘솔 게임은 한 번 클리어하려면 수십 시간 정도는 게임 속 세상에 몰입해 있어야 합니다. 온라인게임은 수개월 수년의 시간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콜 오브 듀티

스마트폰은 스낵 컬쳐를 낳는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얘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항상 끼고 살고, 콘텐츠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PC방에 갈 수 없는 자투리 시간에도 당신 곁에 있습니다. 화면은 작고, 입력은 불편하고요.

그래서 짧고 부담 없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 안, 잠들기 전 침대 위에 있을 때 즐길 수 있는 것들이요. 이른바 ‘스낵 컬쳐’입니다. 72초 영상 같은 짧은 동영상이 네이버 TV캐스트에 올라오고, 웹툰 웹소설 모바일게임이 인기를 얻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콘텐츠를 즐기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출퇴근길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이 득세했다. (캔디 크러쉬 소다 ⓒKING)

스마트폰 등장 이후 출퇴근길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이 득세했다. (캔디 크러쉬 소다 ⓒKING)

실제로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바일게임 시장이 2~3배 폭풍 성장했지만, 성공한 온라인게임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죠. 온라인게임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 퀘스트를 수행하며 레벨을 올려가야 합니다. 콘솔 게임 시장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동 사냥을 시켜 놓고 폰 화면을 들여다볼 뿐입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은 다 무언가 방송 영상을 보고 있는데, 방송 시청률은 떨어집니다. 짧은 클립을 30분, 1시간짜리 드라마보다 좋아하는 것이죠. 모바일 사용자는 몰입에 들어가는 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콘텐츠보다는 틈새 시간에 가볍게 즐기는 콘텐츠를 좋아합니다.

자거나 스마트폰 보거나

자거나 스마트폰 보거나

너의 모든 시간과 관심을 원한다

그런데 요즘 넷플릭스식 몰아보기(binge-watching) 열풍을 보며 다시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입해 몰입을 즐기는 방식’의 콘텐츠 소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넷플릭스가 한꺼번에 전체 회차를 풀어버린 자체 제작 드라마를 이어 보려면 적어도 10시간 이상은 걸리겠죠? 밤을 새워 가며 그런 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몰아보기는 미국의 얘기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IPTV 다시보기를 활용하거나 토렌트 웹하드에서 미드 파일을 구해 몰아보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모바일 콘텐츠라 해서 몰입도가 약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화면, 짧은 시간에 몰입을 느낄 수 있게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면 인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사용자의 시간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입니다. 사용자의 귀한 시간 중 일부 자투리를 얻으려 한다면 스낵 컬쳐로 접근하는 게 맞겠죠. 반면 너의 시간을 통째로 먹어버리겠다는 패기를 발휘한다면 몰아보기식 접근을 할 겁니다.

이미 충분히 파편화된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을 통째로 끌어오겠다는 발상은 요즘 세상에선 쉽지 않은 일인데요. 아마 넷플릭스의 그 유명한 ‘데이터 분석’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밑바탕 역할을 하겠죠. 시청 행태 분석 결과 사람들은 ‘마약 조직원 마르코 폴로가 카드로 지은 집에 살며 국회의원 노릇을 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스마트폰이 나온 후 사람들은 그간 오락을 즐길 수 없던 시간과 장소에서 이제 오락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람들의 시간과 장소의 빈틈을 보급률 100%의 모바일 기기와 촘촘한 와이파이망이 메워주었으니까요. 이 연결된 틈새에 스낵컬처가 파고들었습니다.

넷플릭스는 TV,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든 기기의 끊김 없는 연결을 통해 자신들의 콘텐츠를 사용자의 모든 시간과 장소에 흘려보낼 수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몰아보기(binge-watching), 사업자에 의한 사용자의 독점입니다.

넷플릭스

창작자는 고객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좋았던 매스미디어의 그 시절처럼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을 통째로 사로잡는,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시간과 관심을 독점하는 콘텐츠(와 그 소비 행태)가 있다는 건 다른 콘텐츠, 다른 여가 분야 사업자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매스미디어의 시대인가요? 물론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미 흩어질 대로 흩어졌고, 흩어진 관심사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었기에 틈새 콘텐츠는 살아남을 겁니다. 다만 쓰나미급 콘텐츠 앞에 자신의 살 자리를 찾는 문제는 더욱 힘든 숙제가 되겠죠.

대형 사업자도 고민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MBC나 tvN, 네이버가 아무리 잘해도 넷플릭스 급으로 하려면 상당히 힘들 겁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조직처럼 작은 콘텐츠를 쳐내며 빨리빨리 움직이기도 어렵겠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류를 활용한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데이터 활용이 점점 중요해지리라는 뻔한 예측은 가능할 듯합니다. 대형 사업자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보편적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작은 사업자는 자신들이 들어갈 틈새시장을 정확히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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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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