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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보다 과학/공학 공부를 더 잘하는 이유가 뇌과학을 통해 밝혀졌다”

언론 매체들 사이에서 “~한 이유가 OO 과학을 통해 밝혀졌다.” 식의 기사를 보도하는 것은 유행이 된 것 같다. 잊을만하면 보이는 이런 기사들은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다양한 상식[footnote]상식이라 쓰고 편견이라 읽는다.[/footnote]에 관한 내용을 목표로 삼는다. 두어 가지 정도야 “흐음, 그렇구만”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로 쌓이기 시작한다면, 이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일이 된다.

고작 한 줄에 불과한 기사 제목을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실로 아래와 같은 거대한 작업이 필요하다.

  1. 정말로 해당 연구 결과가 과학적으로 합당한 분석인지에서 시작하여
  2. 다양한 환경 요인들,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독립변수인지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는지)를 증명해야 하며
  3. 더 나아가 본성과 양육의 대립구도, 소위 ‘Nature vs. Nurture’라고 부르는 오래된 논의를 다시 들추어봐야 한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다르다. 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면 지금처럼 짧은 문장 안에 수많은 가정을 전제하게 되고, 다양한 수준의 오류를 한 번에 범하게 된다.

매우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연쇄살인마들 뇌의 fMRI(functional MRI,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이미지와 밥 먹고 있는 과정남 뇌의 fMRI 이미지 패턴이 비슷하다고 해서 과정남을 무작정 구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몇몇 행동이나 감정 패턴 등의 경향에서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을 할 수는 있겠으나, 이를 통해 인간의 능력이나 특성을 단정 짓는 것, 이 경우를 보자면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은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건 논리적 오류인 것이다.

©KBS 뉴스 화면 이용한 패러디
©KBS 뉴스 화면 이용한 패러디

이러한 오류는 다양한 성향과 능력을 갖춘 거대한 집단을 “~하지 못하는 집단”으로 뭉뚱그려 실제 우리네 정책 설계와 그 평가 등에 암묵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알 듯 모를 듯 헷갈린다면 몇 가지 예시를 더 생각해보자.

“흑인이 동양인보다 수학을 잘 못 하는 이유가 뇌과학을 통해 밝혀졌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과학을 잘 못 하는 이유가 뇌과학을 통해 밝혀졌다”

그냥 상상해보자는 것이니, 훨씬 더 민감하고 터무니없는 예시들을 생각해도 좋다. 이렇듯 조금만 비틀어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대체 어떤 연유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이런 연구들이 끊임없이 수행되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과정남이 알고 있는 한에서, 과학자들은,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사를 쓰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최근 나온 기사를 통해 그 뿌리의 한 갈래를 추적해보자.

남자가 길 잘 찾는 이유는?

동아사이언스에서 2016년 1월 7일에 내놓은 기사 “남자가 길 잘 찾는 이유는?”은 앞서 지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기사는 첫 문장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길을 더 잘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 원인을 뇌과학적으로 밝힌 연구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얼핏 보기에 별문제 없어 보이는 이 문장에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야만 하고, 더욱 그러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노력하지 않아도 잘 보일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동아사이언스 - 남자가 길 잘 찾는 이유는?

연구결과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해당 기사에서 인용한 행동학적 뇌 연구(behavioral brain research) 저널에서 핀츠카(Pintzka) 교수로 검색을 시도했다. 기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연구논문을 찾는 데에는 큰 노력이 들지 않았다. 또한, 노르웨이과학기술대학교(NTNU)의 해당 연구그룹에서 내놓은 관련 보도자료를 찾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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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논문 제목부터가 “건강한 여성에게 일회량(single dose)의 테스토스테론이 주어졌을 때 공간지각능력과 뇌활동 변화”다. 기사의 제목과는 사뭇 다르다.

핀츠카 교수의 논문

우선, 기사 제목과는 다른 내용

다시 기사 내용을 살펴보자.

남자와 여자 각각 1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가상현실 길 찾기 게임을 시켰다. 총 45개의 미로를 30초씩 미리 보여준 뒤, 실제로 게임을 하는 동안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측정했다.

실험 결과 남자가 여자보다 50%가량 더 많이 길 찾기에 성공했다. 이때 뇌의 반응을 비교해 보니, 남자는 여자보다 해마 부위가 활발하게 반응했고, 여자는 남자보다 전두엽이 더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가 남녀의 길찾기 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남자들은 동서남북 기본방향을 중심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반면, 여자들은 연상기억법, 즉 ‘미용실을 지나서 직진하다가 가게가 나오면 우회전’하는 방식으로 길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사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남자와 여자의 길 찾기 전략이 서로 다르므로, 특정한 조건(입체 미로 형식의 가상현실 길 찾기) 하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성적이 낮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기사의 제목을 보자. 과연 이 연구결과가 정말로 “남자가 여자보다 길 찾기를 잘한다”의 이유가 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기사를 통해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남자와 여자의 길 찾기 방식이, a) 목적지를 찾기와 b) 연상기억법이라는 형태로 상이하고 (어느 한쪽 방식이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2. 주어진 테스트 조건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길 찾기를 “상대적으로” 잘 완수했고
  3. 해당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는 “과거 남자들이 주로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채집했던 것이 뇌에 다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기사 제목을 저렇게 뽑는 것은 좀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미 해당 연구를 다룬 기사에서 절대적 능력치의 차이가 아닌 길 찾기의 “전략”에 대한 차이를 언급했기 때문인데, 진짜 문제는 논문 원본이나 그 보도자료에서 말하고 있는 실험이 기사에서 제시하는 요약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논문 제목이 말하듯이, 이 연구를 소개하거나 설명한다면 “남자 vs 여자”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나오는 “길 찾기 능력”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테스토스테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라고 해야 한다.

원래 연구가 보여주려고 한 것들

동아사이언스 기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실험결과는 원래 보여주고자 하는 연구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후의 연구[footnote]step 2이자 이 연구가 본질적으로 알고 싶은 내용[/footnote]는 다음과 같으며 2015년 12월 7일 자의 보도자료에서도 이미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보도자료를 일부 인용해보자.

“두 번째 스텝은 길 찾기(maze puzzle)를 수행하기 전, 한 그룹의 여자들에게 테스토스테론 약간을 주는 것이었다.”

“Step two was to give some women testosterone just before they were going to solve the maze puzzles.”

“이 그룹의 여자들은 남자들과 비교되었던 그룹과는 다르다. 이 과정에서 42명의 여자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21명에게는 위약(플라시보)을 제공하고, 다른 21명에게는 한 방울의 테스토스테론을 혀 밑에 떨어뜨렸다.”

“This was a different group of women than the group that was compared to men. In this step, 42 women were divided into two groups. Twenty-one of them received a drop of placebo, and 21 got a drop of testosterone under the tongue.”

이 연구결과는 무엇을 밝혀냈을까? 논문의 저자 핀츠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그들(테스토스테론을 받은 여자 그룹)이 더 많은 작업을 완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길 찾기 게임”의 미로의 형태(layout)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해마체(hippocampus)를 더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경우,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길을 찾을 때 더 많이 활성화되는 부분이다.”

“We hoped that they would be able to solve more tasks, but they didn’t. But they had improved knowledge of the layout of the maze. And they used the hippocampus to a greater extent, which tends to be used more by men for navigating,” 

“거의 모든 뇌 관련 질환들은 환자의 수나 질병의 강도 등에 있어 남자와 여자에게 다르게 나타난다. 즉, 아마도 어떠한 요소가 작용하여 한쪽 성별(sex, 남성 혹은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위해를 가하든지 혹은 다른 한쪽을 보호를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알츠하이머 병으로 진단받는 여자의 수가 남자보다 두 배인 것을 알고 있기에,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성호르몬과 관련된 어떤 요소가 해를 끼치고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Almost all brain-related diseases are different in men and women, either in the number of affected individuals or in severity. Therefore, something is likely protecting or harming people of one sex. Since we know that twice as many women as men are diagnosed with Alzheimer’s disease, there might be something related to sex hormones that is harmful.”

여기까지가 핀츠카의 답변이다. 보도자료만 보고 끝내기는 아쉬우니 실제 논문에서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논문을 보면 데이터를 제시한 후 토론의 서두에서 동아사이언스의 기사가 헷갈리는 부분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테스토스테론 수준의 증가가 공간 지각에는 제한된 효과만을 불러온다는 점으로… 그러므로 테스토스테론 수준은 여성에게 공간 지각의 기본적 측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한편 길 찾기와 같은 조금 더 복합적인 공간 행동들은 MTL 활동의 변화가 향상된 뉴런 프로세싱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The result point to increased testosterone levels having a limited effect on spatial cognition… Thus testosterone levels appeared to have direct impact on certain basic aspects of spatial cognition in women, while more complex spatial behaviors such as navigation, remained unaffected despite adaptive changes in MTL activity indicating improved neuronal processing.”

문장이 조금 복잡한데, 풀어 말하자면 결국 테스토스테론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공간 지각(spatial recognition)에 영향을 주고 있으나, 길 찾기(navigation) 이라는 훨씬 복합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특정한 인과관계를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결과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 연구는 건강한 여자의 테스토스테론 로드와 정신회전능력(mental rotation abilities) 간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입받은 여성의 가상세계의 방향 묘사능력이 더욱 향상됨을 보였다. 테스토스테론을 주입받은 그룹이 길 찾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 중앙 측두엽의 뇌 활동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길 찾기능력(navigation performance)에 대한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중앙 측두엽 내에서, 해마곁피질의 길 찾기 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활성화(activational) 및 조직적(organizational) 테스토스테론 영향으로부터 민감해짐을 보았다. 왜 특정 행동과 특정 뇌의 부분이 테스토스테론에 더 민감해지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우리는, 이것이 현재 해야 하는 작업(수용체의 국지화(localization)와 집중(concentration), 엔자임 활동, 그리고 조직적 영향)을 도와주는 뇌의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외인성 테스토스테론의 차이점과 관계가 있거나, 아니면 특정 작업들은 다른 전략들을 사용해서 똑같이 해결할 수 있으므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부터 덜 민감하고 그저 습관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The current study confirmed that there is a relationship between testosterone load and mental rotation abilities in healthy women. We further showed that women who received testosterone had significantly improved representation of the direction within the VE. No effects of testosterone on navigation performance were found despite increased brain activity within the MTL specifically during successful navigation in the testosterone group. In the MTL, navigation activity in the parahippocampal cortex was shown to be sensitive to both activational and organizational testosterone effects. Why certain behaviors and certain brain regions were more sensitive to testosterone remain uncertain. We speculate that this is either related to differences in the effect of exogenous testosterone in brain regions supporting the task at hand (localization and concentration of receptors, enzyme activity, and organizational effects), and/or that some tasks can be solved equally well using different strategies and are therefore less susceptible to the effects of testosterone, and more dependent on habit.”

결국, 이 연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길 찾기를 더 잘한다”에 대한 생물학적 증명이 아니다. 주어진 특정 상황에서(길 찾기) 남자가 여자보다 보통 더 작업을 잘 수행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두 집단의 대표적 차이점이라 할 수 있는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알츠하이머(치매)와 같은 뇌 질환이 남자와 여자에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이 주로 겪는 어려움인 “길 찾기”라는 작업을 통해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알아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뇌의 특정 부분이 더욱 활성화됨을 보였고, 길 찾기 능력에 관련된 수많은 변수 중 한 가지가 향상됨을 보였다. 이 연구가 “남자가 여자보다 길 찾기를 더 잘한다. 왜냐하면…”으로 귀결되려면 엄청나게 많은 추가 연구를 수행하거나, 혹은 논리적 비약이 필요하다.

과학기사를 쓰는 것, 그리고 읽는 것

미디어는 계속해서 “A 교수팀의 누군가가 B는 C함을 밝혀냈다”는 소식을 전한다. 많은 일반인은 이를 “완성된 과학적 지식”으로 받아들인다. 이 지식은 술자리 안주로 쓰이기도 하고, 굉장히 진지한 이야기에서 인용되기도 하며, 아이에게, 친구에게, 혹은 부모에게 어떤 가치 판단이나 행동을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는 과학 연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대중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때로는 저명한 과학자들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여성은 선천적으로 과학적 재능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어떠한 연구팀이 무언가를 밝혀냈다고 이야기할 때, 이 연구결과가 이야기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까지 이 연구결과를 믿어야 하는 것일까.

“PHD 코믹스”“The Science News Cycle”을 보자. 연구자가 “A는 C 조건 하에서 D와 E가 성립할 때 B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면 보도자료는 “A와 B의 잠재적 연결고리가 밝혀졌다”고 홍보하며 뉴스는 “과학자가 말하길, A가 B를 야기(cause)한다”고 적는다. 결과적으로 연구자의 할머니는 “A가 그렇게 위험하다더구나”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길 찾기 이야기와 정말로 놀라운 싱크로를 보이는 사이클이다.

내용 참고: PHD 코믹스 - The Science News Cycle
내용 참고: PHD 코믹스 – The Science News Cycle

사실 대다수의 경우, 과학자들 혹은 다양한 학문의 연구자들이 연구와 논문을 통해 말하는 이야기는 “조건과 관계”로 요약할 수 있다. 연구를 통해 “A는 B다” 혹은 “A는 B 때문이다”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많은 경우 세상만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가까이서 (과학)연구를 접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과학)언론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과학/공학에 한 발 정도 걸쳤던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연구논문을 찾아보거나 영어 검색에 익숙한 덕분에 원문을 찾아볼 여력과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제대로 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면,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제 역할을 못 하는 셈이다.

더 나은 보도를 바란다

사소한 것으로 큰 트집을 잡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아직 사소할 때 트집을 잡는 것이 더 큰 잘못을 막기 위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동아사이언스의 기사로 시작했지만 이는 비단 특정 과학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KBS, MBC, SBS로 대표되는 지상파 방송이나 메이저 신문사들의 과학 관련 보도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모 연구자는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의심 없이 ~하셨던 분들, 이제는 다시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라는 보도들 또한 대부분 C, D, E를 제외하거나 한 편에 미루어놓고 A와 B만 보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오히려 전문가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이라면, 비록 지나가는 작은 기사일지라도 사람들에게 연구나 지식, 더 나아가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본질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보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과학지식을 다룰 때는, 마치 현재 소개하고 있는 지식이 더는 논의할 필요가 없는 완성된 지식인 것처럼 소개하는 방식은 그만두어야 한다. 언론이 과학기사를 쓸 때는 결과물, 완성품으로써의 과학지식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으로써의 과학지식을 소개해야 하며, 이 지식이 독자들에게 미칠 영향까지 마땅히 고려해야만 한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지식은, 그리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일반인들이 그들의 전문영역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러므로 우리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냈을 때 덮어놓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의 권위를 인지하고 있고, 그렇기에 특정 사안에 관해 이야기할 때 확정적으로 답하기를 꺼리는 편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유통되는 지식의 기반 자체가 “단순해 보이는 현상의 이면은 굉장히 복잡하다”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료하게 “A는 B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전문가로서 정말 행복한 일이 되겠지만, 마치 선언하듯 저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세상의 많은 연구자는 오늘도 밤을 지새워가며 실험을 하고, 논문을 읽고, 수식을 풀고, 인터뷰하러 다니고 있다.

한국사회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유사한 위기를 이미 겪은 바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연구결과를 “A는 B다”라고 보도하고 그 지식이 세상에 널리 유통되어 “진실”처럼 받아들여질 때, 우리 사회는 품속에 큰 폭탄을 키우기 시작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을 통해 어디선가 공유되고 있는, 전문가 사회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자칭” 전문가들이 생산해낸 “유사지식”의 생산과 유통과정에 언론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MBC 뉴스데스크의 이른바 "폭력성 실험" 보도 역시 잘못된 과학보도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MBC 뉴스데스크의 이른바 “폭력성 실험” 보도 역시 잘못된 과학보도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돈도 시간도 능력도 변변치 않은 과정남 같은 대학원생도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 원문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에서도 여기서 소개한 기사들보다는 조금 더 정제된 보도를 할 여력이 충분하리라 짐작해본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품이 조금 들어가는 일일 뿐이다. 사람들을 대신해 그 품을 들이는 것이 언론이 하는 일의 본질이 아닐까.

더 나은, 책임 있는 보도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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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그것은 알기싫다. 145 아노말로칼리스 편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습니다. 참고하셔도 괜찮으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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