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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초등학교 3학년인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척추에 생긴 소아암으로 하반신마비로 휠체어를 타지만 언제나 씩씩한 아이입니다. 지민이는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이지만 집과 학교 울타리를 넘는 순간 사회는 지민이의 휠체어를 막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지민이가 지하철이 닿는 곳을 다니면서 교통약자와 휠체어 탄 사람들에게 불편한 곳이 있다면 가감 없이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뜨길 희망합니다.

이 기사는 EBS육아학교와 공동 기획한 연재물입니다. 지민이가 지하철로 가볼 만한 곳을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지민이가 추천받은 장소를 대중교통으로 가 본 후 가감 없는 소감을 전달 드리겠습니다.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프로젝트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펀딩기금은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만드는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필자)

  1. 엄마는 지민이 덕분에 남들보다 눈을 두 개 더 갖게 됐어
  2. “엘리베이터는 내 다리야”
  3. 삼성역의 수퍼맨을 찾습니다
  4. “엄마, 휠체어 리프트는 불편해”
  5. 현장학습이 불편한 이유
  6. 휠체어 타고 제주올레길 가다
  7. “휠체어 위한 지하철 지도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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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민아, 이번에 스토리펀딩 하면서 지하철 많이 탔잖아. 어땠어?

지민: 재미있었어! 새로운 걸 많이 봐서 좋았어. 또 가고 싶어.

엄마: 그리고 또 느낀 게 있어?

지민: 음… 도와주는 사람이 그래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어!

휠체어 탄 지민이는 혼자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스토리펀딩을 진행하면서 지하철 리프트 트라우마도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민이는 여전히 지하철 타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지민이가 느낀 ‘좋다’는 느낌의 절반은 ‘새로운 걸 경험한다’는 데에서 나오지만, 아마 나머지 절반 정도는 그 경험 속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 카메라 뒤에서 스토리를 만들어 준 사람들

지인인 ‘EBS 육아학교’ 김민태 PD와 우연히 술자리에서 이런 푸념을 쏟아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났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그 안내문대로 갈아타면 40분이나 더 걸리더라고.” (서울신문 기사 참고)

취기에 다들 흥분해서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난무하다가 스토리펀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네, 술기운 맞습니다.) 지민이를 안쓰럽게 보는 시선이 아니라, 그냥 지민이에겐 그저 일상일 뿐인 현실을 담담하게 동영상에 담는 게 취지였습니다.

여기에 재능기부로 의기투합한 사람이 영상제작사 ‘더블스코어’ 남형호 대표였습니다. 남 대표는 촬영뿐 아니라 매 편 비디오를 깔끔하게 편집해줬습니다. 지민이의 영상 스토리는 이 두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EBS 김민태 PD(좌)와 남형호 PD(우)
EBS 김민태 PD(좌)와 남형호 PD(우)

#2. ‘지도제작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해 준 ‘커뮤니티 매핑 센터’ 임완수 박사님

펀딩의 초기 목표는, 지하철 환승 통로에 엘리베이터 위치를 안내하는 스티커를 제작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티커 제작은 임시방편일 뿐이죠. 경로가 바뀌면 무용지물이 되니까요.

이것을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마리를 제공한 곳이 바로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 대학교 교수이자 커뮤니티 매핑 센터 소장이신 임완수 박사님입니다.

임완수 박사님
임완수 박사님

임 박사님은 ‘주민들이 참여해 필요한 지도를 만든다’는 개념의 커뮤니티 매핑 선구자입니다. 아마도 임 박사님이 진행한 가장 유명한 활동은 작년 메르스 환자들이 거쳐 간 병원 등을 지도에 표시하는, 다수의 사람이 참여해서 만든 ‘메르스 지도’일 것입니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임 박사님은, 지난 11월 28일 영락고등학교 학생을 비롯해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지하철 환승 통로 커뮤니티 매핑’ 초대모임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임완수 교수님과 학생들

이날 참가자들에게는, 1~4호선과 5~8호선이 교차하는 지하철역 구조도를 출력해 나눠준 후, 지도에 적혀있는 엘리베이터와 리프트 표시를 보고 예상할 수 있는 휠체어 환승 통로를 붉은색 선으로 표시하게 했습니다.

관리사업자가 서로 다른 환승역의 환승 정보가 현저히 더 취약하다는 것을 지민이랑 다녀보면서 절감했거든요. 지하철을 덧대서 짓는지라 휠체어 환승이 가능하더라도 훨씬 더 돌아가야 하고, 교차하는 역의 사업자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표기 방법도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생: “제가 받은 OO역에는 엘리베이터로 이동 가능한 곳이 없어요. 어떡해요?”

나: “아, 엘리베이터 없는 곳도 있어요… 혹시 리프트 있으면 리프트 표시해 주시면 돼요.”

학생: “그러면 불편해서 어떡해요?” (울먹울먹)

커뮤니티 매핑 초대지하철 환승 통로 커뮤니티 매핑 모임의 발표자들

커뮤니티 매핑 초대지하철 환승 통로 커뮤니티 매핑 모임의 발표자료

집에서 가까운 약수역 매핑을 선택한 방송통신대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서울지역희망나래팀 김현주 선생님은 “지도만 보면 처음 보는 사람은, 특히 장애인들은 오기가 힘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민이가 실제 가봤던 잠실역 환승 코스를 택한 남학생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1: “선생님, 잠실역에서는 8호선에서 2호선으로 바로 환승이 불가능해요!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합실로 나가서 다시 개찰구 통해 들어와야 하는 것 같아요.”

학생2: “저희도 지도 보고 유추하는 데 10분이나 걸렸어요. 수수께끼 같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장애인 환승 통로 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아요.”

안내도를 그린 후 자원봉사자들은 이 정보를 매플러케이라는 임시 사이트에 등록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모인 자원봉사자 중 일부는 모임이 끝난 후 맡은 역에 실제로 방문해 환승 정보와 엘리베이터 고장 유무 등을 사이트에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매플러케이 데이터 입력 스크린샷

이날 모임은, 지하철의 현재 안내도가 이용자, 특히 교통약자의 눈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실제 지도 만들기 경험’을 통해, 2016년 초 ‘지하철 환승 정보 맵’을 만드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커뮤니티 매핑 참가자들과 자원봉사자들

이날 커뮤니티 매핑 모임에 참여한 영락고등학교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 감사합니다!

#3. “어떻게 하면 더 알기 쉬운 지도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같이해 주시는 분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어느 날, 딱 한 번 우연히 만나 뵈었던 것에 불과한 연세대 조광수 교수님께 메신저로 그냥 들이댔습니다.

나: “교수님, 혹시 제가 지하철 환승 안내표지를 만들려고 하는데 디자인 자문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자문료는 드리겠습니다.”

조 교수님: “물론이죠, 자문료 많이 주세요. (순간 당황했으나) 프로젝트에 기부하겠습니다.” (와아!!)

그리고 2015년 12월에 실제로 한국 최고의 사용자 경험 연구실인 연세대 UX랩을 이끄는 조광수 교수님과 제자들을 만나, 지하철 환승 커뮤니티 매핑 사이트를 소개하고 어떻게 하면 사이트를 좀 더 이용자들이 편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자문을 구했습니다. 교수님은 사이트의 사용자 경험에 대한 재능기부를 약속하셨습니다.

뜻밖의 전문가를 뜻밖의 경로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슬로우뉴스 기사에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린 것입니다.

“일본 국립대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으며 2020년 동경올림픽의 경기장순회용 모빌리티–특히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를 위한 이동디자인을 개발 중입니다. 사연을 읽고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가슴이 아픕니다. 힘들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인식이 조금씩 변할 것입니다.”

츠쿠바대학교 이승희 준교수

댓글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 이메일로 연락한 츠쿠바대학교 이승희 준교수님은, 도쿄 지하철의 교통약자 표식사례를 보내 주셨습니다. 장애인을 배려한 큼지막하고 눈에 잘 띄는 표지들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주신 정보 중,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병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매우 인상적인 인사이트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보면서 다니니 시각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도쿄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아 교통약자 양보 표지와 함께 방송도 하여 청각적인 정보를 같이 줍니다. 또한, 지하철에서 방송할 때 양보하라는 직접적인 멘트와 함께 우대석 주변에서는 핸드폰 사용을 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일본의 표지판들

휠체어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민폐가 아닐까 위축되어있던 제게 용기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장애인 표지판을 눈여겨보고 인식하려면 경험이 매우 중요한데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만 해도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 과제를 내주면 주변에 장애인들이 없어서 관찰할 수 없다고 곤란해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들이 자유롭게 나와서 생활하기 힘든 현실이죠.

그러니 지민 양과 어머님께서는 기회가 되시는 대로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으시면, 그분들도 도와주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민이와 제가 밖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은 많은 사람이 장애인의 시선에서 볼 기회가 되고 도움을 줌으로써 그 경험을 내재화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어느새 지민이 프로젝트는,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로 발전하기 바로 전 단계에 있습니다.

데이탈리셔스 김선영 이사

막상 지도형태로 제작하려고 하니 지하철 이용정보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해서 설계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그런 저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온 ‘데이터 요정’! 국내에서 손꼽히는 디지털 분석가인 데이탈리셔스 김선영 이사가 손을 보태 주기로 했습니다.

프로젝트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무엇보다 지금까지 후원과 댓글로 응원해 주신 수많은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주신 도움은 다음과 같은 용도로 쓰였습니다.

  • 지민이의 여정을 담는 동영상촬영 비용
  • 지하철 환승 통로에 대한 지도를 제작하는 커뮤니티 매핑 초대모임 운영비용

앞으로는 이런 용도로도 사용될 예정입니다.

  • 지하철 환승 통로 교통약자용 지도 데이터베이스 확보
  • 자원봉사자 지도제작 활동비

이러한 지도가 처음 만들어지는지라, 지도의 사용자편의를 높이고 어떤 플랫폼에 어떻게 얹어야 할지에 대한 기술적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후 기술적으로 어떠한 플랫폼에 얹으면 좋을지에 대한 적합한 운영방안에 대하여 계속 고민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후원금이 어떻게 귀하게 쓰이는지 지속해서 업데이트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의미의 ‘무의(MUUI)’ 페이스북 페이지는 ‘휠체어를 탄 하버드생’ 김건호 씨와 함께 운영합니다. 휠체어 여행객을 위한 미국 안내책자를 펴냈고, 내년에 한국 여행 안내책자를 펴내려고 하는 당찬 청년입니다.

건호씨와 병원에서 만나 무의 프로젝트를 돕고 있는 장애인아시안게임 성화봉송 주자로 활약했던 이민우 씨, 스토리펀딩을 보고 직접 지민이 비디오를 촬영하고 싶다며 연락해왔고, 지금은 EBS육아학교 PD가 된 정보성 VJ도 뜻을 같이합니다.

무의 운영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김건호, 홍윤희, 정보성 PD, 이민우 (좌측부터 순서대로)
무의 운영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김건호, 홍윤희, 정보성 PD, 이민우 (좌측부터 순서대로)

지민이의 프로젝트를 통해 이렇게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나 뜻을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년에는 ‘장애인이 편한 세상, 모두가 편한 세상’이라는 꿈을 위해 우리 사회의 장애인 이동권 인식개선 캠페인도 작게나마 지속하려고 합니다. 물론 지도 만들기는 계속됩니다.

엄마: 지민이는 몇 살 되면 혼자 지하철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민: 음… 열세 살 정도 되면? 아직은 그래도 무서워…

엄마: 지하철 지도를 만들어야겠네.

지민: 엄마, 그건 내가 만들 거야!

앞으로 3년 뒤면, 지민이가 지하철을 혼자 탈 수 있는 지도가 완성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해 주신 후원자님들,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무의(MUUI)’에서 계속 만나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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