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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래 사용해 온 연구실 책상을 모두 비웠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동생이 뭐하는 거야, 학위가 아깝잖아, 그런 감정적인 행동은 그만둬, 하고 다급하게 연락해 왔지만, 저는 이제 교수 자리를 거저 준대도 싫어,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하고는 계속해서 책을 박스에 담았습니다. 모든 짐을 밖으로 옮기고는, 연구실 의자에 앉아 텅 빈 책상과 마주했습니다. 눈물이 쏟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았다가 “안녕히 나의 모든 것”하고는, 일어났습니다.

책상

그동안 대학은 저에게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진리, 지성, 학문, 이러한 단어의 총체였고, 강의실과 연구실은 그 자체로 가장 신성하고 숭고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그 조직의 일원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강의하고 연구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는 대학에서 노동자로 존재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석사 과정에 입학해 박사 과정 수료 후 시간강사가 되기까지, 대학의 상상 가능한 여러 공간에서 노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로도, 학생으로도, 나아가 사회인으로도, 저의 과거와 현재를 쉽게 규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이하 ‘지방시’)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간의 삶을 뒤돌아보고, 한 발 더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방시를 쓰며 스스로의 삶을 쉽게 규정할 수 없음에 저는 낙담하고, 깊이 절망했습니다. 대학의 맨얼굴과 마주하며 그간 제가 상식과 합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참히 깨어져 나갔습니다.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괴물’이었습니다. 학부생, 대학원생, 시간강사로 이어지는 노동력 착취의 구조는 공고하며, 그 어떤 기업보다도 신자유주의적입니다. 사무실, 연구소, 기숙사, 대학의 어느 부처에 가든 재학생 근로 조교들이 있습니다.

4대보험조차 보장 받지 못 하는 연봉 천만 원 남짓한 시간강사들이 강의의 절반을 책임집니다. 얼마 전 함께 밥을 먹던 20대 교직원의 “이 학교에는 20대와 30대 중 아무도 정규직이 없어요, 저도 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그대로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의 밥을 퍼주는 이도, 강의동의 환경미화와 경비를 책임지는 이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처럼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으로 대학 행정과 강의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학보다는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이 저를 ‘노동자’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대해 줍니다. 저는 지금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결혼하며 아내에게 처음 1년은 한 달에 80만원을 생활비로 가져다줄 것이고, 그 다음 1년은 100만원을, 그 다음은 기약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조금은 더 가져다주겠다, 하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산후조리원에 두고는, 무작정 거리로 나왔습니다. 기쁘기보다는 그저 막막했습니다. 정처 없이 걷다가, 문득 맥도날드의 구인광고를 보았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하는 생각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보험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저를 무엇엔가 홀린 듯 잡아끌었습니다.

다음 날 1시간 동안 물류하차 실습을 하고 저는 정식으로 맥도날드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매니저가 커피를 한 잔 주었고, 그것을 가져다주니 아내는 생전 먹지도 않는 걸 웬일로 샀네, 혼잣말하고는 이내 달게 마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을 마치고 아내에게 커피를 한 잔 가져다주는 것이 삶의 작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무디어졌지만, 그래도 물류하차를 마치고 나면 온 몸이 아픕니다. 그래도 억울해서라도 연구실로, 강의실로, 출근합니다. 바로 강의가 있는 날은 꾹 참고 강의실에 섭니다. 학생들에게 힘든 티를 내서는 안 됩니다. 힘들수록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웃으면서 강의실의 문을 엽니다. 가끔은 몸이 아파 일을 쉬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월 60시간 이상 일해야 제 가족의 건강보험이 보장됩니다. 잠든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출근합니다.

시간강사

대학은 역행해야 합니다

대학은 이 사회의 가속화를 더디게 하거나, 역행하게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그것은 대학이 가져야 할 당연한 시대적 소명입니다. 하지만 정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기업을 흉내내며 자본의 논리에 영합하기 이전에, 모든 구성원들을 노동자로서 대우해야 합니다.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에도 모든 노동자를 위한 메뉴얼이 있는데, 대학에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특히 가장 하부 구조에 놓인 이들에게 오히려 더욱 가혹합니다.

연구할수록 가난해지고, 강의할수록 힘겨워지는데, 대학은 “학문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환상과 검열을 강요합니다. 사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러한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연구자들의 자존감에 맡겨두어야 합니다. 노동에 따른 보수를 지급할 사용자 측에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닙니다. 특히 스스로 자본의 괴물이 되어버린 대학에게는 학문의 신성함을 무기 삼을 자격이 없습니다.

지난달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들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너의 집 앞이니 근처에서 술 한 잔 하자, 는 어느 선배의 목소리가 무척 어두웠습니다. 저는 담담한 마음으로 자리에 나갔고, 곧 4명의 선배와 마주했습니다. 누군가 “지방시 네가 쓴 것 맞지?”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제가 쓴 것이 맞습니다.”하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대화가 이어졌는데, 기억나는 것은 “왜 이 공간을 비리의 온상처럼 묘사했느냐 감사를 받으면 어쩔 것이냐”, “너 때문에 이 곳의 연구 성과가 부정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너의 지도교수는 참 박복한 사람이다” 등등.

저는 “선배들께서 글에 공감하고 저를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하고 말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그저 ‘원망’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 선생님들께서 그러셨을 리가 없다, 너의 글은 거짓이다, 정말 연구소 책을 나르다가 다치기는 했느냐, 하는 말을 해서 몇 년 전 책을 나르다가 생긴 흉터를 직접 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책의 출간 이후, 대학이나, 혹은 보직 교수들로부터 어떤 ‘외압’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과는 어떻게든 싸울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실의 동료들의 “(대학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느냐”하는 원망에는, 저를 지탱해 온 어떤 근거가 무너졌습니다. 물론 그들로서는 지방시를 내부고발로 여길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저의 삶을 거짓으로 재단할 수도 있을 테지만, 저는 어떤 작은 기적을 바랐습니다. 그들이 “많이 힘들었지, 우리도 많이 힘들었어, 고생 많았다.”라는 말을 먼저 해 주었다면, 그러한 공감이 선행되었다면, 저는 그들과 함께 다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선배가 술 한 잔 더하고 가라며 저를 잡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었는데, 술잔을 앞에 두고 날 것의 표현들이 오고갔습니다. 그는 네가 나가기를 그 누구도 바라지 않으니 계속 같이 공부하자고 했고, 그 말에는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의 잘못을 교수님들께 빌고 오는 것이 먼저,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생각인지, 선배들 모두의 생각인지, 아니면 교수들까지 포함한 모든 구성원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선배에게 “형님, 저는 요즘 많이 힘들어요. 그런데 제 아들의 얼굴을 볼 때,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게 바라볼 수 있어요. 저는 계속 제 아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싶어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했고, 둘의 짧은 술자리는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대학원은 그다지 특별한 공간이 아닙니다. 다만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에 순응해 온, 전형적인 공간일 뿐입니다. 만일 ‘인분 교수’와 같은 상식 이하의 문법이 통용되는 곳이었다면, 저는 글을 쓰는 대신 다른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방시에서 담아낸 이야기는, 그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과 대학원에 적용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오늘, 대학을 그만둡니다

아카데미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단순히 동료연구자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면, 저 스스로가 먼저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야 비로소, 대학 바깥에 더욱 큰 대학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일부일 뿐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이지만, 저에게는 그간 저를 포위해 온 어떤 세계를 깨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의 전유물이 아닌 것 역시, 뒤늦게 알았습니다. 인문학은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누구라도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얻었기에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시간강사

저는 계속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보았는데, 역시 글쓰기 말고는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상의해 1년 남짓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되면 계속 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무엇이든 하려 합니다.

그동안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새롭게 맞이할 거리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계속 지방시의 이야기를 써나가겠습니다.

[box type=”note”] 지난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그간 309동1201호라는 필명을 사용해 온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실명을 사용하는 것이 저의 연구와 강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까닭입니다. 어떤 연구를 하든 지방시의 논문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이고, 학생들은 지방시의 강의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강의실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한 부담을 피하고자 했던 것인데,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309동1201호의 문을 열고 나와 마주하겠습니다. (필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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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댓글

  1. 그 동안 연재하신 글을 빠짐없이 읽었는데, 댓글은 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기로 하셨다기에 여기 독자 한명 있다고 댓글을 달아 응원합니다. 글에 공감하고 있고, 응원합니다.

  2. 남은 잘 지적하면서 자신이나 자기 조직의 안좋은 면을 들추면 질색하는 게 사람이죠. 선진국입네 하는 미국도 스노든을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 싶습니다. 건승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합니다.

  3. 동료들이 격려는 못해줄망정 저런말을 하다니, 송곳을 보는것 같네요
    자신들도 불합리한 대학 시스템의 피해자이면서…
    암튼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4.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쓰신 글들 매 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를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5. 대학 구조가 바뀌긴 쉽지 않을듯도 한데…

    대학이 재정을 확보하는 수단은 학생들로부터 고액의 등록금을 뜯어내거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돈많은 누군가로부터 후원을 받는 것 뿐일텐데…

    등록금은 이미 높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고, 정부지원은 대학 졸업자가 확실히 고용이 보장되는 경향이 없는 한 (그렇게 취직한 졸업생들에게 나중에라도 세금을 걷어들이면 재정은 확보되는 격이니) 적자에 허덕여서 늘릴 여지가 많지 않을테고, 돈 많은 누군가가 기부하길 바라는건 로또 당첨 기다리는거랑 비슷한거라…

    등록금 올리는거나, 정부지원 늘리는거나 비슷한 성격일수 있는게… 대학 나와서 연봉 높게 받는 직장에 취직이 잘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부모님이 투자하든,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다니든, 대학을 돈주고 다닐만한 메리트가 있는것일테니까요.

    시간강사나 교직원들의 대우나 월급을 올리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고액연봉을 받는 교수님들 연봉을 줄이고 나머지분들 연봉을 조금 올리는 것일거 같은데… (이게 정부가 기업에 추진하려고 하는 임금 피크제랑 비슷한 개념.) 대학의 최대 권력자인 교수님들이 동의해주는걸 바라긴 힘든 구조일듯도…

    아무튼 힘내시길 바래요. 쓰다보니 희망을 없애는 댓글인것도 같네요;;;

  6. 지방시를 읽고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대학이란 구조에, 학계라는 구조에 훈육된 저자의 신체와 정신.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순응하는 듯한 저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도교수 전화에 톨게이트에서 차를 돌려 오는 선배를 바라보는 감정 같은 부분에서 말이죠. … 그런데도 저자의 선배라는 분들의 반응은 저와는 완전히 반대쪽에서 접근하시네요. 대학이라는 기관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면서도 동시에 씁쓸합니다.

    비록 대학이라는 공간은 떠나시지만 인문학자 라는 한 모습을 벗으시는건 아니겠지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7. 멋있습니다. 누구라도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자각을 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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