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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강사다: 어떤 ‘재난’ 이야기 (번외 편)

‘나는 시간강사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시즌2에서는 ‘시간강사’로서의 삶을 돌아보려 합니다. 4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오히려 제가 학생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필자)

2013년 여름엔, 참 많은 비가 내렸다.

나는 그때 대학 연구소 일을 돕다가 발목을 다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상처가 조금 아물어 쩔뚝이며 병원을 오갈 수 있게 되었을 때쯤, 학과 선배 L에게 이른 아침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조조 영화나 한 편 보자는 것이었다. 한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무척 기뻤고, 곧 그와 만났다. 마침 밤새 내린 장맛비가 그쳐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여름 하늘 해바라기

‘어떤 영화를 볼까’ 생각하며 영화관 매표소로 가는 도중에 학과사무실에서 L에게 전화가 왔다. 1년 후배인 조교실장 P였다.

“학교에 큰일 났어요. 빨리 들어오셔야겠어요.”

전화를 끊은 L은 잠시 학교에 함께 다녀오자고 말했다. 무슨 일인지 묻자, L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니 강의동이 4층까지 흙탕물에 잠겨서 학과사무실도 발목까지 물이 들어찼다는데 이게 말이나 되냐?”

나 역시 웃으며 P는 언제나 오버가 심하니 이번에도 별일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동은 꽤 고지대에 있었고 학과사무실이 있는 3층까지 물이 들어찼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황당한 재난 

강의동에 도착하고, L도 나도 할 말을 잊었다. 건물 전체가 흙탕물로 범벅되어 있었고, 계단에서는 폭포처럼 물이 흘러나왔다. 학과사무실로 가는 길은 무척 험난했다. 갯벌 같은 바닥을 조심스레 밟아가며 여기저기 흠뻑 젖고서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조교실장에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간밤의 장맛비로 강의동 뒷산의 토사가 붕괴했고, 그것이 3층의 어느 한 부분을 밀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 뚫린 부분으로 밤새 물과 흙이 들이쳤다는 것이었다.

폭우 장마 소나기

곧 대학원생들이 속속 학과사무실에 모여들었다. 모두 생각지 못한 ‘재난’ 앞에서 망연자실하다가, 곧 바지를 걷고 대걸레나 빗자루를 집어 들었고,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실험설비 없는 문과대라 다행 

2층 합동연구실은 처참하게 젖어 있었다. 많은 대학원생이 컴퓨터와 오래 걸려 모은 1차 자료를 잃었다. 나 역시 노트북이 젖어 내다 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러 대학의 귀중본실에서 어렵게 복사해 온 자료들이 흙탕물 범벅이 된 것이 더욱 슬펐다.

“돈 되는 실험설비가 없는 문과대 강의동이어서 다행…”이라는 학교 측 반응은 나중에 전해 들었지만, 우리에게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연구자료들이 있다.

각자의 연구실에 내려갔던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확인하고서는 적당히 슬퍼하고, 귀중품들을 챙긴 뒤, 곧 누가 뭐랄 것 없이 3층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교수 연구실이 있는 곳이었다. 방학이라 교수 대부분이 연구실을 비워 두어서, 학과사무실의 비상 열쇠로 연구실 문을 열었다.

모든 집기를 들어내고, 진흙이 두껍게 쌓인 바닥을 청소해 나갔다. 다른 과 대학원생들 역시 정신이 들고서는 대개 자신들의 교수 연구실이 있는 층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힘을 모아 4층부터 함께 정리해 내려왔다면 좋았겠으나, 그런 합의를 도출할 여유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오가 될 무렵, 신발과 양말에는 이미 흙색 물이 들었고, 발목의 상처가 계속 따끔거렸다. 누군가 삼각김밥을 사 왔던 것 같기도 하고, 밥을 먹으러 갈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강의동의 흙탕물을 퍼내는 주체는 두 부류였다.

‘대학원생’과 ‘청소노동자’

우리는 일 하다 보면 학교 측에서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 주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교직원은 피해를 둘러보고는 그저 돌아갔다. 설마 우리가 ‘대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학교 측에서는 무엇도 하지 않았다.

물론 방학이고, 게다가 주말이었다. 하지만 그 재난에 대처하는 주체들은 오로지 문과대학의 젊은 대학원생들과 계약직 청소노동자들뿐이었다. 그에 더해 연락받은 학부생 몇이 일을 도왔다. 나는 지금도 그들에게 죄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문과대학의 누군가가 맡고 있었는데, 그는 말했다.

“아니 다들 뭐하는 짓이야! 미쳤어?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해? 다들 자기 짐 챙겨서 가자고 이 사람들아!”

여기는 우리의 공간이니까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게 맞잖아. 당신도 물이나 퍼내! 

눈물 슬픔 사람 여자 남자 좌절 불안

나는 잠시 울컥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등록금을 내는 학생인데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는 물에 젖은 자신의 짐을 챙겨 강의동 밖으로 나갔고, 그에 동조하는 우리 과 대학원생 한 명이 그를 따라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떠난 둘에 대해 그저 비난하며, 다시 묵묵히 물을 퍼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꾸만 발목이, 따끔거렸다.

저희가 이걸 책임져야 하나요? 

강의동의 모든 층에서, 교수 연구실은 빠르게 재난 이전의 모습을 찾아갔다. 자신의 연구실은 직접 책임지겠다며 대학원생들을 돌려보낸 교수도 있었고,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대걸레를 잡은 교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방학이었고, 그리고 주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해가 질 무렵, 우리는 교수 연구실 정리를 얼마만큼 끝내고 합동연구실에 모였다. 연구실에는 아직도 진흙이 두껍게 쌓여있었다. 내일 다시 모여서 일하자고 합의했데, 누군가가 물었다.

“그런데 저희가 이걸 책임져야 하나요?”

그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님들과의 저녁 식사 

돌아가려는데, 교수님들께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고 조교실장이 말했다. ‘교수가 이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있었던가’, 나는 의아했다. 강의동 앞으로 가니 학과장과 A 교수가 “고생들 했으니 함께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하고는 학교 근처의 막국숫집으로 대학원생과 학부생을 데리고 갔다. 어디에 계셨는지, 언제 오셨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저 후줄근한 몸과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십여 명 남짓한 인원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는 재난과는 관계없이, 그저 무척이나 평범했다. 누군가가 이 재난의 경위에 대해 잠시 설명했고, 고생했으니 많이 먹자는 말에 평소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그 식사 자리의 어느 순간을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한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 일어나는데, 학과장은 조교실장에게 말했다.

“학과 법인카드 가지고 오셨죠?”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조교실장은 당황하며 말했고, 학과장은 그런 그를 힐난했다. 조교실장은 이어서 말했다.

“일단 외상으로 두고, 제가 내일 와서 다시 결제하면 문제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교실장은 식당 주인에게 모 대학 무슨 과인데 내일 와서 결제하겠다고 말했고, 주인은 우리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문제없이 그것을 수용했다. 조교실장은 나중에야 이렇게 말했다.

“이걸 법인카드로 하실지는 정말 몰랐죠…”

진짜 재난은 따로 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다니던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소독을 부탁하자 그는 “낫기 싫은 모양이네요. 감염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라고 말하며 새로 소독하고, 붕대를 감고는 주사를 한 대 놓아주었다. 상처 부위보다도 마음이 더욱 따끔거려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그날 나는 합동연구실을 적당히 청소하고, 당장 필요한 짐을 챙기고는 나왔다. 물론 여전히 물을 퍼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전날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하루 내내 물을 퍼냈던 많은 대학원생은, 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가 등록금을 내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호출에 따라 강의동에 서둘러 모이고, 자청해서 재난에 대처하는 주체가 되었던 것은, ‘대학’을 스스로 지켜내야 할 소중한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어디로 가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교수 연구실의 흙부터 지워 나갔던 이유 역시, 그들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구실에 흙탕물이 들어차는 것은, ‘재난’이 아니다. 그저 닦아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튄 흙탕물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진정한 재난은 바로 그것이다.

불안 공포 재난 손 좌절 우울 심각 미안

연락이 없네요… 

며칠이 지나 조교실장에게 이메일이 왔다. 각자 피해를 본 물품과 대금을 양식에 맞게 적어 제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강의동에 연구실이 있었던 모든 연구자들에게 그러한 공지가 갔다. 그래서 나는 노트북과 몇 권의 단행본을 적어 보냈다. 물에 젖은 자료야 어차피 금액으로 환산될 수 없을 것 같아서, 돈이 될 만한 것들만 간단히 추렸다.

모두가 그렇게 1인당 30만 원 정도의 물품 피해를 정리해 보냈다. 우리는 농담을 건네며 학교 측의 대처를 기다렸다.

“컴퓨터가 어차피 낡았는데 고장 났다고 할까?”

“아니야. 그래도 보험업체 직원이 와서 제대로 검사를 하고 보상해 줄 거래.”

시간이 흘러, 방학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강의동은 이전보다 더욱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학생 대부분은 그런 재난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재난은 모두의 마음속에만 남았다.

조교실장에게 수해 보상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그도 이렇게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교직원에게 메일은 보냈는데 연락이 없네요.”

교수 연구실의 피해 보상은 이미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대학원생들 사이에 돌았다. 나는 굳이 그 소문을 확인해 보고 싶지 않았다. 온다던 보험업체 직원은 학기가 마무리될 때까지도 오지 않았고, 그사이 모두 새로운 컴퓨터를 장만했다.

재난 극복 선포식 “만세 만세 만세”

외부 수업을 듣고 돌아온 그해의 어느 가을날에, 선배 B가 무척이나 우울해 보였다. 그에게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그는 ‘재난 극복 선포식’에 다녀왔다고 했다. 강의동의 대강당에 모여 지난여름에 있었던 재난 극복을 선포하고, 자축하는 행사를 했다고 했다. 몇몇 교직원이 표창을 받았고,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은 동원되어 박수를 쳤으며, ‘만세 삼창’으로 마무리한 자리였다고 했다. 그가 어떠한 심정으로 만세를 불렀을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외부 수업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함께 만세를, 그것도 세 번이나, 불렀어야 했을 것이다.

“만세, 만세, 만세.”

사과 절망 좌절 슬픔 미안

우리는 재난에 익숙하다. 모두가 삼풍백화점을, 성수대교를,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를 기억한다. 하지만 진정한 재난은 그다음에 찾아온다. 그에 대처해야 할 주체가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무언가 숨기기에 급급하다면, 나아가 누군가를 구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평범한 주체들을 홀대한다면, 그것은 모두의 마음속에 치유할 수 없는 재난으로 남는다.

다시 건물을 세우고, 배를 인양하고, 누군가를 표창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재난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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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309동 1201호
초대필자. 대학강사

지방대 시간강사,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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