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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인데 돈이 없다. 돈을 벌어야겠다.

내 직장은 락앤롤 밴드다  

사실 나는 직장이 있고 내 직장은 락앤롤 밴드다.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그걸 무대에서 정말 쩔어주게 연주하는 게 나의 본업. 그리고 나는 내 일을 잘한다. 내가 일하는 걸 보는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만족해한다.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하고 제8극장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8극장

내 직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돈 주고 구입해서 듣거나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 것. 내가 일을 잘해서 그 사람들이 만족했으면 계속 돈을 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발을 끊을 것이다. 근데 나는 정말 일을 잘한다.

근데 우리가 돈을 못버는 건 별로 비밀도 아니다.

일은 정말 잘하지만 돈은 못 번다 

사람들은 우리 공연을 보기 위해 1만5천 원에서 3만 원 정도의 돈을 지불한다. 그동안 일을 잘했는지 요즘은 예전보다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떤 사람들은 거의 매번 오는데 그런 사람들은 한 달에 우리 공연을 보기 위해 거의 20만 원 정도 쓰지 싶다. 이 돈들을 그냥 내 계좌로 바로 받으면 이걸로 월세도 내고 하겠지만, 이게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어떤 시스템이냐 하면 클럽에서 공연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면 클럽이랑 우리랑 돈을 나눠 가진다. 요즘은 사람이 많이 오면 15만 원 정도의 몫을 챙긴다. 그러면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이런 대화를 한다.

“오늘 얼마 들어왔어?” 

“15만 원.”

“오, 존나 많네.” 

제비다방처럼 클럽이랑 돈을 안 나누고 밴드가 다 갖는 시스템에서는 37만 원이 들어왔다. 평소보다 많이 번 거라 카드값 내는데 보탰다. 클럽은 술도 팔아서 돈을 벌고 여러 팀이 공연을 하고 그중에는 우리보다 인기 많은 밴드도 많기 때문에 클럽은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할 거 같지만, 누가 더 망하기 직전인가 경주에서 클럽이 이길지 우리가 이길지 모르겠다.

락 밴드와 클럽, 누가 더 망하기 직전인가… 

클럽은 우리보다 유지비가 ‘훠얼씬’ 많이 든다. 홍대 음악가들의 추억과 역사가 깃든 소중한 장소들이 경영난으로 많이 문을 닫았다. 내년 3월이면 롸일락도 문을 닫는다. 씨발 프리버드가 문을 닫았다고, 바다비도. 씨발 쌈지도 없어졌다고. 이러다가 빵이나 드럭이나 타나 에프에프가 없어지는 꼴을 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소셜미디어가 있어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일상도 좀 알 수 있는데, 그 사람들도 가만 보면 다 가난뱅이들이다. 그 사람들 일주일 내내 아침에 출근하고 야근하고 그러다가 주말에 공연 보러오거나, 학생들은 용돈이나 알바해서 번 돈 아끼고 모아서 우리한테 쓴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모자라서 정말 듣고 싶었던 곡을 놓쳤다고 아쉬워한다. 어떤 사람은 공연을 보기 위해 밥값을 아끼려고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료수랑 스낵으로 배를 채운다. 많이 부담스러울 텐데 그만큼 우리가 일을 잘해서 계속 돈을 쓰나 보다. 2만 원으로 맛있는 외식 하는 것과 우리 연주를 듣는 경쟁에서 우리 연주가 이겼나 보지 뭐.

클럽과 우리가 가난한 이유

사람들이 이렇게 돈을 모아서 클럽과 우리에게 갖다 주는데 왜 클럽도 우리도 거지냐 하면 그건 월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무대에서 연주하고 고작 십몇만 원 받는 건 사실상의 재능기부니까 우리도 월세를 같이 내는 셈이다.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노동하는 양에 걸맞은 수입을 전혀 못 챙겨가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도 자비로 월세를 내는 셈. 일주일 내내 일하고 있던 사람들과 공연을 볼 돈을 알바를 통해 마련하고 있는 애들, 현관 앞에서 5만 원 정도 건네주는 엄마들, 클럽 사장들, 밴드들. 우리 모두가 똥꼬 힘 바짝 모아서 다 같이 월세를 내고 있는 거다. 근데도 씨발 클럽들이 망한다.

왜냐하면, 월세가 너무 비싸서.

무당이 신병에 걸리듯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들, 음악가들. 우리가 왜 다 같이 월세를 모아 내는 뻘짓을 하고 있느냐 하면, 우린 모두 서브컬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린 사실상 이런 사람들로 태어났다. 처음 서브컬처를 만나게 된 시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대부분 중학교, 고등학교 어디쯤일 거고 무당들이 신병에 걸리듯이 그 시기에 정해져 버린 것. ‘넘나’ 운명인 것. 그런데 서울 정도 되는 월드클라스 대도시에는 이런 서브컬처 집단들이 있어 줘야 체면이 선다.

솔직히 남한은 우리들이 (밴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있어서 간신히 체면 세우고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도쿄, 뉴욕, 런던, 파리 같은 도시들과 같은 줄에 서려면 우리 같은 애들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가 모여서 놀고 있으면 솔직히 좀 잘은 모르겠는데 뭔가 폼나고 멋있어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노는 동네로 사람들이 모인다.

남한은 우리 때문에 체면 세우는 줄 알아라 

왜 폼이 나고 멋있어 보이냐 하면 딱히 돈이 되는 것도 아닌 일에 목을 매면서도 똥줄 안타하고 있는 게 있어 보이고, 더 저열하게는 도쿄, 뉴욕, 런던, 파리 같은 도시들과 같은 줄에 서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우리가 모여 있는 곳에는 월세가 오르고, 그럼 당분간 다 같이 똥꼬 힘 빡 주고 월세 내다가 쫓겨나다시피 다른 동네로 간다.

예전엔 신촌도 예술가들이 돌아다니던 동네였다. 이젠 홍대도 건대 앞이나 다를 바 없어졌다. 이렇게 계속 옮겨가는 것도 서울 정도 되는 대도시를 도쿄, 뉴욕, 런던, 파리와 같은 줄에 서 있게 할 수 있는 임시방편이긴 한데, 이 임시방편의 단점은 역사가 생기지 않는 것.

역사가 생겨야 그때부터가 진짠 거다. 30년대 예술가들이 살던 동네에서 커피 마시고 돌아다니는 폼이 나야 그때부터가 진짜인 것. 우린 식민지로 수탈당하고, 내전 겪고 군부독재 겪고 하느라 뒤늦게 시작했지만, 이제 그래도 슬슬 몇십 년이랍시고 부풀려볼 수는 있는 정도가 됐고, 다 같이 똥꼬에 힘 빡주고 월세를 모아 내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지금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출처: Photographer ZERO - 제로 https://www.facebook.com/photographerzero/?fref=photo
출처: Photographer ZERO – 제로

이번 달 월세 잘 낼 수 있기를

사실 한국은 똥꼬에 힘 빡주고 몰아주는 걸 정말 잘해온 나라다. 자식 중 한 명한테 가문의 운명을 걸고 똥꼬에 힘 한번 빡 줘서 유학보내던 나라 전체가 똥꼬에 힘 한 번 빡 줘서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만들어냈다. 몇 번 재미를 보더니만 문화에도 그런 식으로 투자한다. 똥꼬에 힘 한번 빡 줘서 몇십억 들여서 한강에 오페라 하우스를 만든다든가 하는 식.

문화에도 힘을 주려고 하는 이유는 그래야 격이 살고 체면이 살아서 도쿄, 뉴욕, 런던, 파리와 같은 줄에 설 수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자들은 그런 도시의 권력자가 되고 싶기 때문 아니겠나. 제3세계 도시에 사는 권력자라 비굴한 거 싫다 아이가.

하지만 지금까지 솔직히 헛돈만 썼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런데 돈 쓰지 말고 우리 월세를 내줬어야 한다. 진작에 그랬더라면 바다비도, 프리버드도 남아 있었을 거다.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더 많아졌을 거다. 그러면 서울은 정말 근사한 대도시가 될 테고 내가 월말인데 이렇게 돈이 없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핑크 엘리펀트 같은 근사한 밴드들이 더 많이 남아있었겠지. 그러면 이 모든 게 특별히 부풀릴 필요도 없이 근사한 역사로 남아있었을 거다.

나는 그냥 락앤롤 밴드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쓸때없는 똥투자대신 클럽 월세나 내주는 게 훨씬 싸고 좋은 방법이라는 정도는 안다. 다 같이 이번 달도 월세 잘 낼 수 있기를. 락앤롤.

서상욱 (보컬, 작사작곡),임슬기찬(기타), 조은광(드럼), 함민휘 (베이스기타)
제8극장: 서상욱 (보컬, 작사작곡), 임슬기찬(기타), 김태현(드럼), 함민휘 (베이스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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