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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현지 시각)에 일어난 파리에서의 테러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Garry Knight, “Paris Vigil”, 2015년 11월 14일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범행을 주도한 IS가 다음 테러의 목표를 미국의 수도 워싱턴으로 지목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IS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 행정부는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후보가 외치는 대선용 외교정책공약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파리 테러가 미 대선 후보에 미치는 영향 

그렇다면 민주와 공화 양당의 주자들은 이번 테러로 선거운동 전략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파리 테러와 뒤이은 국제 정세 변화는 몇몇 후보들에게 유리한 상황이고, 다른 후보들에게는 조종(弔鐘)이다.

DonkeyHotey, Hillary Clinton-Caricature, CC BY https://flic.kr/p/A9MuTa

힐러리 클린턴

우선 외무장관을 지내면서 알카에다와 관련된 정책을 다루었고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갖춘 힐러리 클린턴에겐 (이 비극적인 사건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선거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호재다. 무엇보다 힐러리의 풍부한 경험에 바탕한 외교 지식을 발휘할 기회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고, 그럴수록 샌더스와의 차별점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DonkeyHotey, Bernie Sanders - Painting, CC BY https://flic.kr/p/vGQjz2

버니 샌더스   

외교 경험이 없는 버니 샌더스와 벤 카슨에게는 아주 불리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게 이미 드러났다. 테러 직후에 있었던 민주당 토론회에서 샌더스는 IS와 관련한 질문에 단 두 문장으로만 대답하고 자신이 유리한 경제 불평등 문제로 황급히 화제를 바꿨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 순간이었고, 언론도 그렇게 해석했다. (물론 힐러리는 길고 자세히 답했다.)

DonkeyHotey, Ben Carson - Caricature, CC BY SA https://flic.kr/p/xpAuDT

벤 카슨  

공화당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벤 카슨도 마찬가지. 전직 뇌 전문의라는 지적인 이미지와 외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폭스뉴스에 나와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대답을 못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파리테러가 낳은 새로운 구도는 그 두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워싱턴 아웃사이더들을 선호하던 유권자들이 꿈에서 깨어나 ‘위기의 순간에 나라를 이끌 수장(chief)’을 뽑아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DonkeyHotey, Donald Trump - Painting, CC BY https://flic.kr/p/vhUZvt

도널드 트럼프 

당연히 도널드 트럼프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자기는 푸틴을 이용할 수 있으며, 푸틴에게 IS를 해결하게 맡기겠다는 황당한 트럼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은 지난 주말 G20회담에서 오바마가 호텔로비 구석에서 푸틴과 각각 한 명의 통역만을 데리고 앉아 심각한 논의를 하는 장면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제 애들 장난은 끝났다.’

DonkeyHotey, Marco Rubio - Portrait, CC BY https://flic.kr/p/vVS1fD

마르코 루비오 

그럼 공화당에서는 누가 유리할까? 마르코 루비오다. 외교정책에서 발군의 지식과 말솜씨를 자랑하는 루비오는 트럼프의 카니발에 밀려 고생했지만, 파리의 총성으로 단번에 의제를 주도할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마르코 루비오의 입장은 힐러리 클린턴과 큰 차이가 있는 동시에, 공화당 기축세력의 의견을 잘 반영한다. 그리고 그런 루비오의 중동관은 ‘문명의 충돌’로 요약할 수 있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데올로기  

여기에서 잠깐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 이야기를 해보자. 1993년에 새뮤얼 헌팅턴이 들고나온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사실상 하나의 이데올로기고, 그렇게 취급해야 하며, 학계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은 주장이다(한국의 진보를 대변하는 모 신문이 샤를리 엡도 사건을 “문명의 충돌”이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아연했던 적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끝난 세상에서는 문화와 종교 간의 충돌만이 있을 거라는 헌팅턴의 주장은 그 자체로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 정치와 외교에 적용했을 때 특히 큰 결함이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아니, 이 시각의 아주 단순한 공화당 버전에 따르면) IS의 테러는 기독교 문화권에 대한 이슬람 문화권의 공격이다.

진보세력,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주장이 (특히 IS의 테러리즘과 관련하여) 문제 있는 이유는 그런 관점이야말로 IS와 알카에다가 원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 근거지 공습(2014년 10월)

서구사회에 정착해서 돈을 벌고 풍요하게 사는 이슬람교도들을 들쑤셔서 세계를 폭약고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슬람의 “성스러운 땅”에 서구 국가의 군대가 진입하는 것이다. “우리 종교의 성지가 이교도의 군홧발 아래 놓였다”는 말은 파괴력이 있는 내러티브다. 십자군의 역사도 바로 그 내러티브에 농락당한 결과가 아닌가.

IS가 어리석어 보일 만큼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국가에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을 화나게 해서 그들의 군대가 중동 땅에 진입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이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던 서구의 온건 이슬람교도들은 화가 나게 되고 ‘성전’에 동참할 것으로 그들은 믿고 있다.

그것이 IS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오바마를 비롯한 서구 지도자들이 “아무리 사태가 심각해도 지상군 투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그거다. 온건한 이슬람교도들을 과격한 급진분자들로 만들어 놓으면 모슬렘들만 사는 중동과 모슬렘과 다른 인종들이 섞여 사는 지역 중 어느 쪽의 피해가 더 크겠는가?

무지와 무관심이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때 

하지만 그런 설명은 내러티브가 단순하지 않아서 무관심한 대중을 설득하기 힘들다. 반면 “문명이 충돌한 결과”라는 설명은 즉물적이고, 별다른 노력 없이 현실을 편리하게 해석해준다. 간결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주장이 필요한 대선에서 문명충돌론은 그래서 막강한 무기다. 특히 교육수준이 낮고, 기독교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에서는 더없이 좋다.

물론 공화당 후보들이 그걸 이용해서 거짓말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가령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철저하게 기독교 교육을 받았고, 티파티의 사랑을 듬뿍 받는 테드 크루즈(Ted Cruz: 1970~현재)는 정말로 기독교가 이슬람의 공격 아래에 놓여 있다고 믿는다. 그런 판국에 아직도 오바마가 케냐에서 태어난 모슬렘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티파티 사람들이 오바마의 지상군 투입 및 확전 반대 입장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Mike Licht, Ted Cruz-The Cruzade Begins, CC BY https://flic.kr/p/rKnwoR
Mike Licht, “Ted Cruz-The Cruzade Begins”, CC BY

지난 토요일(2915년 11월 14일) 토론회에서 민주당 주자들이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 이유가 그것이다. ‘이슬람 대 서구’의 구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슬람이라는 단어 자체를 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ISIL, ISIS, 테러리스트를 사용한다. 외교 문제에서는 가장 유리한 클린턴이지만 과거 부시의 이라크 침공 때 찬성을 했다는 이유로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공격을 받아 결국 경선에서 패배했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오바마의 임기 말에 불거진 이번 사태는 힐러리에게는 기시감(Déjà Vu)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그런 아픈 유산을 안고 IS와 이슬람 문화를 분리하면서도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 힐러리는 외줄 타기를 해야 하지만, 그런 이성적이고 차분한 생각이 폭탄 소리에 귀먹고, 공화당 주자들의 위협에 겁먹은 대중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정도 대국민 설득은 해낼 수 있어야 세계 최강대국의 군대를 지휘할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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