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 두 개의 결선 시나리오

아직 민주당의 샌더스와 공화당의 트럼프가 든든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언론의 촉각을 믿는다면 여론은 ‘힐러리 vs. 루비오’ 양자 대결의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선으로는 두 번째, 프라이머리로는 첫 번째 주인 뉴햄프셔에서 힐러리가 버몬트의 버니 샌더스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아이오와에 이어 샌더스의 안방인 뉴잉글랜드 지역에서의 상승세는 힐러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영리한 마르코 루비오

한편 공화당의 뉴햄프셔 조사에서는 트럼프 26%, 카슨 16%, 루비오 13%의 순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숫자만 보면 큰 이변이 아닌 것 같아도, 지난 9월 조사 후로 트럼프와 카슨의 지지율은 내려간 반면, 루비오의 지지율은 3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 상승세를 주목해야 한다.

힐러리의 후반 상승세는 충분히 예측됐던 것이지만, 루비오의 상승세는 뜻밖이다. 연초(2015년) 예상대로라면 공화당 당내 경선은 테드 크루즈와 젭 부시의 대결이 되어야 했지만, 트럼프의 예상 밖 인기와 부시의 맥 빠진 캠페인이 모든 예측을 뒤집었다. 그리고 이제 관심은 루비오에게 쏠리는 중이다. 물론 루비오는 꾸준히 다크호스로 여겨져 왔지만, 다크호스는 어디까지나 예상하지 못한 후보다.

여기서 잠깐. 왜 공화당 2위(지역에 따라서는 1위)의 벤 카슨(Ben Carson, 1951년~현재, 사진)에는 주목하지 않는가? 카슨은 트럼프에 싫증 난 지지자들이 비정치인 카드를 완전히 포기하고 루비오나 부시와 같은 ‘될 만한’ 후보로 마음을 돌릴 때까지만 유효한 일종의 임시 거처일 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언론과 양당이 의견을 같이한다.

영리한 루비오는 아웃복싱을 하면서 트럼프, 카슨, 부시가 기운이 빠지기만을 기다린다. 심지어 루비오의 컨설턴트들은 루비오의 현재 상승세조차도 너무 빠르다고 우려할 만큼 조심스럽다. 코커스·프라이머리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서 상승세에 불이 붙어야 불필요한 공격을 피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운전할 때 앞서 가던 차량이 빨간 신호에 대기하고 있을 때,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차량이 사거리에 도달하자마자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는 상황과 비슷하다. 먼저 와서 정차했던 차가 정지상태에서 출발하는 동안 뒤에 오던 차량은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 없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앞지를 수 있다.

두 개의 결선 시나리오

경선 과정에서 대선 최종 결과를 예측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아무리 바람의 영향이 적은 미국 대선이라고 해도,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변수와 드러나지 않은 정보가 미칠 영향을 전부 파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라는 단서를 달고 예상 결과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보는 일은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존재할 때 우리는 상황을 좀 더 풍부하고, ‘뉘앙스’ 있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후보나 당에 관해 단일한 내러티브만을 가지고 대선을 바라보면 우리는 상황을 잘못 파악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런 위험을 잘 인지한다는 가정하에 두 개의 시나리오를 소개하면 이렇다. 변수를 줄이기 위해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후보로 선출됐다고 가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차후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box type=”info”]

힐러리 vs. 루비오 (시나리오 A) 

민주당에서는 힐러리가 경선 때까지 우세를 보이면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고, 정치인 출신 vs. 비정치인 출신의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공화당에서는 마르코 루비오가 후보가 된다.

힐러리 vs. 트럼프 또는 카슨 (시나리오 B) 

민주당에서 힐러리가 대선후보가 되고, 공화당에서는 트럼프나 카슨 중 하나가 비정치인 선호의 바람을 타고 당선이 된다. 2016년 2월 아이오와 코커스 참여 인원이 기록을 세울 거라는 전망도 그런 비정치인 선호에 무게를 실어준다. 새로운 유권자의 등장은 신인에 유리하다.

[/box]

A.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날 힐러리 

시나리오 A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은 본 선거에서 제대로 적수를 만나게 된다. 민주당 경선 기간 동안 치열한 토론을 하지 않은 힐러리가 끔찍한 토론의 지옥에서 살아나와 에너지 충만한 젊은 루비오와 대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치열한 경선은 토론기술을 날카롭게 해주는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에서 쉬운 경선은 복불복이다).

루비오와 대결하는 것이 힐러리 캠프에는 최악의 상황이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시나리오다. 힐러리는 원래 말이 빠르지 않고, 또박또박 천천히 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젭 부시, 오바마 등과 비슷하다. 하지만 루비오는 말도 빠르고 토론 중간에 판단도 빠르다.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가장 큰 위험은 쿠바 난민 가정에서 태어나 스페인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루비오가 가져가게 될 엄청난 히스패닉 표다. 잘 알려진 바대로 오바마에게 재선을 안겨준 1등 공신은 밋 롬니를 싫어한 미국의 히스패닉 유권자들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현재 전체인구의 18%에 근접 중)인 이들의 표의 상당한 부분만 루비오가 가져와도 힐러리에게는 큰 타격이 된다. 물론 힐러리는 애초에 히스패닉 아내를 둔 젭 부시를 적수로 예상했기 때문에 히스패닉 표를 지키기 위한 철저한 대비책을 가지고 있겠지만 말이다.

B. 승리 사실상 보장되는 힐러리…하지만  

시나리오 B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 힐러리가 트럼프와 붙으면 트럼프의 막말을 전국 생방송 되는 토론회에서 직접 들어야 하는 괴로움은 있겠지만, 본 선거 승리는 사실상 보장된다. (물론 공화당을 주도하는 기득권 세력이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힐러리가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조롱을 받는 벤 카슨과 붙으면 가장 쉽고 일방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나 카슨이 후보가 되고 그렇게 해서 힐러리와 대선에서 만나면 뜻하지 않은 파급효과가 생길 수 있다. 바로 오바마의 발목을 잡고 괴롭혀온 하원을 민주당이 재장악할 가능성이다.

현재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석을 장악하고 있는 건 공화당이 소위 “제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고 부르는 선거구 구획변경으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기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임기 2년의 하원의원의 선거는 4년 임기의 대통령 선거와 같은 날 이루어진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열리는 선거를 ‘중간선거’라고 부른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의 인기가 각 당 하원의원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들 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오바마가 일반 투표 53%를 얻어 당선된 2008년에는 민주당이 하원을 가져왔지만, 51%라는 다소 힘겨운 승리를 한 2012년에는 공화당에 하원을 뺏겼다. 따라서 힐러리가 비정치인 출신 공화당 후보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하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공화당 우세지역(애팔래치아산맥과 남부 등 저학력의 백인 기독교인 밀집지역)을 제외한 현재의 공화당 장악지역에 사는 고학력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나, 카슨 같은 아마추어 후보가 나와서 힐러리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면 대거 (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을 이탈해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건 민주당에는 꿈같은 일이고,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민주당은 하원을 장악하고 강력한 힐러리의 지휘로 중요한 의제들을 통과시킬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제부터 정확히 1년 후에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