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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재, 한국에는 크게 세 개의 애니메이션 영화제가 있다.

  •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 ‘인디애니페스트’(Indie-AniFest)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는 1995년에 시작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 영화제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는 SICAF보다는 살짝 어리지만,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애니메이션 영화제다.[footnote] 2014년까지는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였으나 부천시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영문 명칭 Puch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PiFan)의 시 명칭인 ‘Puchon’을 현재 사용하는 로마자 표기법인 ‘Bucheon’으로 바꾸는 것과 발맞춰 PISAF도 부천시의 영문 표기를 변경하고, 동시에 초점을 학생 제작 애니메이션에서 모든 종류의 애니메이션으로 변경하며 행사의 명칭을 완전히 바꿨다.[/footnote] 그리고 끝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영화제가 있다. 바로 ‘인디애니페스트’(Indie-AniFes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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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CGV 명동역에서 개최된 ‘인디애니페스트 2015’의 포스터.

낯선 영화제와 인연을 맺다 

2005년 지금은 사라진 씨네코아에서 처음 막을 올리고, 2014년부로 행사 개최 10주년을 맞이한 인디애니페스트는 아직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은 영화제다. 여전히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이 어린아이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도 크지만, 많은 사람이 영화제 하면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한국의 거대 영화제들을 주로 연상한 탓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독립영화가 [워낭소리] 등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 대중들에게는 아직 낯설게 다가오는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ICAF가 2012년 이후 서울특별시의 재정난으로 행사 규모가 대폭 감축되고, BIAF 역시 방향 설정에 골몰하는 사이 인디애니페스트는 크기와 재정은 다른 두 영화제에 비교할 수도 없어도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확인하는 차원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제가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인디애니페스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08년이었다. SICAF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이런 영화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딱히 독립 애니메이션에 관해 관심이나 애정이 없었고, 그렇게 그때는 한국에 존재하는 무수한 영화제 중 하나로 여길 뿐이었다. 그렇게 영화제를 대강대강 알고 있던 무렵 2010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인디애니페스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여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9월 말, 추석 연휴가 끝나고 얼마 안 지나지 않아서였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마냥 골방에 틀어박히기엔 심심할 무렵 왠지 모르게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괜찮은 영화제가 없을까 이리저리 찾다가 우연히 인디애니페스트가 개막해 한창 열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왠지 모르게 인디애니페스트에 참석하고 싶었다.

결국, 어떤 작품을 꼭 봐야만 겠다는 계획 같은 것 없이 무작정 영화제가 열리는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도착하게 되었다. 영화제는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조촐했다.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인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자체가 원체 아담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들렀던 날이 평일인지라 사람 또한 적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제가 전달하는 울림은 영화제의 외향상 크기와 같지 않았다. 마침 내가 온 시간에 상영하던 단편 섹션 하나를 골라 보았을 뿐인데, SICAF나 BIAF에서 보았던 작품들과는 또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감독에, 인지도가 높을 수 없는 독립 애니메이션이지만 작품 하나하나마다의 감각은 무척이나 다채로웠다. 그렇게 인디애니페스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바쁜 와중에서도 짬을 내어 영화제에 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2015년, ‘활주로’ 타고 더 멀리 날고 싶다 

인디애니페스트는 지난 10년간 풀이 좁은 독립 애니메이션의 장을 넓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은 이번 행사에서 열린 전시 의 모습.
인디애니페스트는 지난 10년간 풀이 좁은 독립 애니메이션의 장을 넓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은 이번 행사에서 열린 전시 “순간의 기억, 애니메이션”의 모습.

그리고 2015년이 되었다. 영화제의 크기는 여전히 작지만 조금씩 발전하며 앞으로 나가고 있다. 인디애니페스트는 2014년 10주년을 맞이했고, 메인 상영관으로 사용하는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이어 CGV 명동역을 새로운 상영관으로 추가하게 되었다. 독립 애니메이션이 중심인 행사이지만, 2013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특별전, 2014년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연출한 신동헌 감독 특별전, 그리고 올해에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두 명의 해외 애니메이터 톰 무어와 막스 하틀러의 특별전을 개최하는 등 애니메이션의 과거와 동시대적인 감각 모두를 수용하려 고민한다.

또한, 인디애니페스트는 단순히 영화 상영을 넘어 감독과 관객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0년부터 계속 개막식을 장식하는 프로젝트로 진행 중인 ‘릴레이 애니메이션’, 2008년부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하고 자유롭게 제작된 짧은 작품을 공모받는 ‘날애니공모전’, 2014년부터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평을 가르치고 나아가서는 관객심사단으로 활동하는 장을 만드는 ‘애니글수다’ 등등의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인디애니페스트는 흔히 아이들이나 오타쿠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애니메이션, 인지도가 높지 않은 독립 애니메이션을 많은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프로그램 ‘사랑방토크’가 신설되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동시에 인디애니페스트의 입장 수익금은 ‘인디플라이’라는 이름으로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해외참관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영화제는 그야말로 감독과 관객 모두를 위한 장으로 역할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올해 행사의 슬로건인 ‘활주로’라는 말처럼, 더욱 멀리 앞으로 날아가려고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연상호, 이성강, 장형윤과 같이 조금씩 일반 관객들에게 알려지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독립 애니메이션의 인지도는 낮고, 이는 인디애니페스트에도 영향을 미친다. 독립적인 작품을 주로 다루는 영화제의 특성상 스폰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2011년에는 영화제 예산이 줄어든 여파로 인해 계속 열리던 ‘인디플라이’ 사업이 중단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보다 더 독립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낮았을 때부터 계속 인디애니페스트가 꾸준히 열려온 것처럼, 어떠한 순간이 찾아올지라도 인디애니페스트는 꾸준히 해답을 찾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매년 9월 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아올지에 상관없이 인디애니페스트는 남산과 명동에서 여러분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디애니페스트는 매년 9월 말에 찾아오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사진은 인디애니페스트 2015 폐막식 중 행사 기간 동안 함께한 최유진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인디애니페스트는 매년 9월 말에 찾아오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사진은 인디애니페스트 2015 폐막식 중 행사 기간 동안 함께한 최유진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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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니페스트 2015 수상작들 

인디의 별(대상) : [배다리뎐], 김혜미 감독

[배다리뎐]은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화성 융릉에 행차하기 위해 한강에 배를 엮은 배다리를 놓았던 이야기를 모티브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사는 꼬마 소년 개똥이는 매일 낚싯대를 메고 한강에 나가 어머니에게 드릴 물고기를 잡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제사를 앞둔 어느 날, 정조 임금이 능행을 오는 바람에 마을의 모든 배가 배다리를 만들기 위해 징발되고 개똥이는 낚시할 수 없게 된다. 심통이 난 개똥이는 홧김에 배대리를 끊고 행차 중이던 정조 임금 앞에 나아가 물고기를 잡게 할 것을 감히 요구한다.

조선시대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애니메이션, 영상물은 원래부터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배다리뎐]은 기존 작품과 달리 고전에 단순히 얽매이지도, 아니면 ‘퓨전’이라는 명목으로 무작정 고전을 해체하지도 않는다. 대신 고전적인 소재를 애니메이션이라는 틀에 맞게 효과적으로 버무려낼 따름이다.

판소리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 조선시대의 민속화를 연상시키는 배경과 캐릭터의 작화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동시에 잊을만하면 이야기되는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이라는 어떤 유행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2004년 단편을 만든 이후 오래간만에 복귀한 감독의 이 성공적인 복귀작은 벌써 다음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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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보행상 : [화장실콩쿨], 이용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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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내를 미국으로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 상민은 가뜩이나 외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만성 변비까지 걸리고, 설상가상으로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도 모르고서 아내는 남편에게 국제전화로 유학을 더 연장하겠다는 말과 함께 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겠다는 이야기를 던질 뿐이다. 계속 무기력하고 지친 상민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싶지만 딸의 전화통화와 바이올린 연주 소리에 다시 마음을 잡고서 어떻게든 권고사직을 막으려 직장 동료들과 계획을 짜게 된다.

외로움을 느끼는 기러기 아빠와 권고사직이라는 소재는 흔하게 쓰였던 이야기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참신하게 만드는 요소는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위트’와 ‘유머’다. 딸을 가르치겠다는 이유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혼자 지내는 남자의 고뇌, 일방적으로 권고사직을 지시하고 정부와 함께 사랑의 밀회에만 몰두하는 본부장, 곤란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을 골리다 자기도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음을 알고 합심하는 동료 등의 캐릭터는 어찌 보면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만드는 서로 톡톡 튀는 이야기를 화장실과 공항에서 매듭짓는 테크닉은 짧은 작품에 강한 임팩트를 형성하게 만든다. 특히 ‘화장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통해 주인공의 고뇌와 딸의 바이올린 소리가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환하는 연출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살 소재여서 그런 것일까. 작품은 독립보행상 외에도 관객상과 관객심사단까지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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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비행상 : [애프터눈 클래스], 오서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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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의 오후 수업 시간, 중고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하나둘 잠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주인공 역시 서서히 졸음이 몰려오고 만다. 머리가 점점 무거워져 가운데 주인공은 어떻게든 잠에서 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머리는 점차 다양한 존재로 변신하며 무겁게 만들 따름이다. 과연 주인공은 수면의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까.

작품의 플롯은 비교적 단순하다. 잠에 들고 싶은 무의식과 잠에서 깨어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과정이 [애프터눈 클래스]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플롯은 재치있는 연출과 결합하며 독특해지고, 그로 인해 관객들은 소재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특히 머리가 무거워지는 묘사를 주인공의 머리가 벽돌이나 볼링공으로 변하는 식으로 드러낸 직관적인 표현이 영화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식후에 오는 낮잠에 쉽게 빠져들었던 사람들이라면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무척이나 고개를 끄덕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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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특별상 : [환], 김준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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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감독은 2011년 단편 [소녀 이야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환]은 [소녀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아내와 딸을 남겨둔 채 강제징용으로 일본군에 끌려간 주인공은 결국 미군을 공격할 카미카제 대원이 되고 말았고, 이윽고 목숨이 끊어지게 될 운명의 그 날 주인공은 비행기 안에서 무척이나 잊을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전작 [소녀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장점이 있었지만, 실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작품으로 옮기는 것에 집중해 서사적인 측면이 아쉬웠던 반면, [환]은 그 아쉬운 부분마저 보충하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조선인에 대한 문제를 더욱 직관적이고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과잉 설명 없이 주인공이 겪는,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겪는 비현실적이지만 무척이나 현실적인 순간을 통해 작품은 가족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유가족들의 고통을 단숨에 와 닿을 수 있게 만든다. 전작보다 진보한 3D 기술력과 사운드 디자인 역시 작품에 더욱 강한 리얼리티를 불어넣는 것에 도움을 준다. 그 결과 작품은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자 그에 기반을 둔 호러로 자리매김했고, 심사위원 특별상과 함께 음악사운드 부문 특별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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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상(신인감독상): [심경], 김승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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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대두가 된 해였다. 그래서였을까. 올해 열린 인디애니페스트의 초록이상은 [심경]이 받았다. 숲 속에 둘러싸인 어떤 가상의 공간, 한 여자가 잠망경을 통해 자신의 마을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살이 제법 붙은 뚱뚱한 여자는 말 그대로 외줄을 타며 간당간당하게 앞을 향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날씬한 여자를 부러워하고, 남성에게 짓눌리며 외줄 타기를 하던 여자는 결국 끝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작품의 상영시간은 단 2분에 불과하지만, 2분 동안 벌어지는 모습들은 신인 감독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현실을 ‘외줄 타기’와 ‘추락’을 통해 간명하게 드러내고, 이러한 장면들은 ‘골판지’라는 독특한 소재 위에 그려지며 전달된다.

디지털 셀 애니메이션이나 3D 애니메이션이 보편화한 상황에서 골판지는 옛날의 필름 셀과도 다른 독특한 질감을 주고, 동시에 골판지를 겹쳐 쌓는 방식으로 깊이를 드러내는 묘사를 보면 그 아이디어에 절로 찬사가 나오고 만다. 드럼 멜로디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계속 작품을 돌려보고 싶게 만드는 사운드 역시 작품을 몰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제작부터 작화, 편집, 그리고 음악까지 감독이 전부 담당했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벌써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단연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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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FA 부문 특별상 : [고치], 여은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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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는 낡은 아파트에서 고치에 둘러싸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미나에게 갖은 욕설과 막말을 쏟아내며 정신적인 폭력을 마구 행사하지만 미나는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미나의 남자친구 철우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미나의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과연 미나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작품은 내용을 논하기 이전에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에서부터 충격을 선사한다. 마치 일본 호러 만화를 연상케 하는 거칠지만 특징을 강하게 묘사하는 작화, 작중 인물을 넘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는 날카로운 사운드는 기괴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형성해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깊게 빠져들게 한다.

이미지만큼이나 더욱 강렬한 것은 작품의 주제이다. 어머니는 딸을 학대하지만, 딸은 폭력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는 대신 오히려 폭력의 공간에 계속 남아 있으려 하고, 딸의 남자친구는 딸을 돕지만, 딸은 여전히 무언가에 매여 있을 뿐이다. 호러 장르로서도 흥미롭지만, 가정 폭력에 묶여있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비추는 점에서도 작품은 많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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