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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야권의 대응 전략이 과연 문제인가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야권이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교과서를 국정으로 할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행정예고를 하고, 20일이 지나 확정 고시하면, 그걸로 끝이다. 입법부는 이 과정에 관여할 방법이 없다.

국정화 막을 가장 좋은 방법? 

입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전에 법을 고치는 일이다. 이런 전횡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법. 실제로 김태년 새정치연합 의원 등이 ‘교과용 도서에 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 등으로 인해 통과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런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입법 과정은 이슈화되지 않는다.

새정연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국정화 강행을 막지 못했다 해서 야권의 책임을 묻기엔 가혹하다. 공영방송과 주류 신문이 노골적으로 새누리당에 편파적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야권은 꽤 효율적으로 여론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박근혜가 사전에서 양보나 타협, 논의와 논쟁을 이미 지워버린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독불장군이다. 눈멀고 우둔한 우리의 공주다. 그나마 여론이 반대쪽에 기울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에겐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그 어떤 부정적인 이슈에서도, 그를 굳건히 지지하는 노년층 중심의 지지층은 존재했다. 하물며 비주류 몇 명을 제외하면 여권에선 누구도 박근혜를 거스르는 언동을 하지 못한다 하지 않는가.

‘친일·독재’ 강조하는 전략이 잘못인가  

국정교과서가 친일, 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야권의 지적에 대해 여권은 태어나지도 않은 교과서를 미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고 대응한다. 또 많은 이들이 친일과 독재를 내세우는 야권의 전략이 잘못되었으며, 박근혜 정권 측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아예 축소해버리는 식으로 국정화 방향을 잡을 경우 야권의 논리가 궁색해진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나는 야권의 전략이 잘못되었다 훈수할 상황이 아니라 생각한다. 야권은 친일, 독재 미화 문제만 내세워 반대의 기치를 든 게 아니라, 국정교과서가 헌법적 가치에 어긋난다는 점 또한 분명히 강조한다.

판결 법원 재판

또, 박근혜 정권은 중립적인 교과서를 쓸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현행 교과서의 내용을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거짓말을 동원해 친북 딱지를 붙이는 등의 행태를 반복했다. 논리의 궁색함이나 선동의 위험성을 따진다면 야권보다 여권이 몇 배는 더하다. 아니, 박근혜는 이미 흑색선전을 시작했다.

황교안 총리는 대국민담화에서 “3개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고 나머지 전체,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적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주장하여 사실상 교학사 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의 전례로 여기고 있음을 자인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 독재 미화는 물론 사실관계 오류마저 넘쳐나 교과서로서 자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음을 고려해 볼 때, 야권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전국에 약 2천300여 개의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중 3개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고 나머지 전체,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적 교과서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다양성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다양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황교안, ‘역사교육 정상화 국민께 드리는 말씀’ 중에서 (2015. 11. 3.)

또 박근혜 본인이 기회만 나면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별러왔으며, 논란 끝에 사과하긴 했지만, “인혁당 사건은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발언 등으로 퇴행적인 역사의식을 보여왔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SBS의 2014년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가 EBS 교재 출판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하여 박정희의 치부를 다룬 내용이나 여운형, 조봉암에 대한 내용 등을 삭제하고, 전태일 동상 사진을 경부고속도로 개통 사진으로 바꾸게 하는 등의 수정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역사 왜곡 우려가 ‘기우’일 수 없는 이유 

미디어오늘 기사는 “근현대사 부분에 대한 수정은 최대한 축소하고”, “고사와 고대사에 집중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술될 경우”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다.

실제로도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고대 동북아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우리 민족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학생들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광복절 축사에서 환단고기를 인용하는 등 고대사에 대해서도 무지를 드러냈음을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15년 11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954293.html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15년 11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하지만 위 기사가 말하는 것처럼 우려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 따위의 기치는 그 진위와 관계없이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국정화 반대론자들의 깊은 논의와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대사와 상고사를 강화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하는 것은 늘 파시즘의 태동을 불러왔다 우려하기도 한다. 다소 성급할 수 있겠으나 충분히 숙고할 만한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국정교과서가 근현대사를 왜곡할 것이라는 우려를 꼭 기우로 치부할 까닭은 없다. 박근혜를 비롯해 현 정권의 언동이 일관되게 그쪽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고대사 및 상고사를 왜곡하여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해도, 그간 박근혜가 근현대사를 왜곡해왔던 언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광우병 사태와 국정교과서 이슈

또 많은 이들이 광우병 사태를 예로 들어, 진보 혹 좌파 계열의 선동과 왜곡이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시 쓰지도 않은 교과서를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라 공격하는 등 선동과 왜곡으로 점철되어있다는 주장이다.

광우병 사태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는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이슈다. 두 개를 묶어 역사가 반복되리라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 때 거짓말을 많이 했으므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도 거짓말로 점철되어있으리라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반대로 여직원을 감금했다느니 하는 얘기로 역풍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던 국정원 선거 개입 사태 등이 진실로 드러난 것은 무어라 변명할 것인가. 이것은 선동이 아니었는가. 혹 이건 착한 선동이기라도 했던가.

2008년 촛불집회는 국민 건강권 문제와 정보의 불투명성, 집회라면 무조건 불법으로 낙인찍고 진압하는 오랜 관행 등 수많은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진행되며 화장품만으로도 광우병에 걸린다거나 하는 괴담이 횡행했고, 이것이 합리적인 목소리를 잡아먹고 말았다.

샛길, 2008년 5월 3일 청계광장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 CC BY SA http://byway69.tistory.com/

샛길, 2008년 5월 3일 청계광장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 CC BY SA

국정화 사태가 광우병 사태의 반복이라는 주장은 현재로써는 설득력이 없으나, 당연히 늘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논쟁이 진행되며 과격한 목소리가 온건한 목소리를 잡아먹지 않기를. 나만이 옳다는 아집이 중지를 모으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앞서지 않기를. 늘 우려하되, 또한 늘 조심스럽기를.

무엇이 국정화 반대자들을 위한 최선의 전략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오직 한 가지, 주장이 근거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확실하게 팩트가 된다는 점, 그리고 그런 데서부터 조금씩 뭔가 논의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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