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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업데이트

봄까지만 해도 좋은 들러리 후보 정도로 그칠 줄 알았던 버니 샌더스가 예상외로 바람몰이를 하면서 선거운동 초반부터 주춤했던 민주당의 대마, 힐러리 클린턴. 말 그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정치인 힐러리는 지금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고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보자.

1. 첫 번째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

왼쪽부터 로렌스 레식, 짐 웹, 힐러리 클린턴, 버니 샌더스, 마틴 오말리, 링컨 채피 (출처: DonkeyHotey, "2016 민주당 대선 후보들 - 캐리커쳐", CC BY SA https://flic.kr/p/yDatNu)
민주당 대선 후보들. 왼쪽부터 로렌스 레식, 짐 웹, 힐러리 클린턴, 버니 샌더스, 마틴 오말리, 링컨 채피. 짐 웹은 10월 20일(현지 시간) 경선을 포기함으로써 첫 경선 탈락자가 됐다. (출처: DonkeyHotey, “2016 민주당 대선 후보들 – 캐리커쳐”, CC BY SA)

먼저, 첫 번째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는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로 결론 났다. 토론 후 각종 조사와 언론 평가에서 대부분 힐러리가 승리라고 선언했다. 오히려 너무 지나칠 정도로 힐러리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일부에서는 샌더스가 더 잘했다는 증거를 들고나오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힐러리의 아킬레스건

토론회의 백미는 56분 즈음에 일어났다. 토론이 반쯤 지난 후 부터 진행된 약 2, 3분 동안은 힐러리가 토론의 승리를 직감한 순간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 2, 3분 동안 힐러리는 특별히 한 말이 없다는 사실. 이야기 대부분은 샌더스에게서 나왔다.

이번 선거에서 힐러리의 아킬레스건은 클린턴이 국무부장관 시절 공무에 관련하여 (기록이 남는) 정부 이메일 서버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용 메일 서버를 따로 운영했던 일이다. 따라서 힐러리 공격하려는 모든 후보들은 그걸 노리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버니 샌더스는 거기에 대해서 언급할 기회가 생기자 힐러리의 이메일을 공격하는 대신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

“국민은 당신(힐러리)의 망할 이메일 이야기를 듣는 데 질렸다고!” 

“The American people are sick and tired of hearing about your damn emails.”

청중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냥 박수가 아니라 기립박수였다. 공화당 토론회의 구경거리가 트럼프라면 민주당 흥행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치인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떠나 당과 유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화합하는 모습만큼 당원들에게 감동주는 게 또 있을까?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버니 샌더스는 "미국인은 당신(힐러리)의 그 망할 이메일 이야기를 듣는 데 질렸다."다고 말했고, 힐러리는 "고맙다. 나도 질렸다."(Thank you. Me too. Me too)라고 화답하며 파안대소했다. (출처: 로이터 TV) http://www.reuters.com/article/2015/10/14/us-usa-election-democrats-idUSKCN0S70B920151014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버니 샌더스는 “미국인은 당신(힐러리)의 그 망할 이메일 이야기를 듣는 데 질렸다.”다고 말했고, 힐러리는 “고맙다. 나도 질렸다.”(Thank you. Me too. Me too)라고 화답하며 파안대소했다. (출처: 로이터 TV)

힐러리와 샌더스, ‘뜨거운’ 악수 

샌더스의 뜻하지 않은 공격 포기 선언에 사회자인 앤더슨 쿠퍼는 힐러리의 그런 약점을 제일 많이 공격해온 링컨 체피에게 공격의 기회를 줬다. 체피는 주어진 기회를 성실하게 사용하면서 “미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은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며 공격했다.[footnote]아무런 지지율이 없는 체피는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정치인이다.[/footnote] 체피의 공격이 끝나자 쿠퍼가 힐러리에게 “답변(respond)하시겠습니까?”하고 묻자 힐러리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No.”

그게 전부였다. 힐러리는 샌더스의 옹호에 이제 이메일 문제는 (적어도 민주당 경선에서는) 완전히 물 건너갔고,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No”라고 했다. 토론회에서 답변하지 않겠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지만, 힐러리의 오랜 정치 경륜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대답에 청중은 또다시 환호성을 질렀고, 힐러리는 활짝 웃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힐러리의 선거운동이 샌더스와 이메일 문제를 떨쳐버리고 마침내 솟아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클린턴은 나오는 이슈와 질문마다 실수 없이 깔끔하게 대답했고, 이런 전국 무대에 처음 서는 샌더스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은 중간중간 흔들리고 답을 찾는 모습이거나, 아예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버니 샌더스는 "미국인은 당신(힐러리)의 그 망할 이메일 이야기를 듣는 데 질렸다."다고 말했고, 힐러리는 "고맙다. 나도 질렸다."(Thank you. Me too. Me too)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 악수했다. (출처: 로이터 TV) http://www.reuters.com/article/2015/10/14/us-usa-election-democrats-idUSKCN0S70B920151014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서로 악수하는 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 (출처: 로이터 TV)

결국, 첫 번째 민주당 후보 토론회는 주류 언론에서는 힐러리의 승리로 결론을 내렸고, 일각에서는 샌더스가 더 잘했다는 주장도 제법 나오지만, 힐러리가 첫 번째 관문을 잘 통과한 것만큼은 이견이 없는 듯하다.

2. 문제는 현장조직이다 

미국의 대선은 현장조직의 싸움이다. 바람몰이도 중요하고, 뛰어난 책사(consultant)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경선의 승리, 본선의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현장조직이다. “필드 오퍼레이션(Field operation) 혹은 “캠페인 인프라스트럭처(campaign infrastructure)”라고 부르는 이 현장조직은 각 주, 각 선거구에서 최전방에 있는 운동원들로, 궁극적으로 표를 모아오는 사람들이다.

바람은 조직으로 ‘환전'(!)이 될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운동원의 설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전화 설문조사에서 특정 후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쉬고 싶은 저녁 시간에 코커스에 가서 앉아있는 건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을 위해 힐러리 클린턴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장조직을 만들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힐러리가 만들어낸 조직의 규모는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들을 통틀어 가장 클 뿐 아니라, 미국 대선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만큼 방대하다. 힐러리는 왜 그 정도로 조직에 올인 했을까?

오바마 승리는 ‘바람’이 아니라 ‘조직’ 

힐러리는 2008년 대선에서 떠오르는 별 오바마에 맞서서 비싼 책사들을 고용, 유지하는데 큰돈을 썼지만, 막대한 현장조직을 구축한 오바마에 결국 지고 말았다. 일반인 눈에는 오바마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승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오바마의 승리는 현장조직의 승리였다.

웃고 있는 힐러리와 오바마 (2008년 모습)(출처: Marc Nozell, CC BY https://flic.kr/p/4ZcybB)
웃고 있는 힐러리와 오바마 (2008년 모습, 출처: Marc Nozell, CC BY)

오바마 못지않은 지지층을 가지고도 그렇게 조직력에 밀려 패배한 힐러리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한국전쟁 때 북한의 탱크에 밀렸던 남한이 서울 주변 탱크 저지선 구축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거나, 미군 폭격기에 속수무책이었던 북한이 전쟁자산을 산을 파고 숨기는 것처럼, 힐러리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현장조직 강화에 힘썼다.

그럼 누구나 그렇게 조직을 강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 얘기는 누구나 레이스에서 이기고 싶으면 제일 빠른 스포츠카를 사면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왜 안 사고 싶겠는가? 문제는 1) 찻값이 비싸고 2) 유지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직을 꾸릴 수 있는 후보들은 있다. 그게 공화당에서는 젭 부시였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다. 각 당의 가장 확실한 후보였기 때문에 선거본부를 꾸리기 전부터 돈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돈으로 부시는 ‘페라리’를, 힐러리는 ‘부가티’를 마련했다.

조직을 유지하는 ‘돈줄’ 

하지만 구입 후부터는 그런 ‘기름 먹는 하마’를 먹여 살리기 위한 유지비 싸움이 시작된다. 여러 주에 걸친 방대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선거운동 중에 꾸준히 돈이 들어와야 한다. 여기에서 대세 후보라는 바람이 중요하다. 선거운동 초기에는 대마에 투자하지만, 대마가 경주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지갑을 닫는다. 돈줄이 끊어지는 거다.

돈

대표적인 예가 이번 선거의 젭 부시다. 지난주에는 젭 부시가 캠페인 조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부시의 돈줄이 마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부시의 캠페인이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될 것 같지 않은 후보에 기부금을 낼 사람은 많지 않다. 잔인해 보이지만, 실적을 중시하는 미국문화의 단면이기도 하고, 선거운동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힐러리의 돈줄은 현재까지는 문제가 없는 듯하고, 지난주의 민주당 토론회에서의 좋은 성적도 돈줄을 촉촉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 대선은 조직 싸움이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꾸준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샌더스도 ‘부가티’ 사면 되잖아? 

그렇다면 샌더스는? 요즘에는 샌더스에게도 힐러리 뺨치게 기부금이 쏟아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샌더스도 ‘부가티’를 사면 되지 않을까? 샌더스에게 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샌더스가 선거운동을 시작한 후에 바람몰이에 성공하면서부터다. 그전까지는 아무도 샌더스가 이 정도로 돌풍을 일으킬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샌더스 본인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Michael Vadon, CC BY SA https://flic.kr/p/yZNnGc
Michael Vadon, CC BY SA

로비 묵따라서 장기적인 계획은 세워두지 못했고, 아이오와와 뉴햄프셔를 제외한 다른 주요지역에서의 현장조직은 힐러리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선전하는 상황이라 부랴부랴 돈을 써가면서 현장조직을 확장하고 있지만, 힐러리의 책사 로비 묵(Robby Mook, 1979년~ 현재, 사진)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주에 하루 아침에 낙하산 타고 내려와서 선거조직을 꾸릴 수는 없다.”

돈이 들어왔다고 하루아침에 방대한 조직을 여러 주에 만들어낼 수는 없다. 따라서 샌더스의 대선 경주에서 가장 힘든 언덕길은 바로 현장조직일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 경선 구도는 샌더스의 예상치 못한 활약으로 자신이 지난봄에 그렸던 구도보다는 좀 더 빡빡하고 힘들게 됐지만, 경험 많은 정치인답게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있으며 장거리 경주를 위한 준비 또한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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