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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2015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발표장에 초대된 오한아 님이 노벨상 발표 현장과 수상자 선정 과정, 수상자에 관한 생생한 소식을 전합니다. (편집자)[/box]

수확의 계절, 말이 살찌는 계절, 누군가에게는 외로운 계절인 가을이 왔습니다. 자칭 스웨덴 전문가인 저 같은 사람에게는 노벨상의 계절이지요. 어릴 적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갈 때만 해도 나에게 천재성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되지도 않는 고민을 했더랍니다.

얼마 안 가 벡터에서 허우적대는 저 자신을 보고는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습니다. 요즘은 빅뱅이론의 시청하는 것으로 저의 과학에 대한 애정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때 과학자가 꿈이었던지라 매년 노벨상 발표가 날 때면 올해는 누가 어떤 연구로 수상했을까 하고는 열심히 뉴스를 찾아봅니다.

노벨상

노벨상이 왜 유명한지 아세요? 

어떤 상이든 받으면 좋지만, 많은 이가 그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노벨상을 꼽습니다. 노벨상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상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상자는 상금으로 1천만 스웨덴 크로나를 받게 됩니다.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15억 원 정도 되지요.

알브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1896)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1896)

노벨상은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의 이름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화약이 유일한 폭발물인 시절 수송과 폭발의 관리를 쉽게 만든 다이너마이트를 원하는 수요는 폭발적이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제조 특허를 지닌 노벨은 순식간에 14개국에 회사를 차렸지요. 요즘으로 치면 다국적회사의 최대주주가 된 셈입니다.

탄광산업의 발전과 함께 다이너마이트 산업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경영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 과학자였던 노벨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제조 기술을 개발을 계속해 새로운 특허를 늘려갔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1985년 노벨의 유언장 

다이너마이트는 산업에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발명가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전쟁에도 쓰였지요. 그래서였을까요? 1985년 알프레드 노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유언장을 작성합니다. 자신이 남긴 전 재산을 털어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라는 것이었지요. 유언장의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 중 94%를 노벨상에 쓰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1985년 11월 27일)
자신의 전 재산 중 94%를 노벨상에 쓰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1985년 11월 27일)

유산을 자신이 지정한 주체를 통해 채권 및 펀드 등에 넣어 운용하되 그 이자로 매년 인류에 큰 공헌을 한 연구자를 선정해 상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자 수익을 다섯 등분해서 물리,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증진의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국적에 상관없이 줄 것.”

각 상의 선발 주체도 지정했습니다. 물리학과 화학은 스웨덴 한림원, 의학은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문학은 스톡홀름 아카데미, 평화는 노르웨이 최고의회입니다.

유가족의 반대는 물론이고 유언장에 지정된 상의 선발 주최도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상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에 대한 논란으로 5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1901년 처음으로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지금은 여기에 노벨 경제학상이 추가되었습니다. 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장에 지정된 분야는 아닙니다. 스웨덴중앙은행이 노벨상의 이름을 빌려서 주는 상입니다. 1969년 스웨덴중앙은행이 설립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노벨 재단의 동의를 얻어 경제학상을 추가한 것이지요.

따라서 수상금은 노벨 재단이 아닌 스웨덴중앙은행에서 나옵니다. 수상자의 선발 과정은 다른 분야의 선발과정과 비슷합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최종 결정을 맡습니다. 대신 스웨덴 중앙은행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 선발 대행료 및 노벨상 홈페이지에 노벨 경제학상의 정보를 올려주는 대가로 650만 스웨덴화(≒9억 원) 를 매년 지급합니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발표장에 초대받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과학에 대한 열정과 노벨상에 대한 남모를 애정을 신께서 어여삐 여기사, 2015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발표장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노벨 의학상이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이에요. 노벨상의 꿈을 품고 있을 꿈나무 여러분을 위해 노벨 의학상의 선정 과정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의 기나긴 결정 과정은 후보 추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노벨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매년 1월 31일까지 세계 각지의 연구자 중 노벨상의 후보를 추천합니다. 2015년 올해에는 총 327명의 과학자가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 중에 57명이 처음 지명된 사람입니다. 즉 270명은 과거에 이미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거지요.

누가 후보를 추천하는데요?

노벨 재단의 규정에 따르면 아래의 사람들이 노벨상 후보 지명권을 가집니다.

  1. 스톡홀름에 있는 카롤린스카 의대의 노벨 의회 회원
  2. 왕립 스웨덴 한림원의 의학, 생물학부 회원(스웨덴 및 해외 회원 포함)
  3. 노벨 의학상 또는 화학상 수상자
  4. 위의 1항에 해당하지 않는 노벨 위원회 회원
  5. 스웨덴 또는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의 의과대학 정교수
  6. 노벨 위원회가 선정한 의과대학 교수(해당 학교 의과대는 6명 이상의 교수를 보유해야 하며 이는 다양한 나라의 연구가 후보로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7. 노벨 위원회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과학자
  8. 스스로 추천하기 없기!

노벨 의회와 노벨 위원회 

일단 노벨상을 결정하는 큰 조직으로 노벨 의회가 있습니다. 총 50명으로 구성되는 노벨 의회는 후보를 추리고 수상자를 선별하는 투표에 참여합니다. 노벨 의회 안에는 실무를 담당하는 노벨 위원회가 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후보의 지명과 선정을 담당하는 실무 조직으로 총 7명으로 구성됩니다.

다섯 명의 회원에 노벨 위원회와 노벨 의회의 사무국장이 각각 포함되지요. 수백 건의 후보작을 검토하고 행정적인 일을 수행하는데 7명은 부족합니다. 따라서 매년 노벨 의회 회원 중 10명가량을 추려 위원회 일을 돕습니다.

마리아 마수치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세포 및 분자 생물학 교수
마리아 마수치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세포 및 분자 생물학 교수

그중 한 사람인 마리아 마수치 캐롤린스카 의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이탈리아에서 의대를 마치고 스웨덴으로 건너왔다가 1년만 더 있어야지 하고 40년째 머무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강한 억양에 말이 많고, 동료가 중간에 끼어들라치면 “내 시간 뺐지 마!”하고 소리치는 이탈리아인 특유의 성질을 가진 매력적인 중년 여성입니다. 재킷에 꽂은 금색 노벨 배지가 액세서리보다 먼저 눈에 띠었습니다.

1월 말에 후보를 마감한 후 노벨 위원회는 후보로 오른 사람들에게 비밀 초대장을 보냅니다. (오! 후보에 올랐다는 편지라도 한번 받아 봤으면!) 봄과 여름 내내 노벨 위원회가 후보들의 연구물을 검토하지요. 그중에서 후보를 다시 추려 노벨 의회 전달합니다. 10월이 되면 스웨덴의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안에 있는 노벨 의회가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선정기준이 뭔데요?

노벨 의학상은 생명과학이나 약학 분야에서 1)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하거나 2)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할만한 발견을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노벨상은 공로상이 아닙니다. 평생을 과학에 헌신했다거나 과학계를 이끌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연구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해당 연도에 올라온 후보의 이름과 선정 과정 등은 추후 50년간 기밀로 유지됩니다.

[box type=”info” head=”노벨상 의학상 일정“]

  • 전년 9월: 노벨상 후보 추천자로 뽑힌 3천여 명에게 노벨상 후보 추천을 위한 비밀 안내장 발송.
  • 1월: 후보 추천 마감.
  • 2월: 접수 마감.
  • 3~5월: 노벨 위원회가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전문가를 초대해 후보자 평가 보고서 작성.
  • 9월: 노벨 위원회가 의회에 보낼 최종 후보군을 추려 추천장 작성.
  • 10월: 10월의 첫 번째 월요일에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 의회에서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투표로 선정 후 즉시 수상자에게 알림. 공식 수상자 발표.
  • 12월: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에서 노벨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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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는 노벨 사망일인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에서 스웨덴의 왕으로부터 상장, 금메달, 상금증서를 받습니다.

2015년 10월5일 오전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발표장 입구
2015년 10월5일 오전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발표장 입구

드디어 발표 현장 

2015년 노벨 의학상 발표 현장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슬로우 정신을 거스르며! ^^) 재빠르게 캐롤린스카 의대  발표장인 노벨 포럼 건물에 왔습니다. 건물 바깥에는 수상 소식을 빨리 알고 싶어 하는 무리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쁜 와중에 슬쩍 봤지만,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옷차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발표장
발표장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신분증 검사까지 하는 확인 절차를 거치고 들어갔습니다. 무대 화면에는 노벨 금메달을 커다랗게 비춰놓았습니다. 앞자리는 주요 방송국 카메라가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발표장 구석구석에서 마이크를 들고 중계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중계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스웨덴 국영텔레비전인 SVT 기자
중계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스웨덴 국영텔레비전인 SVT 기자

시간이 되자 금색 배지를 단 노벨 위원회 세 사람이 줄지어 나와 무대 중앙에 앉았습니다. 뒤이어 따라온 중년의 남자가 단도직입적으로 수상자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순서로 발표를 마치자 앞서 나온 세 사람 중 하나가 수상자의 연구에 대한 소개를 담은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는 다양한 질의응답이 이어졌지요.

노벨 위원회 회원. 가운데는 노벨위원회 의장인 줄린 지에라쓰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
노벨 위원회 회원. 가운데는 노벨위원회 의장인 줄린 지에라쓰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

2015 노벨의학상 

올해 노벨의학상은 기생충 감염 치료법을 공동 연구한 윌리엄 캠벨(아일랜드)과 사토시 오무라(일본), 말라리아 치료연구를 이끈 전통 의학자인 추 요우요우(중국)에게 돌아갔습니다.

2015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
2015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 윌리엄 캠벨, 사토시 오무라, 추 요우요우 (왼쪽부터)

노벨 위원회는 수상자를 발표하기 직전 발표자에게 전화해 알리는데 추 요우요우 교수와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상자 발표 후 마리아 마수치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많은 귀중한 연구가 있지만, 기생충 감염과 말라리아는 특히 가난한 지역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칩니다. 그 피해의 규모에 비해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분야입니다. 인류에게 공헌한 연구에 상을 주라는 노벨상의 취지를 살려 이쪽 분야의 연구를 격려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고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연구보다 인류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연구가 더 늘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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