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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년쯤 뒤에는 미국 행정부가 바뀐다. 미국 대통령 교체에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이유는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라서만은 아니다. 세계 최초로 대통령 중심의 민주주의를 시작한 미국의 정치 변화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역사고, 좋든 나쁘든 많은 나라가 참고하고 기준으로 삼는 교과서다.

미국의 정치는 나에겐 순전히 개인적 관심사다. “왜 하필 미국 정치냐?”라고 물으면 특별히 할 말은 없다. 그냥 재미있을 뿐이다. 특히 미국 대선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정치인은 타고나지만, 대통령은 만들어진다’는 게 내 지론이다.

세계 최강대국의 리더는 외딴 마을 학교 강당에서 무관심한 농민들과 악수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만들어진다.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난 누구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과 그 정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캠페인 시작 때부터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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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업데이트

현대 미국의 대통령은 거의 예외 없이 주지사나 상원의원 중에서 나온다.

물론 부통령들도 주요 대통령 배출집단이지만, 이들은 대개 경선에서 대통령과 대결했던 주지사나 상원의원들이니 결국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인재풀이 되는 이유는 지역구에 기반을 둔 하원의원이나 주의 상·하의원과 달리 전국·연방정치 이슈를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주지사나 상원의원 모두 지역에서부터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주 민심은 손바닥처럼 읽어도 타 주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자신이 쌓아온 정치경력, 준비한 의제와 메시지가 주 경계를 초월해서 다수 국민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는 정말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미국 국회의사당 (2013년 모습) 출처: Martin Falbisoner,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Martin_Falbisoner#/media/File:Capitol_at_Dusk_2.jpg
미국 국회의사당 (2013년 모습) 출처: Martin Falbisoner, CC BY-SA 3.0

대선의 ‘뚜껑’

그리고 그 뚜껑이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공히 가장 먼저 하는 주별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다. 코커스와 프라이머리가 대선 후보를 결정짓는 상징적인 위상을 확보한 1976년 이후로 이 두 주에서 모두 지고도 대통령 후보가 된 경우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이유는 첫 두 경선의 승자에게 관심이 쏠리고, 그 관심을 타고 돈과 사람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대세가 형성된다. 게다가 경선 관련 전체 언론보도의 50%가 이 두 군데에 몰리고, 50개 주에서 중반이 지나면 관심이 뚝뚝 떨어지고 경선기사가 1면에서 사라진다. 힐러리가 아이오와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샌더스에게 뒤졌다는 건 그래서 심각한 뉴스다. 샌더스가 뉴잉글랜드 후보이니 뉴햄프셔는 준다고 해도, 힐러리가 몇 년을 공을 들인 아이오와가 날아가면 그야말로 비상등이다.

YouTube 동영상

[box type=”info” head=”코커스와 프라이머리“]
미국의 선거는 그 절차와 투표법이 주 마다 다르다. 심지어 선거 전문가도 실수할 만큼 복잡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미국의 선거방식이다.

코커스(caucus)는 당원의 모임이나 회의를 뜻한다. 후보 경선 시기에 코커스가 열리면 프라이머리(primary election의 준말. 예비선거)와 마찬가지로 후보 선택 절차를 가리킨다. 하지만 일반선거처럼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는 프라이머리와는 달리 코커스는 강당 같은 곳에 모여서 손을 들거나 원하는 후보별로 그룹을 지어 서서 표를 계수하는 등 공개투표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후보별로 그룹을 지어서 계수를 하는 곳에서는 그룹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과 설득을 통해 다른 후보에게서 사람을 빼오기도 하고, 그룹이 해체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흥미로운 장면이다.

아이오와를 비롯한 10개 주에서는 코커스만을 허용하고, 괌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두 가지 형태를 섞어서 사용하지만, 나머지 주에서는 프라이머리 방식을 선택한다. 프라이머리에는 상대 당원을 포함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open) 프라이머리’와 철저하게 당원중심으로 운영되는 ‘클로즈드(closed) 프라이머리’가 있다. [/box]

A 2008 Democratic caucus meeting in Iowa City, Iowa.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 모습 (2008년, 아이오와 시티)

당 지지(힐러리와 부시) ≠ 대중 지지(샌더스와 트럼프) 

2016년 미국 대선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대중에게 인기 있는 후보와 당이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는 점이다. 경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기 전만 해도 젭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 모두 든든한 당내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밑바닥 민심은 엉뚱하게 트럼프와 샌더스를 지지하고 있다.

정말로 트럼프와 샌더스가 모두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아니 한 사람이라도 승리한다면 큰 이변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그런 이변을 허용한 당은 심각한 자기반성을 강요받을 것이다. 둘 다 승리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미국을 넘어서 ‘미국발(發) 정치혁명’이 되어 전 세계 다른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래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힐러리 클린턴, 버니 샌더스, 도널드 트럼프, 젭 부시)

하지만 성급하게 샌더스나 트럼프가 대세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보겠지만, 미국 선거는 바람보다 조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거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진 것도 경선이 후보 결정 방식으로 자리 잡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고, 미디어 지형은 지난 몇 년간 크게 바뀌었으며, 슈퍼팩[footnote]Super PAC: 무제한 정치자금 모금이 가능한 정치행동위원회(PAC; Political Action Committee)[/footnote]이 허용되는 등 선거법의 변화로 ‘아이오와, 뉴햄프셔의 성공=대세 후보’라는 공식은 깨졌다는 전문가 지적도 많다.

그러니 섣부른 예측 기사는 흥행을 위한 언론의 낚시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미국 대선을 지켜봐야 한다. 참고로 앞서 이야기한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패배하고도 대선후보를 따내 대통령까지 된 유일한 후보는 다름 아닌 빌 클린턴이다. “the comeback kid.”

Bill_Clinton_taking_the_oath_of_office,_1993
대통령 취임 선서하는 빌 클린턴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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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상원의원에서 바로 대통령이 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특히 1900년대에 들어와 상원의원에서 대통령이 된 경우는 하딩. 케네디, 그리고 오바마 셋밖에 없죠. 대부분이 부통령이나 주지사였죠. 그만큼 입법부 경험보단 행정부 경험을 쳐준단 얘기죠.

  2. 사실은 Nixon 이후 연방상원의원 경력이 있는 대통령이 Obama뿐입니다. Ford를 빼면 Carter부터 Bush Jr.까지의 대통령 5명 중 Bush Sr. 외에는 연방의원 경력이 아예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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