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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신곡]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멋있는 말을 인용하며 폼을 잡고 싶을 때가 있다. 내 편에 동참하라는 호소문을 위에 적은 문장으로 마무리하면 얼마나 멋있는가? 그런데 단테의 [신곡]에 그런 말이 없다면? 깬다. 폼을 잡은 사람도 글을 읽는 사람도 함께 민망하다.

케네디 John_F._Kennedy,_White_House_color_photo_portrait사실 이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유명한 문장은 존 F. 케네디의 잘못된 인용에서 연원한다. 케네디는 1959년 9월 16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이 문장이 포함된 연설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문장을 인용한 출처로 ‘단테’(신곡)를 언급한다.

“Dante once said that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period of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

하지만 이는 케네디의 착오 혹은 왜곡된 기억이다. [신곡]에서 묘사하는 지옥(의 중심)은 차가운 곳이고, 당연히 [신곡]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폼잡기 전에 꼼꼼하게 조사해보는 ‘백투더소스‘ 정신이 필요하다.

출처: backtothesource.info/ http://backtothesource.info/
출처: backtothesource.info/

한국 수학교육의 문제는 “깊이는 얕고 폭은 넓은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최근 수포자 문제와 미적분학 교육 논쟁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가 리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수학을 수학답게 가르치려면 한 가지를 가르치더라도 제대로 깊이 있게 가르쳐야 한다. ‘깊이는 얕고, 폭은 넓은(An inch deep, a mile wide)’ 교육, 즉 공식과 문제풀이 위주의 암기식 수학 수업은 우리 교육의 지속적인 문제점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 최수일, [수학교육 논쟁]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자 (동아사이언스, 2015년 9월 14일)

한국 수학교육의 문제를 멋있는 구절로 요약하고 있다. 오늘은 이 표현에 대하여 몇 글자 적어볼까 한다. 나는 수학교육에 딱히 식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이번 글은 ‘백투더소스’ 시민운동가 입장에서 쓰는 것으로 봐주면 좋겠다.

수학 교사 선생

해당 표현의 기원 

미국 수학교육계에서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은 ‘a mile wide and an inch deep’이다. 이 표현은 수학교육학자 슈미트와 다른 사람들이 쓴 책(1997년)에 지금 쓰이는 맥락에서는 아마도 처음으로 등장한다.[footnote]Schmidt, W. H., Curtis C. McKnight, and S. Raizen. A Splintered Vision: An Investigation of U.S. Science and Mathematics Education. 1997.[/footnote]

당시 미국 학생들이 국제적인 수학 성취도 비교 시험에서 낮은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일군의 미국의 수학교육학자들은 미국 수학 교육과정의 문제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범위는 넓고 깊이가 없다’는 말로 요약했다.

“미국의 수학과 과학 교과서는 다른 나라의 것보다 더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범위는 넓고 깊이가 없는 (a mile wide and an inch deep) 경향성을 보인다.”

이후 한국을 비롯한 수학성취도가 높은 나라들과 미국의 수학 교육과정을 비교하는 후속연구가 계속되었다. 수학성취도가 높은 나라들의 교육과정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무엇이며, 미국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연구들이 있었다.

수학

미국 수학교육계의 결론 

그들이 얻은 결론은 명료하다. 미국의 ‘범위는 넓고 깊이가 없는’ 교과서와 달리 수학성취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나라의 교육과정은 적은 수의 중요한 것에 집중(focus)하며 다른 학년에서 배우는 것들 사이에 긴밀한 연계성(coherence)이 있다는 것이었다.[footnote]Schmidt, William, Richard Houang, and Leland Cogan. “A Coherent Curriculum: The Case of Mathematics.” American Educator 26, no. 2 (2002): 10.[/footnote]

이후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구의 성과가 축적되었고, 좋은 수학 교육과정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에 대한 일종의 합의가 생겨났다. 한국은 이러한 과정에서 늘 중요한 기준의 역할을 했고, 미국이 보고 배워야 할 무엇이었다.

기준 척도

그러한 미국 수학교육의 반성으로부터 몇 해 전 역사적인 문건이 하나 탄생했다. 바로 ‘수학 공통 핵심 교육과정 (Common Core State Standards for Mathematics)’라는 것이다. 그들이 찾아낸 좋은 수학 교육과정의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적 차원이라 부를만한 미국의 교육과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footnote]Schmidt, William H., and Richard T. Houang. “Curricular Coherence and the Common Core State Standards for Mathematics.” Educational Researcher 41, no. 8 (November 1, 2012): 294–308. doi:10.3102/0013189X12464517.[/footnote]

물론 이 문건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으므로 뿌리를 내리고 성과를 내기 전까지, 실행 단계에서 등장할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취지와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공통(common)’이라는 단어에 경기를 일으키는 수많은 사람도 그런 장애물에 해당한다.

한국 수학교육은 오히려 미국의 롤 모델 

이 공통 핵심 교육과정의 첫 페이지만 읽어봐도, 한국의 수학교육이 여기서 어떤 긍정적 역할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footnote]“Mathematics Standards | Common Core State Standards Initiative.”[/footnote]

“[홍콩, 한국, 싱가포르의] 교육과정은 미국 초등수학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국제적 벤치마킹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특성들을 갖고 있다.”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가 높은 국가의 수학교육을 주제로 한 지난 10여 년 간의 여러 연구는 미국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를 높이려면 수학 교육과정의 집중성과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공통 과정이 효과를 내려면 ‘범위는 넓고 깊이가 없는’ 교육과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공통 핵심 교육과정은 그 과제에 대한 의미 있는 응답이다.”

교육 교실 수업 교사 선생 학생

이제 공부를 이만큼 했으면 다시 최수일 대표의 말을 읽어 보자.

“수학을 수학답게 가르치려면 한 가지를 가르치더라도 제대로 깊이 있게 가르쳐야 한다. ‘깊이는 얕고, 폭은 넓은(An inch deep, a mile wide)’ 교육, 즉 공식과 문제풀이 위주의 암기식 수학 수업은 우리 교육의 지속적인 문제점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첫 문장은 좋은 말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장은 좀 복잡하다. ‘깊이는 얕고, 폭은 넓은 교육’이라는 것은 한국 같은 나라와 미국을 비교할 때 미국 수학교육의 특징으로 등장한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맹구가 찢어진 신문지를 읽는 장면과 비슷한 인용에 해당한다.

‘미적분학을 가르쳐야 할지 말지’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따로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다만 최수일 대표가 수학 교육과정의 국제비교에 식견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정도로 정리한다. 그렇다고 ‘미적분학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 반박된 것도 아니다. 사서삼경 가르치다 망한 나라에서 교육과정은 중요한 민주적 토론의 대상이다. 논쟁을 더 멋있게 잘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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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1. 이건 한국 수학 교육이 괜찮은 편이라는 식으로 오독될 여지가 있는 글이네요. 이미 박살나서 처참한 수준인 미국 공교육에서 우리를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우리 교육이 괜찮은 수준일리는 없겠죠. 단순히 암기식 교육을 표현한 수사를 문제 삼는 것 같은데 사실 좀 애매하네요. 예를 들어 축구대표팀의 고질적인 결정력 부족이라는 표현이 한국대표팀에 쓰일 때와 영국 대표팀에 쓰일 때 같은 말이라도 지칭하는 문제의 본질은 전혀 다른 경우니까요

  2. 학부 대학원 다 공대를 나와서 … 수학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했습니다. 너무 재미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사회생활하면서 필요(?)에 의해 수학이나 통계학을 다시 공부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어떤날은 너무 재밌어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어요(저만 특이한건가요? ㅋㅋ) 결론은 우리나라는 수학을 너무 공식위주로 재미없게 가르친다는 거죠. 단순 풀이나 심지어 미적분학 계산 조차도 이미 자동으로 풀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나온지 꽤 되었어요. 즉 계산기가 다 한다는거죠. 결국 중요한건 수학적 모델과 일상생활의 모델을 잘 연결시키는 능력, 즉 수학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인데… 그기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수학이 정말 재미있고 유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3. 우리나라 수학 성취도가 높은 것이 교육과정 덕인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전 그보다 사소하지만 사서삼경 가르치다 망한 나라라는 표현이 좀 걸리네요. 글의 논지와 상관이 없어도 글쓰신 분의 의식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대한제국이 식민지가 되었던 이유가 조선 성리학 때문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4.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조선시대 비판하는 사람들이 꼭 사서삼경 운운하더군요. 특히 이공계 출신들이 그런 면에서 더 무지하죠. 겉으로는 통섭 운운하면서 독재는 필요하다고 헛소리를 하질 않나. 일본은 사서삼경 안 가르쳐서 근대화에 성공했던가요? 서양은 기독교나 그리스 고전은 교육과정에서 다 빼버리고 수학만 가르쳐서 성공한건가요? 소위 근대화에서 중요한건 인쇄술의 발달로 정보 유통이 활발해지고, 기성 귀족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도시들을 중심으로 교역이 활성화 되었느냐 여부죠. 조선 후기에 사서삼경이 세도가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악용이 된건 맞지만, 그렇게 따지면 과학 등 다른 학문도 그렇게 악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 사서삼경은 구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고 구실이었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는데, 글쓰신분은 피상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계신 것 같군요.
    위 글의 중심 논지도 그렇습니다. 국제 수학 성취도 평가는 보통 어떻게 내리나요? 올림피아드 입상자 수 등이 주요 평가 지표 아닌가요? 그런데 올림피아드 입상자가 많다고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수학을 잘한다 말할 수 있나요?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해야 마땅한데 피상적인 말꼬리잡기나 하고 계시군요. 애초에 저 ‘범위는 넓고 깊이가 없다’는 말도 꼭 인용해서 써야 할 만큼 복잡한 경구도 아니잖아요? 그냥 생각대로 쓸데도 자주 나오는 말 같은데요? 무슨 근거로 저 경구가 인용된 것이라 단정하시는지 의문입니다. 수학자 답지 않게 이런 비생산적인 글을 쓰신 그 저의가 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수학자가 쓰신 글이라서 뭔가 구체적인 통계자료라도 나올까 기대했건만,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5. 근본적으로 과연 저 미국에서 나온 보고서는 제대로 분석한 결과물일지도 따져봐야겠죠. ‘수학성취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나라의 교육과정은 적은 수의 중요한 것에 집중(focus)하며 다른 학년에서 배우는 것들 사이에 긴밀한 연계성(coherence)이 있다’고 결론을 냈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한국 수학 교육에 ‘집중’하고 ‘연계성’이 있던가요? 핀란드 수학교육은 그렇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새 단원을 시작할 때 이전 단원의 내용을 복습하고(연계성), 못하는 학생들은 취약한 부분을 지도해준다고 하더군요(집중). 한국은 진도 나가기 바빠서 이렇게 못하잖아요? 이전에 배운거 복습도 못하고, 취약 학생 지도도 못하죠. 어떤 학생은 학원에서 대학 수학과정까지 미리 선행학습해와서는 학교 수학 수업시간 때는 자고 있고, 어떤 학생은 진도를 못 따라가서 수포자가 되고, 학생마다 편차가 심해서 교사 입장에서는 수십명 모두를 지도해주지 못하는게 한국 수학교육의 현실 아닙니까? 수학자시라면 이런 문제를 따지셔야지, 왜 지엽적인 말꼬리 잡기나 하고 있습니까?

  6. 필명을 ‘비판’으로 쓰셨는데 ‘특히 이공계 출신들이 그런 면에서 더 무지하죠. ‘ 이런건 비판도 뭣도 아니네요. 그 앞에 쓰신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거꾸로 님에게 돌아가는 말이 될것 같습니다. 본문에도 미흡한곳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논쟁을 멋있게 잘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이공계출신 비하하면서 ‘수학자답게 통계자료라도 넣은걸 기대했다’는건 뭔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은 시민운동가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7. 해외에서 우리 수학교육을 얼마나 좋게 평가하든간에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암기식 수학교육’화가 만연하게 된것은 입시제도의 영향 때문이지 우리 수학교육이 갖고있는 문제들이 영향만으로 그리 되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 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수포자 대책’들이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근거들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식으로는 우리 수학교육이 가진 장점이 아닌 단점만 이야기 하다가 장점까지 망가트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 글도 온전하진 않지만 그런 움직임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이야기해볼 시간을 갖자는 좋은 시도라고 봅니다. ‘좀더 잘 이야기 해보자’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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