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몇 년 전 한 여성 소설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서울의 한적한 동네에 아담한 정원이 있는 단층 양옥집으로 찾아갔다. 거실 책꽂이 한 칸에는 무슨 무슨 문학상 상패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설은 주로 밤 10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쓴다고 했다.

그에게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새벽까지 글을 쓰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척 괴로웠던 터라 개인적인 질문이라며 아이 아침밥은 어떻게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돼요.”

그 초월적이고 독자적인 답변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밥’의 탈을 쓴 저 사사로운 질문이 얼마나 정치적인가를.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일해도) 살림한다는 이성애적 성별 분업 구도에 따른 ‘닫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창피하고 그만큼 부러웠다. 밥을 안 하는 것보다 밥 안 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공표’할 수 있는 그 당당함이. 비록 아침 식사에 국한하지만, 요리와 육아를 거부하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고 기이하고 커 보였다. 같은 시기에 나는 어느 남성 평론가의 평론집을 읽었는데 서문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 먹으면서 이 글들을 썼다. 어머니가 쓰신 책이므로, 어머니께 드린다.”

참으로 빤하고 오래된 각본처럼 진부했다. 어머니를 밥하는 존재로 못 박는 듯해 갑갑했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의 현란한 문학적 수사와 이론적 분석에 압도될수록 나는 어머니의 밥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이 정도 지적 과업을 달성하기까지 동 시간대에 이루어졌을 700그릇 이상의 밥을 짓는 한 사람의 ‘그림자 노동’이 아른거렸다.

Ruocaled, "Rice", CC BY https://flic.kr/p/aDpHnd
Ruocaled, “Rice”, CC BY

‘어머니가 해주신 밥’이라는 말은 완고하다. 어머니를 어머니로 환원하는 가부장제의 언어다. 인습을 의심하고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문학의 본령을 거스르는 말이다. TV 아침 프로그램에 나오는 중년 탤런트의 “아들 아침밥은 꼭 차려주는 며느리를 맞고 싶다.” 같은 류의 발언에 더 가깝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당연시할 확률도 높을 테니까 말이다. 아침밥 안 먹고 자란 아이는 (전문가의 경고대로 학습력이 저하될지언정) 아침에 해가 뜨듯 밥이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적어도 알지 않을까 싶다. 이걸 모르는 어른이 의외로 많다.

요즘 ‘집밥’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나는 오래 전 저 어머니와 밥의 삽화들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아침 안 먹는 아이로 키우는 소설가 엄마’보다는 ‘밥 차려주는 어머니’에 해당하는 순응적인 일상을 겉으로는 살고 있지만 속으로는 끼니마다 회의한다.

나에게 밥은 집밥이냐 외식이냐, 레시피가 간단하냐 복잡하냐, 맛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그 밥을 대체 ‘누가’ 차리느냐의 문제다. 최승자 시인의 시구대로 우리는 “채워져야 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이고, 누군가 차리지 않은 그냥 밥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엄마들은 어디 효도관광이라도 가서야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 끼니 밥이 나오는 신비”를 경험한다.

그제야 맛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관련 글

21 댓글

  1.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요지는 이해 할수도있을듯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없는 그냥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쓴 글이라 공감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아침밥 안 주는 어머니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하는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엄마밥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식이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여성, 남성 의 양분적인 문제로 노동의 구분으로 본다는건 지금 이글 보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큰 많은 분들에게 공감 얻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여성과 남성의 획일화된 업의 구분에 물음표가 필요하다면 그 예는 지금과 같은 어머니의 밥 은 아니여야 할거같습니다. 남녀…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2.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었다”는 표현이 어찌 어머니를 밥하는 존재로 못박는 의미로 해석되는지 궁금합니다.
    저 표현은 자식으로써 부모에게 고마워한 것이지, 남성으로써 여성의 노동을 언급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같은 표현을 여성 평론가가 아버지에게 했다면 가부장제의 언어가 아닌 것이 될까요?
    주장하고 싶은 바는 어렴풋이 손에 잡힐 듯하나, 다소 지나치게 남녀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은유님이 아닐런지 생각해 봅니다.

  3. 밥을 해주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어머니도 있겠지요. 매 순간 그렇기는 당연히 힘들겠지만요 ^^ 아침밥하는 것을 거부하며 사는 그런 삶이 부럽고 멋져 보였다는 본인의 이야기를 남녀의 책임 문제로 둘러 이야기하신 것 같아 그 부분은 그다지 공감은 가지 않네요. 아이에게 차려주는 밥이 당연하지 않다는 건 저도 시간이 지나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때 알려주고 싶어요.

  4.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고, 귀찮아하는 아이에게 반강제로 아침을 먹이는 저지만 은유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어머니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는 그 확고한 단정이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에게 죄책감 들게 하고 자기검열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봅니다.

  5. 이건아니지 않나요? 자식을 위해 밥할때 괴롭나요? 그밥이 자식 입으로 들어가서 자양분이되고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행복하지 않나요? 적어도 제가 먹고자란 어머니의밥은 그러했으며 어머니 역시 제가 먹는 모습을 행복하게 보셨거든요..시절이 바뀌어 아내 퇴근전 저녁은 제가 하는데 한번도 귀찮다는 생각이 앞선적은 없었는데…이 시대의 어머니가 모두 자식위한 식사 준비를 노동으로만 생각한다면 실망이네요…

  6. 이 글을 읽고,
    난 울 엄마 자식으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 밥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는 울 엄마한테 더 효도해야겠네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7. 댓글 쓰고보니 뉘앙스가 이상해서 오해하실까봐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글쓰신분 비꼬거나 비난하려는 목적으로 쓴 댓글 아닙니다. 진심으로 세상에는 이야기에 나오는 아침 안 먹는 애로 키웟다는 소설가 같은 엄마도 잇을수 잇겟구나하는 생각에 쓴 댓글입니다. 제 생각도 밑에 댓글 다신 분들과 비슷합니다. 오해하지 않으셧으면 좋겟네요. 윗글 수정이 안되서 덧글로 남깁니다.

  8. 도대체 초점이 뭔지 영 알 수 없는 글이다.
    가족을 위해 밥 하는 어머니를 그냥 밥하는 노동자에 비유하다니 이런 여성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아침밥 당당히 안 먹이겠다는 여자가 대단하고 부럽다니 그럼 당신도 그렇게 기르면 되는거 아닌가?
    내 아침은 안 차려주는 우리 와이프도 내년에 태어날 아이한테는 꼭 아침을 차려주겠다는 것을 보면 자식은 또 남편과 다른구나를 느깐다
    부디 당신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이 없길 빈다

  9. 그리 큰 공감은 가지않는 글이네요 하지만 어머니께 고맙다는생각은 드는 글입니다

  10. 그 평론가의 글이 여성을 어머니로 국한시키는 장치에 불과했다면 평등함을 위해 ‘아버지가 벌어다준 돈으로 컸으니 아버지께 드립니다.’
    라는 말도 더했어야 할까요? 아니면 양친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인습을 답습하는 행위일 뿐인가요?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 것도 같습니다만 지나치게 협소한 지점을 잡으신 게 아닌가 싶네요. 작성자분이 사회적 아나키즘을 추구하시는 게 아니라면요.

  11. 여보세요들… 댓글 읽다 속이 다 답답합니다.
    사랑? 노동? 사랑에서 비롯하면 노동이 아니던가요?
    비록 노동이지만 사랑이 있기에 노동이라도 감수한다. 이거 하나면 그 사랑 더 크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대체 왜 밥하는 행동에서 노동을 제외하려 합니까?
    댓글에서 난리나신 분들중에 자기 손으로 밥해 드시는 분 대체 몇분이나 계신지 참 궁금합니다 그려.

    자취하는 저는 하루 세때 밥을 제가 다 챙겨먹습니다.
    쌀씻고, 전기밥솥에 앉히고, 설겆이에, 대체 오늘 반찬은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장보고, 이 뜨거운 불볕더위 속 옥탑방의 온실효과를 뚫고 불 앞에서 요리를 해야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노동이죠?

    요새는 스트레스가 더합니다. 뭔놈의 요섹남 요리남 쉐프 따위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지 밥 하나를 해도 쌀씻은 첫물은 바로 버리고 두번째부터 씻어야 쌀 상태가 좋아서 밥이 좋네 마네… 좋기도 하겠습니다. 미각이 좋아서. 저는 혀가 미맹도 아닌데 맛은 구분도 안갑디다.

    저야 혼자 먹고 사니까 그렇다 칩시다. 집에 자기 손으로 밥 안하는 작자들이 있을때 반찬투정, 밥투정 따위를 하고 앉았으면 속에 천불이 나서 뒤집어질겁니다. 반찬이 이게 뭐냐, 맨날 똑같은 것만 먹는다, 차라리 외식이나 하자, 오늘 야근이니 먼저 먹어라 따위의 소릴 듣고 있으면 밥하는 사람 입장에서 혼이 빠져나갑니다.

    요리의 과정을 모르는 자들한테 요리의 고단함이 설명이 될것같습니까? 그저 밥상에 찌개네 찜이네 고기네 거창한거 하나씩 올라오면 좋다고 오늘 밥 맛있겠다고 헛소리들 하는데 정작 주부들이 가장 하기 힘들다고 하는 요리가 뭔지는 아십니까? 나물입니다. 올라왔는지 안올라왔는지도 존재감조차 모르는 나물 한번 무치려면 식재료 고르고 다듬고 각종 조합 비율 맞추려면 날마다 변화무쌍함에 기가 막힙니다. 얼른 먹어치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쉬어빠지는데 사람들 젓가락도 잘 안가면 뼈빠지게 고생해서 만들어놔봤자 소세지 햄 반찬이나 찾고 앉았죠. 깎다 남은 사과 속 들고 베어먹는 것처럼 남은 나물에 밥 비벼드시는 어머니 모습은 한번 보기나 하셨습니까? 이렇게나 만들기 힘든 음식이니 요새 유행하는 쉐프 요리 프로그램, 집밥 프로그램에는 나물이 죽어도 안나올겁니다. 집에서 해줄때는 가치도 모르다가 나이 들고 비싼 돈들여 외식하러 갈때는 시골 밥상이네 어쩌네 하는 것들이나 찾아다니겠죠. 암요. 웰빙 건강식은 훌륭하니까요.

    저는 남자입니다. 어머니께 집밥 얻어먹고 살았지요. 주말이 되면 라면을 끓여먹자고 종종 얘길 하셨는데, 동생이랑 둘이서 끓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평생을 가사노동에 시달리시는 어머니의 유일한 휴가가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온갖 요섹남에 집밥에 요리 프로그램들이 흥하길래 자기 손으로 밥 한번 안해먹는 사람들, 남이 차려준 밥상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 요리는 힘든거구나’라는 생각만 갖게 되도 저 프로그램들 정말 사회에 공헌하는거다 싶었는데 그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그러네요.

    분명히 다시 말합니다. 밥 차리기는 노동입니다. 전업주부는 노동자구요. 사랑이요? 사랑 있으니까 보수도 안받고 노동을 감수하는겁니다. 대체 밥 차리는게 노동이 아니면 뭐 노는겁니까? 정신들 차리세요.

  12. 설마설마 스스로 밥해먹거나 요리사가 돈받고 요리하는 건 노동이지만 어머니의 요리는 사랑이라는 답글만은 제발 안나왔으면 좋겠네요.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시간과 인간 근육의 물리력, 요리사로써의 기술을 이용해 똑같은 결과물로 요리가 나왔다고 가정했을 때 대체 어떤 요리가 노동이 아닌 다른것이 될 수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참고로 저는 남자입니다. 글쓴 분 성별가지고도 뭐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굳이 밝힙니다.

  13. ㅎㅎㅎ어머니로서 자식에게 매 끼니마다, 매일 아침마다 밥을 해준다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행복하지 않고 귀찮고 괴롭다는 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구요. 어쨌거나, 본인이 행복하거나 아니거나, 넌 어머니니까 자식에게 밥 해주는 것이 행복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을까요? 또한 우리 사회가 좋은 어머니와 매 끼니 밥을 해주시는 어머니를 유사한 범주에 넣는 것도 강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4. ㅎㅎㅎ어머니로서 자식에게 매 끼니마다, 매일 아침마다 밥을 해준다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난 엄마지만 자식에게 밥 해주는 것이 행복하지 않고 귀찮고 괴롭다는 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넌 어머니니까 자식에게 밥 해주는 것이 행복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또한 좋은 어머니와 매 끼니 밥을 해주시는 어머니를 유사한 범주에 넣는 것도 강요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5. 공감이에요. 그렇게까지 자식 위해 애쓰고 매 끼니 밥 안해도, 그래도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야’라고 해드리면 좋겠어요. 밥에 대한 찬사가 오히려, 밥 하는 거 너무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아닐런지?

  16.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밥하는 숭고한 희생을 논하기 전에 …. 그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그 자신이 아이들을 위해 밥을 차려주고 있는가. 매일 아침. 따뜻한 밥을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차려주고 있는가를 먼저 돌아보시기를.
    그리고 그 일이 왜 어머니에게만 의무가 돼야하는가도 돌아봐주시기를요.
    이 글 … 공감합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아침밥은 지금껏 누가 차려주었나요..

  17. 그런 논리라면 자식을 가지고 직장이 있는 모든 부모들이 직장 다니는게 다 행복해야 되겠군요. 자식을 위해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돈 버니까요.

  18. 직장에 가서 일하는 것도 결국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에서 기인한 노동이고 나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 아닌가요? 그런데 그 모든 상황속에서 다들 행복하신가요? 직장생활에 있어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행복이다라는 꼬리표를 항상 붙이고 강요하는가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 상황을 당연시하며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왜 그렇지 않을까라며 인습을 들이미는 그 잣대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

  19. “내가 아는 엄마들은 어디 효도관광이라도 가서야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 끼니 밥이 나오는 신비”를 경험한다.” 씁쓸;;; ㅠㅜ 많이 도와드려야지. 아님 돈을 잘 벌어와서 용돈을 많이 드리거나? =ㅇ=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