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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과의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74년.

뉴욕타임스는 CIA의 비밀활동을 폭로했습니다. 닉슨 행정부 동안 미국 내 반전 운동가들과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 CIA가 광범위하고 불법적인 국내 활동을 벌여왔다고 보도했습니다. CIA가 미국 시민 수만 명의 정보를 수집·보유하였고, 불법 가택침입과 도청, 우편물 검열을 했으며, 여러 나라의 선거에 직접 개입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 (1974년 12월 22일 자 헤드라인)
CIA가 1만 명 넘는 미국 민간인을 사찰했음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1974년 12월 22일, 출처: historycommons.org에서 재인용)

미국 CIA 개혁: 처치위원회

FrankChurch미국 상원은 프랭크 처치(Frank Church, 사진) 위원장을 포함해 민주당 6명, 공화당 5명의 상원의원이 참여하는 ‘처치위원회’(Church Committee)를 독자적으로 구성하고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위원회의 목표는 국가정보기관의 불법적 권력 남용 실체를 규명하고 개혁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치위원회는 조사 임무만이 아니라 정보기관을 민주적 통제하에 둘 수 있는 입법적인 해결책을 상원에 제시하는 임무도 부여받았습니다.

행정부와 CIA는 비공개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외교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의회는 공개를 고수했고, 결국 CIA 청문회는 TV로 전국에 중계됐습니다. 행정부는 TV 중계를 금지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으나, 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들어 TV 중계를 금해달라는 행정부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TV로 중계된 CIA 청문회 모습)

YouTube 동영상

처치위원회는 15개월 동안 800여 차례의 면담조사, 11만 쪽의 문서 수집 조사와 21일에 걸친 공개 청문회를 진행했고, 결과물로 6권의 최종 보고서, 7권의 청문회 기록을 남겼고, 183개의 정책권고안을 상원에 제출했습니다. 양당 대표들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실규명과 개혁방안 수립에 매진했고, 소련과의 냉전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높은 수준의 정보기관 개혁조치가 가능했습니다.

미국 CIA 개혁 사례는 한 국가와 사회가 좀 더 진일보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정치는 왜 이러한 조사, 이러한 조치들을 취할 수 없는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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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정원 개혁: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는 3가지 목표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 첫째, 국정원의 불법해킹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 둘째, 국가정보기관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민주적 통제 및 안보역량을 강화하는 제도개선
  • 셋째, 사생활 침해에 불안해하는 국민을 안심시키겠다는 것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안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한 존재입니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고,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 국가정보기관의 존재와 역량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정보기관의 사이버 안보역량은 군사력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국민은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이버 안보역량 강화와 함께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정보기관의 안보 기능과 국민 인권 사이에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경계와 합의의 틀입니다. 정보기관의 특수활동은 보장돼야 하지만, 안보와 대테러 방지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인권과 사생활이 침해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안보와 국민 인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과 균형이 필요합니다.

국정원 불법해킹 의혹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와 ‘안보’가 합리적으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제도개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권력에 빌붙은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

과거 정보기관은 법의 통제를 벗어나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 어두운 역사가 있습니다. 불법 체포와 구금, 고문과 도청, 공작의 이미지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까지도 우리 국민은 정보기관의 일탈을 수없이 지켜봤습니다.

  • 1997년 북풍 공작사건
  • 2005년 미림팀 X파일 사건
  • 2012년 대통령선거 여론 조작 사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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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활동이 발각돼 언론에 노출된 사례는 또 어떻습니까. 2010년 5월 유엔이 파견한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일행을 몰래 촬영하다가 들키고,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묵은 호텔에 무단침입했다고 들키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는 오피스텔에서 댓글 조작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되고, 2014년 2월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에서 위조된 문서를 제출해 말썽을 키웠습니다.

정보기관은 뉴스의 중심에 서는 순간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성공한 일이든 실패한 일이든 첩보활동이 언론에 노출되는 순간 정보기관은 무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5년, 이번에는 불법해킹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건의 실체를 숨기고 부인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세계 정보기관 사상 유례가 없는 집단 성명을 발표하고,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며 무조건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아무리 믿어달라고 해도 자료 제출은 거부한 채 의혹투성이 해명만 내놓는 국정원의 말을 믿을 국민은 없습니다.

진실규명 위해 ‘블랙박스’ 열어야

디지털 사건에서 로그 파일은 항공기 사고의 블랙박스 같은 것입니다. 블랙박스를 열면 사고의 진상을 알 수 있듯이 로그 파일을 보면 이번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국정원이 정보위를 통해 비공개로 자료를 제출한다면, 저는 주식 백지신탁을 하고 정보위로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은 지금까지도 정보위에조차 자료를 보여줄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술간담회에도 실제 자료 없이 A4 용지 한 장만 놓고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국회를 우롱하고 국민을 깔보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계속해서 진실규명을 가로막는다면 이제는 우리 위원회 차원을 넘어 당 전체 차원에서 국정원 조사를 강제하는 정치적,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은 결코 감출 수 없듯이 언젠가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는 그 순간, 지금까지 정보기관의 불법을 두둔하고 있는 세력에게는 반드시 국민의 준엄한 정치적, 법률적 책임추궁이 뒤따를 것입니다.

또한, 진상규명 이전에도 이미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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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관, 정권 소유 아닌 국민과 국가의 것 

우리 위원회의 목표는 무능한 국정원을 유능한 정보기관으로 탈바꿈시키고,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이 사이버 안보전에서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능에 대해서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 새누리당의 태도처럼 무능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덮고 지나간다면, 아무도 문제점을 고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국정원은 지금이라도 무조건 숨기고 부인만 할 것이 아니라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분명히 질 테니 이를 계기로 예산과 법 제도로 지원해달라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다.

여당과 국정원에 촉구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 위원회의 목표는 국정원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 안보전에서 이길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져야 합니다. 어두운 과거를 벗어던지고 국민의 신뢰 속에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국가정보기관은 어느 한 정권의 소유물이 될 수 없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진정 국민과 국가 그리고 국정원의 미래를 위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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