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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웹툰 ‘다이어터’의 등장인물 참새는 착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여고생이다. 문제는 하나, 97kg의 고도비만이라는 것. 결국, 헬스를 통해 살을 빼기로 한 참새.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눈앞에 커다란 장벽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가족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고도비만. 여유가 없는 지갑 사정은 자연히 건강식 대신 고칼로리의 인스턴트 식품이나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불러온다. 부모 세대의 입맛에 맞춘 음식들은 건강한 식생활을 하기에는 일단 너무 짜다. 이 상황에서 참새는 혼자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만화 속의 참새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일단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참새 혼자서만 건강한 식생활을 지켜간다는 건 사실 무리다. 밖에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결국 부모의 지갑 사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학생에게는 더더욱. 현실 속 수많은 참새들은 결국 부모 형제의 나쁜 식생활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고, 똑같은 질병에 노출되게 된다. 굳이 유전적 요인이 없더라도, 생활습관이 비슷할 수밖에 없는 한 가족은 자연히 비슷한 질병까지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김치찌개
김치찌개, avlxyz (CC BY-SA 2.0)

현대 예방의학은 ‘건강과 불건강의 연속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사람의 건강 상태는 가장 안녕한 상태에서 가장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연속선상에서 변화하는 것이지, 100% 건강했던 사람이 어떤 요인에 노출되면 ‘펑-‘하고 100% 환자가 되는 식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대사증후군 등 생활습관병 – 과거 성인병이라 불리던 질병들이 강조되면서 이 연속선의 개념 또한 중요해졌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생활습관을 개인이 혼자 바꾼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참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의 생활습관과 완전히 거슬러 가족 구성원 개인이 혼자만의 생활습관을 만들고 이에 따라 산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 그렇다고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던 옛 유행어처럼 정말 우리의 전통 음식이 건강에 좋으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구분 칼로리 단백질 당질 지질 나트륨
쌀밥(1인분) 439.5kcal 8.3g 97g 0.5g 3mg
무국(1인분) 43.8kcal 3.8g 4.5g 1.3g 575mg
배추김치(1인분) 7kcal 0.8g 0g 0.7g 458mg

위는 쌀밥과 무국, 배추김치로 간소하게 구성한 한 끼 밥상 차림이다. (필자주: 농촌진흥청 식단관리 참고) 밥과 국, 간단한 밑반찬으로 구성되는 이와 같은 식단은 칼로리의 대부분을 쌀밥에 의지함으로써, 당질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한 끼를 통해 섭취하는 단백질의 양이 13.4g에 불과해 성인 남성 기준 1일 권장 섭취량인 70g을 채우기도 요원해 보이며, 이미 1,036mg에 달하는 나트륨을 섭취했다는 것도 유의할 부분이다.

나트륨 과잉은 근래 한국인의 나쁜 생활습관으로 가장 중요하게 지적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WHO의 하루 나트륨 권장 섭취량은 2,000mg 이하. 하지만 한국인의 평균 섭취량은 4,878mg으로 그 2.5배에 달한다 (2010년 기준). 이 수치는 근 5년간 단 한 번도 낮아진 적이 없으며, 오히려 외식 등의 요인으로 인해 꾸준히 높아지고만 있다.

만일 면류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면 나트륨 함량은 더욱 높아진다. 인스턴트 라면 1인분(500mL)은 열량 443kcal에 나트륨 1,122mg이라는 비를 자랑하고, 나트륨 함량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칼국수의 경우 1인분(1,000mL)이 열량 452kcal에 나트륨은 3,340mg이라는 놀라운 비를 보여준다. 면류 음식의 특성상 단백질에 비해 당류의 함량이 높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꼭 인스턴트 음식, 햄버거나 피자처럼 ‘건강에 나쁘다’는 혐의를 한몸에 받는 음식이 아니더라도, 늘 먹던 바로 그 상차림이 어떤 사람들에겐 건강을 해치는 식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나아가 필수 아미노산, 당지수와 당부하 같은 개념까지 고려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가족의 건강과 질병을 고려하여 식단을 구성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진보 일각에서는 지역 주치의 제도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역 내 의원이 그 지역 주민들의 ‘지역 주치의’가 되어 주민들의 과거 질병 이력(과거력)과 가족 형제들의 질병 이력(가족력), 식습관 및 운동습관 등의 생활습관을 늘 파악해두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 중 고혈압 환자가 있는 주민이 있다면, 의사는 이 주민에게 정기적인 혈압 검사를 권장하고 이상 징후가 발견될 경우 즉시 처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과잉 검사’ ‘과잉 진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자, 생활습관병 예방을 위한 최적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현실이 그리 단순하다면 애당초 한국도 지역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도 남았으리라.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 무엇보다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다. 의사들은 인턴, 레지던트 과정은 물론 최근에는 펠로우 과정까지 거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고, 이에 따라 특정 분과에 전문화된 의사, ‘전문의’의 비율이 80%를 가뿐히 초과한다.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의 개념은 무너진 지 오래여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게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몸이 아플 때 1차 의료기관을 거치는 대신 바로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으로 직행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 상황에서 현행 행위별수가제를 혁파한다는 것은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 지역의료 자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갑자기 저 수준의 지역 주치의 제도를 뿌리박는다는 것 역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box type = “info” head=”쉬운 용어 풀이”] 의료전달체계: 병·의원의 배치, 기능, 병·의원간의 상호관계를 망라하는 체계. 일반적으로 의료전달체계하에서는, 환자가 일단 소규모의 의원(1차 의료기관)에 내원하고, 여기에서 질병의 경중을 판단하여 의원에서 그대로 진료를 받거나 의사의 판단에 따라 병원(2차 의료기관) →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3차 의료기관)으로 옮겨가 진료를 받게 된다.

행위별수가제: 개별 진료 행위에 각각 수가를 매기고 이를 합산해 총진료비를 산출하는 제도. 진료의 횟수 등과 관계없이 환자의 상태나 진료의 포괄적인 내용에 따라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무조건 지급하는 포괄수가제, 한 명의 의사가 일정 수의 주민을 맡고 이 주민 수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는 인두제 등과 비교된다.[/box]

결국, 다시 결론은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식탁 위의 김치찌개는 온 가족이 함께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서로 다른 양의 소금을 넣어 김치찌개를 네 번 나눠 끓이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입맛이란 오랜 기간 습관처럼 무젖는 법이라 그것이 건강에 해롭다 해도 바꾸기가 어렵다. 혹여 이를 바꾸겠다 나서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 기초가 되는 지식이 부족한 까닭에 엉뚱한 음모론에 빠져들고 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함께 먹기에 식구라 했던가. 참 낭만적인 단어다. 하지만 그 식구들이 다 같이 먹는 그 음식이 바로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라면, 그래도 식구란 말이 낭만적일 수가 있을까.

가족의 생활습관을 이끌어 줄 주치의는 이 땅에 없고,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한동안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한 가족이 모두 입맛을 맞춰 건강한 식생활을 지켜간다는 것은 지식의 부재와 습관이라는 이름의 중독으로 인해 더욱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하므로, “안녕하십니까”란 흔한 안부 인사를 이젠 조금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가족은 건강하십니까” 라고.

[box type=”tip” head=”제안 1″] 노력을 충분히 투자한다면 가족 전체가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당뇨엔 단 음식이 나쁘다”, “고혈압엔 짠 음식이 나쁘다”, “고지혈증엔 기름진 음식이 나쁘다” 같은 단편적인 지식이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이런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한참 부족한 감이 있다. 고구마는 단 음식이지만 당뇨 환자에게 권할 만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계란 노른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기름진 음식처럼 보이지 않지만,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고지혈증 환자에게는 섭취를 제한해야 할 음식 중 하나다. 짠맛 역시 음식의 종류와 온도 등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정말 식생활의 관리를 원한다면 더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 다음 링크는 정말 철저한 식생활 관리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다면 보건소 등에 비치된 간단한 자료를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box type = “tip” head=”제안 2″]이외에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요령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종지는 유용한 도구다. 음식 자체에 간을 하는 대신 종지에 간장이나 소금 등을 두고 조금씩 찍어 먹게 하면 각자의 입맛에 맞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나트륨 섭취량 자체도 상당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
  2. 탄수화물 과잉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종종 지적되는 문제. 흰 쌀밥을 잡곡밥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3. 식생활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면, 접시 등을 이용해 반찬을 따로 덜어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상 위에 놓인 찬을 다 같이 먹다 보면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자연히 내가 무엇을 얼마나 덜 먹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는 것.
  4. 국은 한국의 한상차림에 꼭 들어가는 일원이지만, 역시 과도한 나트륨 섭취의 주범이기도 하다. 아주 싱겁게 먹을 자신이 없다면, 과감하게 내치는 것도 필요하다. 꼭 국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식사 후 후루룩 마셔버리는 것만은 삼가는 게 좋겠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식구’란 이름으로 상징되는 식탁 위에서의 정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실. 또한, 이런 ‘건강한 식생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각자의 입맛에 맞추지 못해 즐거운 식사 시간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이성적인 노력 못지않게 식탁 위에서의 정을 지켜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 겉으로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 이 내용들도 사실 결코 쉬운 과업은 아닐 것이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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