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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맛, 짠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지!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아래 중앙일보 기사의 제목도 그렇다. 단맛과 짠맛에 중독되어 채소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말 단맛 때문일까? 한 번 따져보자.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도리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쉽다.

중앙일보 - 일곱살 입맛 여든 간다 … 단맛 짠맛 길들기 전 채소와 친해지게 하세요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250128
중앙일보 – 일곱살 입맛 여든 간다 … 단맛 짠맛 길들기 전 채소와 친해지게 하세요

단맛과 짠맛 vs. 신맛과 쓴맛 

단맛은 태아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좋아하는 맛이고, 짠맛은 생후 4개월이 되면 본능적 선호가 나타나는 맛이다. 길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 단맛과 짠맛이다.

신맛과 쓴맛은 본능적으로 피한다. 시면 음식이 상했다는 의미고, 쓰면 독이 되는 세상에서 이러한 본능은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치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이 본능을 거슬러 신맛과 쓴맛의 음식도 즐길 수 있다는 건 사실 아주 신기한 일이다.

태어나서 24개월 정도가 되면 새로운 음식 맛을 기피하는 경향이 심해진다. 심리학에서는 네오포비아(neophobia)라고 부른다. 생후 24개월은 보통 아이가 걸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집어서 입으로 가져갈 수 있는 때라서, 새로운 음식 맛을 기피하는 게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각 훈련, 네오포비아 극복이 관건 

하지만 채소, 과일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즐기도록 아이의 미각을 훈련시키는 데는 이러한 네오포비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방법은 음식의 노출 빈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자주 먹으면 그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밥은 맛이 없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5~10번 정도 먹어보아야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

새 맛을 기피하는 아이를 위해선 새 맛의 '노출' 빈도를 높여야 한다.
새 맛을 기피하는 아이를 위해선 새 맛의 ‘노출’ 빈도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노출 빈도를 높이는 게 만만치가 않다는 게 문제다. 싫다는 데 억지로 먹이기 힘들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이미 친숙한 맛과 새로운 맛을 연결하는 것이다. 아이가 싫어하는 채소를 좋아하는 맛의 소스에 버무려 내놓으면 맛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친숙한 맛은? 바로 단맛이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실험 

그런 이유로 단맛을 잘 이용하면 어린이가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더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몽은 맛이 쓰고 신맛이 나서 싫어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연구팀은 2~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자몽 주스에 설탕을 타서 더 달게 만들어주면 아이들이 자몽의 맛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자몽

같은 연구팀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를 시식하도록 했다. 한 그룹은 가당 브로콜리와 무가당 콜리플라워, 다른 그룹은 무가당 브로콜리와 가당 콜리플라워를 주는 식이었다. 이후, 무가당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를 주고 각각의 선호도를 평가하도록 하자, 달게 해서 먹은 채소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다.

브로콜리

단맛이 채소와 과일 맛에 길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지만, 설탕을 과잉 섭취하게 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에 약간의 단맛을 통해 새로운 음식과 친해지면, 나중에는 단맛 없이도 그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태어나서부터 쓴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달달한 설탕 커피 맛에 익숙해지고 나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드립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일단 새로운 음식 맛에 익숙해지고 나면 단맛과 관계없이 그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오래 지속한다. 앞서 소개한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은 20일간의 실험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자몽의 신맛을 좋아했다.

단맛, 다양한 음식을 위한 가교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한 눈으로 보면 실수를 범하기 쉽다. 단맛은 무조건 피해야 할 맛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되는 맛이다. 물론 단맛이 과할 수 있고, 부족할 수도 있다. 단맛의 강약을 어떻게 조절하고, 어떤 맥락에서 얼마나 사용하는 게 적당한가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지 복잡하다고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한 사회의 식문화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그런 적당함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하는 법이다. 단맛 역시 그렇다. 무조건 무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게 좋다.

통념과는 정반대로, 인간은 단맛에 길들어져 채소와 멀어지는 게 아니라 단맛을 통해 채소와 친해진다. 아이들이 단맛 때문에 채소를 안 먹는다고 탓하기보다는 단맛을 어떻게 활용해서 아이가 채소를 즐길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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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본문에서 소개한 연구는 2008년 학술지 애피타이트에 게재되었고, 국제채소과일연합 사이언티픽 뉴스레터에도 실렸던 내용이다. 어떻게 하면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게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 연구이며, 백종원이나 설탕 산업과는 관계가 없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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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마지막 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마지막 재치에 감탄하고 내용에 또 감탄하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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