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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휴맘’(육아휴직 중인 엄마)이다.
스물여덟 크리스마스 즈음 노엘(태명)이 나에게 왔다.

기다렸던 아기였다. 서른 전에 아이를 낳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빠른 출산을 원했던 나였기에 기쁨은 컸다. 스물아홉, 서른의 기로에서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남은 마지막 이십 대를 즐길 때 나는 점점 불어가는 몸으로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의 인생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아이 임신

임신 압박 삼종세트

임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깊은 고민의 시작이었다.

1. 팀장, ‘출산휴가만 쓰고 돌아오라’ 

회사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이야기했을 때 팀장은 꽤 당황했다. 내가 팀장 아이를 가진 것도 아닌데 팀장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축하한다는 말 대신 들은 건 “언제 들어가느냐?”라는 말이었다.

인력이 빈다는 것, 그건 소규모로 짜임새 있게 돌아가던 팀에서는 좋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 증권업계에서 대규모 인력조정이 있었던 직후였기 때문에 팀장님에게 나의 임신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출산휴가만 쓰고 돌아오라’,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리보다 더 큰 무게감으로 무언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육아휴직까지 쓰고 돌아왔을 때는 책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불안은 커져만 갔다. ‘돌까지는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이토록 사치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회사원 남자 사람

2. 선배의 충고, “친정엄마에게 극강의 효심을 보여” 

두 번째 압박은 아이를 누가 키울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아이를 가지기 전에 누가 나 대신 아이를 키워주는 것에 관한 고민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이는 내가 키우는 것이니까. 그냥 어린이집을 보내고 내가 어찌어찌 노력하면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지만,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꿈꿨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들려주자 친한 선배 워킹맘은 내 등을 휘갈기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에 빠진 거야. 지금부터라도 친정엄마에게 극강의 효심을 보여야 해!”

할머니 엄마 손녀

문득, ‘우리 친정엄마는 무슨 죄가 있어 나 대신 내가 낳은 손녀를 보아야 하는가?’, ‘이제 좀 살기 편해졌는데 다시 누군가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건가?’, 이상한 형태의 효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릿속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누가 키워줘야만 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것.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 속으로 나는 성큼 한 걸음 들어섰다.

3. 시월드,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세 번째 압박은 시부모님의 짧지만 단호한 말씀이었다.

“그래도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백 퍼센트 공감하면서도 그동안 쌓아왔던 내 인생, 곧 대리 진급을 앞둔 내 직장생활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이 갑자기 몰려왔다.

나는 엄마다! (사진: Mathias Erhart, CC BY SA https://flic.kr/p/4VcLas)
Mathias Erhart, CC BY SA

대학생 시절 해왔던 그 수많은 공모전과 마케터 활동, 회사에서 열심히 해왔던 프로젝트. 이제야 겨우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놨는데, 그 호된 구조조정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말의 무게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이 모든 호사스러운 과거를 짓눌렀다.

“아이 다 키우고 나면 뭐 다시 일해야죠. 증권회사 다녔으니까 어디 캐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그게 진짜 현실이었으니까. 경력단절 여성이 된다는 것, 그게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달콤한 월급 마약을 끊어버린다는 것.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기 힘들었다. 엄청난 딜레마에 나는 더 깊이 빠지기 시작했다.

끝없는 기다림, 어린이집 대기 신청

주변의 많은 워킹맘은 슬픈 팁 하나를 알려줬다. 미리미리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 아이가 12주가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회사에서 가까운 국공립 어린이집의 입소 대기번호가 400번대였다. 그런데 그 어린이집 정원은 40명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아이가 초등학교는 가야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겠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선배 워킹맘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괜찮은 곳은 아이가 세 살 전에 자리가 나도 성공한 거라며 그냥 일단 기다리는 게 답이라고 했다.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직도 대기번호는 100번대에서 멈춰있다.

어린이 유치원 아이

육아휴직 하지만 더 큰 갈등의 시작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나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사람들은 나를 잔 다르크 같다고 했다. 줄줄이 아이를 낳을 예정인 회사 언니들은 내 선택을 격렬하게 지지했다. 일단 돌까지만 그렇게 키워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팀원들에게 생기는 미안한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가끔 오는 업무 질문에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선 것도 다 그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출산휴가에 이어 휴직 기간을 더 늘리겠다니. 팀장님 허락을 받는 일도 두려웠다. 그래서 결국 쓴 묘수는 아이를 둘러업고 가는 방법이었다. 지금으로써는 키워줄 사람이 없기에 돌까지만 내 손으로 키우고 나오겠다고,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사정했다.

70일 된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사정했다. ‘네가 팀장님을 보고 웃어야 우리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어.’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내 모습이 우습지만, 그때는 그만큼 절박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 팀장님을 보며 웃어줬다.

갓난아이

그렇게 얻어낸 9개월의 시간

그리고 단 한 순간도 쉽지 않은 고뇌가 시작됐다. 우선 정말 복직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만 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알뜰살뜰 살 것인가. 아니 돈을 떠나서 나는 이렇게 일을 접어야 하는가.

친구들은 하나둘 승진했고, 남자 입사 동기들도 어느새 대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일하지 않는 사이에 모두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투적으로 육아에 매달렸지만,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그 고통의 시간이 매일매일 흘러가고, 엄마와 인간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은 여전했다.

누구 하나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지침을 주지도 않았다. 남편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존중하겠다고 말했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시부모님도 내가 정 원한다면 일하는 게 맞다고 하셨다. 친정엄마는 애써 키워놓은 딸이 이렇게 집에 눌러앉는 것이 속상해서 당장에라도 회사에 나가라고 재촉했다.

일과 아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고민 

지난 10년간 쉼 없이 달려왔던 시간이 아쉬워 어느 날은 복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인생의 전부인 아이를 보면 조금 더 키우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십 번씩 오가면서 매일매일 혼돈이었다. (사실은 이 문제는 여전히 고민 중이기도 하다.)

일과 아이, 동년배 친구들을 만나면 매일매일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고민이다. 누군가에게 맘 놓고 맡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를 놓을 수도 없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고민 뭉치에서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누군가 웃으면서 “여자들이 너무 많이 배웠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동의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대학은 왜 갔고, 그 어려운 취업 문은 왜 뚫은 거냐’라며 진짜 여자 인생은 별거 없다고 자조 섞인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문득 서글퍼졌다.

여자 여성 비밀

그래도 나를 살아 있게 해주는 아이 

최고의 마케터가 되겠다던 친구는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그 좋은 직업을 내려놓고 오지에 가 있고, 워커홀릭의 대명사였던 한 친구는 곧 다가올 출산휴가의 끝을 아이도, 자기도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

이렇게 매일 고민을 안고 사는 게 여자의 일생이라면 왜 우리는 한 번도 이런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조차 미리 가지지 않았던 걸까. 커리어우먼이 되라는 헛된 꿈만 심어놓고 실제로는 슈퍼우먼이 되어야만 하는 현실. 꼭 이렇게 둘 중 하나를 극단적으로 희생해야만 결론이 나는 걸까.

핏덩이를 떼어놓고 나가서 일하면 매정한 엄마가 되고, 그 핏덩이를 껴안겠다고 내 일을 포기하면 나중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혹여라도 일 대신 아이를 선택하면, ‘그 일 실은 별 볼 일 없었나 보지’라는 말로 폄하하는 난처한 세상에서 초보 엄마들은 이렇게 또 해답 없는 고민에 잠 못 이룬다.

그래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나를 살아있게 해준다. 이 고되고 어렵고 복잡한 하루를 버틸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아이는 오늘도 이 부족한 엄마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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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정부는 애 낳으라고 하지만 현실은 직장맘들에게 시궁창이니.. 차라리 이렇게 될거 직장 여성들은 결혼하고 애낳지 말고 자기 좋아하는 일에 사명만 다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정부가 중소기업 육아휴직 대해서도 인식 개선 시키거나 지원금 주든지 더 절실히 활동할거 아닌가? 그리고 굳이 국내인으로만 출산율 높이지 말고 유럽처럼 이민자 받아들여 그 사람들의 출산율 높여 인구수 불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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