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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의 변주 방식: 리메이크, 표절 그리고 스타일 차용

2015년 6월 16일 신경숙 작가가 표절했다는 이응준 작가의 글로 문학계가 들썩였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전설]의 일부 문단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일부 문단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었죠.

이 소식을 계기로 신경숙 작가의 다른 소설부터 다른 작가의 작품까지 새삼스럽게(?) 여러 사람의 입 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논문의 표절 논란은 오래된 떡밥이지만 문학작품의 표절 논란은 밝혀져 대중의 큰 관심을 받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더 화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리메이크, 표절 논란, 스타일의 차용

소설의 표절에 대한 글들을 읽다가 문득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표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고, 대중이 어떻게 원작보다 먼저 원작의 스타일을 차용한 작품이나 리메이크를 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오랜만에 초등학생 조카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 첫째, 정말 유튜브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 (여느 아이들처럼 일주일에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이 지정되어 있는데도!)
  • 둘째, TV나 라디오를 거의 안 보는 것치고는 아는 팝송이 꽤 된다는 것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같은 걸 아는데 버전이 달라

TV도 일주일에 겨우 한두 프로그램만 보고, 라디오는 아예 듣지 않고, 별다른 음원 서비스를 이용하지도 않는 아이가 어떻게 여러 팝송을 알고 있을까요? 알고 보니 싱거운 이유였습니다. 바로 [K팝스타]의 팬이었던 것이죠.

[K팝스타]에서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버전으로 편곡한 팝송을 부르면 그 노래 제목을 외워뒀다가 유튜브에서 검색합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다른 버전도 찾아 듣고 하는 거죠. 그러니 펀(Fun)이나 아델, 퍼렐 윌리엄스 같은 요즘 가수부터 엘라 피츠제랄드, 휘트니 휴스턴, 스팅 같은 가수와 그들의 노래를 아는 거고요.

즉, [K팝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예전 라디오의 역할을 해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팝송을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팝송을 수급하는 창구 기능도 함께 말이죠. 참고로 조카들은 서바이벌 오디션 참가자의 커버 버전을 원곡보다 먼저 들어서인지 (아니면 원곡이 오래된 곡이어서인지) 대체로 원곡보다 편곡된 버전을 더 좋아하더군요.

서로 다른 걸 봤는데 비슷해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은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소재가 재밌는 영상으로 옮겨갈 때입니다.

“OOO 광고 봤어? 재밌던데?”

“아, 그거 XXX과 너무 비슷하더라.”

대충 이런 식입니다. 서로 알고 있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뭐랄까, 이전에 나온,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다른 작품이 뭐가 있는지 서로 짚어주는 거죠.

예를 들어, 전지현이 나오는 롯데맥주 클라우드(Kloud) 광고가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나오는 구찌 광고와 매우 비슷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거나,

이니스프리의 “지구를 위한 놀이, 플레이그린” 광고가 요나스 귄터의 (6대의 고프로를 이용한) 360도 비디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때 말이죠.

광고 영상 외에도 수많은 포스터 표절 의혹까지 이야기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죠.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야

광고처럼 단발성의 짧은 영상이 아닌 긴 영상 혹은 계속되는 시리즈의 스타일을 차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드·영드를 많이 본 분들은 [오피스]와 [모던 패밀리]를 잘 아실 겁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코미디라는 점 외에도 ‘핸드헬드로 찍은 영상’과 ‘카메라를 주시하거나 카메라에 이야기를 거는 등장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핸드헬드로 찍은 영화·드라마도 엄청나게 많고, 카메라를 주시하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영화도 많지만, 코미디 장르에서 이런 동일한 요소를 유사한 방식으로 쓰는 작품은 많지 않죠.

이런 스타일을 유사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한국 작품으로는 웹에서 연재됐던 윤성호 감독의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가 있습니다. 김수현, 아이유, 공효진, 차태현이 나오는 [프로듀사]에서도 윤성호 감독이 맡았던 초반에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흔들리는 화면에 대고 이야기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오죠.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몇 년 전에 보고 인상적이었던 작품인 프랑스 시스콤 [브레프](Bref.)와 관련한 것입니다.

[브레프]는 속사포 같은 대사에 심지어 그 빠른 대사들을 살짝 서로 물리게 편집도 하고, 강한 비트의 음악(주로 EDM)이 깔리다가 갑자기 음악이 멈추는 것으로 포인트를 주는, 매우 매우 빠른 전개의 시트콤입니다.

이 스타일을 그대로 한국 버전으로 재현(?)한 시리즈가 있는데 바로 (주)칠십이초가 제작하는 [72초]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브레프]와 거의 비슷합니다. 빠르게 진행하고, 대사를 살짝 걸리게 편집하고, 중간중간 음악을 끊거나 서정적인 음악으로 포인트를 넣는 형식이죠. 전체 런닝타임은 [브리프]의 약 절반 정도 됩니다.

정수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분야에서는 똑같은 걸 만들어도 더 잘 만들면 문제가 없고, 어떤 분야에서는 똑같은 걸 하면 비판을 받습니다. 어떨 땐 스타일의 차용이 ‘흥미로운 변주’라며 칭찬을 받기도 하고 어떨 땐 ‘창의력 없이 핵심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작품을 “와- 대단한데?” 하면서 봤는데, “사실 오리지널리티는 이미 예전의 다른 작품이 가지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실망감이 들기도 하고, 어떨 땐 “그래도 이게 더 잘 만들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제가 보기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결국, 대중이 소비를 하고 대중이 판단한다지만, 요즘은 해외에서도 워낙 많은 것들이 쏟아지고, 국내에서도 경험할 게 너무 많이 나오는 세상이니 어떤 판단이 맞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많은 것들이 쉽게 복제되고 ‘다른 곳에서 성과를 거둔 오리지널’을 흉내 내 먼저 자리를 점거하는 방식으로 성공(?)해도 용인되는 시대인지라 대중의 인기를 얻은 작품들의 ‘정수'(精髓)는 과연 무엇일까 자꾸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작권법과 표절

첫째, 저작권법은 구체적인 ‘표현’을 보호한다.

  •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 사람의 정신적 노력으로 얻은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 형식이다.
  • 따라서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려면 창작적인 표현 형식만을 대조하고 비교해야 한다. (다수 대법원 판례)

둘째, 저작권법은 원칙적으로 ‘사상과 감정,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는다.

  • 내용(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과 감정 그 자체는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 따라서 저작권 침해를 판단할 때는 표현 형식이 아닌 사상이나 감정 그 자체에 독창성·신규성이 있는지 고려하지 않는다. (다수 대법원 판례)

셋째,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다르다. 표절이 반드시 저작권 침해는 아니다.

  • 저작권 존속기간이 만료한 저작물을 다시 출판하는 경우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 문학 작품의 표절 여부는 학문적인 여부이지 법이 판단할 영역은 아니다. (참고: 저작권 신화 10: 표절은 범죄다)

(정리: 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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