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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가 사회적인 패닉을 일으키고 있다. 감염자와 사망자 추이보다도 패닉을 더 가속화하는 건 정부의 느리고 불투명한 대응이다. 비록 메르스가 대유행(pandemic) 수준까지 발전할 거라고 보지는 않지만, 만일 진짜 대유행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이에 대처할 수 있을까.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2주 후에야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국민안전처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2주 후에야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국민안전처

평시의 한국 의료는 각국에서 배움을 자청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다. 환자 입장에서 이 정도로 뛰어난 서비스를 이렇게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는 전 국민에게 건강보험 가입을 강제함과 동시에, 의사들이 직접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경쟁하게끔 하는 등, 시장 경쟁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공공의 통제 장치를 함께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염성 질환 유행과 같은 긴급 시에도 이런 경쟁 체제가 잘 작동할지는 의문이다. 각 병원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의료법이 환자 유인 행위를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공공의 건강에도 이바지한다. 하지만 전염성 질환은 환자를 유치하면 유치할수록 병원은 손해다. 병원 그 자체가 감염 위험지역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르스 유행이 발생하자, 각지 병원이 우리 병원은 메르스를 진단할 수 없다거나, 메르스 환자가 다녀가지 않았다는 공고를 정문 앞에 써 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공립병원 부족, 수익성 집착, 예산 및 자원 부족

국가지정 격리병상의 수는 전국 17곳, 105개 음압병상과 474개의 일반병상이다. 병실 수가 아니라 병상 수다. 결코, 충분한 수가 아니다. 메르스 감염이 본격화되자 금세 병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보건의료노조의 모니터링에 따르면, 메르스 환자가 오면 즉시 음압병상 입원이 가능하다고 대답한 병원은 음압병상을 보유한 21개 병원 중 6개 병원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의 병원이 인력과 훈련, 보호 장구 등이 모두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가? 첫 번째로 지적해야 할 것은 공공의료기관의 부재다. 6%에 불과한 공립병원(OECD 평균은 70%대)은 이런 전염성 질환이 발생했을 때 지역 거점으로서 역할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음압병상 운영이나 전염성 질환 대응 지역 거점으로서의 역할 등은 병원의 수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먼저 따져야 하는바, 민간 의료기관보다 공립병원이 수행하기에 적합한 것이다.

전체 병원 중 공립병원 비중

그렇다고 수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민간 의료기관은 당연하다 쳐도, 심지어 공립병원도 수익성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는다. 실제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쇄를 결정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낮은 수익성이었다. 이는 취약계층과 수익성 낮은 분야에 의료를 먼저 제공하게 되어 있는 공립병원의 존재 의의를 뒤흔드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공립병원의 의의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으로 축소되고 있는 실정에, 적자 운영까지 문제로 대두하면 공립병원들은 지역 보건사업보단 수익을 낼 수 있는 진료 사업 위주로 역할을 축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 병원을 수익성 위주로 평가하는 제도다.

물론 없는 공립병원을 갑자기 늘리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그렇다면 이 역할을 민간의 대형 종합병원 등에 맡겨야 하는데, 여기 배정된 예산은 장비유지비 수준에 불과하다. 음압병상 자체는 갖춰져 있을지 몰라도 다른 환자가 입원중이거나 장비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실제 즉시 운용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민간병원이 공공의 임무를 수행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것이 세 번째 문제다.

제어 센터의 부재

여기에 제어 센터의 부재도 한몫한다. 메르스 의심 환자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 제대로 내려오지를 않는다. 품절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구비하라는 뻔한 지침이나 내려올 따름이다. 메르스 감염 환자들은 스스로 병원을 전전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 시간 이상 이동한 경우도 있었다.

보건소 역시 예방접종 및 노인 생활습관병 관리, 저가 진료용 행정기관으로 역할이 축소된 모양새다. 게다가 소장~과장급 관리자들은 의료나 보건행정에 대해 뜻밖에 무지하다. 지역보건법에 따라 보건소장으로는 의사를 임명하게 되어 있지만, 전국 보건소의 절반가량이 의사가 아닌 사람을 보건소장으로 임명하고 있다(2013 기준).

보건소 의사소장 임용현황 (2012년 기준)

또 교육 및 사업이 대부분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감염병 예방 등 보건 부문에 대한 역량도 미흡하다. 이는 감염병 예방 역량 강화와 같은 보건 부문 사업은 성과가 즉시 드러나지 않고 얼마나 잘 되었는지 평가하기도 모호한 반면, 건강교실 운영 등과 같은 복지 사업은 성과를 즉시 낼 수 있고 지역 주민들의 평가도 우호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보건소가 좋은 평가를 받는 데 유리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보건보다 인기 있는 복지 정책 위주로 부처가 운영되며 보건 부문에서 허점을 노출했다는 의혹은 놀랍게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조차 받고 있다.

결국 실제 대유행이 발생한다면, 지역에서 이를 제어해줘야 할 센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메르스는 대유행 수준이 결코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택 격리자가 향후 처치를 문의해도 보건소에서 제대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허점이 노출되고 있다. 실제 대유행이 발생한다면, 대부분 지역 보건소에선 공중보건의사가 이에 관해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갓 의대를 졸업해 군 복무 대신 배정받은 바로 그들 말이다. 아무리 의사라 해도 이들을 예방의학 전문가라 보기는 애매한 데다, 그들에게는 결정권도 없다.

안 될 거야 아마

그래서 실제 전염병 대유행이 발생하면 민간 병원에 지역 거점의 역할을 맡기고, 정작 중앙부처와 지역 보건소는 반쯤 마비상태에서 등을 떠미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전염병의 대유행이란 살면서 한 번 볼 일이 있을까 말까 한 자연재해겠지만, 그런 자연재해조차 대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 공공의 역할 아닐까.

하지만 이미 공공의료기관을 늘리긴커녕 수익이 안 나온다며 폐쇄하기에 이르고, 보건소는 실적을 내놓으라는 압력에 이상한 장비를 도입해 복지 사업을 벌이거나 정작 보건 사업에 투자되어야 할 자원까지 낭비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이럴 때 딱 쓸만한 유행어가 하나 있다.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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