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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칼럼은 전승우 교수(동국대 경영대학)가 동대신문 논설위원 칼럼에 게재한 글을 바탕으로 합니다(1,525호, 2012년 5월 7일). 최근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이하 ‘대형마트들’)의 영업시간 제한을 규정한 일부 지자체 조례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지역 대형마트들은 제한된 영업을 재개했습니다. 이에 필명 ‘빅레드’로 슬로우뉴스에 데뷔하는 전승우 교수가 이 판결의 의미를 분석하고, 필자의 기존 입장을 보충해 대형마트 영업제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독자들과 나눕니다. (편집자)[/box]

d’n’c, 남대문시장 (CC BY-SA)

지난달 6월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 오석준)는 대형마트들의 휴일과 심야 영업을 제한하는 강동구와 송파구의 조례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힘입어 이 지역 대형마트들은 바로 제한되었던 영업을 재개했다. 대형마트들은, 지난 2월 17일 청구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라도 승리한 듯, 이 법원 판결을 반기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이번 법원 판결은 유통산업발전법 위헌 판결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뒤에 살피겠지만, 행정법원은 유통산업발전법의 사회적 가치를 두텁게 긍정하고 있다.

이번 법원 판결에서 꼭 짚어야 하는 점

법원은 대형마트들이 휴일 및 야간 영업을 못하도록 한 지자체 조례가 지자체장과 지역 대형마트의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절차적으로 위법하다는 판단을 했을 뿐, 이 조례가 근거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의 해당 규정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즉, 이번 판결은, 대형마트들의 바람처럼, 영업제한이 소비자선택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에 법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이번 법원 결정을 접하며, 이 판결이 해당 조례의 절차상 흠결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자칫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는 시장경제의 상생과 공존이라는 원칙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 유통산업발전법이 규정한 대형마트 등에 대한 영업제한은 지역상인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 장치이다. 이런 장치마저 없으면, 대한민국 시장은 대기업만 존재하는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 대기업의 경제사회적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제한 조치에 대한 대형 유통업체들의 반발은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상도의(商道義)도 무시한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형마트들의 주장 근거, 소비자선택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

대형마트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영업시간을 제한한 법과 지자체 조례가 소비자의 선택자유를 제한하고, 더불어 대형마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우선 영업제한이 소비자들의 선택기회를 제한하는가 곰곰히 따져보자. 조금만 생각해보면,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더 보장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형유통업체의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재래시장이나 동네수퍼의 매출은 계속 감소하여 폐업하는 소매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 현상이 지속되면 유통시장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소매점들이 시장을 지배할 것이 뻔하다.

유통시장 독과점은 소비자 선택권을 오히려 제약한다

소수의 유통시장 독과점이 커지면 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유통마진이 큰 제품들 위주로 판매할 것이며, 거래과정이 까다롭거나 자신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제조업체들의 제품은 더 이상 취급하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최근 휴대폰 제조사들의 담합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유통시장이 몇 몇 업체들에 독점화되면, 이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담합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 결국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제한될 것이며, 유통업체의 서비스 질도 지금보다 낮아 질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판매자들이 상생을 기반으로 경쟁하는 시장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소비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사회 전체로선 직업선택 자유를 촉진한다

이와 함께 대형마트들에 대한 영업제한이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대형마트들이 회원으로 있는 체인스토어협회는 이를 근거로 영업제한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것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이 사회 전체 차원에선 오히려 직업수행의 자유를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대형마트, 백화점, 홈쇼핑 등 대규모 소매점들과 납품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폐해는 심각한 상태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한 관계는 유통업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산업에 걸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11년 중소기업중앙회 설문결과는 납품업체들이 대형유통업체에 여러 가지 불공정 거래행위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납품단가 인하, 판촉비용 부담, 특판행사 참여 강요 등이 대표적인 불공정 거래행위로 조사되었다. 납품업체들이 이런 불공정 거래행위가 더욱 증가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납품업체들은 불공정행위로 인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대형마트들과 계속 거래하려면 그들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납품업체들은 대형마트가 요구하는 낮은 단가를 맞추려면 자신이 고용하는 노동자들의 임금도 낮출 수밖에 없다. 거래가 안정되지 못하여 생산량을 장기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되면, 당연히 비정규직 고용은 늘어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불공정거래로 인해 대형업체 관련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제조/납품업체 노동자들의 직업수행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

되새겨야 하는 행정법원의 두 달 전 결정

이번 판결이 있기 약 두 달 전인 지난 4월 27일, 같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 오석준)는 대형 유통업체 6개사가 강동구 및 송파구를 상대로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모든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매출손실이 경영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서 전체 자금 사정이나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는 보이지 않으므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위 처분으로 신청인들이 입는 매출 손실이 아주 크다고 볼 수는 없는 반면 유통기업의 상생발전이라는 공익은 매우 크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2012. 4. 27. 자 2012아1234 결정【집행정지】)

올해 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즈음, 대형마트와 SSM들은 매출 감소가 국민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영업제한을 극렬히 반대했다. 그리고 같은 재판부의 두 달 전 결정은 잊은 채, 절차상 흠결로 인한 조례의 위법성 인정과 이로 인한 ‘영업 재개’ 의미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부풀린다. 이런 대형마트들의 행태를 접하면서, 나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오로지 유통시장 독점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걱정을 떨칠 수 없다.

[box type=”info” head=”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대규모점포등에 대한 영업시간의 제한 등) [본조신설 2012.1.17]

① 시장·군수·구청장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점포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규모점포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과 준대규모점포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여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 다만, 연간 총매출액 중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이 51퍼센트 이상인 대규모점포등으로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대규모점포등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영업시간 제한
2. 의무휴업일 지정

② 시장·군수·구청장은 제1항제1호에 따라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의 범위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③ 시장·군수·구청장은 제1항제2호에 따라 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의 범위에서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에 필요한 사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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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오호.. 슬로우뉴스에 데뷔하시다니. 부럽^^
    “경제적 자유의 보장은 대형 경제권력을 규제하는 데서 나온다”는 명쾌한 지적!!

  2.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이 51퍼센트 이상인 대규모점포등으로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대규모점포등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끝에 저 말을 추가함으로써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는, 말로는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의 마트는 살짝 비켜가더군요.

  3. 왠만하면 시장을 이용하고 싶은데 주차공간을 찾기가 많이 힘드네요.
    대형마트가 시장보다 더욱 가깝기도 하고 무료주차공간 주니까 자주 이용하게 되네요…
    제 개인적인 입장에선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참 기분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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