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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남편, 시어머니의 아들에 관하여

[웰컴 투 시월드]는 2014년 말까지 채널A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이다.

출처: 채널A

출처: 채널A

두 개의 질문 

출연자들은 각계 방송인 중 시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이 내용을 말해준다. 내가 보았던 방송 내용은 두 가지 질문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그 두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이럴 때 ‘내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의 남편’이란 생각이 든다.
  2. 이럴 때 ‘내 남편’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아들’이란 생각이 든다.

간추리면 남자 한 명을 두고 ‘이럴 때 남 같다’는 걸 각기 시어머니와 며느리 양측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인 셈이다. 이 기획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1. 현재 시어머니 세대의 여성은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2. 부모가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전습된 관념).

두 개의 답변 

애당초 배앓이를 하여 낳은 자식에 대해 어머니가 갖는 마음이란 이 글을 읽는 누구나 (그런 경험이 없다 하여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에 관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자기 삶에 대한 보상을 자녀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첫 번째 질문(내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 남편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에 관해 그녀들은 이렇게 답한다.

‘내게는 사준 적 없었던 선물을 며느리에게 선물할 때’

‘아들 손에 들린 사과가 며느리 입으로 들어갈 때’

이 답변들은 제 배에서 나온 자식에 대한 애착과 함께 ‘어미도 여자다’라는 서운함을 표시한다. 인지상정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이러한 정서의 기저에 서린 관념에 반성할 여지가 있음도 분명하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영화 [올가미]에 나온 진숙(시어머니, 윤소정 분)이 보여주는 아들(박용우 분)에 대한 집착과 평생 억압받아온 여성성에 대한 보상심리는 사실 모든 어머니가 가지는 마음일 것이다.ᅠ

추억의 영화 [올가미](김성홍, 1997) 하지만 고부갈등이라는 관습적 인식의 틀은 여전하다.

추억의 영화 [올가미](김성홍, 1997) 하지만 고부갈등이라는 관습적 인식의 틀은 여전하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에 대해 어머니들이 갖는 애착을 비판한 한겨레 기사는 눈여겨볼 만하다. 기자는 “혼자 남을 아이의 삶을 생각하면 편히 눈을 감을 수 없”거나 헤어진 남편에 대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복수”로 아이와 함께 자살하는 어머니의 행위를 “자녀와의 동반자살이 아닌 살해 후 자살”이라고 말한다. 자녀를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관념이 투영된, 명백한 살해행위라는 것. 전적으로 동의한다.ᅠ

숨겨진 절대자  

[웰컴 투 시월드]와 같은 고부갈등을 소재로 하는 TV쇼나 드라마에 보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남아선호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가족주의다. [웰컴 투 시월드] 속 두 질문의 중심에 놓인 것은 ‘아들’이다. ‘아들’을 놓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자가 네 가족이니 내 가족이니, 혹은 네 편이니 내 편이니 다툰다.

물론 사위와 장인 간 갈등도 이와 못지않을 것이다. 왜 없겠는가? 이를 다루는 TV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과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갈등은 ‘시월드’로 상징되는, 아들을 중심에 놓고 벌어지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고부갈등이다. 항상 그 중심에는 남자 자식, 아들이 있다.

나는 이것이 혼인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장인과 사위 간 갈등의 씨앗이 (누구에 의해서건) 묵인 당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Romuald Bokej, CC BY SA

Romuald Bokej, CC BY SA

여전히 세상의 중심은 남자? 

본래 이목이 쏠리는 곳일수록 잡음이 많고 시끄러운 법이다. 조용하다는 것이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직도 고부갈등이 사위와 장인 간 갈등보다 현저하게 넓은 공감을 얻고 여전히 공공연한 소재로 쓰인다는 점은 한 가족의 중심이 여전히 남성(아들)이고, 이러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관념이 견고함을 보여준다. 여성을 주체로 놓고 벌어지는 가족의 갈등과 이야기들은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그냥 보고 즐기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하겠느냐는 견해는, 스스로 우매해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그냥 보고 즐기는’ 새 수용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조금씩 어느 쪽으로든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주입된 인식이 조금씩 굳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미디어를 통한 그 어떤 의제 설정도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모든 것들의 밑바탕을 이루는 조건들, 즉 사회적으로 형성된 이면의 관념이나 기제는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일상, 그 주위에 다양한 모습으로 숨겨진 채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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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윤
초대필자. 대중예술인

전산과 전산수학을 공부했다. 만화로 전향한 뒤 카툰과 웹 일러스트레이션, 게임 원화 등을 하며 여러 분야에 촉수를 두고 독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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