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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 다 바뀌나요?”

“응.”

“이 가게는요?”

“여기도. 두세 달 안에 다 없어질 거야.”

“그럼 어떡해요?”

“몰라.”(웃음)

현대식 수변공원을 조성 중인 부산남항에서 수십 년째 생선구이 장사를 하고 계신 아주머니
현대식 수변공원을 조성 중인 부산 남항에서 수십 년째 생선구이 장사를 하고 계신 아주머니

연안정비사업이 한창인 부산 남항 인근. 노상에서 생선구이를 파는 아주머니와의 대화다. 사방이 공사 중인 그곳은 오는 7월이면 깔끔한 현대식 수변공원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아주머니의 수십 년 일터인 포장마차도, 노릇노릇 생선을 굽는 정겨운 연탄 화로도, 이따금 “추억을 즐기러” 온다는 푸근한 인상의 단골 아저씨도, 아주머니에게 밥을 얻어먹는 순한 길고양이들도 더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생선구이 가게 아주머니에 밥을 얻어먹는 순한 길고양이 이웃들
생선구이 가게 아주머니에 밥을 얻어먹는 순한 길고양이 이웃들

슈퍼에 물건 사러 가는 길. 산책도 할 겸 부러 길을 빙 둘러가는 데 익숙한 장소에서 허전함을 느낀다. 며칠 전까지도 있었던 ‘환금모텔’이 사라지고 이곳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구청에 확인 결과, 그 모텔은 무려 1955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반년여 전인가 물어볼 것이 있어 그곳에 갔는데,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특히 빈 카운터 위에 놓여 있던 열쇠가 인상적이었다. 정확히는 열쇠를 묶어둔, 숱한 게스트들의 손길에 반들반들해진 호수 적힌 나무 막대가.

들은 바로는 땅 주인이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복합형 관광숙박시설을 짓는다고 했단다. 한 건물에 숙박시설뿐 아니라 카페도 있고 편의점도 있는, 말하자면 역시 현대식. 결국, 주인 마음이지만, 부디 원래의 모습만큼 기품 있고 무엇보다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렸으면…….

1955년에 지어졌던 '환금모텔'이 사라졌다
1955년에 지어졌던 ‘환금모텔’이 사라졌다

앞서 두 곳뿐만이 아니다. 우리 동네는 요즘 사라지거나 바뀐 것들이 많다. ’40계단’ 아래 찻집 건물도 천에 둘러싸여 무언가로 변신 중이고, 그 조금 아래 피난민 동상이 있는 사거리 모퉁이엔 선명한 영국 국기가 그려진 본토식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그 이름하여 ‘LONDON’.

생선구이 포차가 있는 길목 안쪽으로 남포동 건어물시장과 자갈치시장도 마찬가지. 이 일대는 연안정비사업과 전통시장정비사업이 동시에 이뤄져 건물이고 길이고 할 거 없이 더더욱 어수선하다. 한 상인 대표에 의하면 자꾸만 바뀌는 삶 터에서 이미 떠난 이웃들도 많다고.

벌써 감을 잡은 이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동광동이다. 부산역과 부산항이 가깝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남포동, 조용필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그 부산항, 황정민 주연 영화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국제시장’과도 무척 가까운. 정착한 지는 2년째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동네 풍경
내가 사랑하는 우리동네 풍경

4년 전 귀향해 네다섯 번쯤 놀러 왔다가 ‘여기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느낀 가장 큰 매력은 곳곳에서 우러나는 ‘예스러움’. 오래된 것들이 주는 맛과 멋! 한국전쟁 당시 전국의 피난민들이 몰려와 있는 힘껏 삶을 꾸리고 그 삶들이 뿌리내려 다채롭고 아름다운 오늘이 된.

아직도 집 대부분은 고만고만 작은 키에, 이웃들은 이곳서 반백년 이상 산 노인이거나 훌쩍 중년이 된 그들의 2세. 가정집이든 미용실이든 세탁소든 문 앞엔 정성 들여 키운 꽃나무들이 가득하고, 배고픈 시절의 설움을 알아서일까, 길고양이 밥을 챙겨줘도 아무도 눈 흘기지 않는, ‘그때가 그리 먼 과거가 아님’을 아직 살아 몸소 증명하는 존재들도…….

내가 사랑하는 지금의 동네 모습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2004년에 ’40계단 테마거리’를 조성해 지금껏 지역의 특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부디 이 글을, 동광동 아니 세계 전체에 땅 가진 부자들, 그리고 재개발을 담당하는 많은 실무 담당자들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오래된 것들은 다 사라져…….”라고 말하던 생선구이 가게 아주머니를, 그 옆에서 쓸쓸히 웃음 짓던 노신사를, 사람을 믿고 사는 길고양이들을, 옛 정취 가득하면서도 현대식의 편리와 활기가 더해져 더 건강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우리 동네를, 정겨운 내 이웃들을, 그런 풍경을 사랑하게 돼 나처럼 정착하는 또 다른 이방인들이 계속 생겨나길 간절히 바란다.

이따금씩 "추억을 즐기러" 오신다는 생선구이 가게 단골 아저씨
이따금 “추억을 즐기러” 오신다는 생선구이 가게 단골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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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시간의 흐름속에서 오래된것이 천천히 사라져갈 수 밖에 없는건 어떤의미에선 막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죠. 다만 사라져갈 수 밖에 없는 현실과는 별개로 이렇게 사라져가는것들이 그저 무작정 사라지게 방치하기보다는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는것이 매우 중요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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