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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이른바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글로 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 글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그저 먼 나라의 미담 사례로 축소되는 일도 없기를 바랍니다.

독자의 혜안과 실천적인 토론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box]

‘게롤드’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경영·경제학과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한다. 상대적으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살지만, 도서관을 출입하는 외국인들에겐 게롤드만 한 친구가 없다. 게롤드는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등 특히 아시아 학생을 좋아했다.

반갑게 인사하고, 대여 책 연장 기간이라고 알려주고 (때론 자기가 알아서 연장해 준다), 차도 함께 마시고, 리포트 교정도 (무료로) 해주고, 박사논문 쓸 때는 내 연구주제 관련 신간이 들어오면 먼저 챙겨주곤 했다. 일부 한국 학생은 한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그에게 자료를 부탁하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경영·경제학과 도서관 (출처: 학교 홈페이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경영·경제학과 도서관 (출처: 학교 홈페이지)

평생 월급 삭감: 구조조정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도서관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이른바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도서관은 상근자 2명에게 해직통보를 결정했다. 총 7명 중 2명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게롤드는 다행히 그 2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난 당시 이렇게 생각하며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인력이 이렇게 까지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 반납된 책을 서고 제자리에 도로 꽂는 일은 학생 조교의 몫이고, 책을 찾고 관리하는 일이 전산화되었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얼마 후 경영·경제학과 도서관 사서들은 중요한 결정을 했다. 남는 것으로 이미 결정된 5명의 사서는 동료 2명의 해고를 막기 위해 ‘평생 월급 삭감’을 결정했다. 자신들이 월급을 삭감해서 동료 2명의 월급을 만들겠다는 결정이다. 그리고 사측인 학교 행정당국에 이들 2명의 사회보장비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학교는 이를 받아들였다. 안타깝게도 해고 대상 2명 중 1명이 협상 합의 직후 중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래서 남은 동료들의 월급 삭감분은 1명분이었다.

맞잡는 손

나는 게롤드를 만나 정말 훌륭한 일이라며 감동을 전했다. 게롤드는 그야 당연한 일을 했다면서 “생활이 원래도 빠듯했는데 이제 휴가 때도 베를린에 머물러야겠다”며 조금은 아쉬워했지만, 이번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정년까지 10년 이상을 더 적은 월급으로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

연대 없이 진보의 미래는 없다

나는 그때 연대의 가치를 배웠다. 이른바 산업합리화와 구조조정에 임하는 힘없고 연약한 노동자의 연대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 때 받은 감동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비정규직이 급속하게 늘어났고 ‘도미노 효과’를 보이고 있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도미노는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하며, 손가락을 들어 도미노 효과를 처음 발생시킨 사용자와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특히 공기업) 정규직의 경우 월급은 말할 것도 없고 동일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동료가 설·추석 선물에서도 차별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체육대회 때 도시락의 차별을 정당화한다. 소소한 차별이지만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람에게 연대를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의 정규직에게서 베를린 자유대학교 도서관 사서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연대를 찾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도미노 멈추기

도미노 효과는 마지막 도미노가 넘어져야 끝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의가 몰락한 이유를 정권과 1%의 가진 자에게서만 찾을 때 한국사회의 진보는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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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의 “정의가 몰락한 이유를 정권과 1%의 가진 자에게서만 찾을 때 한국사회의 진보는 더 이상 없다”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2.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국내에서도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위해서 솔선수범해서 노력한 사례가 있죠. 씨앤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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