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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워치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 1주일이 됐다. 어떤 제품이 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판단하기에 1주일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내가 애플 워치를 쓰면서 느낀 점들을 써보고자 한다.

이미 충분히 많은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기기, 그것도 손목에 차는, (애플의 설명을 따르면) 가장 개인적인 기기가 내 생활을 어떤 식으로 바꿔놨는지를 생각하면 애플 워치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애플 워치는 디지털 세상과의 접점을 놓치지 않게 하면서 디지털 기기의 사용량을 줄여준다.

아침에 지하철로 출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하철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스마트폰에 빠져 주변을 보지 못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늘 아이폰을 손에 들고 다니며 ‘혹시나 놓친 알림이 있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버릇처럼 아이폰을 켜보곤 했다. 하지만 애플 워치를 사용한 지난 1주일간 나는 그러지 않게 됐다. 이젠 내가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아이폰을 켜보지 않는다.

앞서 애플 워치가 ‘아이폰을 덜 보게 해주지만, 디지털 세상과 더 긴밀하게 접해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애플 워치는 내가 디지털 세상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준다. 현실과 의식적인 부분 양쪽 모두에서 내가 더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림을 세밀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아이폰의 알림을 애플 워치에서 전부 그대로 미러링 할 수 있지만, 그건 별로 추천할만한 일이 못 된다. 내 경우엔 지인들과의 소통에 필요한 알림을 제외하면 모두 애플 워치에선 울리지 않도록 해놨다.

개별 앱마다 알림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애플 워치의 알림은 성가시지 않다. 특히 부드럽게 손목을 ‘탭’ 해주는 탭틱 엔진은 알림을 가장 세련되고 우아한 방식으로 알려준다. 존 그루버(John Gruber)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내 폰이 진동할 때면, 그건 폰이 나에게 ‘이봐, 지금 날 보라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애플 워치가 나에게 탭을 할 때면, 그건 마치 워치가 나에게 ‘이봐, 네가 괜찮다면 내가 할 말이 있어.’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디자인과 마감

애플 워치. 스테인리스 스틸, 밀레니즈 루프애플의 제품들이 모두 그렇듯, 애플 워치 또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남자치고는 정말 가는 손목을 가지고 있어서 38mm 스테인리스 스틸, 밀레니즈 루프를 선택했는데, 박스를 열고 애플 워치를 꺼내보고는 시계와 시곗줄의 디테일에 감탄했다. 애플 워치는 물론이고, 박스까지도 고급스러웠다. 아이폰이 4인치이던 시절 처음 골드 아이폰을 보고 쥬얼리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애플 워치는 그런 느낌을 훨씬 더 극대화했다.

물론 그렇다고 기존의 고급 시계보다 애플 워치가 예쁘다는 얘긴 아니다. 기존의 시계 중엔 애플 워치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애플 워치는 일상적으로 차고 다니기에 창피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도 민망하지 않다. (이전의 스마트워치들은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애플 워치. 미키 마우스 페이스소프트웨어로 구현한 시계 화면도 만족스럽다. 10개의 기본 화면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사용자화(커스터마이징)가 가능해서, 그날의 기분에 맞게 원하는 시계 화면을 띄울 수 있다. (나는 설마 내가 미키마우스 화면을 시계 화면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입고 있는 의상에 맞춰 초침의 색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시계를 착용하는 당사자가 애플 워치에게 느끼는 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도 재밌다.

애플 워치에 새로운 입력장치로 도입된 디지털 크라운도 훌륭하다. 애플이 홍보에 사용하는 이미지들이 대부분 크다 보니 실제로 처음 애플 워치를 보면 작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두 손가락으로 멀티 터치를 하는 건 아주 조악한 사용자 경험이고, 한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하는 것조차도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때론 화면을 너무 가린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럴 때 디지털 크라운을 돌리면 되는데, 돌릴 때의 저항이나 마찰이 대단히 부드럽다. 애플이 디지털 크라운을 돌릴 때의 감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썼을 거라는 걸 추측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처음 배우는 게 다소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내 경우엔 별로 그렇지 않았다. 많은 경우 아이폰을 떠올리며 애플 워치를 접하게 되기 때문에 처음에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 수는 있다. 기본 화면이 홈 화면이 아니라 시계 화면이라는 점, 아이폰엔 없는 한눈에 보기(Glances)라는 UI가 추가되었다는 점이 애플 워치를 낯설게 만들지만, 조금만 쓰다 보면 UI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완전히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일이니 이 정도의 러닝 커브(학습 곡선)는 충분히 참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오히려 문제는 러닝 커브가 아니라 서드파티 앱의 속도다. 지금 애플 워치에서 실행되는 서드파티 앱들은 네이티브 SDK를 이용한 게 아니라 아이폰 앱의 익스텐션처럼 실행되는데, 새로운 UI를 띄울 때마다 아이폰과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므로 앱의 실행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어떤 경우엔 하염없이 로딩 인디케이터(아이폰의 그 바람개비)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할 정도다.

워치킷(WatchKit)이라는 개발 환경을 제공하지만, 아직 앱이 많지 않다.
워치킷(WatchKit)이라는 개발 환경을 제공하지만, 아직 앱이 많지 않다.

애플이 만든 퍼스트파티 앱들과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더 뚜렷하다. 애플에서 만든 앱들은 좀 더 많은 걸 할 수 있고, 더 부드럽게 구동된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애플 워치를 직접 사용해보면서 앱을 만든 개발자가 많지 않은 탓에 UX 자체도 썩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지만, 지금 당장은 사용성을 저해하는 단점이다.

애플 워치를 사용하면서 강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알림 자체가 플랫폼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 또한 알림이 점점 더 많은 중요성을 더해가고는 있지만, 애플 워치는 사용 자체가 알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워치에서는 앱 아이콘을 클릭해서 앱을 시작하기보다는 알림이 들어왔을 때 추가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앱을 실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폰에서는 앱이 메인이고, 알림이 앱에 부가적인 편의를 더해주는 식이지만, 워치에서는 알림이 메인이고 앱이 부가적인 편의를 더해준다. 언젠가는 이런 관계가 역전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계기(주1)가 있지 않은 이상 한동안은 알림이 (홈 화면 대신) 앱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활동

피트니스 트래킹 기능은 애플 워치의 또 다른 판매 포인트 중 하나다. 활동 앱은 하루의 움직임을 크게 세 가지, 움직이기, 운동하기, 일어서기로 평가한다. 모두 목표치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걸 채우기 위해 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예를 들어 일어서기의 경우 1시간에 한 번씩 1분가량 일어서야 링 모양의 게이지가 차오르는데, 덕분에 50분만 되면 손목으로 오는 알림을 보고 사무실 밖을 한번 걷게 된다. (올해 WWDC에 참여한 사람들이 50분이 됐을 때, 동시에 손목을 보게 되는 모습을 나 또한 기대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1nqy2CPbQU

심장 박동을 측정해서 칼로리 소모량을 계산한다는데, 칼로리 소모량 계산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심박수는 꽤 정확하게 (그리고 예상보다 빈번하게) 측정해준다. (술을 마셨더니 심박수가 증가하는 걸 봤다.) 그렇게 측정된 심박수는 아이폰의 건강 앱에서 그래프로 알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사실 이 부분은 내가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애플 워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그림을 그려서 보내거나, 자신의 심박수를 보낼 수 있는데, 꽤 재미있는 기능이지만(주2) 아직 애플 워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굳이 모든 사람이 애플 워치를 가질 필요 없이 나와 가장 친한 친구(혹은 연인이나 배우자)만 가지고 있으면 될 듯한데, 내 주변에는 아직 없었다.

애플 워치 심박 기능

배터리

애플 워치 배터리 표시애플 워치를 쓰는 사람 중에 배터리를 불평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나 또한 그렇다. 처음의 호기심이 아니라면 (팔이 아파서) 헤비하게 쓰기가 힘든 제품이고, 일상적인 사용에선 하루를 온전히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내 경우 침대에 누워 자기 직전에 워치를 충전했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4일째부터는 한눈에 보기에서 배터리 퍼센티지 표시를 없애버렸다. 굳이 퍼센티지를 보면서 사용량을 관리하지 않아도 늘 자기 전에 배터리가 충분히 (20% 이상)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분 좋은 편리함

애플 워치가 모두에게 필요한 제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가지고 있으면 편리한 제품은 분명하다. 그리고 난 그 편리함이 제법 쿨한 편리함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디지털 기기들은 늘 얼마나 더 많이 사용하는가를 훌륭함의 척도로 삼아 왔다. 애플 워치는 그렇지 않다. 애플 워치는 ‘우리가 얼마나 디지털 기기를 적게 사용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세상과 사용자 사이의 접점은 더 긴밀하게 구축해낸다. 과잉으로 넘쳐나던 불필요한 행동들을 없애주는 것이다.

이게 애플 워치의 존재 이유를 합리화할 수 있을 정도의 편리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아이폰에서 눈을 떼고 내 주변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의 이 경험이 대단히 마음에 든다.


주석 목록

  1. 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쓰게 되는 예외가 있는데, 시리를 이용할 수 있는 퍼스트파티 앱들이 그 예외다. 이 경우는 앱이 아니라 OS를 쓰는 느낌으로 앱을 사용하게 된다. 더 부드럽게 작동한다는 점도 한몫한다. (원문으로)
  2. 심박수 공유는 꽤 실감 난다. (원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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