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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슬로우뉴스에서 발행한 기사입니다. 영화 [베를린] 제작사에 부과된 관세(정확히는 ‘부가가치세’)가 과연 타당한지 따져본 글이었죠. 전문가의 판단을 위해 곽신영 관세사와 일문일답 형식으로 간단히 쟁점을 풀었습니다.

결론은 해외에서 해외 인력을 고용해 제작한 영상이 담긴 하드 디스크에 세금을 물게 한 세관의 조치는 합당하며, 이는 법적으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례라는 것이었습니다. 관세 전문가가 법리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례라고 했지만, 많은 독자들께서 관심을 주셨고, 더 많이 궁금해했습니다.

글을 접한 독자 반응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들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해외에서 현지 인력을 고용해 촬영한 영상을 웹하드나 FTP로 전송하면 공짜인데, 하드 디스크에 담아오면 세금을 물어야 한다니? 너무 황당하다!

그리고 많은 댓글 중에는 이런 의견도 있었습니다(…)

“관세사가 미친 거 같은데…?”

당연히 미치지 않았고요. (좀 과한 유머로 여기겠습니다. ^^) 댓글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된 독자의 궁금증을 추려 그 의문에 답해드립니다. 자문에 성실하게 응한 곽신영 관세사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독자께 알려야 할 의무까지 생긴 것 같네요.

슬로우뉴스 A/S입니다.

슬로우뉴스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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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신영 관세사 일문일답

– 영화 ‘베를린’의 해외 촬영 영상을 웹하드나 FTP로 전송하면 공짜고(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고), 하드 디스크에 담아오면 과세한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좀 납득이 안 간다. 독자들도 그 점이 가장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과세는 법정주의다. 말 그대로 법에 규정되어야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에서 규정하지 않는데도 과세할 수는 없다. 법은 ‘유체물’만이 과세대상이라고 명시한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관세법은 “수입물품”에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여기서 ‘물품’은 유체물을 가리킨다는 것이 학설과 판례의 일치된 견해다.

전자적 매개물을 통해 전송하고, 내려 받을 수 있는 무체물은 과세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체물에 과세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과세대상(“과세물건”)은 영화 ‘베를린’이라는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가 담긴 유체물로서의 ‘저장장치'(하드 디스크)다.

다시 설명하지만, 영화 ‘베를린’을 찍기 위해 출국할 때 가져간 하드 디스크는 그저 ‘깡통’ 저장장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해외 인력을 고용해 촬영한 영상(소프트웨어)을 담은 하드 디스크는 고가의 물품이 됐다. 즉 해외 인력에 대한 고용 비용이 투여된 수입품이 된 것이다.

출처: 대법원 http://www.scourt.go.kr/scourt/index.html
“법이 그렇다(…)” (출처: 대법원)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는 수입신고할 당시 물품의 가치에 대해 부과한다. 또한 부가가치세는 재화나 용역이 생산·유통되는 모든 단계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를 ‘과세표준'(과세 기준이 되는 가격. 납부세액은 과세표준에 세율을 곱한 금액으로 산정)으로 한다.

즉, 영화 제작사가 해외 활영 기간 중 현지 프로덕션 업체에 지불한 비용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기여했고, 그 결과물이 저장된 상태로 수입된 하드디스크는 단순한 공 디스크보다 훨씬 많은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셈이다.

말장난 같지만, 두 물건의 성질은 전혀 달라졌다. ‘깡통’ 하드 디스크가 아니라 영화 촬영 영상이라는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가 담긴 하드 디스크에 과세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앞선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는 관세법상 관세율이 0%다. 따라서 부가가치세(10%)에 대해서만 추징한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보면 법률적 미비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그게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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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22억 원이 과세 기준액이 됐나. 이 부분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 

영화를 찍기 위해 국내 스태프도 나갔고, 국내 장비도 나갔을 거다. 국내 스태프와 국내 장비는 과세대상이 아니다. 영화 ‘베를린’에서는 해외 인력의 노무비 등 비용(22억 원)이 과세 기준액(“과세표준”)이 됐는데, 관세법상 과세 기준액의 제1원칙은 ‘실제 거래 가격'(쉽게 말해 소비자 가격)이고, 그밖에 기준이 되는 게 가산 대상 요소 금액이다.

가산 대상 요소 금액 중 하나가 생산 지원비인데, 영화 ‘베를린’처럼 해외에서 조달한 인력에게 지급한 비용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영화 ‘베를린’의 해외 촬영에서 생겨난 가치(부가가치)에 투여된 비용과 항목들을 모두 따질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과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과세는 명확한 근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과세 법정주의 참조.)

그 명확한 근거가 해외 인력에 투여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용역 계약서나 회계상 잡히는 명세라는 뜻이다. 즉, 세관이 세금을 부여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는 ‘생산지원비’ 항목이고, 영화 베를린에서 ‘생산지원비’에 해당하는 항목이 바로 해외 인력 비용이다.

생산 지원비(해외 인력을 고용하는 데 쓴 비용)가 없었다면, 그 영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다.

Vancouver Film School, CC BY https://flic.kr/p/9kXk6P
Vancouver Film School, CC BY

– 국내 제조사가 국내 판매를 위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해외 제조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들여올 때도 부가가치세를 내나?

부가가치세를 내기는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부품이 나갔으니까 부품 가격만큼은 면세다. 통상 조립품이 들어올 거라고 세관에 신고하고, 조립품이 들어오면 부품 가격만큼은 그 조립품(완성품)에서 면세된다.

– 가령, 50만 원이 부품비고, 완제품 가격이 70만 원이라면?

20만 원만에 대해서만 과세한다.

– 해외 영화 제작사로부터 영화용 필름을 수입하는 경우는 어떻게 되나?

관세법상 수입물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논리는 수출자와 수입자간의 거래 가격이 제1원칙이다. 따라서 국내 수입자는 필름 구매 가격을 수입신고하면 된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게 하나 있다. 외국 공급자로부터 영화를 수입할 때 통상 기본 개런티 또는 성공 보수 성격의 러닝 로열티 조건으로 구매계약을 체결한다. 이 때는 필름 가격 뿐만 아니라 계약에 의거 별도로 지급하는 총금액을 수입가격으로 신고해야 한다.

즉, 러닝 로열티 등도 사후에 가산신고 해야 세관 추징 등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 최종 제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에게 부가가치세를 포함해서 받으니 상쇄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견은?

옳은 지적이다. 부가가치세는 이중과세가 아니라 전가세다(결국, 최종 소비자가 부담한다는 뜻). 내가 휴대폰 액정패널 제조자고, 이를 위해 외국에서 유리판을 수입해 이를 가공해서 액정패널을 삼성이나 LG에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1. 내가 유리판을 수입할 때 당연히 부가가치세를 낼 거다. 하지만 액정을 만들고, 삼성이나 엘지에 판매할 때 그 부가세가 포함된 가격으로 물건을 판다. 즉, 세금계산서를 삼성이나 엘지에 발행할 때, 공급가격의 10%를 부가세로 더해서 발행한다.

  2. 최종적으로 삼성이나 엘지가 액정패널이 달린 TV 제품을 국내에서 유통할 때 그 부가세를 포함한 가격으로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다. 결국은 부가가치세를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건 소비자다.

– 예술품은 면세인데, 영화는 예술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많은 독자가 의문을 가졌다. 

예술품에 대해서는 수입시 관세 및 부가가치세가 모두 면세다. 여기에 해당하는 예술품으로는 회화, 조각, 골동품 등이 분류되어 있다. 내가 보기엔 영화도 당연히 예술인데, 다시 말하지만, 법이 그렇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해외 영화까지 수입세금을 면제하지는 못하더라도, 국내 영화 제작사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이 마련돼 제작비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Thomas Berg, CC BY SA https://flic.kr/p/mLmsM
Thomas Berg,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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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댓글

  1.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어제도 보면서 많이 배웠지만 오늘 글은 특히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되었네요. ^_^

  2. 보다 자세한 설명을 보니 관세법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는 건 아니군요.
    “영상물”이라고 다 예술품은 아닙니다. 특히나 상업영화를 위한 영상물은 “예술품”이라기 보다는 “상품”이죠.

  3. 결국, 유체물과 무체물의 범위와 대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군요.
    같은 하드디스크지만 다르다? 웃기는 소리.
    물리적으로든, 화학적으로든, 전기적으로든, 하드디스크 자체는 변한게 없어요.
    (시간 경과와 사용에 따른 자연적 소모성 변화는 별개)
    그냥 같은 하드디스크예요. 거기 담긴 데이터가 다른거지.
    결국, 데이터에 과세한 셈인데, 데이터는 유체물? 무체물?
    ……
    유체물-무체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데이터가 아닌 “가치”에 과세하는게 맞겠죠.
    저도 “베를린”같은, 예술보다는 상품이라 보는게 타당한 “가치”에 과세하는 것 자체는 찬성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과 근거는 있어야겠죠.
    그런데……
    컴맹에 가까운 법률가들끼리 백날 갑론을박 해 봐야……

  4. 오호 그렇군요. 확실히 나름의 사유는 이해됩니다만 역시 법이 기술의 발전을 다소 따라가지 못하고있다는 점은 실감하게되네요.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나라의 사례도 알아보고 싶긴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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