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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매그넘의 두 거인, 브레송과 카파’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 [/box]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ão Salgado, 1944년 브라질 태생)라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2014년을 비롯해 몇 차례 전시를 했습니다. 살가두는 매우 특이한 약력을 가진 사진갑니다. 제가 만났던 매그넘 사진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만지작대며 사진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살가두는 별도의 직업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취미로 찍기 시작했습니다.

살가두는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꿔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살가두 아버지의 말을 빌리면, 이랬다고 합니다.

“법대에 보내놨더니 공부는 안 하고 전공도 지 맘대로 바꾸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만 했지.”

살가두는 젊은 시절 활동가로 브라질 군부 독재에 저항하다 결국 프랑스로 건너갔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은행(WorldBank)의 아프리카 커피 산업에 대한 조사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아내 렐리아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지요.

서른, 사진가로서의 삶을 결심하다 

사진에 취미 이상의 흥미를 느낀 그는 이코노미스트로서의 직업을 버리고 직업 사진가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입니다. 처음엔 시그마와 감마 등의 뉴스 에이전시에서 작업을 할당 받기도 하고, 잡지 사진이며 누드 사진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그러다 큰 결심을 하지요. 누군가에게 요청받아 사진을 찍는 대신 스스로 주제를 정해 작업을 하기로 말입니다.

살가두는 세계의 흐름을 조망하며 망명자, 걸프전, 아프리카 내전, 노동자 등등 주로 굵직굵직한 사회적 주제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주제를 하나 정하면 5년이고 8년이고 거기에만 매달려 작업을 합니다.

세라 펠리다 금광

그러던 중 살가두는 브라질의 세라 펠라다(Serra Pelada) 금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에 대한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살가도,
ⓒ Sebastiao Salgado, “Serra Pelada gold mine”, Brazil, 1986. / Magnum Photos
살가두
ⓒ Sebastiao Salgado, “Serra Pelada gold mine”, Brazil, 1986. / Magnum Photos
살가도,
ⓒ Sebastiao Salgado, “Dispute between Serra Pelada gold mine workers and military police”, Brazil, 1986 / Magnum Photos

온몸에 빛나는 검은색 탄가루를 뒤집어쓴 사진 속 인부들은 흡사 검은색 대리석 조각상 같습니다. 수백 미터 깊이의 탄광에서 사람들이 어깨에 흙이 든 자루를 짊어지고 마치 개미처럼 줄을 지어 오르내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무표정하게 흙을 나르는 사람들, 그 와중에 금을 캔 사람, 흰자위를 번득이며 싸우는 사람, 흥미진진하다는 듯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지켜보는 군중 등 살가두의 사진은 의도를 갖고 그린 그림처럼 사진 속 구성요소가 다 제 역할을 하며 살아있습니다.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래서 살가두의 사진을 볼 땐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집니다. 눈은 이미지 구석구석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다 한참을 작품 앞에 선 채 생각하게 됩니다. 살가두의 작품은 “시대의 맥박을 느껴라”는 매그넘의 목적에 충실한 동시에 숨을 멎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심지어 성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로버트 카파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살가두의 사진을 본다면 아마 서로 자기의 적자라고 다툴 판입니다.

살가두와 매그넘

살가두도 한때 매그넘에 적을 두었습니다. 다른 매그넘 작가들이 살가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묘한 질투와 그리움이 섞인 애증이 묻어납니다.

오 신이시여! 왜 살가두에겐 모든 것을 다 주셨단 말입니까?

저주스러울 만치 뛰어난 작가인 동시에 뛰어난 비지니스맨이라고, 그 두 가지가 같이 가기는 정말 어려운데 살가두는 다 가졌다고 했습니다. 살가두는 본래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고, 그렇다고 괴팍하거나 한 건 아닌데, 쉽게 친해지기는 어려운 타입이라고 했습니다. 하긴 매그넘 작가라면 한 사람 한 사람 다 날고 기는 사람들인데 뭘 해도 자신보다 한발 앞선 존재가 있다면 친해지기는 어렵겠거니 싶었습니다.

매그넘은 협동조합 같은 조직이라고 말했었지요. 매그넘 작가들은 번 수익의 대략 30% 정도를 매그넘에 냅니다. 마치 세금처럼요. 그 돈으로 매그넘에서는 작가들의 작품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저작권을 관리하고, 사진가들 대신 작품판매나 전시에 대해 협상도 해줍니다.

사진가 중엔 정말 사진 찍는 것밖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수줍음이 많거나 외골수인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사진작가는 작품활동에만 매진하고 그 전/후에 해당하는 작업은 매그넘이 대신해 주는 셈이지요.

뉴욕, 파리, 런던, 도쿄에 매그넘 사무실이 있습니다. 각 지부에서 지역을 나눠 관리하고 작가들에게 일도 나눠줍니다. 작가들이 촬영을 하러 갈 때는 가까운 지역의 사무실에서 여러 가지 기초 조사도 해주고 예약도 해줍니다. 점점 노령화되는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젊은 작가들을 양성하는 일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매니지먼트사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가 좀 쉬울까요?

World Social Forum 2003에서 강연하는 살가두 (출처:  Agência Brasil, CC BY)  http://en.wikipedia.org/wiki/Ag%C3%AAncia_Brasil
World Social Forum 2003에서 강연하는 살가두 (출처: Agência Brasil, CC BY)

평생의 반려 렐리아

살가두는 1979년 매그넘에 합류했다가 1994년에 떠났습니다. 매그넘 안에 아바스(Abbas, 1944년 이란 태생)를 비롯해 몇몇 가까운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결합도가 높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거기다 당시 살가두는 독보적인 작가로 한창 주가가 오르는 중이라, 나중에는 살가두 한 사람이 매그넘에 기여하는 액수가 나머지 사람들의 액수를 합친 그것에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살가두는 매그넘을 떠나 아내 렐리아 바니크 살가두(Lélia Wanick Salgado)와 함께 아마조네스 포토스라는 개인 에이전시를 차립니다.

세바스치앙과 렐리아는 17살에 만났습니다. 렐리아는 매우 밝고 똑똑한 여성입니다. 살가두는 렐리아 이야기를 할 때면 웃어요. (신이시여! 정말 이러시깁니까?!) 살가두와 렐리아는 작품 주제 선정이나 촬영 후 작업, 관리 등을 모두 함께했습니다. 둘은 부부인 동시에 완벽한 사업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던 사진가 살가두입니다.

“천국에서 태어났으니 이곳을 다시 천국으로 만들자” 

그러다 몇 년 전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공부하던 중에 살가두의 이름을 듣게 되었습니다. 브라질의 도체강 유역 아이모레스(Aimorés)라는 곳에 대지 연구소(Instituto Terra)를 세워 지역 생태계 복원작업을 주도한 사람이 살가두라더군요. 아이모레스는 살가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고향이죠.

무분별한 벌목과 철광석 탄광 개발로 인해 황폐해진 지역에 나무를 심어 생태계를 복원한 것입니다. 살가두는 테드 강연자로 나와 자신의 사진과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우아한 중저음의 목소리와 프랑스어 억양이 남아있는 영국식 영어발음으로 차분하게 설명하는 모습은 흡사 교수나 경영자 같았습니다.

르완다 내전을 찍으며 살가두는 하루에도 수천씩 죽어 나가는 시체를 보았습니다. 온몸이 감염되었고 인간이라는 종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살가두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린 시절 천국 같던 고향은 더는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나무가 사라지고 물이 흐르던 계속은 바싹 말라 누렇게 흙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매번 살가두에게 영감을 주는 렐리아가 이번에도 아이디어를 냅니다. 나무를 심자고, 이곳을 다시 천국처럼 만들자고 합니다.

“(열대림이 무성한) 천국에서 태어났으니 (황폐해진) 이곳을 다시 천국으로 만들자.”

– 세바스치앙 살가두, 테드 강연 중에서, 2013년 2월

살가두의 가족은 그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부터 열대우림 290여 종을 200만 그루 이상 심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8개의 샘물이 자연 복원 되었습니다. 6종의 멸종위기 개체를 포함해 172종의 새들이 돌아왔습니다. 표범과 푸마를 포함한 포유류가 33종, 양서류가 15종 목격되었습니다. 식물 개체는 293종에 이릅니다. 살가두 가족의 소유이던 이 지역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SEBASTIÃO SALGADO E LÉLIA WANICK SALGADO (ⓒRICARDO BELIEL via 'marie claire') http://revistamarieclaire.globo.com/Comportamento/noticia/2014/03/eu-nao-ando-atras-de-ninguem-afirma-mulher-de-sebastiao-salgado.html
파괴된 천국을 다시 되살린 세바스치앙과 렐리아 (출처: ⓒRICARDO BELIEL via ‘marie claire’

제네시스(Genesis) 

잠시 사진을 떠나 있던 살가두는 다시 카메라를 잡기로 결심합니다. 이 지구 상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 중에 인간만 찍어 왔지만, 이제는 눈을 돌려 자연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북극의 동물과 열대의 숲, 과거의 양식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실 자연 사진을 찍는 것은 사진가로서는 큰 도전입니다. 전쟁이나 사회적 현상 같은 주제를 다루는 사진가보다 풍경을 찍는 작가는 덜 중요한 취급을 받거든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뭐 그쪽 바닥은 그렇다고 합니다. 살가두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살가두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카메라를 들고요.

살가두
Genesis © Sebastião SALGADO / Amazonas images
살가두
Genesis © Sebastião SALGADO / Amazonas images

제네시스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살가두가 찍은 자연 사진입니다. 천지가 창조되었을 적, 태초의 자연을 떠올리며 찍었다고 합니다. 이 우아한 귀족 같은 할아버지가 바다표범을 찍기 위해 뒹굴뒹굴 모래 위를 구릅니다. 침팬지에게 예를 갖춰 접근하고 원주민들의 마음을 사려고 사진을 찍어 보여줍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살가두는 이번에도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저 갈매기는 무엇을 보고 있길래 저렇게 완고한 부리와 눈매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이구아나의 발을 보며 갑옷 입은 란슬롯(Lancelot)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떠올렸습니다. 자연에 이렇게나 다양한 표정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실현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참 궁금합니다.

오 신이시여!!

살가두
Genesis © Sebastião SALGADO / Amazonas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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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아 정녕 완벽한 인간의 조건을 갖춘 분이지 싶네요. 주제에 대한 강한 통찰이 보이는 사진에 감동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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