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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의 검열법, 내가 싫으니 네가 잘못했다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 삽입된 여고생 간의 키스신이,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어떤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국민일보 등 일부 언론도 이에 대해 부정적인 논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방심위가 심의를 엉망으로 한다는 건 두 번 세 번 말해 뭐하나 싶은 얘긴데, 특히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께서 늘(?) 그러했다시피 인적 구성을 하도 개판으로 만들어놔서, 그 수준이 한층 형편없어졌다. 어쨌든 방송심의소위원회가 이 안건을 두고 회의한 내용이 끔찍한 모양새 그대로 공개되어 있으므로 간단하게 살펴보자.

거꾸로 된 논의

심의위원들은 경고, 주의, 권고에 이르기까지 처벌 수위를 먼저 논한다. 어떤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말이다.

처분을 내리는 근거도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가) 다수와 다른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다 생각하지만”, “진술자가 출석해 사과한 점을 고려해”, “논란이 되는 동성애를 굳이 소재를 써야 했나”, “저는 (동성애를) 옹호·조장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등 정확한 규정보다는 자기 생각과 자기가 받은 느낌을 주로 판단의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처벌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에야 그들은 이 장면이 어떤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따진다. 순서도 뭔가 이상한데, 내용도 역시나 엉터리다.

박신서 위원: 동성애를 소재로 다뤘다는 점이 문제가 안 된다면 윤리성(제25조 1항)은 빠져야 한다.

함귀용 위원: 성적 표현에 있어 아름다운가, 혐오감을 주는가, 선정적인가 등을 봐야 한다. 박 위원은 1분 동안의 여고생들의 키스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나, 선정적인가, 혐오감이 드나.

박신서 위원: 윤리성은 성적 표현의 아름다움과 상관없다.

함귀용 위원: 민원인은 혐오감을 느꼈고, 많은 국민들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저는 혐오감을 느꼈다.

김성묵 부위원장: 제35조 1항은?

장낙인 상임위원: 제35조 1항은 불륜 등 부도덕하고 건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것이다.

함귀용 위원: 저는 부도덕하다고 본다.

장낙인 상임위원: 그런 식이라면 청소년인 남녀 학생 간의 행위(키스신)에도 제35조 1항을 적용해야 한다.

고대석 위원: 제35조 1항은 불륜 등에 대한 문제다.

함귀용 위원: 그렇지 않다. 많은 단체에서 여고생의 동성애를 다룬 게 부도덕하다고 판단해 민원 제기를 한 것이다.

김성묵 부위원장: 제35조 1항은 빼자.

장낙인 위원: 제28조(건전성)도 해당 사항이 없다.

김성묵 부위원장: 제28조만 빼고 나머지 적용조항에 대한 논의는 전체회의에서 하겠다.

내가 혐오스러우면 네가 잘못한 거야

함귀용 의원: 전 동성연애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함귀용 의원: (키스 장면이) 나는 혐오스러웠다.

함귀용 위원은 자신이 키스 장면을 혐오스럽게 봤다는 이유로 이것이 “방송은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과 규범의 정립, 사회윤리 및 공중도덕의 신장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한다.

고대석 의원: 잘못하면 청소년들에게 그런 걸(동성애를) 권장하거나 조장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고 본다.

함귀용 의원: (동성의 키스 장면을) 저는 부도덕하다고 본다.

또 자신이 동성애를 부도덕하다고 판단하므로 “방송은 부도덕하거나 건전치 못한 남녀관계를 주된 내용으로 다루어서는 아니 되며, 내용 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함 위원의 이 편견들을 근거랍시고 들이밀지 않는 이상, 이 장면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 이 조항도, 저 조항도 모두 적용이 어렵다. 결국, 어떤 조항을 위반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다들 경고니 주의니 하는 처분부터 결정한 블랙코미디가 연출되고 마는 것이다.

규정에 의해, 헌법에 의해 판단을 해야

키스를 포함한 남성 간의 애정신을 묘사하여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친구사이?]란 영화가 있다. 이에 영화를 제작한 청년필름 측은 이 등급 분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1, 2, 3심 모두 승소하여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이 재조정된다.

친구사이?

동성애와 이성애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야지, 동성애라 해서 더 유해하고 수위가 높은 것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헌법상의 기본권이라는 명확한 가치 위에서 명문화된 조항들을 세세히 따져 내린 판결이었다.

근거와 논리를 쌓아올려 만들어진 법원의 판결과, 엉터리 편견으로 결론부터 내리고 근거를 찾아가는 방심위의 주먹구구식 회의. 두 기관의 성격 차이를 당연히 생각해야겠지마는, 품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전례조차 깡그리 무시하는 구제불능의 편견 덩어리 바보들이 근거고 뭐고 없이 대충 인상으로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중세시대 재판을 연상케 하는 바보들의 합창. 혹시 우리는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이들에게 방송 심의를 맡기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저 장면이 정말 혐오스러운 장면일까.

[선암여고 탐정단] 2015년 2월 25일 방송 중 ⓒJTBC

[선암여고 탐정단] 2015년 2월 25일 방송 중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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