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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온 여신상, 문화재 암시장을 고발하다

2011년 3월 21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중부 작은 마을 아이도네는 마치 마을 잔치가 열린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민 5천여 명은 대부분 거리로 몰려나왔으며, 악대가 벽돌이 깔린 거리를 행진하며 축하곡을 연주했다. 이들 앞에는 큰 흰색 트럭이 천천히 움직였다. 트럭 안의 나무상자에 든 것은 넷으로 해체된 거대한 여신상이었다. 수십 년간 외국을 떠돌던 여신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모간티나의 여신상. (CC By Taifighta)

이 ‘모간티나의 여신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캘리포니아의 J. 폴 게티 미술관 실내에 서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부촌 말리부 지역에 자리 잡은 폴 게티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 중 하나다. 석유 재벌인 J. 폴 게티가 1954년에 세운 이 미술관은 1976년에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 12억 달러(1조 4천억 원)가 유입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술관으로 떠올랐다. 근대 유럽 회화나 가구 소품을 주요 전시품으로 하던 게티는 막대한 자금을 배경으로 하여 고대 유물을 사모으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문화재를 대거 소장하고 있는 유명 미술관 중 하나다.

모간티나의 여신상은 게티의 대표적인 소장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이 우아한 고대 여신은 미국의 부유한 미술관 전시실을 떠나 이탈리아 촌락의 작고 소박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여신상이 옮겨진 과정은 고대 문화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검은 거래와 이 때문에 발생하는 유물 국가와 유명 미술관 사이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불법 문화재, “출처는 묻지도 대답하지도 말라”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물은 그 희소성과 미술적 가치 때문에 미술관들이 선호하는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미술관들의 명성을 좌우하는 전략적 소장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화재가 미술품 시장에 나오면 세계적인 미술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문제는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과거에 사들인 고대 유물 중 상당수가 투명하지 못한 유통 과정을 통해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유적 현장에서 도굴되거나 약탈된 뒤 밀반출되어 미술 시장에 나온 불법 문화재다. 1988년부터 게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모간티나의 여신상 역시 이러한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오래전부터 이 여신상이 약탈범들에 의해 나라 밖으로 흘러나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J. 폴 게티 미술관. (CC By Goodnight London)

미술관이나 미술품 애호가들이 작품을 사들이는 경로는 두 가지, 경매와 독자적인 구매다. 공개, 혹은 비공개로 벌어지는 경매는 미술품이 거래되는 주요한 시장이다. 또 미술품 딜러를 통하여 판매자와 구매 희망자가 독자적으로 연결되며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불확실하고 소유 기록이 없는 수상쩍은 고대 유물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거래된다.

출처가 불분명한 문화재에 대해 관계자들이 오랫동안 가져온 태도는 ‘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런 유물의 판매자는 구체적인 정보를 생략한 채 작품을 내놓기 일쑤며, 사실이 아닌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흔하다. 미술관을 비롯한 구매자는 이러한 상황을 묵인한 채 작품을 구매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유물이 어떻게 시장에 나왔는가가 아니라 진품인가의 여부다.

고대 유적지를 가진 나라들은 오랫동안, 서구 유명 미술관이 소장한 문화재 중 상당수가 자신들의 나라에서 탈취된 뒤 밀반출된 작품이라는 주장을 펴 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해당 국가의 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이고 문화적 자산의 불법 거래를 종식하기 위한 국제 협약에도 저촉된다. 한마디로 장물인 셈이다. 미술관들은 대개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작품이 탈취당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태도를 보인다.

유물 국가들의 주장이 입증되고 불법 유출된 증거가 제시될 경우 미술관들은 해당 유물을 반환해야 할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게 된다.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구입했는지는 상관없다. 지난 5년 동안 미국 유수의 미술관들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폴 게티 미술관, 프린스턴 대학 미술관 등은 100여 점 이상의 유물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반환했다. 액수로 따지면 10억 달러(1조 1천억 원)어치다. 미술관들은 유물 반환 결정을 내리면서도, 이들 작품이 미술관에 입수된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미술관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미술관은 폴 게티다. 모두 47점을 반환했는데, 그 절반이 세계적인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것들이었다. 모간티나의 여신상은 이렇게 반환된 작품들 중 가장 최근 것이다.

이탈리아로 옮겨진 뒤 재조립되는 여신상. (아이도네 고고학박물관 사진)

모험과 탐험으로 포장된 약탈

유적지에서 문화재가 약탈당하는 일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나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 선조들 덕분에 풍부한 유물을 가진 국가들이 주요 목표물이 되었으며, 군사력과 금력을 지닌 개인과 국가들이 이렇게 약탈당한 문화재를 챙겼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식민지로부터 문화재를 긁어모아 본국으로 실어갔다. 그리스 신전이나 이집트 피라미드를 뒤지는 행위에 대해 가해자들은 모험이나 탐험과 같은 수식어를 붙였지만, 그 본질은 약탈과 도굴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 유럽의 귀족들 저택은 판테온 신전 같은 유적지로부터 뜯어온 대리석 조각들로 가득 찼으며, 그 정도가 심해서 같은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 대영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문화재의 상당수가 이런 과정을 거쳐 수장된 것이다.

모험과 탐험으로 포장된 선진국의 문화재 약탈 행위는 20세기 중반 무렵에서야 경계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유물 약탈이 전쟁 승전국이나 식민지 종주국의 권리가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파괴 행위(반달리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재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기울여진 끝에, 1970년에 유네스코(UNESCO)에서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자국의 영토 안에 있는 문화재는 해당 국가에 소유권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세계 국가들이 이러한 문화재의 수출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문화재 유출에 골머리를 앓던 고대 문명 국가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이러한 협약을 각국이 비준하여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유물 거래에 관련된 나라일수록 조처를 미뤘다. 미국은 1983년에야 협약을 비준했으며, 미술품 거래의 중간지로 악명 높은 스위스는 2003년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협약 비준 이후에도 미술품 딜러들은 여전히 출처가 불분명한 문화재들을 시장에 내놨으며, 미술관 큐레이터나 수집가들은 이러한 작품을 꾸준히 사들였다.

게티 미술관이 기원전 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걸작 여신상을 매입한 것은 1988년이었다.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여, 개당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고대 문화재들을 사들이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여신상을 구입하는 데는 1천8백만 달러(약 2백억 원)를 썼다. 당시까지의 미술품 거래액으로서는 기록적인 금액이었다.

이 조각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외양과 재료가 매우 특이하다는 점은 분명했다. 230cm 높이인 이 여신은 팔을 벌린 채 앞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몸에 걸친 얇은 옷은 바람을 맞으며 몸을 섬세하게 휘감았다. 앞으로 내민 오른손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조각은 그 모양도 특이했지만, 재료도 독특했다. 머리와 팔은 대리석으로, 몸통은 석회암으로 제작된 뒤 조립 형태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조각이 대리석이 귀한 곳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게티 미술관의 당시 큐레이터 매리언 트루는 이 조각이 사랑과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녀는 미술관에 이 여신상의 구입을 건의한 제안서에서 “이 조각은 우리 미술관 최고의 수장품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영국을 제외한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대 조각의 명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썼다.

문제는 이 작품에 아무런 증빙 서류가 붙어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게티 미술관에 이 여신상을 내놓은 영국의 미술품 딜러는, 그저 스위스에 사는 미술품 수집가가가 그 전 소유주라는 점만 밝혔을 뿐이었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탈리아 문화부에 해당 작품과 관련한 정보를 문의했으나, 이탈리아 역시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게티 미술관이 도움말을 구한 고고학자 중 일부는 이 여신상이 약탈된 의혹이 있으니 사들이지 말라고 충고했다.

‘장물 의혹’ 무릅쓰고 매입 결정

구매에 앞서 여신상을 정밀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슴께를 중심으로 분할된 이 조각의 절단이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옷 주름 사이에는 최근에 발생한 돌가루들이 끼어 있었다. 이것은 이 조각이 약탈꾼들에 의해 탈취된 뒤 절단되어 운반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미술관 관계자 일부는 이 여신상을 구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술품 전문가들은 정당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문화재를 ‘고아(orphan)’라고 부른다. 미술관들이 고아를 사들여 다른 아이들(정규 소장품) 사이에 슬쩍 끼워 넣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 여신상은 크기나 값, 중요성 등 모든 면에서 그 비중이 너무 커서 주목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거래 소식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정부는 이 여신상이 한때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시칠리아 섬의 모간티나 고대 유적지에서 반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한 법률 저널은 이 조각상에 대한 글을 싣기도 했는데, 제목은 ‘이 조각상은 장물인가?’였다.

어쨌든 게티 미술관은 이 작품을 사들였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었다. 게티는 여신상을 영구 전시품으로 선정해, 미술관 안에 명당을 골라 자리를 만들고 전시했다. 거래가 일단락된 뒤, 구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게티의 큐레이터 매리언 트루는 갑자기 불법 문화재 거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국 미술관들이 의혹이 있는 문화재를 사들이며 궤변으로 합리화한다고 비난하며, 이러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티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때의 매리언 트루. 왼쪽 끝에 문제의 여신상이 보인다. (위키피디아 사진)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트루는 게티 미술관이 소장한 약탈 문화재 수백 점을 원래의 나라로 되돌려 주기도 했다. 전시용이 아닌 연구용 유물로서 미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례적인 일이었다. 1995년에 게티 미술관은 증빙 문서가 있는 문화재만 구입하도록 하는 정책을 새로 채택했는데, 이것은 트루가 강력히 주장하여 관철된 정책이었다. 이로써 게티는 미술품 암시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거대 여신상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여신상 반환을 요구했으나, 명백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었다.

1989년에 이탈리아는 시칠리아인 몇 명을 이 여신상을 밀반출한 혐의로 체포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에 실패했다. 1994년에 이탈리아 문화 당국은 이 여신상의 몸통 부위에서 소량의 석회암 견본을 채취해 제공해 달라는 요구를 게티 미술관에 정식으로 제출했다. 게티가 이에 응한 것은 1년이나 지나서였다. 견본을 분석한 결과, 여신상의 석회암은 시칠리아 섬 모간티나 남쪽의 지질학적 성분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게티 미술관은 문제의 여신상이 해당 지역에서 밀반출되었다는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풀리는 실마리는 예상치 않은 곳으로부터 찾아왔다. 이탈리아 문화 당국은 1995년에 한 문화재 밀거래 중간책의 제네바 창고를 급습했다. 여기서 최고급 유물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수천 장이 발견되었다. 모두 흙먼지에 뒤덮인 채 신문지에 싸여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 있는 상태의 사진이었다. 이탈리아의 불법 문화재 유출 사건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유물들은 모두 거래가 끝나 팔려나간 상태였다. 조사원들은 이 폴라로이드 사진과 세계 각국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대조하는 작업을 몇 년 동안 끈질기게 계속했다. 그 결과, 약탈된 문화재들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을 비롯해 세계 전역의 유명 미술관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게티 미술관에도 40여 점이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큐레이터 매리언 트루가 구매 결정을 내리던 시기에 매입된 것이었다. 트루는 불법 문화재 거래를 규탄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바로 그 시기에, 한편으로는 명백한 출처가 없는 불법 문화재를 사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당국은 2004년에 이 중간상 지아코모 메디치를 기소하고, 2005년에 트루를 문화재 불법 거래 공모자로 함께 기소했다. 이탈리아가 증거로 제출한 것은 물론 게티가 소장한 문화재 40여 점의 폴라로이드 사진이지만, 사진 증거가 없는 작품 한 점도 문제의 리스트에 들어 있었다. 바로 모간티나의 여신상이었다. 말하자면 명확한 증거가 있는 사건을 처리하면서, 방증만 있고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사건을 끼워 넣은 셈이다.

이탈리아 문화적 애국심의 상징이 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오랫동안 비밀에 싸여 있던 여신상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났다. 시칠리아의 한 미술품 수집가는, 1976년에 도굴꾼들로부터 모간티나 지역에서 여신상의 머리를 입수했으니 구입하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한 이탈리아 신문은 이 여신상의 몸통이 은밀히 고산지대로 옮겨진 뒤 세 조각으로 쪼개졌으며, 이후 홍당무 운반 트럭으로 위장된 채 나라 밖으로 밀반출되었다고 보도했다.

게티 미술관이 이 여신상을 구입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소유한 사람은 스위스의 미술품 수집가 렌조 카나베시였다. 그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접경지대에 거주하는 상인이었는데, 이 지역은 돈세탁과 밀수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약탈된 여신상이 문화재 암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86년, 카나베시가 영국의 딜러에게 40만 달러에 팔면서다. 이 딜러는 여신상을 다시 게티 미술관에 팔아넘겼던 것.

딜러에게 여신상을 팔며 작성한 영수증에서 카나베시는 “이 작품은 1939년부터 내 가족 재산이었으며, 현재 나는 이 조각의 유일한 소유자이다.”라고 썼다. 이탈리아 수사 당국은 이것이 거짓 증언이라고 보았다. 이탈리아에서는 1939년부터 국내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문화재가 모두 국가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티의 여신상을 오랫동안 취재해 온 <엘에이 타임스>의 탐사 보도 전문기자 랄프 프라몰리노가 조사한 바로는, 카나베시의 가족과 친척 중에 이 여신상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족 소유였다는 것이 거짓임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오랜 수사 끝에, 2001년에 카나베시는 약탈 문화재의 밀반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 도중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덕분에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여신상이 약탈 문화재 혐의를 받자, 게티 미술관은 법률회사를 고용해 이 문제를 조사하게 했다. 2006년에 법률회사 관계자들은 카나베시를 어렵게 만나, 이 조각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고 종용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파리의 시계 공장에서 일할 때 입수한 것을 스위스로 가져와 자신의 상점 지하에 보관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진 20여 장을 내밀었는데, 여신상이 조각조각 분해되어 먼지에 뒤덮인 채 비닐에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이 여신상이 약탈 문화재임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게티 미술관은 처음에는 이탈리아 정부와 공동 소유로 하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결국 2006년 11월에 여신상을 포기하고 반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소유 관계가 정리되자, 이탈리아는 게티가 이 여신상을 2010년 말까지 전시하도록 허용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큐레이터가 이탈리아에 불려 가 재판을 받고 파파라치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모습에 질겁을 한 다른 미술관 관계자들도 자체적으로 소장품 중 약탈 문화재 조사에 돌입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06년 2월에 이탈리아에 문화재를 반환한다는 협정에 서명했으며, 보스턴 미술관(10월), 프린스턴 미술관(2007년 10월), 클리블랜드 미술관(2008년 11월)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반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9월에는 미니애폴리스 미술관이 2,500년 된 꽃병을 이탈리아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매리언 트루는 2005년에 게티 미술관 큐레이터 직을 사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녀를 상대로 하여 민사와 형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으나, 게티의 문화재가 속속 반환됨에 따라 2007년에 민사 소송을 취하했다. 트루에 대한 형사 재판은 2010년 10월에 시효 만료로 중지되었다.

이탈리아 아이도네 박물관에 이전 전시된 여신상. (아이도네 고고학박물관 사진)

매리언 트루와 <엘에이 타임스>의 프라몰리노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이 조각이 아프로디테 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여신상이 새로 자리를 잡은 아이도네 박물관의 조각 밑 명패에도 그저 ‘여성 신상(Statue of a female deity)’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여신상의 정체가 무엇이든, 아이도네와 시칠리아 주민들이 그 반환을 크게 반겼음은 물론이다. 방송으로 중계된 여신상 반환 행사는 애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으며, 참석한 정치인들은 이탈리아의 문화 자산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했다. 여신 자신의 처지로 말하자면, 그녀는 좀 외로운 세월을 보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게티 미술관은 1년에 40만 명이 찾는 곳이다. 반면 여신상이 이사한 이탈리아의 시골 아이도네 박물관은 1년 방문객이 1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여신상 덕분에 이 숫자가 10배로 늘었다고 한다. 이것은 여신상에게도, 여신을 활용한 각종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마을 주민에게도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문화재 환수, 의지는 강하게 방법은 신중하게

지금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아홉 곳에서 빌려 온 한국 미술품 86점을 전시하는 특별전 ‘미국, 한국 미술을 만나다’가 열리고 있다. 미국 미술관 한국실에 전시된 한국 고미술 작품들을 고국으로 잠시 데려와 한자리에 모아보는 전시다. 박물관측은 이 특별전이 “미국의 박물관들이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게 된 오랜 역사와 미국에서 우리 문화의 정수를 대표하는 한국 미술품의 중요성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는 취지로 열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6월 5일 개막한 이 특별전은 8월 5일까지 두 달 동안 계속된다.

고려 청자와 불상, 그림들이 중심이 된 이번 특별전의 안내 자료에 따르면, 전시 작품들이 미국 미술관에 들어간 경로는 △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미술품을 수집했던 수집가로부터 작품을 기증받거나 구입한 경우 △ 한국에 체류했던 외국인이 구입하거나 선물 받아서 가지고 갔다가 미술관으로 들어간 경우 등이다. 이들 작품이 한국을 벗어난 것은 대부분 1970년이 유네스코 협약 체결 이전에 벌어진 일이며, 또 구매나 증여 등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반출된 작품들이어서,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식민 지배나 군사적 점령 시기에 유출된 문화재는 불법 유출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며, 더구나 한국은 문화재가 본국으로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문화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2010년 4월에 이집트에서 열린 ‘약탈유물환수 국제협력회의’에 그리스, 이탈리아, 중국, 인도 등과 함께 참여했고, 2011년에는 서울에서 ‘문화재환수 국제포럼’을 열고 ‘서울선언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현재 문화재청은 나라 밖에 존재하는 문화재를 꾸준히 분석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얼마 전인 5월 22일에도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보도 자료를 내놨으며, 올 7월에는 문화재 환수를 담당할 민간 전담 기구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런 상황이라, 이번 특별전에 소장품을 한국에 보낸 미국 미술관 관계자들은 꽤 신경을 썼을 수도 있을 듯하다. 자칫 문화재를 한국으로 보냈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미국 측이 이번 대여 과정에서 불안감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특별전에 참여한 미국 미술관 중 상당수가 최근 몇 년 동안 이탈리아 등에 소장품을 돌려보낸 경험이 있는 터라,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러나 특별전을 추진한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공식 기관 사이에 협약을 맺고 진행되는 대여 전시에서 문화재가 반환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측이 맺는 협약서에 전시품 반환을 명시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특별전을 담당한 신소연 학예사는 한국과 미국 미술관들이 그동안 전시와 관련해 여러 차례 협조하면서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행사를 추진하면서도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다. 신 학예사는 장기적으로 우리 문화재를 환수해 오는 것은 맞지만, 대상을 선정하고 환수하는 방법을 택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파악한 국외문화재는 현재 15만 점에 이른다. 환수 대상을 선정하는 일도, 실제로 환수를 추진하는 일도 기나긴 작업이 될 것이 뻔하다. 명백한 자료에 근거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가 있어야 환수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탈리아의 사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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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허광준(deulpul)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들풀넷 운영자 / 연구 및 강의 노동자, 매체 비평가, 콘텐츠 생산자 / 들풀미디어아카데미 대표 / 과거에 [(원)시사저널] [포린 폴리시(한국어판)] [미디어 미래] [미디어 오늘] 등에서 기자, 편집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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