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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우주

아버지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당신께선 그 점에 대해 정확히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추측건대, 아버지는 국민(초등)학교까지 졸업한 듯하다. 하지만 기계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아버진 젊은 시절부터 운전을 했다.

아버지는 체계적으로 배운 적 없지만, 자동차와 벽돌 가공 기계 등이 고장 나면 이를 스스로 고쳤다. 그뿐만 아니라 개량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약간의 임금을 받는 일에 종사하실 수 있는 것도 순전히 이런 기술력 때문이다.

아버지는 손재주 좋은 대장장이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과학기술에 대해 인류가 축적한 일반적인 지혜를 지식의 바탕으로 삼을 수 없었다. 소소한 발명을 해낸 어느 날은 일종의 ‘영구기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게 공유했다. 나는 열역학 법칙을 설명해 드리며 그런 영구기관은 아버지 생각과는 달리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세히 내 말을 들으신 후 며칠 더 고민해보시더니, 결국 수긍하셨다. ‘공학’이란 걸 공부한 적이 없으나 기계의 움직임에 관한 경험적 지식을 다수 체득하고 있는 아버지는, 과거 인류가 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공유하지 못했던 시절의 ‘손재주 좋은’ 대장장이나 수리공 같았다.

설 연휴에 난 아버지와 ‘별’에 관해 이야기했다 

설 연휴에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물으셨다.

“별은 어떤 시점에서 큰 폭발을 통해 형성된 것 아니냐?”
“네, 우주탄생에 관해선 빅뱅이론이 있어요. 그 가설이 현재로썬 과학계의 다수 견해예요.”

그 말을 듣던 아버지가 이렇게 덧붙였다.

“폭발 때문에 ‘태양’에서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들이 그럼 별인가?”

말하자면 그가 생각하는 우주는 태양계 정도의 크기를 가졌던 셈이다. 태양계 정도의 우주가 탄생 시점에서 폭발했고, 그 중심에 태양이 있으며 거기서 떨어져 나간 다양한 빛의 덩어리들이 별이 되었다는 것, 내 아버지의 우주에 관한 이해는 그러했다.

아버지에게 우주를 설명하는 건 어려웠다 

아버지는 복잡한 사회제도를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생에서 필요한 다양한 지혜와 삶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약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당신께서 이해한 우주의 크기, 그리고 당신께서 그토록 자신 있었던 기계의 운행원리에 관한 이해 속에는 인류가 수천 년간 축적한 지혜와 발견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고, 식민지 시대 일제에 의해 징병 되었다 살아남았으나 평생 심한 천식을 갖고 산 내 아버지의 아버지, 즉 내 할아버지는 징병에서 돌아온 후 평생 일을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혼자 일해 아버지와 고모 다섯 명을 길렀다. 아버지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일터에 가 돈을 벌었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강원도 지역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식과 문화, 경제의 모든 흐름이 태백산맥에 막혀 차단된 섬 같은 장소였다. 동쪽에는 동해가 있고, 부산과 같은 주된 무역항은 없어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어떤 문명의 요소도 없었다.

아버지에게 열역학 법칙을 설명할 때보다 우주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나는 우선 하늘에 빛나는 그 별들은 모두 우리의 태양과 같은 크기이거나 훨씬 더 클 수도 있으며, 태양처럼 그 주위에 수많은, 지구 같은,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아버지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내 열등감의 원천, 고립과 단절… 

나의 가장 큰 불만이자 열등감의 원천은 내 아버지가 지식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가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부모 아래서, 다양한 지적 자극을 받으며 자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과 연결된 도시에서 자랐으면 또 얼마나 좋았을까. 난 늘 불만이었다.

그랬다면 15살까지 방 안에서만 있어야 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외국어를 일찍 접할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고, 그 나이 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실제 그런 환경이었어도 내가 그랬을까…)

지식욕이 크던 어린 시절, 내 질문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답변과 서적들을 아버지가 제공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장애를 갖게 된 점에 대해 부모님을 원망해 본 일이 전혀 없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물리적으로 완전히 소외되고 고립됐던 그 어린 시절, 더 풍부한 지적 경험을 제공해주지 못한 환경을 부모님과 연결해  탓해본 일은 솔직히 많다.

아버지의 우주 

이제 그 모든 감정을 초월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도 나의 아버지가 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공유할 수 있고, 약간의 사회적 인맥과 경제력으로 나를 독일 같은 곳으로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서른 살이 훌쩍 넘어도 그 감정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지리적, 경제적 조건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던,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이 기계 장인의 삶은 때로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가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작은 우주, 아무런 물리적 법칙도 없이 스스로 깨우쳐야 했던 인공물들의 운영 원리, 그런 험난하고 외로운 가운데서 자신과 전혀 다른 아들(어린 시절에는 신체적으로 완전히 달라 이해할 수 없었고, 나이가 든 후에는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아들)과 함께했을 삶은 얼마나 헛헛하고 고립된 일이었을까.

나는 읽기 편하게 쓰인 천문학책을 한 권 사기로 했다. 그래서 우주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당신의 아들은 그 세계 속에서 생각보다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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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원영
초대필자. 변호사

휠체어를 탄다. 글을 쓴다. 법을 공부한다.

작성 기사 수 :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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