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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시절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는 부실경영으로 부채가 누적되어 대우자동차에 인수되었습니다. 2002년에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는데 그때 쌍용자동차는 빼고 인수했어요. 2004년에는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의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상하이자동차

하지만 2008년 누적적자로 자본잠식이 되었고 2009년 결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의 경영권을 포기했습니다. 주인이 몇 차례 바뀌는 동안 쌍용차의 경영은 흔들렸습니다. 기름값도 오르고 제도와 가족유형도 변하면서 사람들은 소형차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SUV와 대형차를 주로 생산하던 쌍용차는 점차 시장에서 입지를 잃어갔습니다. 1인당 생산성도 경쟁사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낮았습니다.

비극의 뿌리, 쌍용차 980명 정리해고(‘2009)

쌍용차는 2009년 6월 980명을 정리해고했습니다.

전체 인력의 13.7%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해고 무효를 외치며 파업과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해고 무효소송도 했습니다. 정리해고를 위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 회사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는지 등의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만들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2009년 3월 19일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쌍용자동차 회계감사조서 변조사건 진상 규명 및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736982.html
2009년 3월 19일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쌍용자동차 회계감사조서 변조사건 진상 규명 및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거나 사측이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상위 법원인 대법원은 지난해 쌍용차 정리해고는 유효하다고 서울고법의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그동안 26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이 자살이나 병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대법원, "쌍용차 정리해고는 적법하다." 2014년 11월 13일 오후 원심을 뒤집는 대법원 판결 직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과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대법원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http://www.vop.co.kr/A00000814569.html
대법원, “쌍용차 정리해고는 적법하다.” 2014년 11월 13일 오후 원심을 뒤집는 대법원 판결 직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과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대법원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 

자동차 생산직군이 속해있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쌍용차 평택공장의 76m 높이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굴뚝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http://www.vop.co.kr/A00000831547.html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굴뚝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두 사람을 응원하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SNS 캠페인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가 번지고 있습니다. 캠페인 지목을 받은 사람은 후원기금 1만 원을 이체하고, ‘힘내라! 김정욱, 이창근! 응답하라 쌍차’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촬영한 인증샷을 SNS에 올린 뒤 3명을 지명하는 방식입니다.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 규칙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 규칙

Zygmunt_Bauman_by_Kubik‘응답하라 쌍차 챌린지’ 지명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였습니다. 세기의 지성 지그문트 바우만도 동참했는데 뭘 망설이느냐, 이게 고민할 일이냐 물으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경영자의 판단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쌍용차 자료를 보면 어떤 형태로든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스웨덴 ‘볼보’ 사례 

스웨덴의 볼보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상황을 거쳤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볼보는 4개월 동안에 2,900여 명을 정리해고했습니다. 뼈를 깍는 조정에도 아랑곳없이 볼보는 결국 중국에 매각되었습니다.

이때 노사정이 머리를 모았습니다. 스웨덴 정부와 지자체가 개입해 재교육과 전직을 알선했습니다. 해고 통지 1년 만에 2,635명이 전직했습니다.

경영상황이 좋아지자 볼보는 해고노동자를 우선 고용했습니다. 정리해고를 단행한 지 2년 만에 1,556명이 볼보로 복귀했습니다.

볼보

스웨덴, 20세기 초까지 극렬 장기파업 유명 

물론 볼보처럼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좋았겠지요. 하지만 한국과 스웨덴은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러운 해고는 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 노사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잡힌 스웨덴과 달리 우리의 노사는 서로를 투쟁의 대상으로 대합니다.

스웨덴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천지에 처음부터 좋은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20세기 초만 해도 스웨덴은 극렬한 장기파업으로 유명했습니다. 농성 중에 군대가 발포해 몇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상황이 험상궂었습니다. 노사는 이대로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세기 말 당시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일을 찾아 이주한 늙고 힘없는 아버지와 펠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복자 펠레' (빌 어거스트, 1987)
19세기 말 당시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일을 찾아 이주한 늙고 힘없는 아버지와 펠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복자 펠레’ (빌 어거스트, 1987) 영화는 펠레가 고국으로 돌아가 위대한 노조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을 암시한다. 스웨덴은 1930년대까지도 가난한 유럽 국가에 불과했다.

스웨덴 노사정 대타협, 살트셰바덴 협약(‘1938) 

1938년 유명한 휴양지인 살트셰바덴에 노사가 모여 앉았습니다.

스웨덴경영자연합회(SAF)와 노동조합총연맹(LO)은 그 자리에서 가진 패를 다 내려놓았습니다. 회사가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노조원들을 설득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정부가 나서 무상에 가까운 의료서비스와 교육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기업은 회사가 일군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내는 대신 지주회사를 통한 소유 구조와 차등의결권을 보장받았습니다. 스웨덴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인 스웨덴 노사정 대타협(1938)의 공간인 그랜드 호텔 샬트셰바덴  (2013년 모습, 위키백과 공용)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6/Grand_Hotel_Saltsj%C3%B6baden_fasad_norr_2013.jpg
역사적인 스웨덴 노사정 대타협(1938)이 있었던 그랜드 호텔 살트셰바덴 (2013년 모습, 위키백과 공용)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 이후 노사는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1946년부터 1968년까지 무려 23년간 사민당 출신 총리로 스웨덴을 이끈 타게 에를란데르는 격주로 목요일마다 재무장관 주재하에 직군별 노사대표를 불러모아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목요클럽이라 불리는 이 모임을 통해 노사가 마주한 현안은 극한 상황에 치 닫기 전에 해결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대화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350번 만났습니다.” 

2013년으로 기억합니다. 파업으로 인한 경제손실 제로를 자랑하는 스웨덴 노사관계의 비결을 질문하자 당시 스웨덴 재무장관 안데르스 보리(Anders Borg)의 답변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노사정이 350번 만났습니다.”

안데레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
안데르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

참고로 보리 장관은 진보계열이 아닌 보수정권 시절 부르주아로 분류되는 자유당 출신입니다.

스웨덴의 노동조합조직률은 67.7%(2013)입니다. 한국은 10.3%(2012)입니다. 전체 노동자 중 조합가입자의 비율을 놓고 볼 때 스웨덴 노동조합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조직입니다. 등 뒤에 과반에 달하는 수의 노동자가 있는 무시 못 할 조직이기 때문에 협상력을 갖고 사측과 동등하게 논의를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 결성률 추이

우리 중 다수는 어떤 형태로든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 자체를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여깁니다. 그런 우리는 어쩌면 끝자락까지 내몰려 싸우는 노동조합의 고군분투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미안한 직장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경꾼 전락한 정부와 지자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슨 이유가 되었든 누군가를 끝으로 내모는 것은 못된 방법입니다.

끝자락에 내몰려 굴뚝 위에 서 계신 두 분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 방식의 투쟁 방식은 경영진을 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이 추운 날 저러고 있는데, 저 회사 문제 많은 회사구나. 쌍용차 사도 되려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쌍용차 측에 불편한 맘을 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에 더 화를 내야 하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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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노동자(노조), 정부 중에서 문제 해법의 칼자루는 누가 쥐고 있나.

이상헌(국제노동기구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정부다. 노조는 현재 조직률이 10%에 불과하다. 기업은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할지가 중요한 이유다. 정부가 정확한 비전을 가지고 방향을 잡아주면, 기업이나 노조가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 경제 시스템의 조건을 고려하면, 정부의 주도권 확보가 아주 중요하다.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해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실질적인 사회 보장제도와 소득 이전 정책, 사회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

편지 쓰는 경제학자가 바라본 세상 – 이상헌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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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 오른 쌍차 노동자, 김정욱 이창근 (사진 제공: 이창근)
굴뚝에 오른 쌍차 노동자, 김정욱 이창근 (사진 제공: 이창근)

전 아직 어떤 쪽이 맞는지 모르겠고, 이런 방식의 투쟁을 바라보는 것이 힘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말을 거는 사람들을 모른 체하면 결국 지쳐 떨어져 나갈 거라는 사회적 학습효과에 반대하기 때문에 두 분을 응원합니다. 쌍용차 문제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회 토론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굴뚝 위의 두 남자 이창근 김정욱 두 분, 기운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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