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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2015년 1월 17일, 예술 분야 창작자의 ‘작업과 밥벌이’를 주제로 열린 ‘접속유지’ 좌담회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1. 신호들의 교차점에 멈춰 서서
2. 문학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3. 미술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4. 무용 음악 영상 여성학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5. 창작자 파란만장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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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5년 1월 17일 창신동의 대안공간 ‘지금여기’에서 예술 분야 창작자의 밥벌이를 말하는 좌담회 ‘접속유지’를 열었다. ‘밥벌이로 이어지는 작업, 작업으로 이어지는 밥벌이’를 주제로, 창작과 노동을 병행하는 12명의 패널이 작업과 생계의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실천과 고충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지금여기
대안 공간 ‘지금여기’

트윗 한 줄이 불씨가 되어 

1월 4일,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예술 작업을 하거나 취직과 바로 직결되지 않는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던진 아이디어가 의외의 호응을 얻으며 하루 만에 지면과 공간이 섭외됐고, 미술, 문학, 영화, 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개전투 중인 12명의 패널을 모을 수 있었다.

트윗이 불씨가 되어 https://twitter.com/urbancaving/status/551760564351823872
트윗이 불씨가 되어 (@urbancaving)

좌담회 타이틀인 ‘접속유지’는 “과거 VT 통신망 이용할 때, 로그아웃 안 당하려고 채팅방에 일정시간마다 특정 문구가 입력되도록 설정한 ‘접속 유지’ 라는 기능이 있었다”는 한 ‘트친’의 회고에 착안한 것으로, 생업에 전념하면서도 작업으로부터 ‘로그아웃’ 되지 않으려는 창작자들의 분투를 비유하고 있다. 좌담회의 포스터 이미지 역시 모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트친’이 선뜻 기증해 준 것.

매체, 공간, 참여자 섭외를 비롯해 타이틀, 홍보 이미지까지 트위터라는 관계망으로 만들 수 있었기에, 아이디어는 내가 냈지만 완성 단계에 이르러서는 타임라인의 공동 작업이 된 듯 했다.

접속유지

150여 명 창작자들, 창신동 언덕에 모이다 

17일에는 아이디어의 태동부터 지켜 본 트위터리안들, 그들의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까지 150여 명의 청중들이 창신동의 가파른 언덕배기에 모여들었고, 좌담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세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씬이 다 죽은 걸까,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를 되뇌던 예술가들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행사라는 촌평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이벤트답게 ‘정모’를 갖는 듯 들뜬 기대감 속에 ‘접속유지’의 뚜껑이 열렸으나, 예상대로 첫 회는 예술인의 경제활동이 갖는 취약점, 수익구조의 모순이 ‘드러나는’ 자리에 그쳤다. 물론 이것은 ‘먹고사니즘’을 주제로 급조된 기획의 당연한 한계일 것이다.

창신동 언덕에 모인 창작자들
창신동 언덕에 모인 창작자들 (사진 제공: 정언)

그러나 패널들이 각자의 하청노동에 대한 썰을 푸는 동안 자기객관화와 작업의 당위성 부여, 자존감 유지를 위한 실질적인 팁이 오갈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좌담회의 큰 수확이었다. 각자 분야는 다르지만 생업과 작업 사이에서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예술적 역량과 직능의 한계를 파악하고 생활의 사이클을 자신에게 최적화된 방식으로 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였고, 그 가운데 그려지는 어떤 패턴이 생활인과 예술인을 잇는 연결고리로서 윤곽을 드러냈다.

노동의 동력을 창작에서 찾고, 다시 창작을 통해 노동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순환 구조, 창작과 노동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그 대응의 방식을 체화하는 삶이 패널들의 적극적인 발화를 통해 구체성을 띨 수 있었고, 그 빤하지 않은 말들이야말로 ‘접속’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단위의 해법이자,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먼저 건져내야 할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가지 질문 

좌담회는 크게 다섯 개의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화제가 물 흐르듯 전개되어 각각의 질문이 맺고 끊어지는 맥락이 명확하지는 않다. 앞의 세 질문을 다루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마지막 질문은 지원금을 받아본 패널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1. 작업과 밥벌이를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가?
  2. ‘밥벌이하는’ 내가 ‘작업하는’ 나를 침범하고 있다. 그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가?
  3. 고립감과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작업자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4. 작업과 밥벌이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공유하고, 어떤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는가?
  5. 예술인 창작 지원, 복지 정책에 대한 경험담이 있는가?

이후 좌담회는 아트 상품의 판매, 캔들 제작, 독립출판 등 상품이나 컨텐츠의 판매에 대한 경험담, 그리고 국가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복지재단의 선정 기준과 기금 운영의 방만한 실태에 대한 경험담과 지적이 오갔고, 이 논의는 ‘눈먼 돈’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후 타임라인에까지 이어졌다.

좌담회가 끝나고…  실망한 사람들 

좌담회가 끝나고 트위터를 통해 피드백을 모아보니, 부정적인 의견이 반수 이상이었다. 패널이 많아 각자의 하청노동에 대한 썰을 푸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됐고, 그 결과 밥벌이의 대안을 탐지하고자 왔던 사람들 중 다수가 실망을 안고 돌아갔던 것이다. ‘공감과 위로의 자리는 이제 그만하자’, ‘생존 방식 자체도 거기서 거기인데 모여서 얘기하면 불안감만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대개는 기획자로서 어느 정도 예상했었던 반응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의제를 설정하여 즉각적인 약진이 가능한 움직임만 살아남는다면, 첫 술에 모두가 배부르기를 바란다면, 즉흥적인 연대를 빌어서라도 고립된 개인이 묶일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냉소와 함께 던져진 ‘위로’, ‘테라피’ 등의 키워드에서 진부함 대신 가능성을 보는 사람이기에, 다시 이런 자리를 마련할 용기를 잃지는 않았다.

좌담회로부터 3주가 지났고, 반나절만 지나도 불타는 논쟁이 까무룩하니 묻혀 버리는 트위터의 특성상 ‘접속유지’의 태그는 이제 검색으로만 볼 수 있다. 좌담회에 참여한 패널과 청중 일부는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로, 또 ‘기본소득운동’으로, 또는 ‘표준계약서와 아티스트 피(Artist Fee)’를 말하는 움직임이나 레즈비언들이 주최하는 퀴어 퍼레이드 프로젝트인 ‘보지파티’ 등으로 흩어져 갔다. 사실 ‘접속유지’에서 다뤘고, 다루고자 한 이슈들은 2012년 발족한 ‘예술인소셜유니온’을 통해 이미 공론화되어 지금까지도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접속유지

신호들의 교차점에서 멈춰 서는 일 

이런 상황에서 ‘접속유지’를 또 연다 해도, ‘밥벌이로 이어지는 작업, 작업으로 이어지는 밥벌이’라는 주제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예술가의 생계에 얽힌 문제는 공동체의 각성과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살림살이를 더 나아지게 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정치적 행동으로 나아가거나, 이미 존재하는 연대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좌담회에서 그랬듯, 창작과 노동 사이에서 왕복 운동하는 개인이 어떤 식으로 양자에 접속하고, 노동의 당위성, 창작의 당위성, 존재의 당위성을 획득해 나가는지 말하는 것은, 연대 이전에 선행해야 할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이미 다른 이들의 입으로 말해진 현실도 다시 한 번 내 입으로 뱉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건져 낸 언어들만이 지금 여기, 내 앞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진지한 동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정한 접속유지의 신호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멈춰 서는 일, 그 일이 어떤 합당한 강령의 제시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Ron Cogswell, CC BY  https://flic.kr/p/eGikVR
Ron Cogswell,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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