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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sense]나는 서른둘, 지방대학교 시간강사다. 출신 대학교에서 일주일에 4학점의 인문학 강의를 한다. 내가 강의하는 학교의 강사료는 시간당 5만 원이다. 그러면 일주일에 20만 원, 한 달에 80만 원을 번다. 세금을 떼면 한 달에 70만 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오는데, 그나마 방학엔 강의가 없다. 그러면 70만 원 곱하기 8달, 560만 원이 내 연봉이다.

박사 수료 때까지 꼬박 메꾼 학자금 대출에서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떼어 가고, 이런저런 대출과 공과금을 하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10만 원이 고작이다. 이걸로 남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신용등급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고, 전화가 오면 앞자리가 02-1588로 시작하는지 확인 후 전화기를 돌려놓는다.

이런 생활이, 몇 년째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학생들에겐 허울 좋은 ‘젊은 교수님’이다. 그들은 내가 88만원 세대보다 더 힘들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까.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1. 책 읽기 좋아하던 아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해 많이 읽었다.

책 읽기 좋아하던 아이는 결국 지방대학에 갔다 

내가 살던 서울 강북의 가난한 산 오름 동네에서는 “저 집 아이가 그렇게 책을 좋아한다면서?”, “밥도 안 먹고 본다던데?” 하는 오지랖 많은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이 항상 있었다. 내 부모님은 그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셨고, 나도 싫지 않았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자주 교보문고에 들러 고심해 고른 책 한 묶음을 내게 건넸고, 나는 그것을 전기구이 통닭만큼이나 반갑게 받아 들었다.

cotaro70s, CC BY ND https://flic.kr/p/5VWmi4
cotaro70s, CC BY ND

하지만 책을 읽는 습관이 수학과 영어 점수까지 담보해 주지는 못했다. 중학 시절까지는 어떻게 버텼으나 수학1, 지구과학, 물리, 화학 등으로 이과 기초 과목이 분화되며 나는 거의 항복해 버렸다. 국어, 역사, 사회 과목만으로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자주 했다.

결국, 수능 점수에 따라 꽤 먼 지방 대학교의 인문학부에 진학했다. 4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내려가며 ‘참 멀리도 간다’ 싶었지만, ‘인문학’이면 아무 대학이면 어떠랴, 하고 말았다.

출신 대학이나 강의하고 있는 대학을 밝히고 싶지 않아 ‘A대학’으로 하겠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면 행복할 거야’, 막연히 믿었던 내 과거를 부정하는 일은 할 수 없어서 이를 악물고 했다. 4년 내내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업이 많았지만, 한 학기에 하나 이상은 내게 자극을 주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즐거웠다. 공통영어 성적이 여전히 발목을 잡기는 했으나 2학기부터 8학기까지 나는 꾸준히 장학금을 받았다.

군대에 가기 전 지금은 내 지도교수가 된 분의 전공 강의를 수강하며, 나는 전에 없던 자극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10년 넘게 연구해 이룬 성과를 우리에게 ‘즐겁게’ 이야기했다. 들으며 나 역시 즐거웠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허울이나 허상이 아니라 이렇게 실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는 “가끔 대학원생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Leon Fishman, CC BY https://flic.kr/p/bgtvkD
Leon Fishman, CC BY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하다  

나는 학기 말에 이르러 그의 연구실을 찾아 대학원 진학에 뜻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대단히 반기며 선배를 한 분 추천해주셨는데, 교수가 전화기를 든 지 10분도 안 되어 대학원생 한 명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나는 저서 한 권을 선물로 받았고, 연구실을 나와 그 대학원생과 마주 앉았다. 그는 시내에서 밥을 먹다가 지도교수의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밥을 시켜 놓고 한 숟갈 먹을까 하던 찰나에 지도교수의 전화가 온 것이고, 그는 수저를 내려놓고 택시를 잡아타고 연구동까지 온 것이었다. 그때는 그 급박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 네, 그러시군요”하고 말았다. 그는 내게 와서 공부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고, 몇 가지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해 주고 다시 밥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나는 곧 군대에 갔다. 지금에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도교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었다면, 그는 밥을 먹다 뛰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나는, 다시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그는 내게 새로 쓴 저서 한 권을 줬고, 내년부터 석사생으로 함께 공부하자고 했다. 마지막 학기에 그가 개설한 전공 수업을 들으며 나는 역시나 즐거웠다.

유일한 걱정은 입학비까지 500만 원이 넘는 대학원 학비였다. 도저히 부모님께 대학원에 갈 테니 지원해 달라, 할 염치가 없었다.

Hans Splinter, CC BY https://flic.kr/p/7acLp9
Hans Splinter, CC BY

26살,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다 

나는 그 후 대학원생들의 술자리에 한 번 간 일이 있다. 술자리는 시내 치킨집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정도였다. 나는 그들에게 조심스레 학비가 얼마나 되는지, 생활은 되는지 물었다. 그중 한 대학원생이 조교활동을 하면 등록금이 해결되고 연구 인건비를 받으며 한 달에 40만 원 정도의 용돈이 생길 거라고 했다.

어라… 그러니까 조교로 학교사무실에서 근무하면 등록금이 나오고 교수에게 연구 인건비를 받으면 용돈까지 생긴다는 거였다. 나는 두 생각하지 않고 대학원 입학원서를 썼다.

집에 가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두 분이 놀라시기 전에 대학원 등록금부터는 직접 해결하겠다고 장담을 했다. 학부 때의 등록금은 300만 원 정도였는데 1/3 이상 장학금은 빼먹지 않고 받았다.

그래도 나와 동생의 등록금은 아버지가 외벌이하시는 우리 가계에 큰 부담이었을 것이고, 나는 대학원부터 공부에 필요한 돈을 내가 마련하겠다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독립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신 대학원 선배 둘과 한방을 쓰게 됐으니 1년 치 집세 150만 원만 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버지는 두말 않고 150만 원을 통장으로 부쳐 주셨다.

2008년 봄, 26살인 나는 그렇게 이 삶을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David, CC BY https://flic.kr/p/k3iA6
David, CC BY

2. 대학원 조교, 다시 이등병이 되다 

2007년 12월, 대학원 입학이 예정되자 조교실장이 나를 포함한 그 해의 대학원 신입생 셋을 호출했다.

나는 사교성이 없다 

나는 학과사무실에서 함께 신입생이 된 K와 S를 처음 만났다. 둘은 나보다 한두 살씩 어린 여학생들이었다. 어느새 서로 꽤 친해져 있었다. 내가 인사하자 둘은 반갑게 맞아주기는 했으나, 뭔가 잘 어울릴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닌 것을 서로 알았다. K는 술자리를 주도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은 이런 일이 있었다.

K: 오빠 내가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조용히 밥만 먹을게.

나: 니가 조용하니까 참 좋다.

내가 원체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동기들과의 사이는 애초부터 별로 좋을 수가 없었다.

조교실장은 박사과정생으로 나보다 5살쯤 많았다. 박사과정생인 조교실장이 있고, 그 밑에 박사 석사 과정생들이 조교가 되어 학과 사무실의 행정을 보는 시스템이었다. (학과장이나 직원이 행정을 주로 책임지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러하다.) 조교실장은 조교시스템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5일 오전 8시~오후 6시 무급 근무

그는 우리에게 반드시 조교 활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미 조교 활동을 해야 등록금을 보전받을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기에, 으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 셋을 무척 당황케 했다. 요컨대 주5일 근무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급근무를 방학 내내, 2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하라는 것이었다.

JD, CC BY  https://flic.kr/p/bXANVG
JD, CC BY

나는 조금 과하지 않은가 싶어서 신입생이 셋이니 로테이션으로 근무하면 안 될지 물었다. 그러자 사무실 소파에 앉아 이쪽을 귀담아듣고 있었던지, 2학기쯤 위의 여선배 하나가 나직이 “쟤 지금 뭐라는 거야”라고 했다. 조교실장은 이것이 대학원의 전통이라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학원 측에서 신입생들에게 공부할 자리를 마련해줬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꽤 긴 시간 동안 훈계가 이어졌다.

공부해라, 얼마나 좋으냐, 세상에 이렇게까지 해주는 대학원 선배들이 어디 있냐, 이런 공간 내주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냐…

동기인 K는 자신은 가족과 매번 3박 4일의 휴가를 다녀오니 그때의 근무를 조정해달라고 했는데, 조교실장은 “올해는 못 가는 거지 뭐”하고 무심히 답했다. 학과사무실에서 나온 우리 셋은 모두 짜증이 나 있었다. K와 S는 이게 말이 되느냐고 입을 삐쭉거리며 함께 어디론가 갔고, 나는 자취방으로 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대학원 조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일 8시에 반드시 문을 열어야 한다 

나는 학교에서 도보로 약 30분 떨어진 곳에 살았다. 대학원 석사과정생 형님 둘, B(30)와 L(28)과 같이 자취했는데, 두 분은 모두 차가 있었고 나는 자전거 한 대뿐이었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방을 얻으려 했으나 그들의 제안으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B와 L 모두 학부 때 적당히 안면이 있는 선배들이기도 했고 거절할 명분이 딱히 없었다.

그들은 학교가 다소 멀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매일 아침 7시면 일어나 8시 전까지 학교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차나 골라 타고 같이 가면 되지 않겠느냐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출근 첫날 둘은 8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성격이 조금 부드러운 B를 먼저 조심스레 깨웠는데, 그는 짜증을 내며 돌아누웠다. 그래서 L을 깨우자 그는 어쨌든 나를 8시 5분까지 데려다 주었다.

Simon Law, CC SA https://flic.kr/p/4bGEJF
Simon Law, CC SA

8시 5분에 사무실 문을 열자 동기 둘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조교실장을 포함한 선배 둘이 나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왜 늦었는지 내게 물었고, 나는 늦잠을 잤다고 답했다. 걸레를 빨며 잠시 이등병 생활이 떠올랐다. 나는 그 이후에도 몇 번 룸메이트들을 깨우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고 7시에 일어나 씻고 짐을 챙기고 7시 반에 자전거를 탔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노트북을 들고 눈길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노트북이 박살 나기도 했다. 그래도 8시까지 사무실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이등병 시절과 다를 것 없는 신임 조교

사무실 청소는 메뉴얼이 있었다.

문을 열어 소화기로 고정시키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일단 빗자루로 바닥을 ‘잘’ 쓸고, 대걸레를 빨아 와 바닥을 ‘잘’ 닦고, 걸레로 눈이 닦는 모든 곳을 ‘잘’ 훔쳐내고, 교수와 강사들을 응대할 커피를 내리고, 컴퓨터를 켜 공문을 확인해 출력해 놓고, 화분에 물을 주고 등등, 지금은 잘 생각도 나지 않지만 적어도 두 배는 더 메뉴얼이 있었다.

8시에 청소를 시작하면 거의 30분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한 번은 청소하고 있는데 3학기 위의 석사과정생 J가 들어와 이렇게 말한 뒤 나가기도 했다.

“예전에는 흰 장갑을 끼고 형광등 위를 훑어 보고 까맣게 되면 욕 먹었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 그지?”

대학원의 갑을 관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는 원래 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좋게 말하는 법이 없어서 그저 이렇게 저렇게 잘하면 된다고 말하면 될 것을 “이렇게 하면 죽는다”라며 내게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이등병 군대 훈련병

이건 군대에 갓 들어온 이등병을 갈굴 때 선임들이 기를 죽이기 위해 주로 하는 수법이었다. 이런 것을 당하며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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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댓글

  1. 4학점이면 일주일에 4시간일하는거 아닌가요..어찌 88만원세대랑 그렇게 연봉을 비교하시는지..

  2. 글쎄요, 수업을 준비하거나 과제를 채점하는 시간도 있어야겠죠. 그렇게 따진다면 4시간 보다 훨씬 일하시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요? 학생들도 수업을 4학점치 듣는다고 일주일에 딸랑 4시간만 공부하고 마는 건 아닐테니까요.

    원한다고 강의를 더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요.

  3. 정말 안타까운 글이네요.

    4년동안 지각 결석 안한게… 대단히 열심히 살았다는 노력이라고 생각하시는 군요;;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때 국영수를 하기 싫치만, 지방대에 가는 것보다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지방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타지만 다른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 대가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남과 잘지내고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필자님. 죄송하지만 과연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사회가 잘못되고 부당해서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들 만큼 노력을 안했기 때문일까요.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정말 힘들게 몸을 써서 노력하고, 또 남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삭히고 일하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필자님이 받는 대학의 시간당 강사료 5만원은, 그사람들이 낸 세금이 정부로 그리고 다시 대학으로 가서 필자님이 받게 된 겁니다.

    세상히 부당하고 잘못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4. 계속.. 이라 계속 읽어봐야겠지만… 동의한다는 생각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일종의 파랑새 증후군으로 보이기도 하고…

  5. 뭐야.. 인문학 안팔리는 학문 선택하면 당연 댓가를 치르는거지.. 본인이 좋아서 공부하는거면 투정을 말고 행복하게 생각해. 돈벌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장사라도 하지그래?

  6. 바로 옆 글에서는 꼰대질을 하지 말라는 댓글이 달리고, 또 바로 옆 만화에서는 노력과 들인 시간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비웃는 사람들 디스를 통쾌하게 여기다가…

    여기 댓글 분위기는 사뭇 다르군요. 이 정도 노력은 누구나 다 한다. 티내지 말라. 뭐 이런 건가요?

    이 차이는 뭘까요…. (댓글을 같은 사람이 쓰는 것도 아니고 읽은 사람도 같은 사람들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요……)

  7. 시간강사인 지인이 댓글보다가 응급실 갈 뻔 했대요.

    이 글은 글쓴이가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도, 그래서 글쓴이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열폭할 글도 아닌데, 왜 다들 알아서 꼰대질들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를 가지고 힘들다고 하느냐?” 라고 묻기에는 우리는 너무 노동의 가치를 단순하게 환산하는 것 아닙니까?
    “더 힘들게 사는 사람도 많다”는 말도 마찬가지죠.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든 덜 힘들게 사는 사람이든 – 이것조차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불가능하죠. – 최대한 객관적인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권리”는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허락받는 것을 최소치로 하여 그 이상으로 말이죠.
    최저임금이 괜히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이 “노동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설정되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조차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사회 속에서 “너 개인이 열심히 일하라”고 강요하는 게 인간적으로 말이 되나요?

    “사람에 따라” 업무처리능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업무처리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보고서를 올리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음반 발매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 내용도 다양하죠. “사람에 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보고서 작성을 누군가는 1시간에 끝내는데 누구는 30분에 끝낼 수 있죠. 하지만 1시간 걸린 사람의 보고서가 비교적 더 자세하고 30분 걸린 사람이 덜 자세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간단하게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사업체와 정부는 “사람에 따른” “업무처리능력” 이 두 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최대한 배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건강한 노동환경 위에서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한국이란 나라가 과연 “최대한 배려”합니까? 정말 그렇다면 글쓴이 개인의 무능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쓴이 개인의 무능을 지적할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네요.

  8. 아래 댓글에도 적었지만 세상이 부당한 게 맞다면 그냥 부당한 거지 그걸 가지고 자격론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어요. 사람이 힘든데 힘들다고 말도 못하게 하나. 왜 그렇게들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시는지. 자기 입에서 신음나오는 거 간신히 참고계셔서 그런거라면 차라리 내세요. 아프면 누구나 비명을 지릅니다. 한국은 비명도 못 지르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죽기 전에 아프나 소리는 하고 가야죠. 그것도 못하면 억울해서 어찌 살겠습니까.

    시간강사 처지는 국내 어디든 비슷하군요…

  9. 전형적인 꼰대st 반응이군요.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도 안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10. 아들아 주5일 오전 8시~오후 6시까지 일하고 돈도 못 받고 일하는 건 너 때문이다….?

  11. thelife님이 어떤 힘든 상황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해서, 이 글의 필자의 상황과 노력이 폄하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기를 돌아보기에 앞서 (자기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으셨네요), 필자가 처한 상황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는게 나아보입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12. 필자님께는 죄송하지만, 직업을 다시 고려해보시는 것은 어떠실지요?
    대학원생의 모습은 명문대나 아니나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이네요. 내가 고생했으니 너도 고생해라~라는 끝없는 악순환의 심리… 기득권(교수와 선배)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는 요원합니다.
    정말 안타깝지만, 국내 명문대 혹은 해외 명문대를 나와서도 교수임용 전까지 시간강사의 삶은 필자분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니까요.
    그럼 학교들은 같은 값에 어떤 사람을 쓸까요? 특별한 케이스 외에 보편적으로 학벌이 좋지 못한 경우, 좋은 사람보다 선택받기 어려우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생계는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요?
    내가 하고싶고 좋아하는 일로 생계가 되면 정말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해은에서 포닥까지 마쳤더라도 생계를 위한 직장은 공부한 것과 다른 분야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빠른 방향선회가 필자님을 위해 더 좋으실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스레 말씀드려봅니다.

  13. 노동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니…

    좀 무리하게 논지를 이끌어 가시는 것 같습니다.
    가치 라는 것은 원래 주관적인 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가 무조건 정당하다는 생각이 있는것이 아니라면요….

    객관적인 가치가 시장에서 조정된 가치라면, 그것은 어떤 개인이 부여한 가치가 아니니 객관적일 수 있겠지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업무처리능력과 노동에 대해서 시장에 단가에 따른 임금 받는 임금의 가치가 올바른 것이고요.

    결국 임금이란 업무처리 능력에 따라, 시장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계약한 거래입니다. 그 거래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지만, 거래를 해놓고도 그 원인을 사업체나 정부에게만 돌리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상대가 그 거래를 어긴다면 그것은 법적으로 처리하시거나, 불응하실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이나 정치적 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글쓴이의 현실로 돌아와 정부가 주관적으로 정한 최저임금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도 이 글쓴이는 스스로 계약하여 최저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현실을 다르게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그 현실이 어렵고 다수가 이기기 어려운 경쟁적인 것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설정하고 그것으로 현실을 왜곡한다면 우리는 진짜 자신의 현실을 또 자신을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의 현실을 개선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4. 꼰대 st의 반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 단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성실이라는 것의 정도와 수준을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에 성실한 사람은 가장 성실한 사람과 가장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 뿐이지요.

  15. 그렇겠네요. 필자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필자가 자신에 대해서 쓴 부분이 없기에 저도 쓸 이유를 못느끼긴 합니다. 윤강님도 마찬가지 이실거고요.

    필자의 글을 읽어도 공감이 안되는 것이 저의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가 자신의 의견(사실처럼 보이지만 의견)을 썼듯이 저도 의견을 쓸 수 는 있을 것 같습니다.

  16. 끝까지 읽었어요. 서로의 상황은 다르지만.. 인간적인 애환으로 비슷한 정서를 느낍니다..^^.

  17. 필자님이 대학에서 일하지 않으면 누가 잡아간다고 협박이라도 했나요? 그래서 좋지 못한 처우에도 어쩔 수 없이 일하고 계신건가요?
    그런게 아니라면 참 이해가 어렵군요 그렇게 드럽고 치사한데 왜 여태 거기에 계신거에요?
    필자님. 과거 본인의 성격, 능력,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대학 이라는 곳에 본인의 인생을 베팅을 하신것아닌가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꽝이라고 생각드시는거구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베팅을 합니다.
    누구는 사업에, 누구는 월급쟁이, 누구는 전문직..
    그 결과는 대박일수도 있고 쪽박일 수도 있죠.
    그런데 쪽박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시작하면 참 허무한 이야기가 되는겁니다.
    자 그럼 거꾸로 한번 여쭤볼게요 어떻게 하면 필자님 삶이 더 나아질까요?
    관련 법을 개정돼야할까요?

  18.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설정하고 그것으로 현실을 왜곡한다면 우리는 진짜 자신의 현실을 또 자신을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의 현실을 개선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형이상학적인 말 쓰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쓰세요. 그래서 월급을 제대로 못받는 직업은 투정부리지 말고 때려치라는겁니까 뭡니까

  19. 다음 기사도 기다릴께요.
    그리고 (많이 힘드시겠지만) 기운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애써 작성하신 글을 읽으며 공감도 되고, 문제 인식도 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댓글을 읽다 별 도움도 안되는 시덥잖은 말들에 상처받지 마시고요.

  20. 글 제대로 읽으세요. “최대한”이라고 했지 절대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노동자와 사업가 사이의 “주관적인” 가치책정을 “최대한” 객관적인 지표와 방법론을 동원해서 제시할 수 있어야합니다. 노동자쪽이든 사업가쪽이든 한쪽의 추가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그것은 수정될 여지가 있는 겁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국가는 그것을 최소단위의 역할로 부여받은 것이구요. 시장이 모든 것을 알아서 조정하는, 경제학 교과서에서나 상정하는 비현실적인 진공상태를 바라는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님이 말하는 “시장의 단가”를 시장이 정해서 문제가 생겼고 그걸 바꾸려고 싸워 온 게 18세기 이후 인류 역사였습니다. 21세기에 왜 18세기 얘길 하고 그러세요.

    “결국 임금이란 업무처리 능력에 따라, 시장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계약한 거래입니다. 그 거래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지만, 거래를 해놓고도 그 원인을 사업체나 정부에게만 돌리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라고 하셨네요.

    그래서 이 본문 어디에 사업자나 정부에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었나요? 제 댓글에 대한 반응으로 보고 동어반복해드리면, 그 시장이 최대한 객관적인 노동가치 산출에 실패했고 그걸 대신해야할 정부도 계속 실패해왔기에 지금 세계가 이모양 이꼴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 나라 정부는 그런 노력에조차 게으르고요.

    부탁인데 글 좀 제대로 읽고 반박하시겠어요? 저도 나름 바쁜사람이라서요. 이런 식의 댓글에 반응하려니 힘이 빠지네요.

  21. “정부의 역할은 노동자와 사업가 사이의 “주관적인” 가치책정을 “최대한” 객관적인 지표와 방법론을 동원해서 제시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 부분은

    “정부의 역할은 노동자와 사업가 사이의 “주관적인” 가치책정을 객관적인 지표와 방법론을 동원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로 수정합니다.

  22. 인생이 도박이면 쪽박찬 사람들은 다 나가 죽어야겠군요. 고대엔 실제로 그랬겠지만 근대적인 국가는 최소한의 보호막이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에는 대학원생 지원 프로그램 혹은 빈민 전체를 대상으로 푸드쿠폰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거기나 여기나 먹고 살기는 어렵고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서 복지로는 좋은 말을 못 들을 때가 많은데도 이렇군요.

    소위 선진국들이 다 잘 살아서 이런 학생들 지원해줬을까요? 아뇨, 잘 살려고 지원해주는 겁니다. 쌀 전매제 시행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국내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 다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러면 무슨 꼴이 나겠어요. 한국 다시 60년대로 돌아가서 기술 안 들고 노동력 착취하는 시대로 가서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도 아니죠, 중국이나 인도나 기술 훔치고 개발하려고 난리들인데 뭐 동남아시아권 수준으로 떨어지면 되겠네요.

  23. 그리고 이런 선진국들이라고 대박난 인생없고 쪽박난 인생없겠습니까. 근데 이 나라들이 바보도 아니고 왜 최소 생계는 보장해주려 할까요. 그래야 사회가 안정되거든요. 쪽박차도 먹을 건 먹어야 되고 옷도 입어야 되고 집도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못 산다? 그럼 훔쳐야죠 뭐 ㅎㅎ 사람이 극에 다다르면 뭘 못합니까. 노숙자들 밥은 왜 맥여줍니까. 서울역 등지에서 노숙자 무리가 휘적휘적 다니면 무섭죠? 실제로 사고도 났다고 하고. 불쌍해서도 있겠죠. 근데 그 사람들 내비두면 위에 말한 대로 행동할 거거든요. 훔치는거요. 아 일단 사람이 살고는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치안유지 하려면 최소한 밥굶고 헐벗고 집없는 사람이 적어야만(없애는 건 불거능하니)합니다. 한국도 나름 여기에 돈 씁니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치안유지하려면, 값싸고 유능한 인력을 쓰려면 쭉 돈 내야죠. 한국이 괜히 의무교육 실시하는 거 아녜요. 다 쓰려고 교육시키지. 그렇게 교육받은 인재 가져다 싼값에(…)굴리면서 세금마저 안내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 아닌가요.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데.

    그리고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은 ‘네’ 입니다. 관련법 개정하면 나아지죠. 뭐 직업바꾸라 이러실 겁니까. 대학원까지 나와서 기술이 그거 하나고 밑천은 없는데요. 그리고 님이 원하는대로 쪽박이라 직업 바꾸자고 하면 세상에 학자할 사람이 어딨습니까. 세계 다 뒤져도 이 사람들은 가난합니다. 뭐 대학원 진학하고 현실에 떠밀려서 바꾸는 사람도 많은데 이걸 계손 놔두나요. 인문학은 하등 쓸모없어 보이지만 이름에서 보이듯 인간에 대해 다루는 학문입니다. 인간사 전부 다룹니다. 이 연구에서 쭈욱 밀리면 한국이 당장 잃을 게 하나 있는데 독도입니다. 독도가 왜 우리 땅인가에 대해서 연구하고 자료 찾고 정리할 교수가 없으면 우리는 땅 내줘야 하는 겁니다. 독도의 가치에 대해서 새삼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이거 말고도 잃을 수 있는 게 참 많습니다. 국가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대학을 그리고 학자를 보호하는 겁니다. 이건 투자라고 하는 겁니다. 세금이 당장 쓰인다고 손해같지만 기본적으로 국가를 위한 투자의 성격이 크죠. 교육이 그렇고 건물과 배의 안전을 점검하는 것도 실업자를 지원해주는 것도 전부 안 하면 탈이 나니까 하는 짓이고 지금 한국은 지원 안 해서 탈 난 곳이 너무 많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당장의 돈이 아깝다고 투자를 안 하면 뒤쳐집니다. 소위 선진국들의 실질소득이 지금의 한국과 엇비슷할때 근대적 복지체제가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한국이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이대로 후퇴하게 될겁니다. 이게 andrew님이 알아야 할 겁니다. 인생을 오로지 개인에게 맡긴다는 건 얼핏 보기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국가적 입장으로 보면 오히려 손해입니다.

    위에 어떤 분이 말하신대로 들인 노력과 운이 좋아서 상위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홀로 서 있는 거 아닙니다. 밑에 받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밑에 선 사람들은 반드시 발생합니다. 그걸 적절히 조절해주지 못하는 국가는 망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망하고 정말 개인의 시대가 오면 전부 망합니다. 당장 지진얘기에도 라면 사재기를 하던 사람들이 망했는데 도덕을 지킬 것 같나요? 그거야 말로 너무 나이브한 시각이지 않겠습니까?

  24. 그럼 성실하면 돈 벌 수 있나요???? 새벽 네시에 장사하러 나가는 사람이 제일 부자겠네요 그럼. 근데 아니잖아요. 성실하다고 다 잘 되나요? 사실 필자가 대학원에 가서 성실했냐 아니냐 보다는 진로 설정을 잘못했다고 봐야 되지 않나 싶은데요. 노력해서 유수의 명문대를 가도 시간강사 삶은 저런데요? 노력이 의미가 있나요, 이 시점에서

  25. 사실->필자가 굳이 잘못한 점을 뽑자면.

    성실성실 하시는데 다들 금수저가 최고지!라고 말하는 시대에 성실이 과연 의미가 있기는 한가요? 성실이고 뭐고 돈 있으면 족집게 과외해서 성적 올리고 그마저도 안 되면 해외유학 보내줄 수 있는 부모가 가장 좋은 성공보장수표 아닌가요? thelife님 말대로 ‘가장’ 성실하면 무조건 가장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나요? 그래서 좋은 대학을 가서 성실하게 수업들으면 다 잘 되나요? 밑에 주르륵 지방대가 아니라 명문대를 나와도 시간 강사 삶은 똑같다고 하는데 정말 성실하면 잘 되나요? 전 아닌 것 같은데요. 너무 성실성실 하시니까 하는 말이에요. 성실만으로 좋은 대학 갈수 있느냐는 둘째로 치고 그래서 thelife님 말대로 성실하게 공부해서 ‘가장’ 성실해서 가장 좋은 성적을 가지고 대학원 문을 두드린다…. 그래도 대학원생이나 시간 강사로서의 삶은 똑같을텐데요. 다시 묻습니다만 여기서 정말 성실이 무슨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열쇠같으세요?

  26. 글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장지상주의적 관점을 끌어와 공격을 시작하시는 분들은 좀 더 기다려보서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니가 그런 일을 선택했으니 아무리 고난하더라도 하소연이라거등 한 단어도 내뱉지 말아라, 이런 말은 너무 편리하잖아요. 연예인들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성상납을 강요받는다고 해서 불평하지 말라, 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선택은 선택이고 불합리는 불합리로 따로 봐야지요. 워렌 버핏이나 이건희도 고충이 있고 길거리 노숙자도 고충이 있는데 그걸 서로 들어줄 시간도 없을까 모르겠습니다.

    물론 수요와 공급이라는 것이 있고, 그에 따라 비교적 궁핍한 일이 있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일도 있고 하겠습니다만… 자본이 원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신경써야 하는 분야도 존재하고, 그런 것들 중 하나가 학문이기도 하니까요(게다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야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한 일이기도 하죠. 게다가 박사 따려면 한 재산 부어야 한다는 세간의 생각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최대한의 국민 후생에 신경써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니 모든 분야에 두루두루 신경쓰는 것이 어렵긴 해도,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여러 현장에서의 증언들이 필요하고 그걸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지금 이 사회에서 어떤 분야에서 어떤 어려움이 존재하는구나, 어떻게 대처해야겠구나, 하고 미리미리 계산을 하죠. 필요한 것들은 보완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줄이겠고 말입니다.

    하여튼 얘기 끝까지 들어보고 훈장질을 하든 감정이입을 하든 뭘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ㅎㅎ

  27.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말한것인데 사실처럼보이지만 의견? 그럼 도대체 사실은 뭘까요?? 억지로 의견합리화하는거 같은데 최대한 사실+의견까진 봐줍시다 자기가 자기이야기하기싫다고 몰기는..쯧쯧

  28. ㅋㅋㅋㅋㅋ비하하지마세요 세상이 다 그렇게돌아간다고 틀린게 맞게되는건 아닙니다. 최대한 서로 사정봐주면서 사는게 최고아닌가요. 이글 읽다보면 그런감정이 전혀 느껴지지않는데 다 그렇게 살고있으니 너도 열심히살기나 하나는 뜻의 말이나 하고있으시네요…좀 공감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비하하지는마세요

  29. 그저 사교성만 부족한게 아니라, 사회성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는데요. 왜냐하면 글이 지닌 성향자체가,
    “나는 정상인데 내주변에는 비정상적인 사람들 투성이다” 거든요. 상황해석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중심적이란 말이죠. 글자체에서 이해관계형성부족이 느껴지는건 저뿐인가요?

  30. 글쓴이의, 그리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대학원의 구조에 묵묵히 맞춰가는 학생들의 좌절감이 떠오르네요.

    중고교시절부터 대학졸업 때까지 글쓴이보다 두 배 세 배의 노력으로 ‘생존의 기술’을 익힌 이들도 끊임없이 권위주의 시절의 구조적 힘에 짓밟혀 생존을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이죠.
    이런 사회가 지속가능할까 의문이 듭니다.

  31. 물론 필자가 경제적인 부담을 조교 업무를 통해 덜고자 했지만, 그 조교 업무라는 것이 신입 대학원생을 강제로 끌어다가 아침부터 ‘무급’으로 부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큰데요.

    더군다나, 위에서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하는데 대학원생의 본분은 연구입니다. 그 연구 성과를 낼 것을 기대하고, 나아가서 성과를 낸 것을 평가하여 주는 것이 월급이구요.

    이러한 무급 노동 때문에, 대학원생들이 본인들이 맡은 연구를 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조교는 대학원생이 아닌 사람을 따로 뽑아서 인건비를 지급하여 업무를 맡기는 게 맞습니다.

  32. 가장 맞는 댓글인것 같습니다.
    글쓴이는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골랐을 뿐…

  33. 뭔소린지. 이분글 이해하기 엄청힘든데 내가한번 해독해보겠음 ㅋㅋ. “노동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않다” – 재벌이 버는 억대연봉과 청소부가 버는 최저임금은 개인이 두는 가치에따라 허용될수도 허용되지않을수도있음.
    “노동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면 시장이 임금을 줌으로써 가치를 정할수있다”-과연 시장이 객관적으로 가치를 매길수있는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지에대한 설명은 없음. 아니 “거래를 해놓고도 그 원인을 사업체나 정부에게만 돌리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 에서 알수있듯 이분은 시장과 정부는 언제나 옳으며 법 역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듯. 현재 법과 시장의 태도는 옳으므로 고칠필요가없다고 생각할지도.
    “글쓴이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음”-대학원생활할정도면 하루하루 끼니걱정해야되는 사람보다는 잘살고있으니 땡깡부리지말라는듯.
    “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 물론 그 현실은 살기 개빡빡함. 존재하지 않는 가치 (내맘대로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로 현실을 왜곡(현실을 비난)하면 우리는 진짜 자신의 현실 또 자신을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의 현실을 개선시킬수없음 (열심히 일안하고 불평만하고 돈만 더 받으면서 편하게사려고하면 안됨).
    편협하게 보는걸수도있는데 해석은 어차피 내맘대로 쓰는거라 괜찮겠지뭐. 근데 엔틸드님 엄청똑똑한듯.

  34. 캬 역시 헬조센, 대학원에서까지 까라면 까 군대문화를 겪는건 니가 노오력을 안해서야 노오력을 캬 오집니다 논리들

  35.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그렇다고 해결책이 뾰족히 있는것도 아닙니다만. 대학이 그 많은 시간강사를 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대학은 망하겠죠. 아니면 수업료가 많이 올라가거나.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개인으로써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낼 수 있는 길을 찾았어야 하는데. 이미 늦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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