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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2. 노년의 사랑과 비혼

비혼, 즉 결혼하지 않는 상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결혼을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전전긍긍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애초에 비혼을 선택하고 부모님과 사회의 압박 사이에서 전전긍긍한다. 전전긍긍도 상황 나름이지만 비혼을 선택했다고 해서 평생 혼자 살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선언은, 결국 마음 가는 대로 연애하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평생 누군가와 연애하며 사는 것, 할 수만 있다면 누구인들 바라지 않을까. 하지만 나이가 50이 넘어도 연애를 하고 못하고는 단지 개인적인 역량 문제만은 아니다.

다 늙어서 무슨 노망이냐며 채근하는 가족과 노인들에게는 가족의 어르신 자리만 내어주는 사회적 분위기는 노인의 욕망, 더 넓게는 중장년층의 욕망을 거세시키는 데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 탓도 크다. 이 점은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청춘이 좋을 이유가 없는 데도 청춘이 아름답다는 주장이 먹히는 이유는 결국 20~30대 때야말로 사회적 용인하에 자유롭게 연애와 섹스를 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C)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은교는 이런 사회적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70대 노인이 10대 소녀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롤리타 신드롬의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폭력성도 내비친다.

“세상 사람들은, 칠십 노인하고 여고생의 관계, 그거 사랑이라고 하지 않아요. 절대! 추문이에요, 선생님. 그거 더러운 스캔들이라구요.”

물론 70대 노인의 여고생에 대한 사랑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인의 상대가 6~70대였으면 달랐을까? 점차 초고령화하는 사회에서 중장년, 노인들의 사랑을 막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연애 없는 미래를 강요하는 것이다.

김용희의 단편소설 ‘노바디’에는 60대 교장이 10여 년 만에 만난 옛 애인과 섹스를 하고 모텔을 나오다 경찰관의 단속에 걸려 망신당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나라 인구도 노령화에 접어드니까 노인들이 가만있지 못하고 주책이란 말야, 자고나면 다 애인이래, 다들 갖다 붙이면 연앤가.”

나이 들어 좋을 건 하나도 없다더니 연애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나이 들어 하는 연애는 추문 내지는 주책으로 매도되기 쉽다. “결혼은 부르주아적 발상”이라고 말하는, 최근 제24대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사실혼 관계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와 결혼할 생각이 없음을 발표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트리에르바일레 역시 올랑드와의 파트너쉽을 유지하되 결혼할 생각은 없음을 밝혔다. 물론 대한민국이 프랑스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도 노인의 사랑을 포용해 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나이 들었다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어화둥둥 할 수 없다면 이 좋은 젊은 날 비혼을 선택한 이유가 얼마나 무색해지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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