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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는 주변화하는가: 투명가방끈의 고대 총학 비판에 관하여

정치적 스펙트럼을 말할 때 가장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극우 혹은 극좌라고 말한다. 극렬 보수 극렬 좌파라는 말도 쓰고 영어로는 래디컬(Radical)이란 말을 사용한다. 색상으로 치자면 채도가 가장 높은 쪽에 속한다고 봐야 하겠다.

어느 쪽이 되었건 정치적 입장이 극단에 놓여있게 되면 세상의 대부분을 이루는 농도 옅은 색상의 세계-여러 색이 혼합되어 있는 세계의 주변부로 밀려나는데, 이것은 보수보다는 ‘급진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서 급진적이라 함은 그 가치의 급진성을 가리키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에 긴밀하게 관련한 것은 방법적 측면일 것이다.

예컨대 얼마 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를 거부했던 데 대하여 투명가방끈 운동에서 내건 비판이 그 같은 경우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투명가방끈 운동은 대학과 대학 입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운동이다. – 편집자)

고대 총학의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

투명가방끈의 고대 총학 비판

먼저 오해를 피하고자 말하자면 나는 투명가방끈 운동이 내세우는 슬로건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인간을 일정한 기준으로 측량하여 서열화하는 모든 사고방식에 대하여 그들은 분명하고도 강한 반대의사를 피력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간을 서열화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이 기원이 어떠하였건 간에 인간을 측량하고 평가하여 서열화하는 사고방식이 일상의 기저에 도사리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은 특정한 상황이나 패턴에 대한 개선만으로 바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투명가방끈에서 제시하는 슬로건은 그러기에 현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인간관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투명가방끈이 지적한 고대총학의 한계 

투명가방끈이 지적하는 고려대학교 총학의 한계는 이렇다.

그들은 “대학을 서열화하고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는 어떤 평가도 거부”한다 하면서도 정작 취한 행동은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한 거부”에 그치고 있다.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대학에 소속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한계라면 고대 총학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현재의 평가체제에 대한 거부”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고대 총학은 투명가방끈처럼 “서열화 자체에 대한 반대”를 의제로 하는 집단으로부터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내용이 옳다 하여 그것이 꼭 옳다는 보장은 없다. 형식적인 부분 즉 방법적 측면에서의 문제는 내용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현이 지적하듯 글에서 형식이란 내용과 떨어질 수 없는 요소이다. (김현, [한국 문학의 위상], 문학과지성사, 서울: 1977) 형식과 내용은 서로를 호출하는 상호 관계에 놓여있다.

투명가방끈의 패러디는 과연 유효했는가 

투명가방끈이 고대 총학을 비판하는 글은 패러디 형식을 띠었다. 로버트 필립(Robert Phillippe)은 패러디를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나누는데 하나는 헌정이요, 다른 하나는 풍자다. 투명가방끈에서 내놓은 글이 비판이기에 그 글은 풍자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데 풍자란, 본질적에서 엄정한 비판보다는 비꼬아 힐난하는 형식에 해당한다(참조: Robert Philippe, [Political Graphics: Art As A Weapon], Paidon Press, Oxford: 1982).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비판할 때 패러디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할 일이다. 특히나 어떤 행위가 비판의 대상이어도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투명가방끈 운동에서 낸 비판의 글에도 고려대학교 총학의 거부 행동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패러디의 형식을 선택한 이유를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이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설령 그 지적이 옳은들)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애플 아이튠즈(의 통제 정책)를 비판하는 패러디. 패러디가 힘을 가지려면 비판 대상(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관객(시민, 공동체, 컨텍스트)에 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일러스트: Martin Krzywinski, CC BY)  https://flic.kr/p/Ebgiu

애플 아이튠즈(의 통제 정책)를 비판하는 패러디. 패러디가 힘을 가지려면 비판 대상(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 사안을 바라보는 관객(독자, 시민, 공동체)과 시대적 맥락(컨텍스트)에 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일러스트: Martin Krzywinski, CC BY)

진보의 위기 = ‘시야’ 바깥에 존재하는 방법론

투명가방끈 운동을 예시로 하여 살펴보았으나 이는 비단 투명가방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치의 위기를 말하는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사회로부터의 주변화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공통으로 지적되는 진보정치의 문제점으로 ‘설득력 있는’ 의제 설정과 그 방법론(추진)의 부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얼마 전 나는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운동을 평가해보는 세미나에 주기적으로 참석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이 같은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왔다.

물론 진보정치나 사회진보의 위기를, 진보적 가치를 추구해온 사람들의 책임으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다. 한 세기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경험한 질곡과 그로 인해 발생한 집단적 외상이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여당에서 휴일수당을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데도 대다수 직장인들은 손 놓고 앉아 욕 한마디 하는 것으로 자신의 진보적 취향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가? 배가 침몰하여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여도, 의료 사영화를 향해 정부 여당이 질주하는데도, 자신들의 이익과 안녕을 훼손하는 그 어떤 이슈가 일어나도 아베의 막말 한 마디와 북한에서 하늘에 대고 쏘는 총성 한 발에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지 않은가?

하지만 바로 이것이 우리가 몸담은 현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사회의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보는” 영역은 그런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의식의 싹이 트는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진보를 추구하는 이들의 도덕이나 윤리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미 있을 것이다.

정화조가 수질개선을 하려면 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처럼,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야 현실과 다소 멀다 하더라도 당장 의제나 태도에서 현실에 붙어있지 않으면 물을 들이지 않는 정화조처럼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진보 지향만으로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론, 나는 사회의 진보를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이 ‘가만히 있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질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혹은 사람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들을 ‘더 도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높은 이상을 지닌 사람은 그에 못 미치는 이상을 지닌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정히 비판하되 힐난하거나 모욕하지 않으며, 비록 부족하거나 그릇된 주장을 하더라도 배격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기다리며 자기 일을 의연히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시야에 머무르며 스스로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첩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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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윤
초대필자. 대중예술인

전산과 전산수학을 공부했다. 만화로 전향한 뒤 카툰과 웹 일러스트레이션, 게임 원화 등을 하며 여러 분야에 촉수를 두고 독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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