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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송의 시대라고들 한다. 지금 당장은 또 후크송의 인기가 시들한 감도 있지만. 각설하고, 꼭 후크송이 아니어도 주류 가요계에서 인기를 끄는 음악을 듣노라면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을 때’가 적지 않다. 물론 음악은 기본적으로 소리로 하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 자체의 질감이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해 ‘말(보컬)’의 의미보다는 말이 소리로서 만들어내는 느낌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외국어 노래를 듣고, 심지어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위 ‘제 3세계’라 불리는 곳의 말로 노래하는 음악을 듣고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른 분야를 살펴도 그렇다. 영상 예술인 영화를 보자. 영화는 영상으로 하는 예술이기에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롯이 이미지의 힘만으로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근래 작품 준비 과정에서 시비가 일었던 이모 감독의 경우처럼. 그럼 소설은? 글로 하는 예술이기에 때론 말맛, 아니 글맛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실상은 별 서사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하지만 이런 경우가 흔하진 않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영화든 그 출발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사소하고 시시껄렁한 일상이든 감정의 공유든 진리에 대한 탐구이든 간에 더 많음 사람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것을 굳이 ‘기록한 형태’로 남기는 것이다.

음악이 정교한 서사가 필요한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이라고 하긴 어렵다. 오직 청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음반의 경우엔 그 한계가 더 분명하고.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학창 시절에 배우던 각종 가사 문학만 떠올려 봐도 인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음악에 서사적인 이야기를 담아 전해왔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여러가지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문화다. 음악의 가사가 시란 관점에선 더더욱 그러하고. 저 유명하고 장황하기 그지 없는 ‘일리아스(Iliad)’도 서사’시’가 아닌가.

앞서 말했듯 지금은 서사가 있는 이야기는 커녕 별 의미없는 말로 가득찬 음악이 득세를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한국 정도까진 아니어도 어딜 가나 복잡하고 정교한 이야기보다는 짧고 간결하게, 일상의 편린을 날카롭거나 살갑게 표현한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더 대접을 받는 시대기도 하고.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싱글 중심의 대중음악 분야에선 어쩔 수 없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으로 무언가 복잡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경우가 드문 건 또 아니다. 어느 나라든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울 뿐.

앨범 스토리에선 바로 그런 음악, 다시 말해 이야기를 무시할 없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첫 번째 손님은 Queensrÿche의 1988년작 ‘Operation: Mindcrime’과 그 후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Superior의 2002년작 ‘Ultima Ratio’다.

Queensrÿche – Operation: Mindcrime

Queensrÿche의 세 번째 풀렝스(full length) 앨범인 ‘Operation: Mindcrime’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음반이다. 여기서 이렇게 새삼스레 다루는 게 민망하리만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훌륭하다는 락오페라이자 헤비 메탈 컨셉트 앨범 가운데 하나이니 만큼.

[box type=”info” head=”Queensrÿche – Operation: Mindcrime”]
01 I Remember Now
02 Anarchy-X
03 Revolution Calling
04 Operation:Mindcrime
05 Speak
06 Spreading the Disease
07 The Mission
08 Suite Sister Mary
09 The Needle Lies
10 Electric Requiem
11 Breaking the Silence
12 I Don’t Believe in Love
13 Waiting for 22
14 My Empty Room
15 Eyes of a Stranger

피터 콜린즈(Peter Collins) 제작 (1988)
제프 테이트(Geoff Tate) 보컬, 기타
크리스 드가모(Chris DeGarmo) 기타
마이클 윌튼(Michael Wilton) 기타
에디 잭슨(Eddie Jackson) 베이스
스캇 로켄필드(Scott Rockenfield)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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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emember Now 병원의 안내 방송을 배경으로 간호사의 발소리가 들리고, 이내 병실에 들어선 간호사는 통행 금지가 10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깨어있느냐며 환자를 타박하다가 ‘당신에겐 주사 한 방이 더 필요하다’며 주사를 놓고선 ‘잘 자요,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라 이죽거리며 돌아선다. 그런 간호사의 목소리 뒤론 ‘지난 한 달 간 도시를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갑작스레 시작된 것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끝난 것에 대해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기이한 루머’에 대한 뉴스가 들리고, 이어서 뉴스 앵커는 경찰이 용의자를 병원에 구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음반을 들어본 적이 없더라도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바로 이 병실의 남자가 뉴스에서 말한 문제의 그 남자란 사실을. 주사를 맞은 남자는 ‘그것’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기억한다며, 자신은 어제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내게 말한 것만은 기억한다며 몽롱한 의식 속으로 빠져든다.

Anarchy-X 짤막한 연주곡. 드러머의 정교한 스틱워크를 중심으로 한 연주에 군중의 함성 소리를 더해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에 대한 긴장을 서서이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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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lution Calling 정제된 라인으로 선명한 멜로디를 그려내는 기타 리프와 두껍고 단단한 베이스 라인 위로 특유의 날카롭고 단단하게 응축된 제프 테이트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기세로 솟아오르는 이 곡은 본작이 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곡이다. 이 곡에서 밴드는 권력에 취해 미쳐버린 정치인들과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성직자들, 한 때는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던 미디어와 모든 것을 사고 파는 것을 당연시하는 ‘미국적인 방식’에 대한 환멸을 격하게 토로하며 말한다. ‘혁명이 너를 부르고 있다’고.

Operation: Mindcrime 사회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이용해 혁명을 꾀하는,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인, 닥터 엑스(Dr. X)는 약물과 세뇌 기술을 써서 니키(Nikki; 병원의 바로 그 남자)를 지배하려 한다. 얼마 걸리지도 않고,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할 거라며 니키를 꾀어낸 닥터 엑스의 목적은 니키가 그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지하에서 혁명을 위해 일해온 자신에게 복종하라며, 너 또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지 않느냐며, 니키에게 총을 쥐어준다. 절도있는 리듬을 중심으로 닥터 엑스가 주인공을 집요하게 회유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부분과 위악적이고 늘어지는 톤으로 ‘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니 이 집단과 혁명에 동참할 것’을 종용하는 부분의 대비와 마지막에 기타 노이즈로 표현한 환각적 분위기가 흥미롭다.

Speak 시작부터 급박하게 몰아친다. 닥터 엑스를 따르게 된 니키는 스스로를 새로운 구원자이자, 총을 든 죽음의 천사라 부르며 ‘혁명’의 최전선에서 활동한다. 더불어 이 곡에서도 부자가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미디어가 법인 양 행세하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법은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니키는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추락하는 것을 막고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대중을 교육하고, 가능하다면 백악관을 불태워버리겠단 다짐까지 한다. 과감한 곡의 내용처럼 앨범 내에서 “The Needle Lies”와 더불어 가장 저돌적으로 치고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

Spreading the Disease 탐(tom)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드러밍이 주도하는 도입부 이후 앞선 노래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급박한 리프가 치고 나오는 곡으로 앨범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주인공을 ‘멘붕’으로 몰아넣는 인물인 메리 수녀(Sister Mary)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메리는 열여섯에 집에서 도망쳐 나와 S & M 쇼에서 일하다 윌리엄 신부(Father William)에 의해 거둬져 수녀로 거듭났지만, 윌리엄 신부는 성직자의 탈을 쓰고 있을 뿐 닥터 엑스의 조력자였으며 그녀를 일주일에 한 번식 취하기까지 하는 자였다. 말하자면 앞선 이야기에서 비판했던 바로 그 종교인의 전형이랄까. 니키 역시 메리에게 ‘서비스’를 받으며 그녀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는데, 이런 배경은 존재만으로도 비극적인 메리란 인물의 특징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와 맞물려 ‘모두가 필요로 하지만 누구도 보길 원하지 않는 질병을 퍼뜨리자’고 날카롭게 쏘아부치는 후렴이 유려하게 흐르는 베이스 라인과 하이해트 대신 심벌을 이용한 경쾌한 비트 위에서 전개되기에 더욱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 곡에선 다시 한 번 ‘마약은 안 된다고 하며 남미에선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들과, 은행과 부자들이 점점 더 살을 찌워가는 동안 점점 더 가난해지는 서민(빈민)들’의 모습을 곱씹으며 당대의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The Mission 앞선 곡들이 혁명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속도와 공격성에 방점을 찍은 데 비해 “The Mission”에서 밴드는 처절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강조하며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이는 이 곡이 메리와의 관계 이후 번민에 휩싸인 니키의 모습을 그리는 탓이다. 니키가 번민에 휩싸인 자신을 다잡는 장면이라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고. 총을 장전한 이후 고해성사(“Bless me father for I have sinned…”로 시작)를 하며 총을 쏘는 니키의 모습 이후 사뭇 분위기를 잡는 기타 아르페지오와 함께 베이스 기타가 둔중하게 울린다. 니키는 여전히 자신에게 세계를 바꿀 임무가 있고, 세계를 구하고 자랑스럽게 설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도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런 자신의 슬픔을 위로하고, 길을 찾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메리 뿐이라 믿으며. 물론 니키의 이런 번민을 조직에선 달갑게 보지 않았고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Suite Sister Mary 폭풍우가 다가오는 가운데 자동차 창문 너머로 위험 요소인 메리 수녀를 죽이라는 지령을 내리는 닥터 엑스와 지령을 되묻는 니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10분이 넘는 짧지 않은 곡으로 “The Mission”에서부터 시작된 처절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메리 수녀 역의 허스키한 여성 보컬과 풍성한 성악 코러스,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했다. 메리를 통해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니키는 드디어 깨닫는다. 그녀와 자신 모두 서로 다른 방식일 뿐 같은 집단의 동일한 목적을 위해 실험실의 쥐처럼 이용당했을 뿐임을. 그리고 메리를 죽일 수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함께 살아남고자 하는 니키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평안이라며 죽음을 받아들이려하는 메리가 갈등을 빚는다. 극점으로 치닫는 갈등과 달리 정중동의 사운드로 표현한 절절하게 끓어 오르는 비장미가 일품.

The Needle Lies ‘나는 아무 것도 몰라, 나가야겠어’라고 외치는 니키에게 ‘넌 걸어서 나갈 수 없어’라며 비릿한 조소를 내뱉는 아마도 고문기술자일 누군가의 대화로 시작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앨범에서 가장 공격적인 곡이다. 기어를 높인 전형적인 팔비트 리듬과 트윈 기타가 불을 뿜는. 메리를 죽이지 않은 탓에 조직의 유용한 자원에서 배신자로 전락한 니키는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 벽에 씌여진 글을 읽게 된다. “절대로 주사를 믿지 마. 그건 거짓말이야!” 말하자면 니키 이전에도 닥터 엑스의 약물에 조종당한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니키와 마찬가지로 쓰임새가 없어졌거나 조직에 의심을 품은 대가로 이곳에서 비명을 질러야 했던. 니키는 토사구팽당한 자신의 처지와 닥터 엑스의 주장도 사회에 널린 다른 거짓말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는다.

Electric Requiem 니키가 메리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 살아 생전의 여느 때와 같이 슬픈 모습으로 영원히 잠든 모습의 메리를 바라보며 떠나지 말라고 절규하는 니키의 모습을 환각적인 소리로 표현한다.

Breaking the silence ‘당신 없인 살 수 없다’고 ‘이제 더 이상 내겐 눈 둘 곳도, 마음을 불태우던 열정이나 믿음도 없다’며 메리를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니키의 심경을 들을 수 있다. 한없이 서글프고 어두운 심정을 절도와 힘이 넘치는 리듬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대비가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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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Believe in Love 제목 그대로, 사랑을 잃고 비통함으로 가득 찬 니키의 심정을 더는 ‘사랑을 믿지 않을 뿐더러 결코 사랑을 가진 적도 가질 일도 없다’며 반어법으로 풀어낸 곡. 니키의 절박한 심정을 그리기 위해 마이너 키를 활용함과 동시에 소위 말발굽 리듬이라 불리는 정통 헤비 메탈스런 작법을 써서 박진감과 아련한 슬픔이 공존하는 곡으로 만이 됐다. 여담으로 이 곡은 일반적인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무방한 가사와 힘이 넘치는 사운드가 어우러진, 이 앨범에서 가장 싱글 지향적인 곡이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도 밴드의 가장 유명한 싱글로 자리잡았고, 1990년 그래미 시상식엔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수갑이 채워지고 눈이 가려졌다는 표현으로 보건데, 이 시점에서 니키는 경찰에 체포를 당한다. 다시 말해 이 부분이 바로 ‘Operation: Mindcrime’의 도입부 바로 직전의 이야기.

Waitng for 22 1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앨범에서 유일하게 어떤 효과음도 없이, 악기의 연주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니키의 황폐해진 마음을 그리는 듯한 기타 연주.

My Empty Room 시간을 재촉하듯 째깍이는 시계 소리 사이로 메리를 잃고 여전히 괴로워하는 니키의 독백이 절규로 변한다.

Eyse of a Stranger 앨범의 마지막 곡이지만 도입부의 병원 안내 방송을 통해 이야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음을 알리고 있다. 니키는 병원에 갇혀서 매일 꿈에 나타나는 메리의 모습과 마주하기가 두려워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거울을 바라보다 스스로를 낯선 눈으로 응시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멘붕’에 다다른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조금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절정을 강조하는 드라마틱한 연주와 편곡을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밴드는 대미를 장식하는 곡답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혼란스럽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니키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이 선택이 더 적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이 멈춘 뒤에 나오는 일그러진 목소리들은 아마도 니키의 마음 속에서 멈추지 않고 울리는 목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니키가 처음에 내뱉었던 독백인 ‘나는 기억한다’를 다시 중얼거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Superior – Ultima Ratio

‘Ultima Ratio’는 독일 출신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Superior의 세 번째 풀렝스다. ‘Behind’와 ‘Younique’의 뒤를 잇는. ‘Ultima Ratio’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앨범 제목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상의 종교 단체 이름이기도 하다.

[box type=”info” head=”Superior – Ultima Ratio”]

01 5-2-12
02 Ultra
03 Reflections
04 Breeze of Insanity
05 Propaganda – X
06 My Fate
07 Reach for Reign
08 The Unwanted
09 Terminus Interlude
10 Fallen
11 Terror Fantasy
12 Broken World
13 U R Resistance
14 Judgement Day
15 Eternity

Superior & 로버트 콜메이어(Robert Kohlmeyer) 제작 (2002)
미하엘 탠거만(Michael Tangermann) 보컬
얀 마르코 베커(Jan Marco Becker) 키보드
미하엘 뮬러(Michael Müller) 기타, 키보드
베른트 바스머(Bernd Basmer) 기타
마르틴 라이하르트(Martin Reichhart) 베이스
토마스 마이어(Thomas Mayer)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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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2 장중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발걸음 소리가 울리고 이내 무언가를 잔에 따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울리는 자동응답기 소리. 무언가를 들은 주인공은 ‘제기랄’이라 외치며 잔을 내려놓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군중의 환호가 울려퍼지면서.

Ultra 2003년 4월 18일.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 마라카나 경기장(Maracana Stadium, Rio de Janeiro). 날카롭고 묵직한 리프가 절도 있게 내리 꽂히는 와중에 열정적으로 믿음을 설파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자는 ‘네가 어디로 가든, 울음을 터뜨릴 때든, 공포에 질렸을 때든, 어디에 있든 언제나 네 곁에 함께 하며 널 지켜주겠다’고 외친다. ‘Ultima Ratio’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이 곡은 ‘Ultima Ratio'(최후의 수단; 가상의 종교. 이 의미일 때만 다음부턴 U R이라 쓰겠다)가 어떻게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 들었는지를 묘사한다. 능수능란하게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그리는 변화무쌍하고 격렬한 연주가 일품. 곡의 마지막엔 연주와 보컬이 멈추고, 군중의 환호가 울려퍼진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죽을 때로군’이란 중얼거림과 총소리, 헐떡이는 신음.

Reflections 2000년 12월 25일. 런던 어느 거리(Streets of London).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이 곡은 가브리엘(Gabriel Fisher)이라는 화자가 런던의 이름 모를 어떤 거리에서 ‘날 구원해주세요, 날 이 광기로부터 치유해주세요. 제발 당신의 어린 양을 인도해주소서’하고 절규하는 장면이다. 도입부의 쓸쓸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한 기타 아르페지오는 가브리엘의 절망적인 상황을, 엇박으로 불안함을 강조하는 버스는 무엇 하나 의지할 것 없이 불안하기만 한 화자의 심정을, 후렴의 열창은 구원을 갈구하며 절대적인 누군가를 향해 간절하게 부르짖는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하다. 강력한 리프 사이로 종종 튀어 나오는 중근동풍의 기타 연주는 서양의 기준으론 이 믿음이 범상치 않음을 암시하는 듯도 하고. 꿈보다 해몽이랄까. 좌우간 가브리엘은 ‘계시’를 받고, 다신 믿음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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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of Insanity 2000년 12월 25일. 런던 베이스먼트 329 클럽(Club Basement 329, London). 이 곡은 제목 그대로 광기의 바람이 어떻게 시작됐는가를 보여준다. 도입부를 비롯해 반복적으로 울리는 영롱한 피아노 소리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는 정서는 음험함이다. 지하 클럽의 비밀스런 연설에 걸맞는. 피치카토 주법을 활용한 현악 세션과 웅장한 키보드 배킹, 드럼의 절묘한 스틱워크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중반부의 연주가 인상적이다. 이 곡에선 드디어 U R이란 믿음의 실체가 드러난다. ‘감정은 널 무기력하게 만들고, 감정은 고통일 뿐이야’라고 하는. 말하자면 이들은 배트맨으로 널리 알려진 크리스찬 베일의 화려한 액션이 화제였던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볼 수 있는 사회를 이상향으로 원하는 것이다. 감정을 포기하거나 박탈당한 사람들의 사회 말이다.

Propaganda-X 2001년 10월 7일. 파리 귀앙꾸르 톰슨 CSF(Usine Thompson Compagnie Générale de Télégraphie sans fil, Guyancourt, Paris). 실험실이나 정교한 무언가를 만드는 공장을 연상케하는 효과음 사이로 악마의 속삭임처럼 음험하고 단호하게 귀를 파고드는 보컬이 흘러나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게할 테니’라며 듣는 이를 유혹하고 이 세상에 반항할 것을 강요하는. 이 곡에선 “Breeze of Insanity”에 이어 다시금 분명하게 믿음의 실체가 드러난다. 제목처럼. 시종일관 스타카토를 적극 활용해 단호한 목소리로 믿음을 강요하는(혹은 선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엔 다음 곡의 인트로에 해당하는 효과음과 인물들 간의 대화가 나오는데. 지하철이 배경임을 드러내는 효과음 사이로 남자와 여자가 “내가 도와줄까요?”, “괜찮아요.”, “당신 이름이 뭐죠?”, “이든(Eden)이에요.”하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My Fate 2001년 10월 7일. 파리 삐갈 광장 지하철역(Subway Station, “Place de pigalle”, Paris). 보컬과 연주 모두 잔뜩 힘을 주고선 위악적으로 청자를 짓누르던 이전의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이 이 곡에서 미하엘 탠거만은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위로 감미로움을 감미감미하게 더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가브리엘과 이든의 첫 만남답게, 첫 눈에 반해버린 사람의 고백답게. 물론 감정을 버리는 것이 진리라 주장하는 종교의 지도자인 가브리엘과 이든의 사랑이 평범할 리가 만무하고, 가브리엘은 그런 심정을 ‘우리가 나눈 감정은 헛된 것이지만, 나는 내일도 당신을 사랑할 것이며. 이 감정을 영혼 깊숙히 상처로 숨겨야 한다’고 노래한다.

Reach for Reign 2002년 9월 15일. 멕시코시티 U R 본부(U R Headquarters, Mexico City). 잔잔한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이어지는 앨범에서 가장 ‘달리는’ 곡이다. U R의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이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씨를 뿌리고 행동할 것을 다짐하며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를 쓰래쉬 메탈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강력한 연주로 표현하고 있다. 중후반을 수놓는 기타 연주는 그야말로 절륜하고. 그런데 재미있게도 굳건한 믿음 아래 결의를 다지는 내용과는 달리 보컬에선 냉소의 아이콘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 MEGADETH)의 분위기, 차갑고 평이한 어조로 말을 툭툭 내뱉는 바로 그 뉘앙스가 종종 느껴진다.

Unwanted 2002년 11월 1일. 시카고 CNN 오프라 윈프리쇼(The Oprah Winphrey Show, CNN Chicago). 점점 영향력을 넓혀온 U R의 리더 가브리엘이 그 유명한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해 대중 앞에서 당당히 U R의 믿음을 선포하는 곡이다. 대중을 단박에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가브리엘의 모습을 선동과 선언을 넘나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연기하고 있다. 가브리엘은 처음엔 ‘나는 초대받지 못한 자이며 당신의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부정하지 마세요’라며 사람들을 안심시키지만, 이내 사람들로 하여금 별볼일 없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들고 ‘내가 빛이요, 진리’라며 ‘내가 이 진절머리나는 세계를 고칠 것’이라며 다가선다. “당신은 날 적이라 하지만, 난 당신의 구원이야!”

Terminus Interlude 피아노와 기타로 이루어진 아주 짤막한 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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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2002년 11월 23일. 파리 사크레 쾨르(Sacre Coeur, Paris). 이전 곡들이 대체로 확신에 찬 어조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U R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 곡은 이야기의 주인공 격인 U R의 지도자 가브리엘이 어떻게 제목처럼 추락하게되는지 그 단초를 그리고 있다. 그 단초는 바로 “My Fate”에서 이어지는 가브리엘과 이든의 사랑이다. 당연한 노릇이랄까. 모든 감정을 고통이라며 거부하라던 종교의 지도자가 그 어떤 감정보다 강한 사랑에 빠졌으니 그럴 수 밖에. 밴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여성 보컬과의 협업을 택했고, 간절하게 서로를 원하지만 미래가 있을 수 없는 연인의 안타까운 상황을 남녀 보컬이 마치 서로 대화하듯 풀어낸다.

Terror Fantasy 2002년 12월. 멕시코시티 U R 본부. (U R Headquarters, Mexico City). 반복적인 일렉트로니카의 그것처럼 울리는 신디사이저와 꿀렁이는 리프로 시작하는 이 곡에선 “Fallen”의 끝에서 이든과의 사랑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가브리엘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곡 중반에 효과음으로 등장하는 뉴스 앵커가 ‘신뢰할만한 정보에 따르면 U R의 리더가 위중한 상태입니다’고 하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하지만 가브리엘은 자신이 버리라고 했던 감정의 격랑 속에서 깨달음을 더하는데, 이는 ‘나는 더 강해졌다. 너는 환상에 사로잡혀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에 네가 나를 믿도록 너의 의지를 파괴하겠다. 너는 너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는 식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짜임새 있게 굴곡 진 구성과 어느 한 파트 빠짐없이 출중하게 부분 전술과 개인 전술을 모두 능숙하게 수행하는 연주가 전형적인 (과거) Dream Theater풍의 곡이라 할 수 있다. 곡의 마지막을 멋드러지게 장식하는 재지한 베이스 연주도 인상적.

Broken World 2003년 1월 6일. 칠레 산티아고(Santiago de Chile). 이 곡에선 U R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가브리엘의 옆에서 함께 했던 케리오스(Kerioth McLane; 역시 부가 정보에 따르면)의 고뇌가 드러난다. 케리오스는 ‘U R의 주인이자, 신을 연기하는 가브리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종국에는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 가브리엘이 미쳤다고 여기는 지경에 이른다. 제목처럼 (그들의) 세계가 부서진 것이다. 케리오스는 이든으로 인해 흔들려 위중한 상태란 소문이 퍼질 정도로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게 된 가브리엘을 보며 위기 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변박과 엇박을 적극 활용해 덜컹거리는 듯 불안정한 느낌을 강조한 연주가 불안정한 케리오스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흔히 현하면 떠올리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울림과는 달리 신경질적으로 떨리는 현에 불안하게 울리는 건반이 더해진 도입부가 매우 효과적이다고. 마지막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라’ 말하는 케리오스의 목소리가 나온다. 파국을 부르는 음모의 시작.

U R Resistence 2003년 2월 12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그(Berlin Kreuzberg).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정석’에 나올법한 키보드와 베이스의 어울림으로 시작하는 인트로를 지나 등장하는 목소리는 앞 노래에 이어 여전히 케리오스의 그것이다. 케리오스는 사람들을 모아 다른 신자(혹은 추종자)를 눈 먼 자 취급하고, 의지를 박탈당한 자신의 인형 혹은 스피커라 말하는 가브리엘에 대항하고자 한다. ‘너희들은 눈 먼 자가 아니야. 무엇이 진짜인지 봐! 그를 떠나야 해. 그는 너희를 위한 신이 아니야’라며. 전반적으론 어쿠스틱 기타의 찰랑임을 비롯해 오밀조밀한 리프와 다채로운 키보드 사운드, 유려한 베이스라인이 빛을 발하며, 중반부엔 마치 어딘가의 전통 타악기를 연상케하는 재밌는 건반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여러 사람이 가브리엘에게 맞서는 것에 대한 불안과 위험을 이야기한다. 케리오스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그를 죽이는 수 밖에 없어!(There is only one way. Kill Him)!” 케리오스에겐 이제 그의 친구이고 동반자이자 지도자였던 가브리엘을 죽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수미쌍관이라고 도입부의 그 테마가 마지막을 장식.

Judgement Day 2003년 4월 18일. 리오 데 자네이로 마라카나 경기장(Maracana Stadium, Rio de Janeiro). 앞선 두 곡에 이어 이 곡 역시 케리오스의 목소리다. 비로서 앨범의 처음이자 현재로 돌아온 곡이기도 하고. 또박또박한 드럼 비트 위로 또랑또랑한 키보드가 울리며 결의을 재차 확인하는 케리오스의 목소리가 나온다. 케리오스는 가브리엘을 향해 ‘나를 위해 죽어다오. 영원히 잠들게.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니가 빼앗아 간 모든 것을 돌려다오’라 하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가브리엘은 ‘모두 다 이루었어(!), 나는 죽지만 언제까지나 영원히 살아있을 거야’며 케리오스에게 ‘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틀렸어. 이건 시작일 뿐이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말하자면 가브리엘은 케리오스의 계획을 간파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 눈 앞에서 죽음으로써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절대적 존재로 승격된 것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뚝심있게 느릿한 템포로 서서히 파국 아닌 파국의 비장함을 한껏 끌어올리는 전개가 백미. 여담으로 도입부의 은근한 분위기가 Dream Theater의 근작에 실린 “Beidges in the Sky”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Eternity 이 앨범은 U R이 영원함을 알리는 짤막한 피아노 소품으로 끝난다.

부클릿에 씌여있는 후일담. 2534년 5월 21일. 가브리엘을 제거했지만,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노릇에 지나지 않았던 데다 리더가 없음에도 부흥하는 U R을 감당할 수 없었던 케리오스는 자살하고, 이든의 모두에게서 사라진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아는 사람 없이. 그리고 U R은 길고 긴 투쟁 끝에 결국 그들이 이상향으로 그리던 사회를 건설하는데 성공한다.

두 음반의 공통점과 차이

두 음반엔 비슷한 구석이 많다. 무엇보다 두 음반 모두 부조리하고 모순에 찬 세계에 좌절함과 동시에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 인물과 그를 조종하는 ‘마스터 마인드’를 중심으로 믿음과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구도에 통속적인 멜로 드라마의 요소를 집어넣어 대중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갈등을 고조시키고 종국에는 파국에 이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통속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성 보컬과 협업을 한 곡이 있는 것도 똑같고.

더해서 두 장의 앨범 모두 치밀한 서사에 적합하지만은 않은 음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치 라디오 드라마처럼 다양한 효과음을 써서 이야기의 이해를 돕고 있다. 심지어 군중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담아낸 ‘Operation: Mindcrime’의 커버 아트워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아트워크를 Ultima Raio의 부클릿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공통점은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과 시기로 보아 ‘Ultima Ratio’가 ‘Operation: Mindcrime’에 영감을 받았다고 풀어야 맞을 것이다.

상당히 비슷한 컨셉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과는 달리 두 장의 음반이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은 사뭇 다르다. 큰 틀에서야 모두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 불리지만, Queensrÿche가 아메리칸 파워 메탈 혹은 정통 헤비 메탈의 영향력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오소독스한 음악을 하는데 비해 Superior는 전형적인 (과거) Dream Theater 풍의 굴곡진 구성에 중점을 둔 음악을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될 점은 지금이야, 특히 한국에선, 프로그레시브 메탈하면 Dream Theater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지 Queensrÿche의 오소독스한 스타일 역시 초기 Savatage나 Fates Warning처럼 프로그레시브 메탈 쪽에 나름의 확고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Superior의 경우엔 데뷔작인 ‘Behind’에서 (혹자에 따르면) Dream Theater의 ‘Awake’의 판박이 같은 음악을 했다가, 다음 작품인 ‘Younique’에서 이름 그대로 독특하기 짝이 없는 음악을 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탓에 레이블과의 협의 끝에 다시 ‘평범한’ 프로그레시브 메탈로 회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미 사골 우려먹듯 우려먹어서 정작 사골은 보이지도 않을 지경에 이른 음반 ‘Operation: Mindcrime’과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 1,000명이나 될지도 의심스러운 음반 ‘Ultima Ratio’을 끄집어낸 까닭은 이 음반들에 담긴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와도 무관하지만은 않은 탓이다.

두 장의 앨범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모두 허구지만, 당시에 일어난 사회적 사건에 영향을 받았다. ‘Operation: Mindcrime’은 강경 보수로 이름 높은 레이건 시대 미국의 사회상과 실제로 암살 시도를 당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사건에, ‘Ultima Ratio’는 앨범 발매 1년 전에 일어났던 9.11에. 다시 말해 이 두 장의 앨범에 담긴 이야기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둔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돈’이 정부마저 좌지우지하고, 여론을 전달하는 것인지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미디어가 판을 치고, 저마다의 ‘믿음’을 내세워 복종을 강요하는 ‘지도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저마다의 사람들이 앞다투어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형국 속에서.

빛이요 진리인 나를 믿고 따르라. 나의 적을 제거하라!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이제는 식상하다 못해 쉬어터진 말이지만 우리는 분명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일찌기 없었던 수준으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쉽게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갖가지 매체가 매체(미디어, media)란 말의 어원처럼 중간자(라틴어 medius = 영어 middle)로서 어떤 사실과 수용자 사이를 이어주고 있는 탓이다. 물론 그 중에서 이 시대의 화두이자 핵심은 웹이다.

인류가 초기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다른 이의 경험을 직접 전해듣는 것 외엔 없었다. 그러다 문자와 인쇄 기술의 발명과 보급으로 인해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듣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에 있어서 폭발적인 증가가 일어났다. 방송과 통신을 넘어 웹이 등장한 지금은 양과 속도에 있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고.

그런데 역설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늘어날수록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보고 판단한 것을 다시 습득하는 정도가 늘어나게 된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다시 말해 아주 오랜 옛날엔 정보는 적을지언정 그것 대부분이 스스로 겪으며 깨우친 것이었던 데 비해, 현재에 이르러선 엄청난 정보량에 비해 그 중 실제로 직접 겪으며 깨우친 것이 드물게 된 것이다.

‘I used to trust the media To tell me the truth, tell us the truth But now I’ve seen the payoffs Everywhere I look Who do you trust when everyone’s a crook?’

한 때는 미디어가 나에게, 우리에게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어. 하지만  이젠 내 눈길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 치르고 있는 그 대가를 보고 있어. 모두가 사기꾼일 땐 대체 누구를 믿어야하지?

‘Revolution Calling’ 중에서

더구나 인간은 휘둘리기 쉬운 존재다. 나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해. 그런데 지금 우리가 얻는 정보 대부분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다. 그렇기에 점점 더 어떤 미디어를, 어떤 중간자를 통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Revolution Calling’의 가사처럼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던 미디어가 실은 사기꾼에 불과한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미디어’는 ‘중간자’로서 풍문을 전하는 지인일 수도, 어떤 방송이나 신문일 수도, 어떤 종교일 수도, 어떤 정당일 수도, 어떤 팟캐스트일 수도 있다.

문제는 무언가를 어떻게 얼마나 믿느냐다. 입맛에 맞는 정보가 우선인 건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감정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인 이상. 하지만 그렇게 닫힌 체계를 지켜가며 편식을 하다 보면 쓰다고 기피했던 정보가 모자라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더한 문제는 입맞에 맞는 매체만을 택해 탐닉하다 못해 그것을 광신하게 되는 경우다. ‘광신’이라 하면 왠지 거리껴지고 나완 아득히 떨어진 문제 같지만, 어떤 매체의 잘못에 대해선 그것이 명백하게 드러날지라도 한없이 관대해지고, 외부의 비판을 그저 흔들기와 질시 정도로 치부하다 종국에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하다 주장하며 매체 자체의 안위에 집중하는 꼴을 광신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장담하건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열에 아홉은 총선을 전후한 요즈음 이러한 ‘광신’의 실체와 행태를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 그 ‘매체’가 다를 뿐.

‘Operation: Mindcrime’과 ‘Ultima Ratio’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광신의 끝은 사필귀정이랄까. 전자에서 피를 흘려서라도 부조리한 사회를 뒤엎고자 했던 니키는 자신이 또 다른 믿음에 이용당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물론 후자에선 U R이 지배하는, 그들의 믿음이 ‘진리’가 되는 세계가 열리긴 한다. 주인공이 핍박당함으로써(죽음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 절대자의 위치에 올랐으니. 하지만 단 하나의 절대적 ‘진리’에 의해 지배당할 뿐더러 그 믿음에 따라 인간의 오욕칠정을 포기하고 억눌러야만 하는 사회가 행복할리 만무하지 않은가.

“빛이요 진리인 나를 믿고 따르라. 나의 적을 제거하라!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이 전부고 내가 믿는 것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진리에 생채기라도 내려는 듯이 비판을 가하는 이들이 기꺼울 리가 없다. 하지만 세상엔 내가 볼 수 없는, 어쩌면 보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 어떤 ‘매체’도 절대적 진리를 말해주진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나, 그럼에도 지금 우리네 세상엔 자신의 믿음만이 진리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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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1. 음반에 대한 고찰과 소개만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마무리로 좋은 기사를 써주셨군요.

    인물에 대한 소개 링크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마음도 있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음악감상을 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다음 앨범 예고가 없어서 아쉬웠네요.

  2. 처음이고 해서, 약간은 무리다 싶으면서도 분량을 늘렸고 미디어와 연결을 시켜 마무리를 지었는데요. 호의적으로 읽어주셨다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네요. 첫(!) 반응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다음 앨범에 대해선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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