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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해도 영화보기는 어렵던 시기가 있었다. 극장에 가기도 놀이기구를 타기도 쉽지 않으니 휠체어를 탄 나로서는 데이트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그래도 최근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관람석이 많은 영화관과 공연장에 설치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관람석 중 상당수는 A열(맨 앞자리)에 있다. 아마도 보통의 경우 영화관 A열에 앉는 일은 매진 직전 영화의 마지막 티켓을 샀거나 영화보다 옆에 앉은 동반자에 더 관심이 많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A열에 앉으면 스크린이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눈동자를 굴려가며 주인공의 액션을 따라가다 두 시간이 흐르면 토할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예술의 전당, 50% 할인이라도 돈 주긴 아까운 자리 

연극, 뮤지컬 등은 휠체어를 탈 정도의 장애등급이 있다면 50%정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연극 좋아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친구를 사귀어 함께 가라. 그러면 동반자까지도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좌석 위치는 맨 뒤이거나, 또는 아래 사진처럼 ‘통로’에 있다. 하나 더, 대학로 소극장은 대부분 갈 수조차 없다. 

"통로"에 있는 빨간 상자 표시가 장애인 4석이다. (그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좌석 배치표)
“통로”에 있는 빨간 상자 표시가 장애인 4석이다. (그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좌석 배치표)

저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려면, 여자친구와는 같이 가지 않는 게 좋겠다. 돈주고 앉아 있기 확실히 아까운 좌석이다.

한편, 아래는 홍대의 한 극장이다.

대학로의 한 소극장
홍대의 한 공연장. 객석 제일 뒷줄, 그 뒤에 휠체어 전용석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러나 앞 객석에 관객이 앉으면, 전혀 무대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사진은 휠체어를 탄 시점에서 촬영한 것이다.

맨 뒷줄 장애인 좌석에 앉아, 앞 자리에 친구를 앉아보게 했다. 무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친구 상체가 유달리 긴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보통의 평범한 체구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기준으로도 작은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여하튼 이렇게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관객이 저 위치보다 한 줄 앞에 앉아도, 한 줄 더 앞에 앉아도 거의 시야가 가려진다. 장애인 관객이 방문한다면 장애인석 앞의 세 줄을 모두 비워주겠다는 생각일까. 아닐 것이다.

법도 문제 없고 극장도 법을 지켰다!  

이상에서 본 것 같은 맨 앞자리, 아니면 측면 통로의 짜투리(?) 자리에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관람석을 설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좌석 중간 즈음 설치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거나 구조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예 관람이 어렵거나 완전히 고립된 곳에 설치하는 터무니없는 경우가 관리자들의 무심함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의 편의시설과 관련한 규정을 두고 있는 우리 법령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의 하위법령을 따라가면, 휠체어 관람석에 관한 규정을 만나게 된다. 이 법의 시행규칙 별표1의 20은 다음과 같이 설치 장소를 규정한다.

20. 장애인 등의 이용이 가능한 관람석 또는 열람석

가. 설치장소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관람석 또는 열람석은 출입구 및 피난통로에서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설치하여야 한다.

법 내용에 문제는 없다. 장애인은 비상시에 피난이 비장애인들보다 어려울 수 있으므로 출입구나 피난 통로에서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관람석을 두라고 규정했다. 지극히 타당하다.

우리 법이 말하지 않는 것

문제는 이 법이 ‘말하지 않는 것’에 있다. 앞서 본 사진들에서 본 공연장들의 좌석 그리고 영화관 A열에 설치된 휠체어용 관람석은 위 규정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들을 위한 관람석을 무대나 스크린에 대한 시야까지 확보하여 규정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위 규정이 ‘피난통로에서 접근하기 쉽게’ 설치하라고 하므로, 공연장이나 영화관들은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가장 구석지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위치에 장애인 관람석을 만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통로 바닥에 휠체어 그림만 그린다. 그렇다. 당연히 통로는 대피하기에 제일 쉬운 곳이다!

법도 문제 없고, 극장도 법을 지켰다. 하지만 장애인은 차별받는다. 문제는 '돈'이다. (사진: Duncan, CC BY)  https://flic.kr/p/bUVSpp
법도 문제 없고, 극장도 법을 지켰다. 하지만 장애인은 차별받는다. 문제는 ‘돈’이다. (사진: Duncan, CC BY)

美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든 관람석과 동등한 시야 확보” 

미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American with Disability Act)의 규범을 적용받는 미국 연방 접근성 표준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관람석이나 열람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4.33.3 PLACEMENT OF WHEELCHAIR LOCATIONS.

Wheelchair areas shall be in integral part of any fixed seating plan and shall be dispersed throughout the seating area. They shall adjoin an accessible route that also serves as a means of egress in case of emergency and shall be located to provide lines of sight comparable to those for all viewing areas.

(휠체어를 위한 공간은 다른 고정식좌석과 통합된 곳에 있어야 하고, 전체 좌석에 분산하여 배치되어야 한다. 긴급상황시 출구로 접근 가능한 경로에 인접하여, 모든 관람석과 동등한 수준의 시야가 확보된 곳에 설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관람석은 가급적 다른 좌석과 분리되지 않아서 함께 간 동료와 같이 관람이 가능해야 하고, 대피하기 좋은 곳에 있어야 하며, 시야가 확보되어 있고, 가능한 분산배치해서 휠체어 이용자가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규범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는 미국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한국의 경우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거나 과도한 부담을 발생시킬 가능성도 있다. (우선 앞서 본 사진 속 사례들은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고도 당장 개선이 가능해 보이지만.)

다만 중요한 것은, 영화관이나 극장 등에 관람석을 설치할 때에는 당연히 ‘안전’과 더불어 무대나 스크린에 대한 시야의 확보 등과 같은 기본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관 한 가운데 앉아 화재가 나면 비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가운데 좌석을 비워 두고 출입구 앞에 좌석을 만들어 두지는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예 영화관이나 공연장 등 공공장소에 가지 않는 것이다. 그냥 방구석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을 배우고,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놀이기구를 탄다.

장애를 가진 우리들도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다. 가능한 안전한 조치를 취하되, 설혹 약간의 위험이 따르더라도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함께 나란히 앉아, 배우들의 얼굴을 눈 가득히 넣고, 영화와 연극을 감상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바로 이러한 삶의 조건까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일이 새로운 시대에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루는 첫걸음이다.

Irina Patrascu, CC BY https://flic.kr/p/5STG1N
Irina Patrascu,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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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안녕하세요 ~ 글 잘 봤습니다
    인식 전환이 절실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죠. 우선 저부터 ㅡ _ ㅡ;; 가족이나 아끼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지더라도 그럴 여력이 없으면 더 오래 걸리겠죠~ 결국 인식 전환과 그런 여건을 만드는 것이 해당 기업과 그 사회에 훨씬 소중한 가치를 제공함을 느끼게 해야죠
    링크 글(ㅍㅍㅅㅅ)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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