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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온 편지: 노동자는 정말 게으른가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습니다.

편견은 힘이 세다.

편견의 힘 

편견을 당하는 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편견하고자 하는 자는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젊은이는 늘 “요즘 젊은 것들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편견과 싸워야 했다. 역설적인 것은, 그 젊은이가 “어른”이 되면 젊은이에게 그 편견을 돌려준다는 점.

이렇게 편견의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세상은 늘 편견의 바다이고, 노동하는 일상도 예외가 아니다. 그 중에서 단연 최상급은 “노동자는 게으르다”는 편견이다. 물론 이러한 편견은 특히 힘이 세다.

테일러, 경영에 ‘과학’을 도입하다? 

경영은 ‘과학’이라 한다. 무작위로 귀중한 인력과 자원을 사용할 게 아니라, 요모조모 잘 따지고 연구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용하자는 의미다. 이런 경영과학에서 편견이 끼어들 틈은 당연히 적지 않겠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또한 편견이다.

경영에 과학이라는 수식어를 도입한 사람은 이른바 ‘과학적 관리’로 잘 알려진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다. 그가 1911년에 쓴 책, ‘과학적 관리의 원리’ 덕분에 경영계의 아이돌이 된 사람이다.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와 그를 경영학의 '아이돌'로 만들어 준 책 '과학적 관리의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년~1915년)와 그를 경영학의 ‘아이돌’로 만들어 준 책 ‘과학적 관리의 원리'(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 1911)

테일러의 분노, “노동자는 게으르다!”  

그런데, 이 책은 직접 보면, 교과서로 배우는 ‘과학적 관리’와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출발점은 냉정하고 차분한 과학적 관찰이라기보다는, 마치 ‘시일야방성대곡’같은 비분강개다. 그가 분노했던 연유는 이렇다.

“영국과 미국인은 세상에서 스포츠를 가장 좋아하는 국민이다. 미국 노동자가 야구를 할때나 영국 노동자가 크리켓을 하는 경우, 자기 편이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최대 득점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낙오자’라 낙인찍고 경멸해 마지 않는 정서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이런 노동자가 경기 다음 날 일하러 와서는,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려고 애쓰기는커녕, 대부분 고의적으로 일을 적게 하려 하고 – 능력에 훨씬 못 미치는 정도의 일만 하고 – 또 많은 경우, 적정한 하루 일량의 삼분의 일이나 반에도 못미칠 정도만 일하고 그만이다.

게다가, 최선을 다해 하루 일량을 채우려 하는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동료들로부터의 비난인데, 경기할 때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것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고의적으로 천천히 일하기, 또는 적게 일하기는 모든 제조업체에 일반적이며 건설 분야에도 만연하다. 나는 이런 적게 일하기 현상이 영국과 미국의 노동계층에게 최대의 악이다.”

한마디로, 운동경기할 때처럼 전력을 다하지 않는 노동자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경영자라고 해서 뭐 그리 다르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또, 미시경제학 교과서조차도 노동을 비효용이라 해서 여가와 대비되는, 그래서 적정한 금전적 보상이 없으면 피하고 싶은 것으로 파악하는 마당에, 노동을 여가처럼 생각하고 일하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도둑놈 심보이기도 하겠다. 편견이자 오해다.

우리가 게으르다고? (사진: Alexandre Dulaunoy, CC BY SA)

우리가 게으르다고? (사진: Alexandre Dulaunoy, CC BY SA)

편견에서 출발한 테일러의 과학

하지만 테일러의 과학적 이론은 이런 편견에서 출발한다.

노동자는 게으르고, 그 이유는 일하면서 ‘잔머리’를 굴리기 때문이라 본다. 틈만 나면 어떻게 ‘농땡이’를 칠까 궁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야심찬 계획은 경영자가 작업방식에 대한 과학적 지침을 제시하고, 노동자는 이를 충실히 따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과학적 실험을 위해 노동자를 선택할 때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테일러가 이상적으로 꼽은 노동자의 모습은 이렇다.

“무식하고 우직해서 심적 상태가 황소와 다를 바 없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기민하고 지적인 사람은 이와 같이 단조로운 일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너무 무식해서 퍼센트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며, 따라서 이같은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지적인 사람들로부터 훈련을 받아서 과학적 법칙에 따라 일하는 습관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이런 ‘편견’에 기초한 과학적 관리 덕분에, 영미권에서는 오랫동안 노동자의 교육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을 경계했다. 노동자가 쓸데없이 생각이 많으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급기야 동료 노동자를 선동하고 기업주에 반발한다고 걱정했다.

한 노동자의 초상, 1942년 경 촬영. 출처 미상. (재인용 출처: Bill & Vicki T, CC BY)

한 노동자의 초상, 1942년 경 촬영. 출처 미상. (재인용 출처: Bill & Vicki T, CC BY)

일의 양을 제한해서 실업률이 높다! 

노동자들의 ‘적게 일하기’ 풍조에 대한 테일러의 걱정은 그 전체 경제적 효과에까지 미친다. 그리하여 영국 노동자들이 고의적으로 일의 양을 제한하는 관행 때문에 영국 실업률이 높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이 제 무덤을 판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하는가?

테일러에 따르면, 그 이유는 최대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해친다는 잘못된 사고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면 생산성 증가하고 그래서 임금도 증가하면 경제도 좋아지고, 또 그러면 고용도 늘어나는 것인데, 이 간단한 이치를 노동자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자들은 생산성이 이런 식으로 증가하면 기업에서 당장 일자리를 줄이려고 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들은 단기에 사로잡혀 보다 장기적인 큰 혜택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20세기 초반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노동자도 할 말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도 할 말이 많다. 게으르고 싶어서 게으른 게 아니다. 테일러 말을 믿고 야구 경기하듯이 사력을 다해 일을 한다고 치자. 그럴 경우 기업이 이에 상응하여 임금을 인상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하자.

그러나 이윤극대화를 생각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일량을 늘린다고 해서 임금을 올려줄 이유는 없다. 올려 주더라도 ‘쥐꼬리만큼’ 올려 줄 것이라 의심한다. 따라서 노동자도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같은 상황이다.

테일러의 과학 경영은 사실 이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테일러의 영웅적인 노동자인 슈미트는 그 “황소같은” 집념으로 생산성을 무려 3배 이상 올렸는데, 그의 임금은 60% 남짓 올랐을 뿐이었다. 따라서 결국 서로 못 믿는 마당에,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힘내서 일할 필요가 없다.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주는’ 일은 않겠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생각이었을 터다. 이와 같은 저항을 테일러는 편견에서 출발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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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컬로프, “고임금과 자율성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만일 기업주가 마음을 달리 먹고 솔선수범해서, 노동자의 신뢰를 쌓아가면 의외의 좋은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 기업주가 임금을 조금 넉넉하게 주고, 작업속도를 높이려고 몰아부치지 않으면,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가능성은 있다. 즉, 기업주가 고임금과 자율성이라는 선물이 주면, 노동자가 화답한다는 것이다.

George Arthur Akerlof (born June 17, 1940)

조지 아컬로프(George Arthur Akerlof)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아컬로프(George Akerlof)는 이런 “선물 교환” 같은 상황이 실존한다는 것을 보였다. 그는 한 회사의 작업방식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는데, 노동자들 대부분이 표준작업량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딱히 초과근무 수당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럴 때, 표준작업량을 올리는 것이 회사에 당연히 이익인데, 놀랍게도 이 회사를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할 경우, 노동자들이 이를 “배신”이라 간주하고 일제히 표준작업량만큼만 일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선의와 두려움이 결합되면서, 노동자는 회사는 자유롭게 개인의 컨디션에 맞게 작업하고, 회사는 임금을 넉넉하게 지불하는 관행이 정착됐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는 임금이 높아서 좋고, 회사는 생산성이 높아서 좋은, 상생의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컬로프는 이를 ‘효율성 임금’이라 불렀다. 고임금이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노동자 게으르다는 편견은 효율적 경영의 걸림돌 

조금 일반화시켜 보면 이렇게 된다. 서로 화답하며 협력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상생할 것이고, 서로 까다롭게 자기 이해만 챙기면서 좋은 결과과 나오리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생하려고 하면, 테일러 식으로 표준생산량을 최대한으로 바짝 잡아두고 임금도 이에 딱 맞추어 지불하는 ‘과학적’ 꽁생원이 되지 말고,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생산량 수준으로 잡아두고 임금이 이 생산량 수준보다는 조금 더 넉넉하게 주어야 한다. 임금에도 표준생산량에도 여백을 두란 얘기겠다. 이 여백이 노동자의 자발성을 유도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게으르다는 편견은 효율적인 경영의 걸림돌일 뿐이다.

‘공평 정의 신뢰’ 깨질 때 ‘게으름’으로 복수 

이와 같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노동자의 모습은 최근 수많은 실험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

Ernst Fehr

어네스트 페어(Ernst Fehr)

스위스 쮜리히 대학에 있는 페어 (Ernst Fehr) 교수가 주도적으로 한 실험들이 대표적이다.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테일러 실험의 슈미트가 아니라 아컬로프의 노동자들에 가깝다. 공평, 정의, 신뢰 같은 것을 중시한다. 이것이 무너졌을 때, 힘이 닿는 한에서 “복수”하려고 한다고 한다. 때로는 개인적인 금전적인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이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종종 선택하는 복수방식이다. 이게 ‘게으름’의 정체다. 페어 교수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내 월급이 불공평하게 낮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 주면, 이들의 노동 생산성은 증가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실업이 늘어날 것이라 지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하나 더, 고액 연봉자는 ‘효율성 임금’ 예외 

페어 교수의 연구결과에서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효율성 임금 패턴에 예외가 있다는 점이다. 이미 고액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의 월급을 올려 봐야 그들의 성과가 반드시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래 페어 교수의 논문 참고)

그동안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수장들은 그들의 고연봉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처해 오곤 했다. 수백만불에 이르는 연봉 인상을 통한 인센티브 효과로 성과도 좋아지니, 효과로서는 오히려 이익이라는 것이다. 받는 만큼 성과를 냈다는 얘기겠다.

페어 교수의 연구 결과를 다소 거칠게 해석하자면, 이런 고액 연봉자의 이런 주장은 간단히 무시해도 되겠다. 아마도 그들의 또다른 편견일 뿐.

참고 문헌 

Cohn, A., Fehr, E. and Goette, L. “Fair wages and effort provision: combining evidence form the lab and the field”, University of Zurich Department of Economics, Working Paper No.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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