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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안수찬 한겨레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바탕해 퇴고한 글입니다. 필자 승낙 하에 슬로우뉴스 편집팀이 글 일부를 수정, 보완했습니다. (편집자)[/box]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미국 재난보도 실상을 배우러 떠난 박기용 [한겨레] 기자로부터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미국 일간 USA 투데이의 온라인 뉴스 부문에서 속보를 취급하는 ‘브레이킹 뉴스팀’을 만났는데, 그 면면은 (한국 기자들에겐) 가히 충격적이다.

기자들

약 20명의 팀원 대부분은 브레이킹 뉴스 담당 이력만 15년이 넘는다. 실제 기자 이력은 그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즉, 40대 안팎의 기자들이 숨가쁜 사건사고 현장을 뛰어다닌다. (한국에서 15년차는 팀장, 차장 등을 맡아 후배들의 보고를 받는 ‘앉은뱅이’ 신세가 된다)

팀원 가운데 42년차 기자는 기사 작성만 전담한다. 아마도 환갑이 넘었을 나이에 사건사고 기사를 작성한다는 뜻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사람은 스태프-라이터(staff-writer)에 해당한다.

아마도 20~30년차 정도의 이력을 갖고 있을 팀장은 취재 동선 등을 지시하되, 한국처럼 ‘기사를 뜯어고치는 데스킹’을 하지는 않는다. 그 역할은 시니어 라이터(senior writer)가 담당한다. 한국에서 20년차는 부장 또는 논설위원을 맡는다. 아마 USA 투데이의 편집국장 역시 그 팀장과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즉 이 나라에선 연차에 따라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뉴스룸’이 가능할까.

기자 호칭으로 본 미국의 저널리즘

미국의 기자 호칭에 대하여

미국 언론계의 몇몇 용어를 알고나면, 그들의 뉴스 생산 방식도 이해할 수 있다. 미국 기자들을 부르는 호칭은 대락 이런 뜻이다.

저널리스트(Journalist)

언론인 일반

리포터(Reporter)

(다른 언론인 직종과 구분하여) 기자

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General assignment reporter)

딱히 정해놓은 담당영역 없이 세상 모든 것을 취재하는 기자. 이 역할을 신참 기자(cub reporter)가 한다. 이들은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취재 주제를 정하여 움직인다. 주어진 주제가 없으면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를 직접 캐내야 한다. 그러니까 입사 직후 수습 기자 시절부터 경찰서 등의 출입처를 부여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 신참은 말 그대로 ‘온 세상의 맨땅에 헤딩’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잠깐. 미국의 유력 매체에서 일하는 ‘신참 기자’는 지역 신문 또는 지역 방송에서 이력을 쌓아 입사한 경우를 말한다. 한국처럼 대학 갓 졸업한 이들을 바로 채용하는 일은 없다.

[box type=”info” head=”‘워터게이트’ 보도한 밥 우드워드의 ‘워싱턴포스트’ 입성기 “]

밥 우드워드

1971년 워터게이트 보도로 유명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사진, 위키백과)는 예일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학을 공부하고, 미해군 정보장교로 복무한 뒤, 또다른 명문인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로스쿨을 준비하다가 워싱턴포스트에 지원했다.

한마디로 초호화 스펙을 갖춘 인재였는데, [워싱턴포스트]는 그에게 ‘기자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데서 일해보고 다시 찾아오라며 거절했다. (2주간 인턴을 시켜보긴 했는데,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내쫓았다.)

밥 우드워드는 워싱턴 외곽을 근거지로 하는 작은 일간지에서 1년간 일한 뒤에 다시 지원하여 [워싱턴포스트]에 들어왔다. 아마 초호화 스펙 덕분에 1년간의 이력이 먹혔을 것이다. 여튼 기자로 일하면서 능력을 입증한 적이 없으면, 미국 유력 언론사에 들어갈 수가 없다.[/box]

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는 일단 입사한 뒤에도 그 능력과 역량을 ‘개방적으로’ 검증하는 기간이다. 중요한 취재는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에게 맡기지 않는다. 예컨대 세월호 침몰 등의 대형 사건이 터지면, 한국에선 입사 1~3년차의 젊은 기자들을 보내지만, 미국에선 20년차 이상의 베테랑이 뛰어든다.

비트 리포터(Beat reporter)

이걸 ‘출입처 기자’라고 번역하면 한국적 맥락에선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다. 이들에게 비트(beat)는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추상적 ‘주제영역’이다. 그래서 광폭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고참 기자가 담당한다. 한국의 사회부 사건팀에 해당하는 USA 투데이의 브레이킹 뉴스팀 기자들의 경력이 20년 안팎인 것도 이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에선 심층적이고 흥미진진한 사건 프로파일링을 시니어 기자들이 쓴다.

선배 기자들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도 25년차 이상 기자들의 대부분을 사회부 사건팀 등에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륜과 식견은 미디어를 조직하는 것보다는 현장을 ‘풍부하고 깊게’ 관찰하여 해석하고 전달하는 데 더 유용하다. 예컨대 그들이라면 일베 집회를 취재한 뒤 단순보도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역사적 분석을 섞어 심층보도할수 있다.

시니어 라이터(Senior writer)

고참기자(Senior) 가운데 기사 작성을 전담하는 기자. 예컨대 부장(desk editor)이 제너럴 어사인먼트 리포터들에게 취재를 지시하면 그들이 보내온 취재 결과를 모아서 시니어 라이터가 집필한다. 미국 주간지를 보면, ‘written by A, reported by B’ 등의 바이라인을 볼 수 있다. 현장 취재는 B가 했지만, 이를 맥락 위에 엮어 집필한 것은 A라는 뜻이다.

[box type=”info” head=”객관성과 공정성보다 중요한 ‘투명성'”]

현장 기자들이 올린 메모를 보고 팀장, 차장, 부장 등이 사실상 집필하는 한국 뉴스룸에서도 이 방식을 도입하면 좋겠다. ‘아무개/아무개 기자의 취재결과를 모아 아무개 팀장이 초고를 쓰고 아무개 부장이 최종집필했다’고 밝히면 더 투명하고 솔직하지 않은가.

현대 언론에 이르러서는 객관성과 공정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투명성(transparency)이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줘라. 이것까지만 파악했으며 더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계속 더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라. 그러면 독자가 기자를 신뢰한다’고 미국 기자들은 생각한다. [/box]

퓰리처상 로고참고로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미국 퓰리처상의 피처 라이팅(Feature writing) 부문은 심층취재 결과를 얼마나 높은 ‘문학적 완성도’로 작성했는지를 평가한다. “기자는 글 못써도 된다. 사실만 잘 파악하면 된다”는 한국언론계의 관념은 대단히 잘못됐다. 글재주 부리는 데 초점을 둬서는 안되겠지만, ‘공감의 글’을 쓰지 못하면서 어찌 기자를 하겠는가.

코레스폰던트(Correspondent)

이걸 특파원이라고 번역하면 좀 곤란하다. 한국으로 치면 ‘전문기자’에 해당하는 것이 코레스폰던트다. 예컨대 ‘펜타곤 코레스폰던트’(Pentagon correspondent)라고 하면 국방부 출입기자가 아니라 군사 전문기자다.

그래서 유력 언론사는 백악관 담당 기자를 비트 리포터(beat reporter)라 하지 않고, 화이트하우스 코레스폰던트(white house correspondent)라고 부른다. ‘백악관 특파원’이라고 번역하면 그 뜻을 담을 수 없다. 백악관을 담당할만큼 정치/외교 분야의 전문기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특파원’은 ‘어디 멀리 보낸 기자’를 말한다. 한국만 떠나 있으면 개나 소나 특파원이다. 다시 말해, 코레스폰던트(correspondent)는 고참기자(senior)로 구성된 여러 비트 리포터(beat reporter) 가운데도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만 전문으로 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담당 분야는 특정되어야 하고, 공간적 의미도 필수다. 가령 ‘레드 카펫 코레스폰던트’ 처럼.

스태프 리포터/스태프 라이터(Staff reporter/writer)

스태프(staff)가 앞에 붙으면 해당 언론사에 정식 고용된 기자라는 뜻이다. 프리랜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미국적 풍토를 엿볼 수 있다.

[box type=”info” head=”미국에서 기자를 할 수 있는 세 가지 경로”]

첫째, 대학 교양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다음 법학대학원(Law school), 의학대학원(Medical school)에 진학하듯 언론대학원(Journalism school)에 가는 방법이 있다. (미국의 저널리즘스쿨 제도에 대해선 언젠가 써보고 싶다.)

둘째, 가까운 동네의 작은 매체에 들어가 맨땅에 헤딩하여 좋은 기사를 많이 써서 이력을 쌓은 다음에 유력 매체에 지원한다.

셋째, 군소매체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면 가방 챙겨서 전세계 곳곳에 있는 혁명, 전쟁, 빈곤 등 격변의 현장에 혼자 가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 된다. 이른바 ‘프리랜서’다. 기사를 써서 이런 저런 매체에 보내 원고료도 받고 이력도 쌓는다. 때로는 유력 언론사의 코레스폰던트와 계약을 맺고 함께 취재를 하기도 한다. 최근 중동에서 참수당하고 있는 기자들 전부가 프리랜서다.

기자 하고 싶다고? 체계적으로 제대로 공부하고 배워. 아니면 작은 매체에서부터 박박 기어서 좋은 기사를 계속 써내거나. 그것도 싫으면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가. 그것이 ‘표현의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기자들이 탄생하는 방식이다. [/box]

에디터(Editor)

데스크 에디터(Desk Editor, 부장)는 취재지시를 한다. 카피 에디터(copy editor, 교열 기자)는 기사를 취사선택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한국에선 부장이 곧 취재를 지시하고 기사를 골라 보내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뉴스룸에서 데스크 에디터와 카피 에디터의 역할 분담이 어찌 이뤄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데스크 에디터는 ‘기사가 될만한 것을 지시’하고, 카피 에디터는 ‘취재결과를 담은 기사 가운데 게재(또는 방송)하고 싶은 기사를 선택’한다. 상호 견제와 협조의 관계인 듯 하다.

치프 에디터(Chief Editor, 편집국장)와 매니징 에디터(Managing Editor)

에디터를 총지휘하는 것이 치프 에디터인데, 그 아래에 꼭 매니징 에디터를 둔다. 부국장인 셈인데 이 사람은 편집국장 임무를 대행(마감 일정 관리, 기사 킬, 편집장의 정책 적용)할뿐 아니라, 기자의 채용, 배치, 해고를 담당한다.

좋은 기자를 가려 뽑고,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미국이니까) 무능하면 해고시키는 권한을 가진다.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 있는데, 언론은 기자하기 나름이다. 매체력은 기자 능력의 총합이다. 치프 에디터와 매니징 에디터의 관계는 학교에서 ‘교장과 교감’의 관계에 가깝다.

아티클(Article)과 스토리(Story)에 대해

아티클은 개별 기사, 스토리는 하나의 기사든 여러 기사에 걸치든 하나의 사안을 모두 포괄하는 기사의 개념이다.

한국말로 ‘기사’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흔히 ‘아티클’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영미권에서 기사를 지칭할 때는 ‘스토리’ 또는 ‘뉴스 스토리’라 부른다. 그 단어를 보고 ‘이 친구들은 기사를 소설처럼 쓴다는 건가?’라고 생각하면 절반의 진실이다. 독자와 교감할 수 있도록 친근하게 기사를 쓰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맞지만,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는 ‘문체’가 아니라 ‘전체 맥락’을 지칭하는 뉘앙스다.

본래의 뜻으로 보아 아티클은 단편의 글을 말한다. 학술지에 실리는 개별 논문이 아티클이다. 스토리는 말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미국 기자들에게 기사는 단편과 파편의 정보가 아니라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뜻한다.

한국에서 기자는 단편을 전하는 사람인가, 완결을 갖춘 맥락을 전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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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댓글

  1.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속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국내외 저널리즘 대학원 얘기도 풍성히 다뤄주시면 좋겠네요. 관심 갖고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

  2. 이렇게 명확히 개념을 구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항상 해외 뉴스를 보면서 별 생각없이 명칭구분을 하지 않고 받아들였었는데, 이 글을 읽고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좀 더 명확해 진거 같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3. 왜 우리나라 기사들이 1차원 적인지 알겠네요. 한국인은 나이들면 왜그리 발로 뛰는건 싫어하고, 감투를 좋아하는지..

  4.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여러가지 궁금점들을 짚어준 명쾌한 기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5. 이 기사야말로 전형적인 아티클모음이네. 기승전결 없이 단순사실관계 나열후에 뜬금포로 설득력도 없는 비판적질문을 던지는 현학적도 아닌 무개념의 자가당착이라.. 한심한 기자양반 절생각하고 반성하시기를~ 연륜은 있는 것 같은데 내용은 조발표하는 학생들 각자분담조사한 사항들 짜깁기한 토픽모음보다도 못하니… 한심하시네요 이런글 쓰고 원고료 챙겨가지는 않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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