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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알리바바 창립자 ‘마원'(잭마)에 관심이 많습니다. 관련 뉴스를 따라 들어가 보니 그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윈의 발언을 기사 제목으로까지 인용해 쓰고 있었지만, 정작 그 발언 출처는 기사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요. (마윈이  “35세 때까지 여전히 가난하다면 그건 당신 책임이다.”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 편집자)

마윈을 분석하는 한겨레 기사. 제목과 본문의 첫 문장으로 쓰일만큼 중요한 마윈의 발언은 그 출처를 기사에서 끝내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마윈 열풍을 분석하는 한겨레 기사. 제목과 본문의 첫 문장으로 쓰일 만큼 중요한 ‘마윈의 발언’은 그 출처를 기사에서 끝내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확인해보고자 ‘링크타기’를 해봤습니다. (‘링크타기’ = 아래 링크한 기사들을 역순으로 추적했다는 뜻입니다.)

1. 중국어 기사 (원출처 기사로 추정)

우선 중국어 기사 원문 제목과 이를 영어로 번역했을 때의 제목입니다.

  • 马云:35岁你还穷,活该你穷!读完,就被骂醒了!
  • Ma: 35 years old you are poor, you deserve the poor! After reading, he was scolded woke up!

먼저 결론만 말하면, 원문에 해당하는 중국어 기사 본문에 “35살”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대신 기사가 끝날 무렵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을 영어로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当你30岁40岁还没有什么成就的时候,没有人会可怜你!
  • When you’re 30 years old 40 years old has no achievements, no one will pity you!

즉, 중국어 기사는 본문에 적힌 “30세”, “40세”를 ‘반띵 정신’에 따라, 임의로 제목에 35세라고 콕 집어서 달았다고 추정합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2. 불칸포스트 사설 (영어 기사) 

불칸 포스트(Vulcan Post) 사설면(opinion)이 위 중국어 기사의 자극적인 제목을 유지했네요.

  • Jack Ma: If you’re still poor at 35, you deserve it!

그런데 분명 원문에는 “30세~40세”라고 기재되어 있었는데, 제목과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 중국어 기사 본문을 아래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 When you have not accomplished anything by the time you are 35, no one will pity you.

위 기사 작성자가 중국어 기사 원문을 훼손한 이유는 제목과 본문을 끼워 맞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각색된’ 제목이 기사 본문을 훼손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죠. 그러나 적어도 숫자를 제외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you deserve it’‘no one will pity you’는 다르죠.

3. 한국어 포스트 (SARM) 

이제 기사 본문까지 일부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불칸 포스트의 사설을 한국어 번역자가 아래와 같이 번역해 제목을 뽑았습니다.

  • 당신이 35세가 되도록 가난하다면, 그건 당신 탓이다.

‘You deserve it’ 과 ‘당신 탓이다’는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문제의 주체가 ‘당신’ 이라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해당 포스트에서 번역자가 사용한 영어 문장입니다.

No matter how poor your family is, do not doubt your own abilities and lose sight of your ambition.
– When your family deems you worthless, no one will pity you.
– When your parents do not have money to pay the medical bills, no one will pity you.
– When you are beaten by your competitors, no one will pity you.
– When your loved ones abandon you, no one will pity you.
– When you have not accomplished anything by the time you are 35, no one will pity you.

그리고 이 번역자의 한국어 번역본입니다.

당신의 가족이 얼마나 가난하던, 당신만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야망을 잃지 마세요.
– 당신의 가족이 당신을 무시하더라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 당신의 부모님이 물려줄 돈이 없더라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 당신이 자신의 경쟁자에게 패배하더라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버리더라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 당신이 35세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그건 당신 말고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차이점을 찾으셨나요? 네. 맞습니다. 영어본에서는 ‘no one will pity you'(누구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같은 영어 문장이 마지막에만 “그건 당신말고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로 바뀌어 있습니다. 제게는 제목과 본문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이 기사는 제목과 본문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4. 한겨레 / 머니투데이 기사 

한겨레나 머니투데이가 위 한글 블로그(SARM) 번역본을 그대로 갖다 써서 재생산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위 한국어 번역본처럼 한겨레와 머니투데이 기사 제목과 본문이 시작하는 문장이 같다는 점입니다.

  • 머니투데이 제목: “35살이 될 때까지 가난하다면 그건 네 탓이다.”
  • 본문 시작 부분: “35세 때까지 여전히 가난하다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건 당신 자신의 탓이다.”
잭마 마윈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기사. 직접 인용으로 표시된 제목과 본문이 내용상 완전히 일치합니다. 하지만 발언 출처는 기사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과연 한겨레와 머니투데이는 중국어 기사 본문을 확인했을까요? 아니면 적어도 영어 번역 기사를 확인했을까요? 아니면 한국어 블로그 번역본을 살짝 각색만 했을까요? 무엇보다 마윈의 발언 출처는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요? 아무리 기사를 읽어도 직접 인터뷰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습니다. (……)

[divide]

이 글은 필자가 일간워스트에 올린 글을 필자와 협의를 통해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맞게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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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 저도 예전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란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 어느 책에 나오는지 한참 찾아본 적이 있었어요. 뭐 결국 그런 발언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책이나 글은 못 찾았었고 오히려 박은식의 한국통사의 서문이 전체적으로 그 뜻을 담은 글이란 것을 찾았습니다. 또 저처럼 의심을 갖고 찾아본 블로그 글을 찾은 것도 소득이었지요. 그분은 직접적으로 언급된 책은 없다고 저처럼 결론을 내렸더라구요. 하지만 박은식 신채호 두 분의 역사책 전체를 읽어보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주제의식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번역이란 새로운 창조 작업과 같은 거 같아요.대충 의역해서는 의미가 좁아지거나 변질되기 쉬우니까요. 우리나라에 위대한 번역가들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주저리주저리떠들어봤습니다. ㅎㅎ

  2. 국내에 유통되는 많은 번역물은 굉장히 과감한 의역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도 누가 보면 넘어갈만한 수준의 의역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중요한 문장 정도는 원문을 함께 표기하거나 최소한 출처는 명확하게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3. 그랬군요. 신채호 선생님 말씀이라고 알려진 그 인용구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이 글 읽고 지금 알았네요.
    먹고 사는 일이 번역인지라, 번역이 새로운 창조 작업임을 매일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그만큼 겁나게 조심스럽고 머리털 뽑히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도 그렇고, 이 알리바바 건도 직접 인용이냐 아니냐를 철저하게 구분하기만 해도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일이었는데… 직접 인용은 그 사람이 한 말을 토씨 하나 안 빠트리고 동일하게 전달하는 겁니다. 그런데 직접 인용을 어쩔 수 없이 다른 언어로 번역해야만 하는 경우에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이런 보도글의 경우 기자들이 직접 인용이냐 아니냐는 천지 차이임을 인식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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