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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온 편지: 아마존의 딸 마리나 실바, 브라질 대통령에 도전하다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와 편견에 가려 숨겨진 이야기와 또 다른 이면의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한 여인이 궁금해졌다. 그녀 이름은 마리나 실바(Marina Silva). 세계 7위 규모의 경제대국이자, 한때 룰라 대통령의 황금기를 누렸다가 최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브라질에서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인물이다.

2010년 당시의 마리나 실바 (1958년 2월 8일 ~ 현재) (사진: 위키백과 공용)

마리나 실바 (1958년 2월 8일 ~ 현재) (2010년, 사진: 위키백과 공용)

실바, 아마존 지키는 여전사가 되다 

실바는 브라질에서 발에 챌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숲’이라는 뜻을 가졌다. 광대한 숲을 가진 나라에서 실바는 삶의 외진 골목 구석 어디에나 있는 서민이다. 마리나 실바는 ‘숲 중의 숲’, 아마존의 여인이다. ‘아마존'(Amazon)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여전사를 뜻하기도 한다.

고무 원액을 추출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동네에서 태어나서, 가난을 넘어선 세상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16살에 고아가 되는 불행까지 겹쳤다. 다행히 수녀원의 도움을 얻어 살면서 글을 깨쳤다. 그렇게 그녀는 집안을 통틀어 처음으로 문맹을 탈출했다.

가사도우미 일자리를 얻어 숙식을 해결하면서, 내친김에 대학에도 입학했다. 그녀의 사회정치 활동도 시작되었다. 노조를 결성했고, 또 자신의 뿌리인 아마존을 지키는 운동에 헌신했다. 아마존을 지키려다 암살당한 전설적인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Chico Mendes)가 바로 그녀의 동지였다.

브라질 아크레(Acre) 주 샤프리에서 마리나 실바 (1986년, 사진: 위키백과 공용)

브라질 아크레(Acre) 샤프리(Xapuri)에서 마리나 실바. 마리나는 아크레 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16년(1995~2011) 동안 활동한다.  (1986년, 사진: 위키백과 공용)

브라질 서부 아크레 지역의 아마존 우림지역에 방문한 마리나 실바.  뒷편에 보이는 사진이

브라질 서부 아크레에서 마리나 실바. 뒷편 사진 속 인물이 치코 멘데스다. (사진: 위키백과 공용)

자신의 집에서 아들과 함께한 치코 멘데스 (1988년, 사진: 위키백과 공용)

1988년 11월, 자신의 집에서 아들과 함께한 치코 멘데스. 치코는 그해 12월, 44세의 나이로 암살당했다. (사진: 위키백과 공용)

실바, 룰라 정부의 환경부 장관이 되다 

그리하여 환경운동은 그녀의 숙명이 되었다. 오로지 한길이었고, 오직 한 곳만 바라보았다. 집중은 곧 돌파다. 마흔이 채 되기도 전에, ‘숲 속 출신’이라는 신분적 약점을 정면 돌파하여 상원의원에 올랐다. 신념과 지조 위에 힘이 얹혀지니, 그녀의 환경운동은 난공불락이었다. 세상이 입으로 헛되이 아마존을 지키고자 했을 때, 그녀는 아마존 안에서 온몸으로 싸웠다. 개발론자는 주춤했고, 아마존은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한숨 돌리게 되었다.

명성도 높아졌다. 유엔이 그녀를 주목했고, 언론의 관심도 대단했다. 룰라가 대통령이 되어 그녀를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장관이 된다고 해서 바뀔 건 없었다. 마리나 실바에게 이제 더 좋은 무기가 생겼을 뿐이었다. 그녀의 뿌리이자 그녀의 친구를 빼앗아 갔던 아마존을 여전히, 그리고 더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의 수군거림과 불만이 없을 리 없었지만,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갔다. (환경부 장관 재임 기간: 2003년 1월~2008년 5월)

마리나 실바를 향한 언론의 취재 열기 (2008년 4월 8일. 사진: Marina Silva, CC BY) https://flic.kr/p/8tqnWz

마리나 실바를 향한 언론의 취재 열기 (2008년 4월 8일. 사진: Marina Silva, CC BY)

룰라 대통령과 결별하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발걸음은 룰라 대통령마저 당황케 했다. 각종 국책 개발사업이 그녀 때문에 불발되거나 지지부진해졌다. 정치적으로 영민한 대통령은 결국 그녀를 내쳤다. 가녀린 몸매에서 날카로운 광선처럼 쏟아졌던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브라질 정부는 이른바 ‘아마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마존은 다시 숨죽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창당 멤버였지만, 노동당을 버렸다. 그리고 당시 소수정당에 불과했던 녹색당으로 옮겨 대통령에 도전했다. 정치는 순간이지만, 환경은 영원한 인류의 숙제가 아니던가. 개인적인 야망도 숨기지 않았다.

가난, 여성, 그리고 흑인. 세 가지를 가진 자신이 브라질에서 대통령이 되어야, 그것이 진정한 변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수정당이라 방송토론 한번 출연하기 힘든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그녀는 20%에 가까운 득표를 올렸다. 예상 득표율 두 배 이상을 넘었다. 모두가 놀랐다.

녹색당 대통령 후보 시절 청중에게 연설하는 마리나 실바 (2010년 8월 28일. 사진:  Marina Silva, CC BY https://flic.kr/p/8w6Y5H

녹색당 대통령 후보 시절 청중에게 연설하는 마리나 실바. 그해 선거에서 19.4%를 득표했다. (2010년 8월 28일. 사진: Marina Silva, CC BY)

녹색당을 거쳐 이제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이번 10월 대통령 선거에 실바는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원래 후보였던 캄포스가 비행기 사고로 횡사를 당하는 바람에, 부통령 후보였던 그녀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등 떠밀려 나온 까닭에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존의 딸, 실바. 그녀의 지지율 상승세가 무섭다. 중산층의 지지가 대단하다. 1차 선거에서는 최소 2위권에 들어 통과한 뒤, 상위 득표자 두 명이 겨루는 최종선거에서 그녀가 무사히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그녀는 이제 좁을 길에 들어서고 있다. 그녀의 정당인 사회당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환경문제에서야 선명하지만, 경제정책은 다소 보수적이고 사회정책은 다소 진보적이다. 노동당의 사회정책과 다른 보수정당의 경제정책을 결합하겠다고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두 경쟁정당의 정책들 사이로 난 길은 그녀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이상으로 좁을 것이다. 아마존 정글의 길처럼 질척거리고 불안한 길이다. 아마존의 전사인 그녀도 이제껏 가보지 못했을 그런 길이다.

하지만 그 길에 벼락같은 행운이 같이 하길 바란다. 식민과 착취로 점철된 브라질 역사에서 아마존의 가난을 딛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최초의 흑인 여성. 팍팍한 세상을 한 번쯤은 설레게 하는 말 아닌가.

2008년 4월 5일에 촬영한 모습 (사진: Marina Silva, CC BY)

청중에게 연설하는 마리나 실바 (2008년 4월 5일. 사진: Marina Silva,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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